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의 가서(상) (조선후기 한 사대부가의 이야기 | 양장본 Hardcover)

신현의 가서(상) (조선후기 한 사대부가의 이야기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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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600여 통의 편지로 되살아난
조선후기 한 사대부 가문의 일상
일평생 학문과 관직에 헌신했던 한 사대부와
그를 둘러싼 대가족의 70년 세월에 관한 대서사시

조선후기 문신 신현(申絢, 1764~1827)을 중심으로 그 가족들이 주고받은 600여 통의 편지를 집대성해 두 권으로 엮은 『신현의 가서(家書)』 가운데 상권이다. 신현이 벼슬길에 나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시절의 기록을 비롯해, 그의 아버지 신대우(申大羽), 두 형 신진(申縉)과 신작(申綽), 그리고 아들 신명호(申命濩), 조카 신명연(申命淵) 등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들을 석문(釋文)하고 번역해 날짜순으로 재구성했다. 일개인의 단순한 서신 모음집을 넘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를 살아간 한 사대부 대가족의 70년 드라마가 고스란히 복원되어 있다.
일찍이 두보(杜甫)는 이렇게 가족 간에 오고 간 편지인 가서를 두고 “만금(萬金)”의 값어치를 매겨두었는데, 『신현의 가서』 또한 삶을 공유하는 이들이 서로 격의 없이 흉금을 털어 쓴 글답게 그 사연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워 당대의 일반적인 편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솔한 매력이 가득하다. 조선 사대부의 ‘공적인 삶’ 뒤에 숨겨진 지극히 ‘사적인 세계’를 가감 없이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다.
무엇보다 『신현의 가서』는 한 선비의 일대기이자 일가족 공동체의 연대기로서, 600여 통의 편지 뭉치를 통해 우리는 조선 사대부가 단순히 경전만 읽는 책상물림이 아니라,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고 병마와 싸우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던 인간이었음을 재확인하게 된다. 조선후기 사회상과 사대부의 일상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그리고 가족 간 소통이 점차 사라져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책은 200년 전 선조들이 건네는 따뜻한 ‘가족의 편지’가 될 것이다.
성균관대학교 학술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쉰여섯 번째 책.
저자

신현

신현(申絢,1764~1827)
조선정조ㆍ순조대의문신.호는실재(實齋).삼경(三經)공부를평생의과업으로삼아50년간매일독서와암송을멈추지않았다.1794년문과급제후초계문신으로발탁되어정조의남다른총애를받았다.정조는그의인품을두고‘질실(質實)ㆍ진실(眞實)ㆍ순실(醇實)’하다평했으며,그의독특한서체와뛰어난암송능력을높이샀다.순천부사,강원도관찰사,성천부사,강화유수등을역임하며합리적이고빈틈없는일처리로백성의고충을해결했다.
아울러아버지신대우(申大羽)를모시고두형과함께집안을경영하는데에도노력을기울였다.큰형신진(申縉)이가문의살림과의례를도맡아관리하고작은형신작(申綽)이평생아버지를봉양하며유가경전을깊이연구했던것에비해,자신은일찍과거에급제하여관직에나아감으로써가정의경제를지탱하고가문의성세를일구는데기여했다.
학문적으로는경학에정통하여의견이분명하면서도굳게실행하는것을전제로하고있었다.가문을경영하거나관직에임하는삶의태도는언제나소박하고진실하며세심하면서도합리적이었다.그는자신에게충실했던전형적이고모범적인사대부였다.

신진(申縉,1756~1835)
삼형제중장남으로가문의살림과의례를도맡아관리한집안의버팀목이었다.환갑이넘어신녕현감에부임했으며,“편안하고담박하여속된벼슬아치가아니다”라는평가를받았다.번잡한관직생활보다는점잖은선비로서의삶을지향하여조기에낙향했고,80세까지장수했다.

신작(申綽,1760~1828)
신현의작은형.아버지신대우를평생봉양하며유가경전을깊이연구했다.대표저서『시차고(詩次故)』는훈고학의정수로평가받으며,예서(隷書)에도뛰어나아버지의문집인『완구유집(宛丘遺集)』의책판글씨를직접썼다.1809년늦은나이에과거에응시하여회시장원을차지했으나,귀향길에부친상을당하여임종을지키지못했다.이후벼슬을단념하고초야에묻혀학문에만전념했다.

