일제사진엽서의시작
오리엔탈리즘의관제엽서
1870년대독일에서처음등장한사진엽서는1900년경일본에유입되어러일전쟁(1904)을전후로폭발적인성장세를거둔것으로알려진다.전장상황을교신하는매체ㆍ서신ㆍ수집품으로서일반적기능을담당했을뿐만아니라,이즈음일본사진엽서의핵심적역할은강대국러시아에대한승전의기쁨,위대한승리를이끈천황과일본군을받드는예찬에있었다.이러한승전의식과세계열강으로도약한자부심이전쟁과거의동시에추진되던한일병합의추진력으로작동했음은물론이다.그결과,예컨대일본과조선의제왕은하나의사진엽서속동일한프레임안에서도승장과패장의이미지가뚜렷한,상하의서열과차별적인제복으로배치되고만다.
병탄이후일제는조선/인전체를미개와야만의전근대,타율성과정체성에찌든피식민자로대상화하는작업에사진엽서를적극적으로활용하기시작한다.식민지조선을호기심자극하는기이한풍속의땅으로,또자신들의선진문명에의해하루빨리개척될신개지로선전하고정당화하는사진엽서를대량으로제작ㆍ유통시켰다.이러한식민성과타자성때문에오늘날일제의조선대상사진엽서는서구와일제합작의오리엔탈리즘이탁월하게만들어낸위장된관제엽서로간주된다.나아가식민지배의이념과성과를대내외에선전하는폭력적프로파간다로도비판당한다.
물론그렇다해도,조선대상의사진엽서도일본대상의그것처럼첨단성과심미성을갖췄다는사실에는변함이없다.이사진엽서들은사진의발명과진화,인쇄기술과매체자본의성장,근대적우편과교통제도가탄생시킨‘볼만한것’으로서전시가치를충분히갖췄다.또한대중의편의와취미를위한서신이나매체그리고수집품으로서사용가치에충실한예술적상품의면모도지녔다.하지만이러한긍정적성격은‘낯선이국’의탐방과여행에서시작해후진적세계의정복과식민화로귀결된제국주의간의경쟁과전쟁과정에서획득된것이라는근본적한계로부터결코자유롭지못하다.
서사의방향과
새로운문제의식
이제이책은일제의문화통치와그것의이념적ㆍ방법적기반이된문화정치학의본질과실상을시가와산문,이미지가결속된각종주제별사진엽서를통해검토해나간다.일제의문화정치학을통한식민공간과일상현실의재편은조선의문화적특수성과후진성을부각시키는한편,일제의식민주의적의식확산과심화에기여했다.이를보다정확하고풍부하게조감하기위해,저자는창가와사진엽서들의언어적의미와미학적형상,시와산문,회화와음악의생산적ㆍ수용적역할을동시에분석해나간다.이러한다차원의접근방식을통해자료해석의토대를제공함으로써일제문화자본의폭력성과도구성을입체적으로드러낼수있었다.
또한이책은일제사진엽서에담긴지배와통치의문화정치학에주목하면서도,그것의수행으로서일제의‘조선적인것’에대한모방ㆍ수렴과정에서나타나는,뜻하지않은‘차이와반항의기호’에도주의를기울인다.그것은조선적인것고유의생명력과타문화가결코지울수없는기원과흔적이작동한결과였다.제국의식민주의적모방은식민지를대상화한다는점에서부적합의기호지만,이는동시에식민권력의식민지에대한지배기능에조응하고감시를강화시키기도한다.일제사진엽서에내포된이러한양가성의측면은식민지를빈틈없이통합하기보다규범화된지식과규율권력에내재적위협이되는차이와반항의기호를생산할가능성이높았다.
사진엽서의이러한양가성과차이와반항의기호들에대한보다입체적분석을위해저자는일제의문화정치학이폭넓게관철되는곳으로여겨지는,종교적신성(천황제이념),언어와문학,식민공간,일상과생업,전쟁분야에주목했으며,소재자체도단품엽서보다는서사적구성이가능한사진엽서세트를선택해집중적으로살펴나갔다.
