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의학명속에영원히이름을남긴
학자들을찾아떠나는여행
1.세균의학명에이름을남긴수많은사람들
분류학에서처음해야하는일이자가장핵심적인작업중하나가바로‘이름붙이기’이다.현대분류학에서이름붙이기는린네가만든방식이기본원칙이다.동물과식물은물론이고세균을비롯한미생물에서도그렇다.속명과종소명,명명자만으로구성된이방법은사실간단하고별것없어보이지만,굉장히혁명적이고효율적인방법이었다.생물은정말엄청나게다양하기때문이다.이전에는비슷하지만다른종을발견하면이미그종을묘사한이름에덧붙여추가로쓰는경우가많았는데,그결과너무복잡한이름이되어버리고말았다.린네는바로이를해결했다.덕분에‘Homosapiens’라고쓰면어떤언어를쓰든지무엇을의미하는지알수있고,‘침속에존재하는패혈증유발세균’이아니라그냥‘Streptococcuspneumoniae’라고부르면그게어떤세균을가리키는것인지금방알수있게되었다.
이처럼린네의이명법은생물학명을정하는데있어그생물의특성과상관없이명명할수있게함으로써명명체계를간단하게만들었다.나아가린네의이명법이사람들로하여금과학에대한관심과욕심을가져오게했다는견해도있다.새로운식물과동물을찾으려고자발적으로경쟁에나서게된것이다.명명자를제시하는방식도그렇고,속명과종소명을새로정하는것이고유권한이라는점,그이름이최초이고제대로된것이라면영원히남으리란약속이있었기때문이다.
학명에서가장중요한것은‘선취권’이다.가장먼저기술하고발표했을때그학명이인정된다.물론명확하게기술되어야하고,라틴어나라틴어화된단어를써야한다는조건도있다.1600년대말레이우엔훅이처음으로세균을관찰하고보고한이후,우여곡절을거쳐결국세균에도이명법이적용되기시작했다.
세균의학명을정할때는다양한데서이름을가져온다.각특성을나타내는이름을붙이기도하고,국가나도시,강,산등의지역이름을따기도하고,어떤기관의이름을붙이기도한다.저자인고관수교수의경우도새로운세균을발견하면서다양한곳에서이름을따왔다.‘Legionellabusanensis’라는세균은부산(Busan)의어느건물냉각탑에서분리한세균이라그렇게붙였고,‘Bacillusinfantis’라는세균은갓태어난아이(infant)에게서나온것이라그렇게이름지었다.‘Neisseriaskkuensis’는저자가재직하는학교의약자(성균관대,SKKU)에서가져왔다.‘Microbacteriumpyrexiae’는열이나는(pirexia)환자에서분리했다고그렇게이름을붙였다.
학명을지을때가장흔하면서도동시에가장흥미로운방법은바로사람의이름을가져오는것이다.사람이름을써서학명을정할때그분야에서업적을남긴과학자의이름을이용하는경우가가장많을수밖에없다.어쩌면가장덜창의적이고,재미없는이름짓기방법인데,저자는그런이름들을하나씩쫓아가면그분야의학문적지형을엿볼수있겠단생각이들었다.그리고그일을세균에대해서알아보면어떨까한것이이책의시작이되었다.따라서이책에서는될수있으면잘알려진세균,혹은잘알려진학자를골랐다.이를테면대장균은잘알려진세균이고,파스퇴르는잘알려진세균학자이기때문에이책에서소개한다.또한주로질병을일으키는세균을고르려고노력했다.세균의학명자체에이름이들어간과학자뿐만아니라,그런이름을붙인과학자에도관심을가졌다.
2.대장균에이름을남긴학자,에쉐리히
가끔뉴스를보면어떤음식점이나물에서대장균이검출되었다고안전을우려하는멘트가이어질때가있다.사실대장균의존재자체는대체로크게위험한것은아니다.다만대장균이그만큼검출되었다는것은다른세균도많이존재할가능성이높다는것이므로위생적이지않다는뜻으로주의가필요하다.그렇다면일반인들도흔하게들어본세균인대장균의학명은무엇일까?‘대장균’의학명은Escherichiacoli다.워낙많이연구하다보니보통‘이콜라이’(또는‘이콜리’)라고하면일반인들도많이알정도로대중적인(?)세균이다.여기서coli라는종명은결장(colon)에존재한다는뜻이고,Escherichia라는속명은테오도르에쉐리히(TheodorEscherich,1857-1911)라는사람의이름에서온것이다.그럼대장균의학명에이름을남긴에쉐리히는어떤사람일까?
