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숲 (러시아문학과 한국, 그리고 나)

자작나무 숲 (러시아문학과 한국, 그리고 나)

$15.00
Description
한국에서 러시아문학과 함께해왔다는 것은...

낭만적 동경과 막연한 두려움 넘어
나의 눈으로 본 러시아, 나의 눈으로 읽는 러시아문학
흰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이 눈앞에 펼쳐지면 불현듯 시베리아, 러시아를 먼저 떠올리는 이 적잖을 것이다. 혹여 그건 지난 세기 거기서 우릴 찾아왔던 문학이 동경과 애수, 용기와 위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며 남 얘기 같지 않다는 동질감과 물경 혁명 의식까지 고취해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식민지기의 한 시절과 1980년대라는 또 한 시절, 러시아문학 붐이 한국을 휩쓸 때, ‘러시안 드림’의 배경엔 늘 그 표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책은 지난 35년간 한국의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강의해온 저자가 ‘자작나무 숲’이란 제하에 발표했던 신문 칼럼들을 재구성한 것이다. 우리 마음을 사로잡았던, 익숙하지만 낯설고 오래되었으나 새로운 러시아문학ㆍ러시아문화 이야기가 각각 한 축을 맡고, 러시아를 통해 바라보는 한국 이야기가 또 한 축을 이룬다. 러시아를 다루되, 러시아를 통해 한국을 바라본다는 기본 원칙 아래, 우리 사는 세상과 시대에 대해 저자가 말하고 싶던 것을 직접 보고 느끼고 읽어낸 러시아라는 필터에 여과시켰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전공자의 안목으로 소개하는 러시아문학ㆍ러시아문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지금도 여전히 낭만적 동경과 막연한 두려움에 덮여 있는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연결점을 찾으려 애쓴 한 지식인의 자의식의 발로다.
올겨울 저자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강의를 마친 터. 그래선지 고르바초프의 정책으로 문호가 개방되었을 때 ‘첫 한국인 소련 유학생’ 타이틀로 적어 내려갔던 레닌그라드의 인상기가 회고담으로 소환되어 후기 자리에 놓여 있다. 소련이 다시 러시아라는 이름을 되찾으며 모든 게 혼란스럽던 무렵, 교환학생ㆍ교환교수의 신분으로 호흡하던 당시 러시아의 분위기가 퍽 새삼스럽다. 이후 30년 너머의 시간이 흐르고, 저자는 고백한다. 비록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을지언정 그 러시아가, 러시아의 문학이 자신을 키워주었다고.
저자

김진영

미국휘튼칼리지러시아어문학과를졸업하고예일대학교슬라브어문학과에서푸시킨연구로석ㆍ박사학위를받았다.1991년부터2025년까지연세대학교노어노문학과교수로재직했다.
저서로『푸시킨:러시아낭만주의를읽는열가지방법』,『시베리아의향수:근대한국과러시아문학,1896~1946』,『광장의문학:격변기한국이읽은러시아,해방에서개방까지』,번역서로『예브게니오네긴』,『코레야1903년가을:세로셰프스키의대한제국견문록』,『땅위의돌들』(러시아현대시선집),Такмаловременидлялюбви(정현종러시아어번역시선집)등이있다.『푸시킨』단행본은2016년러시아어로번역,출간되었다(Пушкин:Десятьочерковорусскомромантизме,Ст.Петербург,Петрополис).

목차

《서문》
자작나무숲을엮으며

*

제1부벚꽃을기다리며나는쓴다
《러시아문학이야기》

삶이그대를속일지라도
성실한시민과‘영끌’도박사
시인의죽음
행복한가정은서로닮았다
톨스토이가사랑한안나
삶의사다리에서떨어졌을때
흰눈과시베리아와카추샤
도스토옙스키는왜사회주의에반대했는가
죄와벌
동물에관한이야기는왜슬픈걸까
모두쓸모있고모두쓸모없다
벚꽃을기다리며나는쓴다
닥터지바고와시인지바고
2년후,우리결혼하자
베네치아의겨울빛
잠깐,나는로봇이아닙니다
일리야카민스키
나의지도교수토마스벤츨로바

*

제2부백만송이백만송이꽃은피고
《러시아문화이야기》

보드카가그립다
푸시킨은우리의모든것
바람쌩쌩,외투의계절이다
햄릿이냐돈키호테냐
백학의노래
우크라이나의검은튤립
러시안쿠킹클래스
백만송이백만송이꽃은피고
사적인삶에대한예의
어떤죽음을원하십니까
침묵이말한다
남겨진그림남겨진사랑
그많던러시아미녀는다어디갔을까
미인의초상
‘줄’이무섭다
유명해지는것은아름답지않은일
애수의하얼빈