피사체에투영된
식민권력의다층적이념과욕망
일제가식민지조선의각종인물과자연,풍속과문화를담아낸대량의사진과그림이미지는주어진사실과정보를채집ㆍ기록ㆍ보고하기위한객관적텍스트의일종이다.그렇지만정확한사실의재현과객관적정보의제시매체로강조되던이기록물들은권력적시선의문화정치학적산물이기도했다.선진제국의계몽과협력의기호라는미명아래식민지조선을지배하고통제하기위한권력의기술이그내부에담겨있기때문이다.식민권력의필요에따라새롭게발명한조선의이미지,또그것들에부가된우월한문명관과이국취향을담은시가와산문은일제-지배,조선-식민화라는관념과형식을상상하고실현하는힘센미학적기호로작동했다.
그런점에서‘조선적인것’을권력의시선과언어로포착한일제사진엽서는사실과기록을중시하는문화적유물일수만없었다.그보다는식민주의적기억과재현의문화정치학을시현하는효율적통로에가까웠다.일제사진엽서의문화제국주의적입장과태도는조선적인것을계몽과열패의관점으로점유하고거리화하는원동력이되었다.언급했다시피그럴수록조선적인것은일제의타문화에대한시선의욕망을채워주는상품으로전락해갔다.또한새로운문명국에진입하기위해서는일제의지배를받아야만한다는식민지적무/의식을내면화하는오리엔탈리즘의기제로고착되어갔다.
폭력의시선과태도넘어
식민지인의영토를직시하기위하여
이책은사진과그림단독의사진엽서보다는이미지와시가,산문이함께실린복합적형태의사진엽서세트들에보다많은관심과주의를기울였다.사진과그림은사실을‘있는그대로’또는왜곡ㆍ변형ㆍ과장ㆍ축소하여재현한이미지라는한계를벗어나지못한다.때문에사진엽서에는어떤방식으로든그불확실성을제거하고,동시에객관적이며확실한의미를보완할수있는문자가개입되거나보충되었다.이에대한1차적역할을담당했던것이엽서아래적힌제목과분류기호,지역이름같은간략한정보들이었다.사진이나그림에노래와시,이야기류의서사와해설류의산문이더해지면엽서가의도하는의미의확정이나제시가더욱견고해진다.또때에따라서는이미지와문자가조화롭게통합되는대신양자의시선과목소리가어긋나는뜻밖의아이러니가발생하기도한다.
저자는이처럼한장면으로수렴되거나여러경로로분산되는사진엽서의의미론을정확히파악하기위해서는이미지와문자속에내장된제국-주체의‘응시하는시선’과식민지-타자의‘응시받는시선’의차이점,아니차별의체계와구조에더욱민감해야한다고강조한다.사진엽서에비친‘(식민지조선도아닌!)근대조선’을‘인간전시(진열)’에박힌‘인류학적시선’이자‘제국주의적시선’,“우리들과는다른기이한옛풍속”에대한‘호기심어린시선’이라는관점으로파악한일본학자를일례로들어,이러한스탠스를통칭하는말이“‘문명’=서양으로부터‘미개’에대한제국주의적시선의역사”임을지적하면서,이러한규정속에여전히박혀있는타자화ㆍ소외화의정치학적시선과폭력주의적태도를폭로한다.나아가이때문에라도식민지의후예인우리에게사진엽서에배인식민주의특유의진화론과우생학,그것이식민지에자행한국가주의적폭력과인종주의적배척이라는잔혹한낙인찍기에대한철저한탐색과비판이요구된다고역설한다.
