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 이야기 : 새김에서 기억으로 - 知의 회랑 33 (양장)

반구대 이야기 : 새김에서 기억으로 - 知의 회랑 33 (양장)

$24.00
Description
너를 여기에 잡아둔다
네 뿔이, 네 발굽이, 네 눈빛이
이 돌에 붙잡힌다
35년째 반구대와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저자가
바위에 새겨진 여러 겹 무늬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잔잔히 풀어내는 고대로의 이야기 시간여행

울산 태화강 거슬러 대곡천 물줄기를 따라간 깊은 골짜기. 일부러 사람이 닿을 수 없게 마련된 듯한 자리에 반구대 암각화는 펼쳐져 있다. 옛사람들은 과연 이곳에 무슨 이야기들을 새겨둔 걸까.
1988년부터 지금까지 이 특별한 유적과 인연을 맺어,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장, 반구대암각화 세계유산추진단 자문위원 등을 맡아 다양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전호태 교수(울산대 역사문화학과)가 이에 응답한다. 이 책은 그가 56가지 연결어로 빚어낸 반구대 암각화 스토리텔링 에세이다.
저자는 이 소중한 역사 유적의 사실 정보를 친절히 설명해나가는 동시에, 크게 네 차례에 걸쳐 새겨진 그림들의 시간을 여러 겹 인간의 기억들로 환생시키면서 옛사람들의 고백을 흥미롭게 현재화해낸다. 참 오래된 곳에서 길어 올리지만, 바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고스란히 내려앉는 이야기들이다.
유적 탄생 한참 이전부터 앞으로 저 멀리 보존의 바람까지 담아낸 역사가적 성찰, 네 겹으로 쌓여간 여러 형상들의 의미를 되짚어내는 미술사가의 시선, 암각화마다 맺힌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러의 내레이션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서 피어오를 독자 저마다의 심상은 이 이야기의 종장을 완성하게 될 여운이 아닐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서른세 번째 책이다.

북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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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호태

서울대학교국사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고구려고분벽화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다.국립중앙박물관학예연구사를거쳐울산대학교역사문화학과교수겸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장으로재직하고있다.반구대암각화세계유산추진단자문위원및동추진위원회위원으로도활동중이다.미국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동아시아연구소및하버드대학한국학연구소방문교수,울산광역시문화재위원,문화재청문화재전문위원,한국암각화학회장,울산대학교박물관장등을역임했다.암각화를비롯한한국고대의역사와미술그리고문화를활발히연구해왔으며,이를바탕으로동아시아문화를탐구하는작업에매진하고있다.
그간쉼없는저술활동을이어나가며어린이부터청소년과일반시민그리고대학생과전문연구자들에이르기까지다양한독자들과만나왔다.『고대한국의풍경』,『중국인의오브제』,『고대에서도착한생각들』,『황금의시대신라』,『고구려에서만난우리역사』,『비밀의문환문총』,『고구려고분벽화연구여행』,『글로벌한국사1-문명의성장과한국고대사』,『화상석속의신화와역사』등의교양서와『고구려벽화고분의과거와현재』,『무용총수렵도』,『고구려생활문화사연구』,『고구려벽화고분』,『울산반구대암각화연구』,『고구려고분벽화의세계』,『고구려고분벽화연구』등의연구서를포함해다수의저서가있다.백상출판문화상인문과학부문저작상,고구려발해학술상등을수상했다.

목차

책을열며

제1부발견
―발견ㆍ태화강ㆍ공룡발자국화석ㆍ사연댐ㆍ기후환경ㆍ만남ㆍ첫번째새김ㆍ바위신앙ㆍ신석기시대ㆍ예술가ㆍ해석ㆍ숨은그림ㆍ당위와소망,왜곡ㆍ바위씻기
[詩]역사|바위|바위그림|기도바위

제2부사냥
―두번째새김ㆍ풍경ㆍ신ㆍ주술ㆍ활ㆍ개ㆍ마을ㆍ길ㆍ교역ㆍ축제와의례ㆍ손가락을펼쳐보이는사람
[詩]사냥|길들이기

제3부바다
―세번째새김ㆍ소리지르는사람ㆍ배ㆍ고래가된소년ㆍ어미고래와새끼고래ㆍ작살맞은고래ㆍ잠수하는고래ㆍ세마리고래의춤ㆍ귀신고래ㆍ들쇠고래와참돌고래ㆍ범고래ㆍ미완성고래ㆍ고래나누기ㆍ밍크고래는없다ㆍ고래스트랜딩ㆍ바다사자와북방물개ㆍ거대한상어ㆍ거북ㆍ가마우지ㆍ작별,바다를떠나다
[詩]바다|삶|생명의고향|고래잠