*

제3부찬장은찬장이고바람은바람일뿐
《한국이야기》

태극기의자리는어디인가
김민기와비소츠키
내이름이그대에게무엇이리
시대가읽는문학
파괴될지언정패배하지않는다
윤치호와서정주러시아가다
묘지의노래
석양이아름다운집을짓다
글은곧그사람이다
아니,저사람귀가왜저런거야
진리는대학밖에있다,그러나...
나의살던고향은꽃피는산골
그때의잣대로지금을잴수없다
텅빈객석너머,음악의힘
찬장은찬장이고바람은바람일뿐
보는데보지못하는시대의교육
대통령의서재
필사책유행을생각한다
교수라는이름의직업
저외로워요
그레이스풀엔딩

*

《후기》
자작나무숲에덧붙여

출판사 서평

러시아,한국,그리고나

글로벌화된세상에서개별학문의고유성이란게무색해진지오래지만,적어도‘문학’영역에서만큼은타국의그것을공부하는이들에게자기정체성을고민하게만드는때가반드시찾아오고야만다.저자는그러한자의식의순간에학문적관심의방향을푸시킨에서비교한국학쪽으로틀었다고말하는데,이책에앞서상재한두권의연구서가이를잘설명한다.각각《시베리아의향수:근대한국과러시아문학,1896~1946》,《광장의문학:격변기한국이읽은러시아,해방에서개방까지》라는제목을달고있는두책은심도깊은러시아문학이야기면서도,가만히보면주인공은한국인이고주무대는한국일수밖에없는연구서였다.
그연장선에서저자는이책또한“한국인으로서러시아를공부하는자신의정체성에대한보증서”로적어내려간것이라고말한다.“자신만이할수있는얘기를한다는당돌한야심속에,나의눈으로본러시아,나의눈으로읽는러시아문학이야기를하고싶었다”라고강조한다.“러시아문학을계속읽을수있었기에오늘의내가있게되었고,그‘나’가한국이라는맥락과합류하여‘나의러시아문학’이라는생각의물길을내게되었다”라는취지에서다.
이책속단편들은어쩌면러시아만의고유한문학과문화를다루면서도외떨어진강론의모습을취하지않는다.한국과러시아의접점을찾아나선대목들에서도타국문학을하는이의진지한자기숙고가선행되었다.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발발하면서주변은더욱루소포비아(russophobia,공로(恐露)의식)에포위되어갔지만,저자는끈질기게루소필리아(russophilia,친로(親露)의식)를주장했다고한다.이책에바로그설득의단서들이담겨있다.

푸시킨으로부터

러시아문학의섹션은푸시킨으로시작한다.이는저자가문학의장도에들어서서세심하게관심을기울여온이가푸시킨이어서만은아니다.저자의환기처럼,사실러시아는“19세기후반의보수ㆍ진보지식인부터레닌,스탈린,푸틴,그리고일반국민가릴거없이‘푸시킨은우리의모든것’이라는슬로건앞에서일치단결”이었다.러시아에서푸시킨의상징성과영향력은‘국민시인’이라는호명처럼탄탄하다.
반면한국에서푸시킨문학의저변이허약한데저자는아쉬움을금치못한다.“국내에서그의인기는톨스토이,도스토옙스키,체호프,투르게네프에훨씬못미치고”,그의평판도여전히〈삶이그대를속일지라도...〉의시인에머물러있는모양새다.
그러나저자는무엇보다푸시킨을‘삶을사랑한’시인으로아낀다.예전엔그의시가“너무평범하고산문적이어서”의아해했지만,아마도삶이란게바로그런것이므로,지금“이만큼살고보니그가하는모든말이진짜고진리”였다고적는다.이책에서푸시킨은공감,위로,희망,낭만,사랑,역사는물론,죽음과이른바‘영끌’의사연들까지포괄하는가장넓은스펙트럼의작가로바쁘게불려나온다.저자의관심이단순한애정은아니었을것이다.


