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100명의 여자 이야기입니다

하여튼 100명의 여자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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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01_ 잡놈 아들을 두었던 부인

아버지의 약첩은 작았다. 싼 약재를 푸짐하게 넣어 약첩을 부풀리지 않았다. 손님에게 바로 약을 지어 주지도 않았다. 약재의 독성을 빼기 위해 따로 법제를 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약을 지으러 몇 번씩이나 오가는 일을 귀찮게 여겼다. 그래도 아버지는 화제(和劑)를 내고 며칠 지나서야 약을 주었다.
숙지황이란 약재는 구증구포(아홉 번 쪄서 아홉 번 말리는 작업)를 거쳐야 제대로 된 약효가 났다. 다른 집에서는 이 약재를 적당히 몇 번 찌고 말린 것을 사다 쓴다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주로 약재를 만들어 사용했다. 자연 다른 집보다 약값이 비쌌다.
“싼 약을 지어 주어도 그 약을 먹고 나았다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느냐. 환자가 오면 약을 지어 주면 되지, 단방약을 일러 주며 시장에 가서 그것을 사다가 달여 먹으라고 그냥 돌려보내느냐. 경옥고를 기껏 비싼 원료 들여서 만들어 놓고 왜 싸게 팔아서 이문을 남기지 못하느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주로 했던 소리다. 당장 5남3녀나 되는 자식들 먹일 쌀과 연탄이 바닥을 보이는데도 환자를 돌려보내는 아버지가 답답해서 손님이 가고 나면 한소리 하곤 하셨다. 한창때는 대학생 여럿에 밑으로 중고등학생이 줄줄이 있었으니 등록금 대기도 벅찼을 것이다. 그때마다 구원투수로 등장한 분이 매니큐어 부인이었다.

요즘처럼 사우나가 있었으면 사우나에서 하루 종일 살면서 온갖 세상사를 시시콜콜 물어내어 비판하고 정리하고 판결을 내렸을 부인이다. 한의원이 앞에 있고 뒤에 안집이 있었는데, 이 부인이 오면 뒤에까지 소리가 왕왕 울렸다. 뒤채 마루에 잡으라는 쥐는 건성만성 쳐다보고 온종일 수행자인 양 눈을 감고 있던 고양이도 이 부인의 목소리가 들리면 눈을 뜨고 고개를 길게 빼 보곤 했다.
나는 이 부인의 활력이 싫지 않았고, 그녀가 가져오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앞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있기도 하였다. 매니큐어 바르는 이도 드문 70년대 초에 이 부인은 퍼런 수박색을 진하게 칠하고 다녔다.
“얼굴은 흉년에 열린 까지몽탱이 같은데 어디에 복이 들어서 부자로 잘사는지 모르겠다.”
어깨가 조붓하고 얼굴이 얌전하게 생겨서 남의 말은 안 할 것처럼 보이는 분이지만, 건건이 소견을 맑게 밝혔던 우리 어머니 평이다. 매니큐어 부인의 남편은 지금도 건재한 G정기화물 회사 사장이었다. 매니큐어 부인은 외제 물건이 아니면 상대도 않는다고 했다. 수박색 매니큐어를 그 시대에 벌써 발에도 바르고 다녔는데 미국제라고 자랑을 했다.