제4부다시뭍으로
―네번째새김ㆍ쪼아새기고갈기ㆍ가면인가,얼굴인가?ㆍ호랑이ㆍ큰뿔사슴ㆍ멧돼지도너구리도아닌?ㆍ덫과그물ㆍ겹친그림들ㆍ망각ㆍ새김에서그림으로ㆍ내일
[詩]범|봄|망각

주ㆍ도판목록
참고문헌ㆍ찾아보기
총서‘知의회랑’을기획하며

출판사 서평

이야기가탄생하는곳
신성한시간과공간에서

이곳이현대의세상에처음알려진건1970년.어느새반세기가훌쩍지났다.그러나알다시피반구대이야기를시작하려면,긴시간을한참더거슬러올라가야만한다.장마철이면암각화를다시물로가두는사연댐의사연은제법최근이야기고,반구대유역의지형이완성되던때의자연과기후환경이나대곡천바닥에무수히찍혀있는공룡발자국들까지언급하다보면이야기의시간은어느덧백악기무렵에닿는다.무엇보다반구대에암각화를새기던옛사람들의시절또한까마득해서여전히선사(先史)의영역이라부르는곳이다(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다양한발굴의결과로이시기에대한인간의인식은확장되었겠지만,아직은상상력까지도넉넉하게품어줄수있는공간이다.
저자의이야기가풀려나오는곳은그래서다가서기어렵고위험했으며,쉽게잊히기도했지만,언제고다시발견되어우리를맞을수있던곳,바로반구대다.저자는이곳이야말로옛사람들에게신성한공간이었을거라며,이렇게운을뗀다.“반구대바위에사람이찾아오는동안이곳은신성한공간의중심이었다.물길로는바깥세계와이어질수있지만,깊은산의골짝길로다가서기에는곳곳에위험이도사린까닭에가까이가기어려웠다.물길로도어렵게닿았기에사람들이신과만날수있다고믿었던반구대암각화바위.잊혔다가도다시발견되고,다시찾을수있었던신성한바위에찾는이들이신과나눈대화,기도가그림으로남겨진건당연하다고할수있다.”

네번의새김,여러겹의기억
그리고스토리텔링

무엇보다이책은암각화,그형상들에대한이야기다.이이야기들의주인공인반구대바위위350여개의물상들은새겨진시기도새긴사람도다르다.새긴사람의생활방식과관념세계도같지않다.저자는말한다.“반구대암각화는오랜시간이흐르면서서서히완성된집단창작품이다.서로다른시각과창작방식이교차하며버무려진작품이기도하다.”
저자는시간순으로크게네차례에걸쳐암각화를새겨나간이들의자취와그창작된무늬들을4부구성의서사로연출해낸다.물론어떤물상들이주로새겨졌으며그특성이어떠한지가서사의큰줄기가되지만,샤먼과사제였거나한반도의첫번째예술가들이기도했을그크리에이터들의정체와생활상을재현하는데도심혈을기울인다.뿐인가.또어떤장은오직이암각화로부터비롯되었을전설들로채워져,그때껏선사시대여행자혹은암각화관람자로책장을넘기던독자들에게색다른상상력의차원까지열어놓는다(고래마을에서전해내려온다는‘고래가된소년’이야기는곱씹을수록애틋하다).이렇게저자는네번의새김을여러겹의기억으로풀어내면서역사,미술(예술),문학을엮는스토리텔링의진수를보여준다.
네번에걸쳐새겨진그주인공들이과연누구였는지,이제저자의말을옮겨먼저간단히소개해본다.

―첫번째새김

“반구대암각화바위에처음새겨진것은뭍짐승들이다.너무작게새겨져어떤종류인지알기어려운것들이대부분인데,사슴과나개과짐승으로보이는것들이비교적많다.처음새겨진것들이라이후에크고또렷하게새겨진것들로말미암아원형을잃은것이많다.
처음바위에암각을남긴사람들이사냥꾼이었음은확실하다.농사를지으면서바위에짐승을새길수도있지만,초기의암각이후새김주제가일관되게사냥이고,시기상으로도한국에서는청동기시대초입에들어서기까지농경은특정한지역에서제한적으로이루어졌기때문이다.반구대암각화바위가사람들에게화면을제공하던당시한반도의대부분지역사람들은사냥과채집으로하루를보내고있었다.”