나의눈으로읽는러시아문학의걸작들

푸시킨을이어러시아문학의거장들과그걸작들이차례로등장한다.톨스토이의《안나카레니나》,《부활》,《전쟁과평화》,〈이반일리치의죽음〉과단편들,도스토옙스키의《카라마조프의형제들》와《죄와벌》과《백치》,투르게네프의《아버지와아들》,체호프의《벚꽃동산》,파스테르나크의《닥터지바고》까지가예의우리에게도익숙한작품들이고,브로드스키의작은산문집인《베네치아의겨울빛》과함께펠레빈의《아이퍽10》,카민스키의《귀먼자들의공화국》등21세기의시간표를달고온작품들도눈에띈다.
칼럼,에세이라는특성상일상에서촉발된계기들이영감이되어작품에가닿게되는데,19세기에서21세기까지그목록의시차가길어진만큼작가와작품들을소개하고읽어내는저자의독법과서술도폭넓어질수밖에없었다.책을읽다가,영화를보다가,뉴스를접하다가,강의를(준비)하다가,옛기억이떠올라,음악을듣다가…이렇게나날의생활속에서저자는자연스럽게러시아문학의명장면들과접속되어생각에잠기곤했다.그리고그이야기들을단편에녹여냈다.
톨스토이의욕망과행복,도스토옙스키의자유와고통,투르게네프의세대와쓸모,체호프의냉담한희비극,파스테르나크의생과불멸,브로드스키의아름다운오기(傲氣),펠레빈의디스토피아,그리고카민스키의평화까지,이것만으로러시아문학을설명한다고보긴어렵겠지만,그여정앞에서요긴한이정표가되어줄수있을지도모르겠다.비록짧은분량이지만저자의이러한일상속통찰에힘입어그간두꺼워제쳐두었던러시아문학의공간으로재진입해보는건어떨까.그래서러시아문학의트레이드마크인도저한휴머니즘의토대위에서다시한번인류를숙고해보고,시대와권력을반성하며,끝내인간만의감수성을응원해보자는말이다.


나의눈으로본러시아문화의키워드

러시아문화의섹션은뜻밖에백석의시〈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가연다.“혼자쓸쓸히앉어‘소주’를마”시는화자를끌어왔지만,실은‘보드카’얘기를위해서다.아시다시피동토의땅러시아에서보드카가빠지면서운하다.저자는대략5백년역사로어림잡는보드카를“원래슬픈술”이라는레이블로부터푼다.“민중은고통을잊기위해마시고,다른기쁨이없어마시고,그다음엔습관으로마셨”으니,“아편이나다름없었”기때문이다.“술에중독된민중의무질서를꿰뚫어본지식인”조차“아무것도할수없는자신을비관”하며마셨으리라.놀라운것은그렇게‘술취한국가’이던러시아의금주선언과최근변화상이다.스스로“보드카를좇아마시며러시아의혼돈을이해하려애쓰던옛날이한편으로그립다”라는게애증어린이방인인저자의격세지감일정도다.
이렇게러시아문화의섹션은러시아를이해하는핵심키워드들을책,노래,그림,음식,여행,그리고아프간ㆍ우크라이나전쟁을비롯한여러현실에피소드들속에서건져올린다.물론저자의눈으로직접바라보고절실히느낀체험치에해당한다.보드카처럼그실체가분명한것이라면,우리에게잘알려진번안곡〈백만송이장미〉와그림〈여배우마르가리타〉,그리고도스토옙스키의《가난한사람들》과얽혀소개되는‘꽃’이있다.러시아사람들정말꽃을좋아한다.환대의한형태인러시아인의따뜻한식탁에오르는‘흑빵’과러시안수프‘보르시’는먹방콘텐츠에익숙한요즘독자들에게어떻게접속될지궁금하다.
조금은추상적인이념과감성축에서꼽으라면,푸시킨《대위의딸》속‘명예’나저자가하얼빈여행을통해느낀러시아만의독특한‘애수’가먼저다.또러시아의여성성혹은미인에대한환각을부수며짚어내는진정한‘아름다움’의의미나시인튜체프에서시작해체호프로연결되는‘말/침묵’도러시아만의맥락이라흥미롭다.


한국과러시아의교차점에서

저자는서문에서이책의발단을이렇게소개한다.“코로나유행으로사라진마스크를찾아뛰어다녀야했던2020년초,누구는마스크를쟁여두고있는데나는배급품을사러줄서야했던그시절에,갑자기소련경험이떠올라〈‘줄’이무섭다〉는에세이를단번에써내려갔다.유명인도아닌나에게신문사측에서청탁을해온것이아니라,내가써서기고한것이다.이후‘자작나무숲’칼럼이이어졌다.”
이책의마지막섹션은그렇게시작된한국이야기다.어느덧대학에서정년을맞은저자의시론성격의글들이지만,설명했듯이러시아라는필터를통과하면서영감이확장되고사념은가지런해졌다.적극적인투고였기에우리사회의뜨거운이슈들과도정면대결할수있었다.광화문광장조형물논란을지켜보며21세기에도여전한전체주의의무모한환영을직시하거나,대통령의“진짜서재”를궁금해하기도했다.물론직업이직업이었던지라한국의대학/교육과젊은이들에게보내는애정어린당부가가장많다.
이제저자는이책속한단편의제목처럼‘그레이스풀엔딩’연습을시작하면서“잠시멈췄다또길을떠나”겠노라고다짐한다.그에게러시아는“어렸을적직감했고,또아직껏체감하고있”듯이“커다랗게떠있는,그래서매우느리고도무겁게부유하는유배의공간”이자“고독의기운”이감싼곳.그래서그막연하고도본능적인‘유배의기(氣)’를다시새로운“돛대삼아길을찾”게되리라기대하고있는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