매니큐어 부인은 어머니 말에 의하면 ‘실삼맞은 부인’이었다. 어머니는 ‘실삼맞다’를 점잖지 못하면서 심히 경망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가리킬 때 썼다. 실삼스럽기도 했지만 화끈한 성격이어서 약을 지으면 첩약 정도가 아니라 일 년치 먹을 환약을 짓거나 경옥고처럼 비싼 약을 대량 구매해서 우리 집 경제에 윤활유 역할을 해 주었다. 이런 단골이 몇 집 있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우리 집 보약 마니아들이었다.
욕도 거침없이 내뿜었다. 특히 자기 아들을 ‘세상에 없는 잡놈’이라고 불렀다. J시 처녀는 다 잡아먹는 귀신이라고도 했던가? 고등학생밖에 안 되는 나이에 깡패질은 기본이고, 집에서 돈도 가져가지 않는데 펑펑 잘 쓰고 다니고, 집에 들어오는 날이 드물어 어미인 자기도 코빼기를 볼 수 없다며 아들 흉을 늘어놨는데, 그것이 흉거리로 들리지 않고 무용담으로 들리게 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무용담의 주인공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패싸움 끝에 감옥에 가야 할 처지에 빠졌다. 매니큐어 부인은 J시의 유력인사를 총동원하여 잡놈 아들을 빼냈다. 아버지의 희미한 친척도 일조를 했다고 들었다. 아버지와 같은 ‘청해이씨’ 일족 중 한 분이 마침 판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 도움이 컸다고 매니큐어 부인은 명절이면 비싼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잡놈 아들은 파출소에서 나온 후, 그 부인 말에 의하면 잡놈질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일찌감치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속사포로 그간 경위를 설명하던 부인이 답답했는지 댓바람에 한의원으로 달려왔다.

그 아들의 진짜 무용담이다. 감옥에 갈 뻔했던 아들이 부모님 앞에서 선언하더란다.
“지금부터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겠습니다.”
“전교 꼴등씩이나 하는 니가 공부를 하겠다고? 키우던 개가 웃겠다, 이놈아! 남 쥐어패지나 말고 엎드려 자빠져 있어.”
그런데 교과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던 놈이, 빈 가방만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녀석이 공부를 시작했단다. 일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집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한의원에 오기도 하는데 그 아들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매니큐어 부인은 가을이면 가족을 데리고 와서 진맥을 하고 보약을 앞앞이 지어 갔다. 아들보고도 같이 가서 진맥을 받고 약을 짓자고 하였더니 “아랫도리 성성한데 왜 약을 짓느냐” 했다며, 어린놈이 할 소리냐며 ‘갈갈갈’ 웃어댔다.
그 아들을 한 번 보고 싶었다. 부인 말로는 자기와 달리 남편을 닮아 키도 크고 인물이 훤하다고 했다. 매니큐어 부인이 오면 혹시나 하고 바깥채에 볼 일이 있는 체 나가보기도 했지만 아들은 그 부인 말대로 코빼기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 잡놈이라 불리던 아들은 주변의 예상을 모두 뒤엎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 그가 했던 공부 방법이 우리 집 한의원에 오는 손님들에게 비법으로 전해졌지만 글쎄, 그렇게 따라서 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우선은 잡놈이 선행되어야 근성을 발휘할 듯싶은데 우리 집 단골손님 아들들은 대부분 양반이었다.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러 다니던 학생 하나는 잡놈 근성은 없었으나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는데, 속은 어떤지 모르겠고 겉으로 보면 점잖은 국회의원이 되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었다. 그 정치인의 어머니는 매니큐어 부인을 상스럽다 여겨 어쩌다 한의원에서 만나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매니큐어 부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았고 전혀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 어머니를 ‘우뭉여사’라고 비아냥거렸다.

후기
‘G정기화물’이란 회사는 어느 도시에 가나 간간이 보인다. 그럴 때면 매니큐어 부인이 생각난다. 그 아들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의 공부 비법이 대대로 전해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하기는 그의 공부 비법은 알려 줘도 따라하기 힘든 방법이었다.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에게는 비법에 불과했다.