―두번째새김

“처음바위에띄엄띄엄뭍짐승들을새긴이들이태화강변제살던곳을떠난지수백년뒤,다시새로운무리가이바위를찾아활이나창으로사슴이나노루를사냥하던자신들의모습을새기며사냥의성공을기원하는일이몇백년동안계속되었을것이다.
두번째새김이시작될때,암각예술가들은이전과는다른기법을사용했다.표현대상의윤곽을선으로잡아낸다음선안을모두파내는면새김기법을썼다.이전의작품에는보이지않던기법이다.새롭게이런면새김기법을쓴데에는어떤의도가있었을것이다.선새김과다르게면새김은새김을시도한예술가에게더많은공력이들게하는까닭이다.아마도이역시신에게기도하는자세를반듯하게하고,소망을표현하는강도를더하기위해서가아닐까.실제표현대상이하나같이아무런무늬도없는민무늬짐승은아니기때문이다.”

―세번째새김

“반구대암각화세번째새김의중심주제는고래사냥이다.57마리나등장하는고래그림대부분이세번째단계의새김작업을통해바위위에모습을드러냈다.물론이경우도한차례의짧은작업으로화면곳곳에서만날수있는고래들이암각화로붙박인것은아니다.최소수백년에걸친여러차례의작업결과가오늘날반구대바위에서볼수있는생생한고래그림일것이다.
세번째새김을시도한사람들은이미알려진기법들을모두사용하면서화면의빈곳을최대한활용하는방식으로작업했다.뭍짐승들과크기도무게도아예다른고래를멀리서도알아볼수있게크고뚜렷하게새겼다.또한높은절벽위에서넓은바다를내려다보며고래무리의움직임을관찰한듯한시각을바탕으로화면안에각각의고래를배치하고표현했다.”

―네번째새김

“반구대바위에더는고래가새겨지지않게된지오랜시간이흐른뒤,새로운기법으로새로운물상을바위에새기려는사람들이대곡천곁기암절벽앞에왔다.이들이어디서왔는지는알수없으나,뭍짐승사냥으로살아가거나사냥과채집에힘쓰면서부분적으로나마농경을시도하던무리였을수있다.눈길을끄는건새로반구대에암각을한사람들이선택한제재가대부분맹수라는사실이다.이들에겐이런짐승들이경외의대상이었기때문일것이다.
반구대암각화의마지막을장식하는맹수그림은종교와신앙,민속의원형을보여주는매우귀중한사례일수있다.청동기시대혹은신석기시대말까지는신이호랑이나표범같은본래모습그대로바위에새겨지고숭배되었을수있는것이다.반구대바위에마지막새김을시도한사람들은신으로서숭배된맹수들을바위에새기고갈아모습이더뚜렷하게드러나게하면서마을을보호하고,사냥에성공하며,농사가잘되기를빌고있지않았을까.”

기억과망각의변주
그리고내일

이렇게반구대암각화는“뭍짐승을사냥하던사람들,고래잡이가생업이던사람들,맹수를경외하던사람들이서로를알지못한채오랜기간여러세대에걸쳐자신들의생업과관련이깊은존재를익숙한기법으로새겨형상화한”것이다.신과나누는대화였으며,그를향한고백과염원이담겨있었다.무언가를기억해두려애쓰는인간의소산이었다.
그런데언제부턴가반구대바위는사람들에게서서서히잊혀갔다.“암각화를새기려고물길을거슬러대곡천바위절벽까지오는사람도없었고,태화강물줄기에서벗어난외진곳을찾는이도없었다.수천년동안사람들의기억속에서성스러운장소였던곳이어느틈엔가강변엔갈대만우거지고,숲깊은곳에서물마시러나오는짐승들만볼수있는곳으로바뀌었다.(…)오지않으면잊힌다.”저자의아련함은이렇게맺혀있었다.1970년다른목적의탐사대에게우연히재발견될때까지,이곳은옛사람들의새김과그기억의수고가무색해지도록다시긴시간망각의늪속에서지내야했다.그러니지금우리앞에몸을드러내고있는이반구대의화폭은누차기억과망각을반복하며세상의온갖이야기들을변주시켜온시간의증거물과같다.
언뜻다시망각의저편으로사라져버린들―이곳이야말로기억뿐아니라망각속에서도존재해온것이므로―크게의아해할것없을지모르겠다.그러나기왕지사21세기새로운기억의시간대로넘어왔으니,이소중한유적의보존을위해이제인간이해야할일이참많다는게저자의당부다.잔잔한어조로55꼭지이야기를만들어온그가마지막꼭지‘내일’에서“진정성”까지소환해호소해야만하는이유이기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