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이야기한다 : 20세기 한국 민중 서사 - 知의 회랑 44 (양장)

민중은 이야기한다 : 20세기 한국 민중 서사 - 知의 회랑 44 (양장)

$33.00
Description
“민중은 이야기한다”
사회학자 김경일 교수의
《한국 사회사》 가운데 두 번째 ‘민중’ 편

중상층 위주의 주류 근대화 서사 너머
한국 근대화의 심층을 관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한국 근대화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산업화 전선에서 미래를 개척하고 민주화 대오에서 과거의 악습을 척결하는 데 앞장섰던 이들일까. 이들은 근대화의 적극적 추진자, 최대 수혜자 그리고 사회 주류층으로서 발전되고 민주화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하고 굳건한 한국 근대화의 주류 서사를 만들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근대화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층 민중들의 자아 인식과 자의식 문제를 탐구한다. 전통 시대에는 백성이나 민(民), 서민이나 서류(庶流), 하층, 기층 그리고 최근에는 이른바 서발턴(subaltern)이나 소수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름으로 역사에서 호명되어온 이들이다. 대체로 생애 주기 전반을 통해 생존에의 집요한 의지나 삶에 대한 능동성을 가지고 근대를 살아간 실체였으되, 억압과 한으로서의 민중 지향은 있을지언정, 일정한 목적의식과 가치가 함축된 민중 개념에 흔히 따르는 사회 현실 비판이나 저항의 양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존재들이다. 가난하고 고되며, 소외되고 억압받던 주변인의 일상이 늘 이들을 지배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민중자서전’이나 ‘민중열전’ 등으로 기획된 르포, 인터뷰 속 민중 구술 자료들을 전거 삼아 평범한 사람들이 털어놓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로 근대화 이면의 서사를 재구축한다. 그리고 세대ㆍ성ㆍ계급/계층이란 세 변수를 주요 지표로 상정해, 근대화의 시기를 살아온 민중 각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구현해왔는지, 그러한 경험과 기억이 투사하는 시대상과 사회상의 실제는 어떠했는지 심층 분석해나간다. 무엇보다 이렇게 재구성된 대안의 민중 서사는 기존의 주류 서사 및 연구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걸어온 근대화 과정을 되짚어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한국 근대화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는지.
『근대를 살다: 한국 근대의 인물과 사상』과 함께 《한국 사회사》 2부작을 구성하는, 성균관대학교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마흔네 번째 책이다.

저자

김경일

저자: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명예교수.서울대학교사회학과와동대학원을졸업하고,박사학위를받았다.덕성여자대학교교수를거쳐한국학중앙연구원사회과학부에서정년을맞았다.뉴욕주립대(빙햄턴)와파리인간과학연구소(MaisondesSciencesdeL’Homme)에서수학했고(박사후과정),도쿄대학경제학부객원연구원,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과워싱턴대학교류교수등을역임했다.긴시간한국사회사,사회사상,역사사회학,동아시아론등에관심을기울여왔다.
주요저서로『일제하노동운동사』,『이재유연구』,『지역연구의역사와이론』,『한국의근대와근대성』,『동아시아의민족이산과도시:20세기전반기만주의조선인』(공저),『한국노동운동사2,일제하의노동운동:1920-1945』,『한국근대노동사와노동운동』,『여성의근대,근대의여성』,PioneersofKoreanStudies(편저),『이재유,나의시대나의혁명』,『제국의시대와동아시아연대』,『근대의가족,근대의결혼』,『노동』,『한국근대여성63인의초상』(공저),ModernKoreanLabor:ASourcebook(공편),『신여성,개념과역사』,KoreanWomen:ASourcebook(공편),『동아시아일본군위안부연구』(공저),『근대여성12인,나를말하다:자서전과전기로본여성의삶과근대』,『한국의근대형상과한국학:비교역사의시각』,『한국의민주화운동에서노동과여성:노동의서사와노동자정체성』등이있다.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제1부구술사와민중생애사》
1.민중개념과계보
2.민중생활과구술생애사

|제1장|시대배경과공간조건
1.시공간의제약
2.일과생계
3.재생산과교육기회
4.빈곤과결핍

|제2장|가족과젠더
1.가족의해체와이산
2.아버지의부재
3.가족주의와가부장제
4.남녀차별과젠더

|제3장|성과사랑,결혼
1.성과인종,계급,권력의교차
2.자유로운성과친밀함의이상과역설
3.결혼의실제와양상

|제4장|의식의형태와층위
1.전통과신성:미신
2.전통과신성:속설ㆍ통념
3.전통과신성:전설과설화
4.근대와세속:종교
5.근대와세속:신념과윤리
6.근대와세속:이념과정치