02_ 온 존재를 바친 여인



빗소리가 듣기 좋아서 차 안에 한참 있었다. 그날도 비가 왔다. 빗소리를 좋아하지만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는 예나 지금이나 싫어한다. 하필 비가 오는 날 시내 다방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날 만난 분은 훗날 ‘최명희’가 된 분이다.
그때도 이름은 ‘최명희’였지만 당시는 기전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국어 선생님 ‘최명희’ 씨였다. 나이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는 반듯한 성품을 가진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 글로 쓸 만큼 알고 있지 못하지만 ‘최명희’ 씨가 왜 독신을 선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서 이분을 ‘내가 만난 100명의 여자들’에 감히 올린다.
대학교 선배였다고는 하지만 같은 시기에 다니지 않아서 옷깃조차 스쳐 지날 일은 없었다. 당숙 아들이 작가와 같은 과를 다녀서 이 만남이 이루어졌다. 인터넷에 올려진 ‘최명희’ 씨 사진을 보니 맨드라미 빛깔 립스틱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이런 색을 과감히 칠할 수 있는 여인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전반적으로 수수해 보였다. 목까지 내려오는 생머리에 화장기도 별로 없고 두꺼운 천으로 된 원피스 차림이었다. 밝은 색은 아니었다. 선생님이 입음직한, 패션에 안목이 있는 옷차림은 아니었다. 겨울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비를 맞아서 우산을 써도 어쩔 수 없이 신발은 젖고, 스타킹에 물이 밴 꿉꿉한 상태로 들어섰다.

‘최명희’ 씨는 우리 큰오빠와 얼마 전 선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왜 나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 상황이 어색했다. ‘최명희’ 씨는 바로 용건으로 들어갔다. 큰오빠가 마음에 들지만 자기는 결혼하지 않기로 오래전에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전해 달라는 용건이었다. 평생 숙제처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는 이미 성인이 된 당사자들끼리 만나서 해야 할 이야기 같았다. 굳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앞으로도 볼 이유가 없는 나를 만나서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 뒤로 한 번 ‘최명희’ 씨 집을 방문했는데 오빠의 대답을 전하러 갔는지, 아님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집 안 모습은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남문다리 건너 한옥으로 지붕이 낮고 어두컴컴했다. 집 안은 정갈해 보였고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지만 풍족한 형편이 아님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평생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 글 쓰는 일이었음을 『혼불』을 읽고서야 알았다. 오빠가 만난 ‘최명희’와 『혼불』 작가를 처음에는 연결하지 못했다. 저자 약력을 보고서야 동일인이구나 싶었다. 인사말이었겠지만 작가 ‘최명희’ 말대로 오빠가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다. 오빠는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했고 한문 실력도 누구 못지않게 뛰어난 데다 독서량 또한 만만치 않은 당대의 지식인이었다. 동아일보 기자를 잠깐이지만 했는데 글 쓰는 솜씨도 남달랐다. 오빠가 죽기 전 원고지 5천 매 정도의 회고록을 남겼다고 들었다. 책으로 출간하겠다고 해도 큰올케가 보여 주지 않으니 내용을 모르겠지만 『혼불』의 ‘매안이씨’ 기록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청해이씨’ 가문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다.
‘최명희’는 ‘삭녕최씨’로 『혼불』 배경지인 남원 사매면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곳에 삭녕최씨 종가가 있다고 한다. 소설 속 매안이씨 종부 청암 부인이 살던 곳이다. 최명희 씨 집안이 종부 집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추측건대, 오빠와 ‘최명희’ 씨가 다방에서 잠깐 만나고 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번인지 두 번인지 모르겠으나 한 번 만났다 해도 둘의 이야기는 전주천 흐르듯 이어졌을 것이다. 그 물살이 아쉽지만 ‘최명희’는 평생 해야 할 일을 하자면 독신이어야 기능했을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혼불』은 나의 온 존재를 요구했습니다.”
그녀 말대로 온 존재를 던져야 가능한 일을 결혼해서 남편이며 시댁 식구, 자식에게 시간을 나눠 주다 보면 흐지부지 ‘혼불’은 빠져 달아나고 말지 않았을까. 작가의 아버지도 한몫 거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명희 씨 부친이 평생 술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가족을 힘들게 했다고 하니 결혼에 회의를 품었을 수도 있겠다.