목차

서설ㆍ6

제1막신현,서울에나와혼례를치르다ㆍ35
제2막과거에급제하고초계문신이되어ㆍ83
제3막순천부사에부임하다ㆍ167
제4막다시경관직(京官職)에임명되어ㆍ217
제5막강원도관찰사에부임하다ㆍ235
제6막다시경관직에임명되어서울로오다ㆍ295
제7막성천부사(成川府使)가되다ㆍ341
제8막사촌(社村)에서아버지의영궤(靈几)를모시며ㆍ433
제9막탈상(脫喪)하고다시일상으로ㆍ529

원문ㆍ625

지은이ㆍ옮긴이소개ㆍ742

《하권목차》
제10막큰형신진,부솔(副率)에임명되어상경하다
제11막큰형신진,신녕현감(新寧縣監)에부임하다
제12막큰형신진,신녕현감을그만두고귀향하다
제13막신현,강화유수에임명되다
제14막강화유수임기를마치고사촌으로돌아오다
제15막기타별지(別紙)들
원문
부록
신현연보|신현가서(家書)에나오는인명|신현가서(家書)에나오는지명|가계도

《해제목차》
신현가서의주요공간ㆍ상권30|신현집안의일기들ㆍ상권38|신현의문과급제ㆍ상권86|초계문신ㆍ상권106|신현의걸양ㆍ상권328|성천의가족모임ㆍ상권424|신대우의유언ㆍ상권438|사촌의가옥건축ㆍ상권450|신택하,신성,신대우의묘비건립ㆍ상권524|사촌집과서울집사이의왕래로ㆍ상권568|신대우의초상제작ㆍ상권596|신현일가의전장(田莊)ㆍ하권224|『완구유집』의출판ㆍ하권284

출판사 서평

정조가총애한선비,신현의오디세이

이책에는여러인물들이등장하지만,주인공은단연신현이다.정조(正祖)임금이“사서삼경을자기말처럼외는사람은처음봤다”라고감탄하며“오늘의복생(伏生,진나라분서갱유때경전을지켜낸인물)”이라칭송했던인물이다.그는초계문신시절부터정조의남다른총애를받았다.정조는신현의수수하고진실하며순박한성품을사랑하여곁에두고책의교정과편집을맡겼으며,심지어그의독특한글씨체까지아껴그에대해격의없는대화를나눌정도로깊은신뢰를보였다.신현은임금이내려준‘질실(質實)ㆍ진실(眞實)ㆍ순실(醇實)’이라는평가를평생가슴에품고,자신의호를‘실재(實齋)’라지으며수수하고진실한사대부의모범으로살았다.
『신현의가서』에는그의화려한관직생활이면의고뇌가생생히담겨있다.과거급제를위해매진하던젊은시절의열정에서부터,암행어사와지방관(순천부사,강원도관찰사,강화유수등)으로서백성의고통을해결하기위해분투했던실무자로서의면모까지,조선후기한사대부의인간적안신입명(安身立命)이편지곳곳에녹아있다.
이책의메인플롯은바로이신현의일평생을따라간다.아버지를모시고강화도에서글을읽던그가서울에나와1782년4월22일혼례를올리는무대가제1막으로,조선시대사대부의일생에가장중요한일이과거와벼슬이었듯,여러관직을거치고거처를옮길때마다새로운인생사의무대가조성된다.1826년5월1일강화유수에서체직(遞職)되어일찍이아버지가조상묘역가까운데마련해둔일가의저택이기다리는사촌(社村)으로돌아오는게종막이다.한인간의귀환서사시가이렇게편지들로재구성되었다.
양명학가풍속에서유지된대가족공동체의훈기

이집안의뿌리에는아버지신대우(申大羽,1735~1809)가있다.그는19세에가장이되어강화도이주후척박한환경속에서도‘용안실(容安室,두무릎만들어갈정도로좁지만편안한방)’이라는서당을꾸려자식들을교육했다.자식들에게공부를강요하는대신,스스로밤마다등불도없이별빛과달빛에의지해경전을외우고솔선수범하며가문을일으켰다.
특히그의학문은고답적인이론에매몰된성리학이아니라양명학적실천주의에바탕을두고있었다.양명학자하곡(霞谷)정제두(鄭齊斗)의제자윤순(尹淳)이스승의장례를앞두고제문(祭文)에“이마음을보존하여모든이치에정통하고,이마음을진실하게닦아모든일에응한다[存此心而精萬理實此心而應萬事]”라고썼는데,신대우또한하곡의신도비문을쓰면서이구절을인용했다.요컨대이렇게“천리가내양심에다갖추어있어,그양심을닦아세상사에응한다”라는삶의자세야말로그의품성을잘대변해준다.
또한그의이러한단순명료한가르침은자식들의글에고스란히녹아들었다.그래서이집안의편지에는복잡하고어려운현학적인표현이없다.그저양심에따라부끄러움없이행동하고,주어진현실에충실하라는실사구시(實事求是)적태도가흐른다.이는지방관으로나간신현이백성의고충을합리적으로해결하고,둘째형신작이평생을바쳐경학연구에매진할수있었던원동력이었다.
이러한아버지의밑에서신대우의세아들도각자역할을나누어가문을지탱했다.장남신진(申縉,1756~1835)은대가족의살림과제례,조상의묘역조성을책임지는집안의기둥역할을수행했다.차남신작(申綽,1760~1828)은평생학문에침잠해중국고대훈고학의정수만을모아엮은『시차고(詩次故)』라는불멸의업적을남겼다.막내신현은중앙정계와지방관을오가며가문의경제적ㆍ사회적기반을닦고아버지를봉양했다.이들은각자의일기를공유하고편지로사소한것까지의논하며소통했고,중대한결정은늘대화로풀어나가면서자칫몰락할수있었던가문을학문과인품의반석위에다시세워놓았다.


