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cription
이 책은 우리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중국 고전의 배후에 어떤 이야기, 어떤 수수께끼가 숨어 있는지 ‘환경’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지 생각해 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도가 중요한 이유는 우선 지구 전체의 환경사를 한데 정리해 나가는 데 있어 ‘중국사’는 가장 특색 있는 ‘사료 제공자’가 되기 때문이다.
4대 문명이라는 말은 널리 들어서 익숙하지만, 이집트ㆍ메소포타미아ㆍ인도의 경우 고대 문명을 담당한 사람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고대 문명의 유적지 그 자체가 사막화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중국에는 고대 문명을 구축한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가 지금도 거의 동일한 문법으로 남아있다. 문자는 물론 변화하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학습하면 그것들이 현재의 어느 문자에 해당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자의 발생 이래 그것이 사용된 시대 환경을 보여주는 자료가 연속해서 계속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은 요즘 아무리 사막화의 위기가 닥친다고는 해도, 어쨌든 방대한 인구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제적으로도 재차 발전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 문명은 유일하게 멸망하지 않은 고대 문명인 것이다. 이는 지구 전체의 역사로 봐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대륙은 어째서 인간이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걸까? 또 한 가지 중국사 혹은 인류사의 ‘상식’인 것처럼 자주 볼 수 있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농업 생산력이 향상하여 잉여 물자가 생기자 빈부 차가 발생하고, 잉여를 교역하는 상업이 발전했다’라든가, ‘중국은 농경민족의 나라인데 종종 유목민의 침입을 받았다’라든가, 그중에는 ‘인류는 모계제 사회로부터 부계제 사회로 변화했다’라는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현재 여러 각도에서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이 되어 중국에서 차례차례 발견된 새로운 출토자료가 종래의 ‘상식’을 바꿔 쓰고 있기도 하지만, 서구 근대에서 성립한 ‘국민 국가’의 역사상으로 그려져 온 것이 정말로 인류에게 ‘보편적’인 역사의 흐름이었던 것일까?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국가’라는 틀과 마찰을 빚고 있는 인간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한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는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또한 고대의 사람들이 교역한 것은 정말로 ‘잉여’였던 것일까? 더욱이 ‘남녀 차별’이라고 말하더라도 세계 각지에 다양한 차이가 있는데 어째서일까? 최근의 역사 ‘다시 보기’ 경향은 이러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늘어난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여러 문제를 냉정하게 재검토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활동이 각각 어떠한 자연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그 자연환경은 인류가 삶을 영위해 나가며 어떻게 변하였고, 그러한 변화는 이후 인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와 같은 기초적이고 당연한 관점, 곧 환경사의 시점으로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은 사실 과거에도 뛰어난 역사 서술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역사적 현상을 조망해 나가면 실로 다양한 패턴이 출현한다는 점에서, 그리 간단하게 ‘보편적 법칙성’ 등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조급하지 않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데도 전술한 지속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중국사라는 분야는 매우 풍부한 ‘힌트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의 대지는 유구해도 각 시대의 기후조건이나 인간의 존재 방식은 변천해 왔습니다. 자연환경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개조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그 개조에는 곡물 생산 중시정책과 같은 성공 사례는 물론 적지적작(適地適作)주의를 이용한 화폐ㆍ유통 조작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응용하기 어려운 실패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목축을 배제하는 화이사상이나 가정 내 남녀분업과 같이 대응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측면이 후세의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 대응책의 정보가 기록된 경우 2천 년 이상 지속된 한자 문화를 가진 중국에서는 건지(乾地)농법 기술이나 유용수목식수정책처럼 정보를 축적하여 사회 공통의 지혜로 만드는 경우도 나타났지만, 기록자 측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경우 밭농사 관개나 구종법처럼 실패의 반복도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_본문 중에서
“중국 대륙이 인간, 그것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거주 가능한 환경일 수 있었던 것은 여름철 고온, 다우(多雨)한 동아시아 몬순 기후라는 환경 아래 강우량ㆍ기온 등에 적응한 곡물 재배지 중심의 산업 지리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방침이 ‘국가’의 주류가 되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영위(營爲)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꼭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성공적인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꼭 농업 생산의 잉여라고는 말할 수 없는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나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최대한의 인구 유지라는 정치ㆍ경제적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꽤 의도적으로 ‘남녀(男女)’와 ‘화이(華夷)’의 차이가 만들어진 경위에 관해서도 소개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중국’에서 탄생한 사회 유지 구조는 그것을 ‘배운’ 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오늘날의 사회에도 다양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요.”_본문 중에서