생뚱맞게 플로베르가 떠오른다. 그는 하루 18시간을 오직 글만 쓰며 살았다고 한다. 독신으로 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독신이었지만 누군가 뒷바라지를 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다. 역시 독신이던 누나가 평생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고 하니 17년간 계속된 『혼불』을 썼던 작가 역시 독신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임박한 재앙』을 쓴 소설가 ‘린 샤론 슈워츠’는 “좋은 여자와 작가가 동시에 되기는 불가능하다. 서른두 살 때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사람이 되느냐, 작가가 되느냐.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최명희’는 이미 스물네 살에 독신을 선택했다. 국자와 펜을 들고 고민하다가 그녀도 과감히 국자를 담 밖으로 던져 버렸다.
유하의 시처럼 ‘사랑의 지옥’을 겪게 할 만큼, 사람을 혼미에 빠지게 할 만큼 매력이 있는 오빠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최명희’가 어떤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기에, 소설가 이청준이 평했듯,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을 남길 수 있었으니까 천만다행이다. 작가 ‘최명희’는 『혼불』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어떤 작품도 쓰지 않았다. 오직 이 한 작품만을 위해 이 지구, 지구 중에서도 한국에 온 사람이었다.

여름에 오래된 책들을 정리했다. 오래된 책들로 그렇지 않아도 더운 여름이 더 더웠다. 누렇게 바랜 『혼불』을 내놨다가 들여놓기를 반복했다. 결국 버리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혼불』보다 나는 그녀가 썼다는 수필 몇 편이 더 궁금하다. 『혼불』은 『토지』를 읽을 때만큼 몰입하지 않았다. 완벽을 기하려는 서술묘사가 사람을 지치게 했고, 소설의 일차적 특성을 반감해서 띄엄띄엄 읽거나 어느 부분은 읽지 않을 권리를 가동해야 했다.
저자

이명선

주로도서관에서글을쓴다.
도서관나들이를통해《북쪽이아니라위쪽으로》《찌질이아줌마가보내는편지》
《토닥토닥토론해요》(공저)《하여튼100명의여자이야기입니다》를펴냈다.
부고장도재미있게쓰라는어느작가의말에공감하여유머가전반에스며든글을쓰려고
노력하고있다.
전주출생으로중고등학교교사생활후,1990년《월간에세이》로등단하였다.
샘터사가주관한동화쓰기에당선되어동화를썼으나,중간에수필로장르를바꾸었다.
‘부모님을위한10쪽자서전쓰기''글쓰기치유'같은다양한글쓰기체험프로그램을
중고등학교교사를대상으로강의하였다.
그외에도사회교육기관과협업하여글쓰기체험프로그램을실행중이다.

목차

책머리에4

움트다

01_잡놈아들을두었던부인16
02_온존재를바친여인22
03_한때가길었던선진씨28
04_‘흐흐흥’웃기만하는부인32
05_파한뿌리애국자부인36
06_자찌바찌부인40
07_외간남자손을잡고기도하던여자45
08_미칠이유가없는여자48
09_잊고있던여인52
10_욕망을종이접듯접은여자57
11_9월어느날여인60
12_종잡을수없던여인63
13_오십넘어폭발한휴화산67
14_말같고소같았던도식이아줌마69
15_첫사랑을못잊는할머니74
16_단점도장점도보여주지않은근효씨77
17_여전히살아있는할머니82
18_아까운레시피를잊은순영이86
19_무궁화호에서만난할머니90
20_운세를바꿔드리지못한여인93
21_달보고욕한어떤할머니97
22_평생끼니걱정만하다간신실한여인100
23_남편탓에화가가된아줌마106
24_하느님말씀을전하러온윤리선생112
25_말과돈때문에떠난스님116

번성하다

26_꿈의융단에막발을들여놓은서지안122
27_붕어빵굽는처녀126
28_야밤에기어코떠난여인130
29_뒤늦게회의를품은여인135
30_어머니,어머니,우리어머니138
31_내심정과똑같았을삼수생어머니144
32_가슴이숯검댕이가되었다는아주머니150
33_9년이나떡을썬외제아줌마155
34_10월같았던여인160
35_밑빠진독에은혜를붓고있는여인165
36_돌멩이밑을보고만여인169
37_영원한사랑을받은여인175
38_제대로경멸할줄알았던여인179
39_쓰레빠신고내려온여인183
40_꿈에나타난여인187
41_노랑장미를먼저찜했던아이191
42_지조없던여인들195
43_빈손으로다니지않는여인198
44_산유화여인202
45_유례없는독서왕206
46_인심따위쓰지않는할머니209
47_제라늄같았던김선생213
48_밤기차타고온멸치장수217
49_죽고싶다는말을입에달고사는여인221
50_시간을뛰어넘지못하는여인225