고난속에서꽃핀삼형제의우애

이책에서감동적인대목은신진,신작,신현삼형제가보여주는사려깊은우애다.이들은네살터울로나란히태어나평생을‘대가족공동체’라는울타리안에서서로지탱했다.
장남으로서가문의제례와살림을도맡았던신진은막내신현이벼슬길에전념할수있도록집안의궂은일을모두짊어졌다.60세가넘어잠시고을현감을지냈을때조차“속된벼슬아치가아니다”라는평을들을만큼점잖았던그는동생들의학업과사회적성공을자신의기쁨으로삼았다.평생아버지를곁에서모시며훈고학에침잠했던신작은신현의정신적지주였다.정조가“신현의서체가형신작과비슷하다”라고언급할정도로두형제는학문과예술적취향을공유했다.신작이과거회시(會試)에서1등을하고도아버지의위독소식에전시(殿試)를포기하고밤낮으로달려가던그지극한마음은삼형제전체가공유하던가풍이었다.정조의총애를받으며가문을실질적으로일으킨신현은형들의노고를잊지않았다.아버지가유언으로“책만볼줄아는신작의경제적형편을먼저살펴라”라고당부하자,신현은평생형의살림을보살피며경제적안전판역할을자처했다.“형제가한집에사는것이어찌좋은일이아니겠느냐”라던아버지신대우의소망은이렇게이들삼형제의우애를통해완성된다.
특히이가서에는아버지의문집『완구유집(宛丘遺集)』편찬,초상화제작,산소조성과비석건립,향제(鄕第)건축등의사연이자세히기록되어있다.아버지사후세아들이정성을다하여이일들을완성함으로써아버지의한평생을정리하고마감한것이다.그들이이일들을하면서편지로세세히의논한사연,예컨대작업의과정,투입된자재,들어간비용등이이가서로고스란히남았다.이를통해그들의학문,예술,문화,나아가의식까지도자세히들여다볼수있다.
별지등으로재구성된조선후기일상사의백과사전

『신현의가서』에서눈여겨봐지는또다른자료가본지(本紙)와는다른종이에사연을써서동봉한편지지인‘별지(別紙)’다.이책에는별지가유달리많다.본지에는가족의안부를비롯한가정사를썼고,별지에는그밖의잡다한사연을썼다.예컨대금전문제,농장관리,질병,의약,노비,하층민,탈것,이동,음식,주택,의복,가재도구,소문등일상생활의모든면을포괄했다.불미스러운일,신분이낮은사람에관한언급등스토리도구구했다.
날짜는따로적혀있지않았다.그래서별지가본지에서분리되면,시점특정은물론이야기의맥락도이해하기어려울때가많다.신현의가서에도본지와분리된별지가다수있다.그러나당시의구체적인생활상을담고있어그냥내버려두기에는아까운것들이다.역자들은이것들을따로모아분류한뒤종막뒤에함께실었다.그시대사람들의삶과사회의결을세심하게엿볼수있는증거자료로서손색이없기때문이다.
이밖에도역자들은각편지들틈틈이가서사연들의맥락을이해할수있도록친절한해제를덧붙여놓았다.또신현가서의주요무대들을한폭의지도에담아생생한공간감속에서이야기를읽어나가도록도왔다.하권말미에실린인명과지명의목록까지도세심하고친절하다.
요컨대『신현의가서』는조선이라는사회를주도했던세력인사대부가실제로어떻게먹고,자고,고민하며,생활했는지를보여주는가장정직한기록이다.역자들을대표하는하영휘교수(가회고문서연구소소장)의말처럼“조선시대사대부가의실생활을이처럼다양하고구체적으로보여주는자료는흔치않다.”사대부가어떻게살았는지궁금할때이책은두고두고참고할수있는자료가되어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