소외된것의귀환과환대
하지만무엇보다사진엽서에새겨진‘조선적인것’의지나친통속화와파편화를넘어서기위해,저자는식민의땅어딘가에서꿈틀대는‘잠재적인전복의삶’과그것을자극할만한목소리와정념을보고하고발명하는작업이반드시필요하다고적는다.식민권력의이념과미래,나아가내선융화의요구를위협하거나비판케하는식민지인의영토들을찾아내기위해,그가이책에서신채호,김소월,현진건,염상섭,나운규,정지용,채만식,이태준,박태원,이상,김유정,김남천,김사량,백석,서정주,이용악,오장환등을호명하는이유다.사진엽서속피사체들은소외의형상으로감각되었지만,그들의진솔한내면은열거한작가들의손끝에서진정한호소력을회복한다.시각적통속을반성적으로환기해내는이귀환을우리는다시환대해야한다.
저자는이렇게책을맺는다.“이를통해소수의체제협력자들을제외하고는소외와타자의변두리인생으로명멸해간식민지조선(인)의감춰진얼굴을엿보고들릴까말까한목소리를엿듣고자했다.하지만데리다가날카롭게지적했듯이,그들의말할수없으며,말했더라도정확히들려오지않는목소리를주인의입장에서자신의언어로번역하여하나의모범적인언술로단성화하는태도는진정한환대와거리가멀다.그러므로이후의사진엽서연구는이러한한계를넘어식민권력에의해소외된‘조선적인것’들에게다음과같은환대를제공해야한다.그들이원래의말과얼굴을되찾을수있도록그들의소외된영혼과삶을나의것으로받아들임과동시에,그제약된삶속에서나마누구도빼앗을수없는역동적생명력을발견하는작업이그것이다.”
각장의스토리
이책의순서와개요는다음과같다.
서문격인프롤로그에서는일제사진엽서의기원과종류,거기에담긴식민주의와문화정치학의본질,대표적인생산-유통업체등을살핀다.결론격인에필로그에서는‘일본적인것’에투사된‘조선적인것’의명암을세종류의사진엽서에담긴조선아동의얼굴과뒷모습을비교ㆍ대조하는방식으로살펴본다.
본문은일제사진엽서의식민주의적원리와이념그리고거기에포획된식민지조선의다양한면면을총괄해본다는의미에서,①원리와이념(1장),②언어와문학(2장~3장),③지식과취미(4장~7장),④일상과생업(8장~10장),⑤전쟁(11장)으로설정했다.그리하여본문은다음과같이구성된다.
제1장은조선신궁설치10주년기념사진첩《은뢰》에실린일제왕가의역사와업적,조선사진과시가,해설에각인된근대천황제의군국주의적이념과원리를해부한다.
제2장은일본여행객대상의실용품과기념품인한ㆍ일어대역엽서세트를대상으로제국과식민지사이의권력지도를살핀다.제3장은일본인화자의정시(情詩)류엽서세트를대상으로일본적인것의숭고화및조선적인것의낭만화에숨겨진양면성을짚어본다.
제4장및제5장은경성과평양을식민지근대화의관점,이를테면일본적인것은‘꽃과칼’,조선적인것은‘화농(化膿)과정체(停滯)’로파악하는권력적시선의문제성을살핀다.제6장및제7장은금강산과경주엽서세트를대상으로두관광지를여성미와폐허미로응시하는일제관광객의시선의편향성을밝힌다.
제8장은조선부인의하루생활이담긴엽서세트를중심으로식민지여성을전근대적일상과성애의육체성으로양분하여관람하는일제의남근주의적시선을비판한다.제9장은전통기예의공연자보다는성애와유희의제공자로주로소비되던조선기생의식민화와타자화과정을각종기생엽서들에서보이는그들의연기된웃음과위장된슬픔이라는코드와겹쳐읽는다.제10장은조선남성을전근대적노동과지루한유희의토인으로고착시켜사진엽서에가둔식민권력의편협한훔쳐보기를비판한다.
제11장은아시아ㆍ태평양전쟁시기일왕을위한죽음의병기로호출ㆍ소모되던식민지조선/인의불우한삶을총력전과전선총후의사진엽서에서읽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