물들다

51_선물을강요하는여자230
52_어머니를포기한여인234
53_징검다리여인238
54_쓰지않을수없는외할머니242
55_사우나민국여인들246
56_선덕했던여인248
57_500년후를위해모금한여인들252
58_손녀를맡기고싶은여인258
59_세상에나마쌍에나여인261
60_지혜충만명륜여사님265
61_느닷없이행복에밀리269
62_이런여인273
63_딸이라는여인275
64_첩딸선심이278
65_따귀한대올려붙이고싶은여인282
66_교장사모님소리도듣고사는여인285
67_사랑에솔직했던여인290
68_감히추녀라불렸던여인294
69_깡깡부인300
70_남아있는만큼만먹으면된다는할머니304
71_남도친구들308
72_고금도불어선생님315
73_귀를씻고싶게만든여인319
74_북간도여인김수복322
75_이름이우뚝섰던여인325
76_파초그늘아래서책을읽는여인330

여물다

77_재능측정이이른아이338
78_남편을사기꾼으로고소한여인340
79_입으로만창업하는아줌마들346
80_잊히지않고전해오는여인350
81_지긋지긋하지않게살다간여인355
82_정작필요할때는없는여인358
83_부부싸움에이골난여인361
84_7급공무원박영남씨366
85_보통이면서보통을넘어선여인370
86_순간을뜨겁게산체타나373
87_허세고군분투회장님379
88_윗집부인383
89_거짓말하는착한사람386
90_이촌언니390
91_주문에충실했던여인들393
92_약점따위는입밖에내지않는여인398
93_불현듯생각나는여자들401
94_손님을지켜야한다는세신사411
95_요근래스친여자들414
96_나란여자,아니할머니418
97_지혜로운현숙씨431
98_부끄러움을모르는여자437
99_바뀌었다고해도바꿀수없다는작은엄마440
100_산신령이되었다는내가만난최초의여인444

출판사 서평

01_잡놈아들을두었던부인

아버지의약첩은작았다.싼약재를푸짐하게넣어약첩을부풀리지않았다.손님에게바로약을지어주지도않았다.약재의독성을빼기위해따로법제를하려면시간이필요했다.사람들은약을지으러몇번씩이나오가는일을귀찮게여겼다.그래도아버지는화제(和劑)를내고며칠지나서야약을주었다.
숙지황이란약재는구증구포(아홉번쪄서아홉번말리는작업)를거쳐야제대로된약효가났다.다른집에서는이약재를적당히몇번찌고말린것을사다쓴다고했다.아버지는집에서주로약재를만들어사용했다.자연다른집보다약값이비쌌다.
“싼약을지어주어도그약을먹고나았다는사람이많은데왜당신은그렇게하지않느냐.환자가오면약을지어주면되지,단방약을일러주며시장에가서그것을사다가달여먹으라고그냥돌려보내느냐.경옥고를기껏비싼원료들여서만들어놓고왜싸게팔아서이문을남기지못하느냐.”
어머니가아버지에게주로했던소리다.당장5남3녀나되는자식들먹일쌀과연탄이바닥을보이는데도환자를돌려보내는아버지가답답해서손님이가고나면한소리하곤하셨다.한창때는대학생여럿에밑으로중고등학생이줄줄이있었으니등록금대기도벅찼을것이다.그때마다구원투수로등장한분이매니큐어부인이었다.