대장균을처음발견한사람,정확히는그존재를처음으로기술한사람이바로에쉐리히다.에쉐리히는독일-오스트리아의소아과의사였으며그라츠대학과빈대학의교수였다.그는1885년건강한사람의대변에서이세균을발견했고처음에는“결장에모여있는세균”이라고불렀다.이후다른이름을잠시가졌지만,결국1919년에쉐리히의이름을따서Escherichia라는속명이만들어졌고,최종적으로Escherichiacoli로명명되었다.안타깝게도,현재에쉐리히라는선구적인세균학자를기억하는사람은드물다.뿐만아니라당대의어떤학자들도에쉐리히가발견한작은세균이나중에이렇게유명해지리라고예상하지못했다.하지만그의이름은이세균에붙여져영원히남았고,대장균은그가남긴가장중요하면서도위대한유산이되었다.
현재세계의많은연구자들이대장균을통해각종연구를수행하고있다.과학자들은1920년대부터세균의생리를연구하는데대장균을이용해왔다.그러다1940년대부터모델생물로선택되었다.현대생물학의가장기본적인내용이라할수있는유전암호,복제,전사,번역등의메커니즘이모두대장균을통해서밝혀졌다.대장균을통해얻게된생물학의지식과실험기법은의학과유전공학,제약산업등에응용되었다.대장균이현대생물학에서가장중요한모델생물이라고하는것은절대과장이아닌셈이다.노벨생리의학상을수상한자코브는“대장균에서맞는사실은코끼리에서도맞는사실이다”란말로대장균의역할을설명했다.
3.발진티푸스세균에이름을남긴학자,리케츠와프로바제크
발진티푸스는감옥열,전쟁열,병원열등다양한이름으로불린질병이다.대개밀집되고위생이열악한상황에서잘발생하고전염력도강했다.사소한범죄도사형으로다스리던수백년전영국에서올가미에의한죽음보다발진티푸스에의해죽는죄수가더많았다고하니밀집된환경에서벌어진이질병의참상이어느정도였는지짐작이간다.
발진티푸스는리케차프로바제키(Rickettsiaprowazekii)라고하는세균이병원체인데,‘리케차’라고하는이세균은이(Lice)에기생하며이의배설물에섞여나와서사람의몸으로전달되어병을일으킨다.이세균을발견한사람은브라질의엔히키다로샤-리마(HenriquedaRochaLima,1879-1956)였다.그는자신이발견한세균의이름을발진티푸스를연구하다죽은두명의연구자이름으로지었다.하워드리케츠(HowardTaylorRicketts,1871-1910)와자신의친구이자동료연구자였던스태니슬라우스폰프로바제크(StanislausvonProwazek,1875-1915)다.
하워드리케츠는파리파스퇴르연구소에서연구하며실험기법을익힌후시카고대학의교수로돌아왔는데여기서로키산홍반열(Rockymountainspottedfever)을연구하기시작했다.리케츠는로키산홍반열을연구하면서이질병과발진티푸스사이의유사성에주목하게되었다.로키산홍반열역시진드기를매개체로하는감염질환이며,나중에리케차속에속하는세균(Rickettsiarickettsii로속명,종명모두리케츠의이름에서왔다)에의해생기는것으로밝혀졌다는점에서두질병이유사한것은당연한일이었다.리케츠는1909년발진티푸스연구를위해멕시코로떠나서발진티푸스연구를이어갔다.당시멕시코시티는발진티푸스가집단적으로발생하고있는위험한상황이었다.결국1910년발진티푸스를일으킨다고믿었던병원체를분리하고며칠후발진티푸스에걸려사망한다.