《제2부근대화초기기록서사와민중》
1.기록서사의형성과전개
2.동아시아와한국에서기록서사와르포

|제5장|근대화초기기층민중의현실과빈곤
1.기층민중의내용과서민의얼굴
2.빈곤의효과와집단심성

|제6장|기층민중의생계와가족의생존전략
1.가계와빈곤의실상
2.결핍과빈곤에서살아남기
3.가족의생존전략과젠더불평등

|제7장|민중생활에서노동과기술
1.기술의내용과특성
2.기술의동기와계기
3.민중기술의현실과생계
4.기술의이중성과의미

맺음말


참고문헌|참고자료|찾아보기
수록도판크레디트
총서‘知의회랑’을기획하며
총서‘知의회랑’총목록

출판사 서평

기층민중에의한
대안의근대화서사

주류서사와다른20세기한국민중서사의재구성은한국근대화의성격과의미를심층차원에서이해하는단서가될수있다.무엇보다근대화와사회변동의와중에사회하층민으로서민중의현실에대한재인식작업은역사에대한대안의시각과통찰을제공하기때문이다.지금껏한국근대화서사는중상층이주축인주류서사중심이었다.유감스럽지만이러한주류서사가사회하층민의현실과내부경험을억압하거나은폐ㆍ무시해온것도사실이다.이러한의미에서재구성되는기층민중의서사는주류서사에대한대안서사이자,흔히단선적으로이해되어온근대화서사에균열을내는도전적시도이기도하다.이렇게주류와다른차원을준거삼는대안적인근대화서사의발굴과검토는한국근대화과정의다양성과복합성그리고그모순과갈등의양상을여실하게드러낸다.

이책은근대화의최저변에서생활해온민중이특정한시대맥락에서당면했던여러쟁점과문제들을검토함으로써하층민의시각에서본당대현실과사회상황을함께드러내보이고자했다.근대한국사회라는드라마는제국주의열강의침탈과일제의식민지배,민족이산과해방,전쟁과혁명그리고군사쿠데타와독재처럼수많은사건들이압축된채로숨가쁘게전개되어왔다.그리고각시기별사건들은그시대에고유한문제들과쟁점들그리고과제를함께제시해왔다.따라서시간에따른민중생활의변동을추적하면서각시대현실의고유성과독특함까지동시에파악해볼수있었다.

아울러한국근대의민중개념이진보와변혁및지배와독재라는두계보의흐름으로이어져왔다면,이책은이러한지배와저항이교차하는시공간에서경합하기도하고중첩하기도하면서점차진화해온민중의삶과의식의현상태(現象態)에주목하고자했다.역사속에서지배와저항이교차하고경합하는시공간을살아온민중개념의복합성과모순을염두에두는차원에서다.

민중은‘이야기한다’

문자에의거한공식역사를통해기록되거나보존혹은성화(聖化)되는지배계급의서사와달리,민중이야기는역사가아닌기억과구술에주로의존해왔다.사실지배계급의역사서술과구분되는민중구전이나구술전통은일찍부터주목받아왔다.해방이후에한정해보면,한국사회의최저변에위치한민중에대한관심은본격적인근대화가시작된1960년대중후반이후르포나논픽션,수기혹은다큐멘터리등의기록서사,구술이나심층인터뷰등을통한생애사형태로구체화되어나타났다.

연구방법론차원에서이책은근대형성기민중에의해서거나민중에대해산출된구술자서전,민중자서전,르포,심층인터뷰자료처럼사사(私事)로서개인의내면의식을드러내는자료들을분석대상으로삼는다.그리하여이러한미시자료들에등장하는인물의행위와상호작용,관계,사건들,에피소드등을그것이배태된역사ㆍ사회구조의맥락에서이해하고해석함으로써거시적인사회구조의궤적안에서그것이지니는역동성을함께분석해나갔다.이론과방법론차원에서이책은이러한시도들을적극활용함으로써기존연구에서공식화ㆍ정형화된형태로제시되어온민중에대한인식을재정향하고,그에대한대안서사를탐색하고자했다.

이책에서다루는구술생애사의주요자료는1960년대서민생활에대한르포의하나로기획된「오늘을사는한국의서민」연속기획(「서민연재」)과1980년대나온『뿌리깊은나무민중자서전』(『민중자서전』)그리고2000년대에간행된『한국민중구술열전』(『민중열전』)이다.

제1부에서는『민중열전』과『민중자서전』의전체인물을분석대상으로삼아,나이와성그리고계층/계급변수에따른차이를고려한생애사연구를통해한국의민중서사를재구성하고자했다.제2부에서는주로계급/계층변수에초점을맞춰「서민연재」를분석해나가면서근대화캠페인에서배제되거나무시되어온기층민중들의빈곤과가계,기술등의쟁점에주목하고자했다.