4대 문명이라는 말은 널리 들어서 익숙하지만, 이집트ㆍ메소포타미아ㆍ인도의 경우 고대 문명을 담당한 사람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어느 순간 사라졌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고대 문명의 유적지 그 자체가 사막화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중국에는 고대 문명을 구축한 사람들이 사용한 언어가 지금도 거의 동일한 문법으로 남아있다. 문자는 물론 변화하고 있지만, 전문적으로 학습하면 그것들이 현재의 어느 문자에 해당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자의 발생 이래 그것이 사용된 시대 환경을 보여주는 자료가 연속해서 계속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대륙은 요즘 아무리 사막화의 위기가 닥친다고는 해도, 어쨌든 방대한 인구를 유지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경제적으로도 재차 발전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 문명은 유일하게 멸망하지 않은 고대 문명인 것이다. 이는 지구 전체의 역사로 봐도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 대륙은 어째서 인간이 계속해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걸까? 또 한 가지 중국사 혹은 인류사의 ‘상식’인 것처럼 자주 볼 수 있는 기술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농업 생산력이 향상하여 잉여 물자가 생기자 빈부 차가 발생하고, 잉여를 교역하는 상업이 발전했다’라든가, ‘중국은 농경민족의 나라인데 종종 유목민의 침입을 받았다’라든가, 그중에는 ‘인류는 모계제 사회로부터 부계제 사회로 변화했다’라는 이야기까지 볼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해서는 현재 여러 각도에서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이 되어 중국에서 차례차례 발견된 새로운 출토자료가 종래의 ‘상식’을 바꿔 쓰고 있기도 하지만, 서구 근대에서 성립한 ‘국민 국가’의 역사상으로 그려져 온 것이 정말로 인류에게 ‘보편적’인 역사의 흐름이었던 것일까?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국가’라는 틀과 마찰을 빚고 있는 인간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한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역사는 어떻게 그리면 좋을까? 또한 고대의 사람들이 교역한 것은 정말로 ‘잉여’였던 것일까? 더욱이 ‘남녀 차별’이라고 말하더라도 세계 각지에 다양한 차이가 있는데 어째서일까? 최근의 역사 ‘다시 보기’ 경향은 이러한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늘어난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여러 문제를 냉정하게 재검토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활동이 각각 어떠한 자연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는지, 그 자연환경은 인류가 삶을 영위해 나가며 어떻게 변하였고, 그러한 변화는 이후 인류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와 같은 기초적이고 당연한 관점, 곧 환경사의 시점으로부터 다시 검토하는 것이 유효할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역사를 보는 것은 사실 과거에도 뛰어난 역사 서술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역사적 현상을 조망해 나가면 실로 다양한 패턴이 출현한다는 점에서, 그리 간단하게 ‘보편적 법칙성’ 등에 도달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조급하지 않게 하나씩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데도 전술한 지속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중국사라는 분야는 매우 풍부한 ‘힌트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대륙의 대지는 유구해도 각 시대의 기후조건이나 인간의 존재 방식은 변천해 왔습니다. 자연환경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개조하려는 노력이 있었고, 그 개조에는 곡물 생산 중시정책과 같은 성공 사례는 물론 적지적작(適地適作)주의를 이용한 화폐ㆍ유통 조작과 같은 다른 지역에서는 응용하기 어려운 실패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목축을 배제하는 화이사상이나 가정 내 남녀분업과 같이 대응책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측면이 후세의 사회에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습니다. 그중 대응책의 정보가 기록된 경우 2천 년 이상 지속된 한자 문화를 가진 중국에서는 건지(乾地)농법 기술이나 유용수목식수정책처럼 정보를 축적하여 사회 공통의 지혜로 만드는 경우도 나타났지만, 기록자 측이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었던 경우 밭농사 관개나 구종법처럼 실패의 반복도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_본문 중에서
“중국 대륙이 인간, 그것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거주 가능한 환경일 수 있었던 것은 여름철 고온, 다우(多雨)한 동아시아 몬순 기후라는 환경 아래 강우량ㆍ기온 등에 적응한 곡물 재배지 중심의 산업 지리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러한 방침이 ‘국가’의 주류가 되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의 영위(營爲)가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꼭 전해드리고 싶었는데 성공적인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꼭 농업 생산의 잉여라고는 말할 수 없는 물품의 교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나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최대한의 인구 유지라는 정치ㆍ경제적 요청을 충족시키기 위해 꽤 의도적으로 ‘남녀(男女)’와 ‘화이(華夷)’의 차이가 만들어진 경위에 관해서도 소개해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중국’에서 탄생한 사회 유지 구조는 그것을 ‘배운’ 동아시아 여러 지역의 오늘날의 사회에도 다양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지요.”_본문 중에서
환경으로 보는 고대 중국 - 동아시아 문명총서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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