프로바제크는동물학자이자기생충학자로,로샤리마와함께발진티푸스의병원체를발견했다.1914년제1차세계대전이발발할무렵프로바제크는이미세르비아와이스탄불등지에서발생한발진티푸스에관한전문가가되어있었다.전쟁초기부터그는로샤리마와함께러시아포로수용소의병원에서일하고있었는데,이곳에서유행하는발진티푸스를어떻게물리칠것인지알아내라는명령을받았다.연구도중프로바제크와로샤리마모두발진티푸스에걸렸다.다행히로샤리마는회복되었으나프로바제크는사망하고만다.겨우마흔의나이였다.
리케차자체는세균으로서도매우작은생명체다.그래서과거에는세균과구분해서설명했던적도있다.이세균들은극단적으로유전자가적어기생생활을할수밖에없다.다른세균보다오히려미토콘드리아와더닮은존재로세포내공생으로생긴미토콘드리아의조상이리케차종류였을것으로추정하는이들도있다.이세균이수많은목숨을앗아간데는세균자체의특성도있지만,인류가스스로만들어놓은열악하고밀집된환경과행동때문이었다.이세균의학명을접할때마다이세균에게희생된과학자들을만날수밖에없어숙연해진다.이세균에는정말많은목숨이걸려있는것이다.
4.리스테리아균에이름을남긴학자,리스터
리스테리아균(Listeriamonocytogenes)은식중독의일종인리스테리아증(listerosis)을일으키는병원균이다.리스테리아균은그람양성균으로조셉리스터(JosephLister,1827-1912)의이름을따서지어졌다.이세균은0℃가까이에서도생장하는데,즉냉장고에서도증식한다는것으로이세균에식품이오염되었을때냉장고에보관해도별소용이없다는뜻이다.우리에게도친숙한구강청결제리스테린(listerin,1979년에처음개발)역시리스터의이름에서가져온것이다.
리스테리아(Listeria)라는세균속명에이름을남긴리스터는감염관리의개척자중한사람으로꼽히며,파스퇴르,코흐와함께언급하는경우도많다.리스터는수술할때감염을막기위해서석탄산(페놀)을도입할것을주장했고,이를통해많은목숨을살렸다.
오늘날에도수술은되도록피하고싶지만,19세기까지만해도수술은목숨을내놓고받는것이었다.우선은아직신뢰할만한마취제가개발되지않은상황이라수술할때의고통이너무나도심했다.그래서당시는팔다리를잘라내는‘빠른’속도가외과의사로서의능력을의미할정도였다.수술후감염으로사망하는경우도흔했다.물론당시에는사망원인이세균에의한감염이라는점을알지도못했다.당시에는“병원에서수술대위에누운사람이워털루의전장에서싸우는영국군인보다죽을확률이높다”는말까지나왔다.
리스터는수술실에깨끗한수건을비치해서손씻기를고취했다.그럼에도불구하고1864년부터1866년까지35건가운데16건의수술에서환자가사망했다.수술을받고나서수술을받게된원래이유와는다른이유로죽는환자들에대해괴로워하던와중리스터는파스퇴르의생물속생설에관한논문을읽게된다.그는끓인오줌을배지로이용하여파스퇴르의것과비슷한‘백조목’실험을했고,공기의존재가오염의원인은아니란것을확인했다.
이제문제는끓여서는제거되지않는수술부위나상처부위의오염물질을어떻게제거하는가하는것이었다.고민을하던중리스터는석탄산을이용하여하수도를정화하는데성공했다는소식을접한다.석탄산은냄새를없앴을뿐만아니라,석탄산을처리한물질을목장에뿌렸더니소들이더이상감염되지않았다.더군다나순수한상태의석탄산을얻을수있었고,물에도잘녹았다.리스터는석탄산이상처의세균을죽이고,감염을막는데사용할수있을것으로생각했다.하지만처음에는농도나처리방법등이적절하지않은탓에실패했다.
1865년열한살의한남자아이가다리의복합골절로병원으로실려왔다.이아이를수술하는데석탄산으로멸균을시도했고결과는성공이었다.오늘날리스터는‘현대수술의선구자’로명성을이어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