이들의내면과
한국근대화의심층

무엇보다이시기기층민중은가난과궁핍에지배당했다.가난이야기는거의모든민중구술에서빠지지않는다.가난은민중의삶의모든차원에스며들어있었으며,어떤형태로든이들의일상과의식의많은부분을지배하고있었다.민중은시대의밑바닥에서그결핍의고통을견뎌내야하는존재였던셈이다.그렇게민중서사의중심엔늘가난과빈곤의서사가가로놓여있었다.

빈곤은간단없는노동의시련으로고스란히이어졌다.민중은빈한한가계에서도어떻게든살아남으려는절박함속에연고나우연을통해일자리로들어서곤했다.전통적분야였든근대적분야였든,영세한환경에서별다른기술없이되풀이되는단순한작업들로채워진곳이었다.그마저도짧게만유지되는불안정성탓에대부분의민중은전생애주기를걸쳐다양한직업을경험하며살았다.지금은상상하기어려운수많은일자리를계절따라전전해야했다.이들에게노동은죽음이아니고서는피할수없는고통의굴레였는지도모른다.더구나그시련은자신에게서만그치는것도아니어서생계활동에가족전구성원을동원시키면서다음세대로까지이어지곤했다.이토록고단한삶의여정은민중의자아정체성에어두운그늘을드리울수밖에없었다.

이시기기층민중에게아버지의부재는곧가족의빈곤을의미했다.그아버지들은가족자체를돌보지않거나아예버리곤했던탓에,생계는남은구성원인아내와자식들이도맡아야했다.이와중에도가부장제의권능은굳건해서부재하는아버지의다른한편에군림하는아버지의전제(專制)마저엄존했다.이러한가부장의권위에대한인정과존중,조상숭배와가계의계승,남아,특히장자에대한선호와우대,부모역할의전통과유지,아내의시집살이와수절등과같이다양한쟁점들을포함하는가족주의의영향력은지대했다.

민중의빈곤과비참한노동현실은그대로교육기회의불평등으로까지이어졌다.세대에따른차이가있긴하지만,이책의주인공인대부분의민중구술자들은공식적으로무학이거나초등학교중퇴나졸업정도의학력에머물렀다.애당초지식과교육으로부터배제된예외의존재였기에알다시피한국사회가교육에대해강한열망을분출해간만큼이들의좌절과갈등은깊어질수밖에없었다.결국교육기회의박탈로빈곤이대물림되고계층상승의가능성마저차단당하는악순환이지속되었다.가망없는배움에대한한을품고서이들은노동현장으로이끌려들어갔다.그리고노동과기술을통해생존을도모하고빈곤에대항하려했다.결국피지배하층민,육체노동,산업화의영역에속한노동과기술의이러한삶의과정은상층엘리트,지식인,정신노동,민주화로표상되는지식과교육에의한지배와의지난한만남과포섭그리고예속과갈등을반영하기에이른다.

복합적인민중의식너머

이시기민중의식은복합적이었다.책에서는그형태와층위를여섯가지유형으로구분해보았다.개인의전생애과정차원에서바라보면,각유형에대한태도나평가가일관되지않으며,모순되고복합적인양상을보였다.적어도자료에서드러난바로는미신,억견,팔자,운명처럼전근대적ㆍ수동적ㆍ보수적인내용이우세해보수/체제를옹호하는사례가많았다.지속된전쟁과냉전으로극소수의목소리만살아남아전해졌기에,이른바민중론의주류로표방되어온주체,진보,저항,혁명같은요소들은드물었다.지배,수탈,억압에상응해강인한생명력,현실비판,풍자,해학처럼민중의식으로흔히지목되어온속성들과도일정한거리가있었다.

이렇게방어적인의식은직접적으로그자신과가족의생존이주목적인경제적동기가작용한결과였다.산업화의문턱에서혹은근대화의혜택으로부터소외된불안정한가계상황에서다수의기층민중은오직생존을위한일상에매일수밖에없었다.이러한처지는장기적으로바라보아식민지배와군사독재같은수탈과억압의경험을반영하는것이기도했다.민족해방운동과반독재운동처럼특정계기를통해분출된사례가없지는않지만,이들의불만은일상에서극도로억압당할뿐이었다.그리하여민중은생존전략의하나로,의도했든그렇지않았든,때로는가장되기도한정치적무관심을행사했다.

저자는책을이렇게맺는다.“역사국면에서실체자체가모호한현실에맞선저항이다시민중의이름으로호명될수있을지는불확실하다.민중아닌다른형태와양상의저항주체가새로등장한다면,민중은역사적개념이되어가기시작할것이다.그러나근대의불평등과모순과혼란을온몸으로겪어낸이들이추구했던다양한삶의전략과경험,자기정체성모색그리고삶의이상에대한기억과전통은살아남아이어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