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론의 자연과 인간 : 한형조 선생 추모 강의록 -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생명학 CLASS 7

이기론의 자연과 인간 : 한형조 선생 추모 강의록 -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 생명학 CLASS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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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보름

저자:김보름
안동대학교국학부동양철학전공을졸업하고,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학대학원에서철학을전공하여「정약용저작집의형성과전승」으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대림대,대전대,안양대등에출강하였으며,현재안양대학교신학연구소에서수행하는HK+사업동서교류문헌연구팀HK연구교수이다.다산정약용의저술과학문에대한문헌학적·철학적연구를해왔으며,중국에서활동한서양선교사들의한문서학서를매개로동양과서양의문명교류를연구하고있다.주요논저로「『여유당전서』간행경위일고찰:전서초본(全書草本)의행방과여유당전서발행소의활동을중심으로」,「『주제군징』의전래와수용:인체론에대한한·중·일의이해를중심으로」,역서로『17~18세기프랑스예수회신부들의역경이해』상·하(공역)등이있다.

목차

기획의말

이기론(理氣論)의자연과인간
1.들어가며
2.퇴계는왜,그토록물러나고자했을까?
3.이기론,현실과질서의정식화
4.유교는미학이다
5.하멜의표류와문명의만남
6.동서의인문,철학,종교들
7.심학,마음성형&치유프로젝트
8.『성학십도(聖學十圖)』와『심경(心經)』
9.「심학도(心學圖)」,유교심학(心學)의설계도
10.마음의숲가꾸기
11.치유의학문

출판사 서평


고전이라는깊은우물에서길어올린생생한삶의지혜

한형조선생님은학생들에게“번역할때는원문의형체가하나도남지않아도좋다”고하시면서원전을완전히이해해서자신만의언어로표현할수있어야한다고강조했다.또한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언젠가너는세상을잊을것이고,세상또한너를잊을것이다”라는말을자주인용했다.삶의유한함과부박(浮薄)한세상의평판뒤에숨은허무를일깨우는문장으로,남의눈에비치는나보다내면의충실함에집중하라는철저한‘위기지학(爲己之學)’의권유로읽어주었다.비록선생님은세상을잊었어도,선생님이남긴고전이라는깊은우물에서길어올린소중하고생생한언어와삶의기술들은이세상이조금더오래기억하기를바라는마음으로이책을기획하였다.

조선유학을논할때결코빠질수없는단어가바로‘이기론’이다.한형조선생님은이난해한형이상학의개념을‘현실’과‘질서’라는지극히현대적인키워드로재정의한다.선생님의강연에따르면,기(氣)란내안팎에주어진모든‘생생한현실’을말한다.우리의본능,솟구치는생명력,때로는통제되지않는자연그대로의에너지가바로기(氣)의영역이다.반면이(理)는그거친현실에‘가장합리적인질서’를부여하려는인간의치열한고민이다.개인의삶부터한가정의경영,나아가문명전체가어떻게조화를이룰것인가를정식화(formulation)해놓은것이바로이기론의핵심이다.

본능과생명에중점을두면기(氣)의사유에,문명과질서에중점을두면리(理)의사유에가게된다면서,선생님은이를가정에비유한다.끊임없이자녀에게잔소리하며집안의체계와도리를세우려는어머니가‘이(理)의이념’을대표한다면,그질서에아랑곳하지않고제멋대로에너지를발산하는중학교2학년아들은‘기(氣)의본능’을대표한다.

우리는흔히조선의이기론을“나라를망친공리공론”이라며폄하하곤한다.하지만선생님은이기론이결코현실과동떨어진관념의유희가아니라고강조한다.그것은우리가일상에서매순간부딪히는선택인동시에어마어마한철학적주제라는것이다.사실이(理)와기(氣)이둘은서로대치하면서도협력하는관계이다.기(氣)는개인의자유,주체적생명,감성,파토스를상징한다.내가한개체로서욕망하고추구하는자유의힘이다.이(理)는본능의제어와억압을통해적절한사회적질서를만들고자하는기획으로문명,질서,이성,공동체의권위를상징한다.기(氣)를한아이의천진난만한욕망과넘치는활력이라고상상해보자.무엇이든해보고싶고,어디로든튀어나가고싶은아이의생명력그자체가바로‘기’다.반면이(理)는그아이를사회속에서다른이들과어울려살아갈수있는한사람의인재로길러내려는부모의기획이다.아이의에너지가무분별하게흩어지지않도록적절한방향을제시하고조절하여,공동체의질서속에서아름답게꽃필수있도록돕는것,그것이바로‘이(理)’의역할이다.기업의세계또한거대한이기(理氣)의구상안에서설명될수있다.시장의역동적인변화와구성원들이뿜어내는열정,운영할수있는자원과자본이‘기’의에너지라면,그것을어떻게효율적으로조직하고가치있는방향으로경영해나갈것인지를정립하는것은‘이’의영역이다.