요즘처럼사우나가있었으면사우나에서하루종일살면서온갖세상사를시시콜콜물어내어비판하고정리하고판결을내렸을부인이다.한의원이앞에있고뒤에안집이있었는데,이부인이오면뒤에까지소리가왕왕울렸다.뒤채마루에잡으라는쥐는건성만성쳐다보고온종일수행자인양눈을감고있던고양이도이부인의목소리가들리면눈을뜨고고개를길게빼보곤했다.
나는이부인의활력이싫지않았고,그녀가가져오는이야기가재미있어서앞채로통하는문을열고있기도하였다.매니큐어바르는이도드문70년대초에이부인은퍼런수박색을진하게칠하고다녔다.
“얼굴은흉년에열린까지몽탱이같은데어디에복이들어서부자로잘사는지모르겠다.”
어깨가조붓하고얼굴이얌전하게생겨서남의말은안할것처럼보이는분이지만,건건이소견을맑게밝혔던우리어머니평이다.매니큐어부인의남편은지금도건재한G정기화물회사사장이었다.매니큐어부인은외제물건이아니면상대도않는다고했다.수박색매니큐어를그시대에벌써발에도바르고다녔는데미국제라고자랑을했다.

매니큐어부인은어머니말에의하면‘실삼맞은부인’이었다.어머니는‘실삼맞다’를점잖지못하면서심히경망스러워보이는사람을가리킬때썼다.실삼스럽기도했지만화끈한성격이어서약을지으면첩약정도가아니라일년치먹을환약을짓거나경옥고처럼비싼약을대량구매해서우리집경제에윤활유역할을해주었다.이런단골이몇집있었는데요즘말로하면우리집보약마니아들이었다.
욕도거침없이내뿜었다.특히자기아들을‘세상에없는잡놈’이라고불렀다.J시처녀는다잡아먹는귀신이라고도했던가?고등학생밖에안되는나이에깡패질은기본이고,집에서돈도가져가지않는데펑펑잘쓰고다니고,집에들어오는날이드물어어미인자기도코빼기를볼수없다며아들흉을늘어놨는데,그것이흉거리로들리지않고무용담으로들리게하는재주를가지고있었다.
무용담의주인공이기어코일을저질렀다.다른학교학생들과패싸움끝에감옥에가야할처지에빠졌다.매니큐어부인은J시의유력인사를총동원하여잡놈아들을빼냈다.아버지의희미한친척도일조를했다고들었다.아버지와같은‘청해이씨’일족중한분이마침판사를하고있었는데그분도움이컸다고매니큐어부인은명절이면비싼선물을들고찾아왔다.잡놈아들은파출소에서나온후,그부인말에의하면잡놈질을그만두었다고한다.어느날일찌감치우리집에전화를걸어속사포로그간경위를설명하던부인이답답했는지댓바람에한의원으로달려왔다.

그아들의진짜무용담이다.감옥에갈뻔했던아들이부모님앞에서선언하더란다.
“지금부터공부해서서울대학교에들어가겠습니다.”
“전교꼴등씩이나하는니가공부를하겠다고?키우던개가웃겠다,이놈아!남쥐어패지나말고엎드려자빠져있어.”
그런데교과서가어디있는지도모르던놈이,빈가방만옆구리에끼고다니던녀석이공부를시작했단다.일대사건이벌어진것이다.
다른집아이들은부모를따라한의원에오기도하는데그아들은한번도나타나지않았다.매니큐어부인은가을이면가족을데리고와서진맥을하고보약을앞앞이지어갔다.아들보고도같이가서진맥을받고약을짓자고하였더니“아랫도리성성한데왜약을짓느냐”했다며,어린놈이할소리냐며‘갈갈갈’웃어댔다.
그아들을한번보고싶었다.부인말로는자기와달리남편을닮아키도크고인물이훤하다고했다.매니큐어부인이오면혹시나하고바깥채에볼일이있는체나가보기도했지만아들은그부인말대로코빼기도보여주지않았다.