여기서우리는서구의철학자니체와성리학의차이를발견하게된다.니체는도덕이나신학이라는틀이인간의본래힘을억압한다고보았다.그래서그는억눌린개인이자신의힘을최고도로발휘하여스스로자유를쟁취해야한다고외쳤다.니체의답이거침없이뿜어져나오는‘힘의의지’였다면,성리학의답은조금다른곳을향한다.성리학의이(理)는개인의자유를억압하는장치가아니라,오히려개인이가진에너지를공동체라는더넓은바다로안내하는지도와같다.나만의힘을과시하며고립되는것이아니라,사회적질서안에서자신의자리를찾고타인에대한책임을다할때진정한인간다움이완성된다고보는것이다.

개인의자유와공동체에대한책임은결코어느한쪽이다른쪽을삼킬수없는,생과사를함께하는동반자와같다.자유없는책임은억압이며,책임없는자유는방종이되기때문이다.인문학적삶이란결국이팽팽한두가치사이에서아슬아슬하게균형의추를맞추는과정이다.이균형맞추기의첫모델을보여준인물이바로공자라고할수있다.공자는날것그대로의생명을어떻게부단히연마하여성숙한사회적인간으로완성할것인가에평생을바쳤다.하지만이여정에는반드시치러야할‘입장료’가있다.바로자기자신을향한절박한질문이다.

어찌해야할까,어찌해야할까묻지않는자에게는나도어찌할수없다.
不曰如之何如之何者,吾末如之何也已矣(논어(論語)「위령공(衛靈公)」)

성현의지혜가아무리깊은들,스스로자신의삶을돌이켜서“내삶을어떻게개선할것인가?”를묻지않는이에게는아무런빛도전해주지못한다는것이다.일상에서늘맞닥뜨리는이(理)와기(氣)의긴장속에서어떻게균형을맞출것인지역시이질문의연속이다.
결과적으로이기론을공부하는것이죽은지식의학습에있지않다는것을강조한다.고착된자기를허물어우리에게스스로도달하는자연의흐름을느끼며일상을가꾸라는조언이자이기론을현대인의삶을근본적으로치유하고변화시키는살아있는철학으로회복하기위한하나의노력이라고강조한다.

<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생명학CLASS>를기획하며

오늘날우리는‘생명’이라는단어를자연스럽게사용하지만,그의미를깊이성찰할기회는많지않다.근대과학과서구적사유속에서정립된‘생명’개념은우리삶에깊숙이스며들었지만,동시에인간과자연,기계와생명의경계를엄격히구분하는이분법적사고를만들어냈다.그러나21세기들어기후위기,인구구조의변화,첨단기술의발전,인공지능(AI)의등장과같은거대한전환을맞이하면서,기존의생명관은더이상충분한설명력이없음을드러내고있다.이제우리는다시금묻는다.생명이란무엇인가?우리는생명을어떻게이해하고,어떤가치를부여해야하는가?생명과생명을잇는관계속에서돌봄과책임은어떤의미를가지는가?‘기술발전과함께생명윤리는어떻게변화해야하는가?

성균관대학교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의생명학CLASS시리즈는이러한질문에답하고자기획되었다.동아시아미래가치연구소는동아시아적전통속에서생명개념을탐구하고,현대과학기술및인문학적사유를융합하여생명의의미를재구성하는시도를이어가고자한다.이강연록은다양한학문분야의연구자들이주축이되어학술적,사회문화적관점에서생명을해석하고,현대사회가직면한생명관련난제들을조망하는내용으로구성된다.특히,현재더욱중요해지고있는‘돌봄(care)’과‘생명윤리(bioethics)’의가치에주목하며,생명과생명사이의관계성을조명한다.이시리즈를통해우리는근대적생명관의한계를넘어,‘돌봄’과‘생명윤리’를중심으로자연과인간,기술과생명의새로운관계를모색한다.생명에대한철학적,윤리적,사회적논의를확장함으로써,보다지속가능하고공생적인미래를설계하는데기여할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