그잡놈이라불리던아들은주변의예상을모두뒤엎고서울대학교에들어갔다.그가했던공부방법이우리집한의원에오는손님들에게비법으로전해졌지만글쎄,그렇게따라서한사람이있을까싶다.우선은잡놈이선행되어야근성을발휘할듯싶은데우리집단골손님아들들은대부분양반이었다.
아버지에게한문을배우러다니던학생하나는잡놈근성은없었으나서울대학교에들어갔는데,속은어떤지모르겠고겉으로보면점잖은국회의원이되어텔레비전에나오는사람이되었다.그정치인의어머니는매니큐어부인을상스럽다여겨어쩌다한의원에서만나도말을건네지않았다.매니큐어부인은그러거나말거나상관하지않았고전혀기죽지않았다.오히려정치인어머니를‘우뭉여사’라고비아냥거렸다.

후기
‘G정기화물’이란회사는어느도시에가나간간이보인다.그럴때면매니큐어부인이생각난다.그아들은지금무엇을하며살고있는지궁금하다.그의공부비법이대대로전해지고있는지도궁금하다.하기는그의공부비법은알려줘도따라하기힘든방법이었다.그야말로평범한사람에게는비법에불과했다.

02_온존재를바친여인

빗소리가듣기좋아서차안에한참있었다.그날도비가왔다.빗소리를좋아하지만비오는날돌아다니기는예나지금이나싫어한다.하필비가오는날시내다방에서만나자는연락이왔다.그날만난분은훗날‘최명희’가된분이다.
그때도이름은‘최명희’였지만당시는기전여자고등학교에근무하는국어선생님‘최명희’씨였다.나이보다어른스러워보이는반듯한성품을가진분이라는인상을받았다.이분에대해아는게많지않다.글로쓸만큼알고있지못하지만‘최명희’씨가왜독신을선택했는지에대해서는알고있어서이분을‘내가만난100명의여자들’에감히올린다.
대학교선배였다고는하지만같은시기에다니지않아서옷깃조차스쳐지날일은없었다.당숙아들이작가와같은과를다녀서이만남이이루어졌다.인터넷에올려진‘최명희’씨사진을보니맨드라미빛깔립스틱이유난히도드라져보인다.이런색을과감히칠할수있는여인으로보이지는않았다.전반적으로수수해보였다.목까지내려오는생머리에화장기도별로없고두꺼운천으로된원피스차림이었다.밝은색은아니었다.선생님이입음직한,패션에안목이있는옷차림은아니었다.겨울도아니고가을도아닌춥지도덥지도않은날씨였다.비를맞아서우산을써도어쩔수없이신발은젖고,스타킹에물이밴꿉꿉한상태로들어섰다.

‘최명희’씨는우리큰오빠와얼마전선을보았다고했다.나는전혀모르는사실이었다.
‘그래서?왜나를만나서이런이야기를하는거지?’
그상황이어색했다.‘최명희’씨는바로용건으로들어갔다.큰오빠가마음에들지만자기는결혼하지않기로오래전에결심했다는것이다.그말을전해달라는용건이었다.평생숙제처럼해야할일이있어서결혼할수없다고했다.이런이야기는이미성인이된당사자들끼리만나서해야할이야기같았다.굳이한번도본적없는,앞으로도볼이유가없는나를만나서까지해야할이유가없어보였다.
그뒤로한번‘최명희’씨집을방문했는데오빠의대답을전하러갔는지,아님어떤다른이유가있었는지기억은없지만,집안모습은비교적뚜렷하게남아있다.남문다리건너한옥으로지붕이낮고어두컴컴했다.집안은정갈해보였고물건들이가지런히정리되어있었지만풍족한형편이아님을한눈에봐도알수있었다.

평생해야할일이라는것이글쓰는일이었음을『혼불』을읽고서야알았다.오빠가만난‘최명희’와『혼불』작가를처음에는연결하지못했다.저자약력을보고서야동일인이구나싶었다.인사말이었겠지만작가‘최명희’말대로오빠가마음에들었을수도있다.오빠는인문학적소양이풍부했고한문실력도누구못지않게뛰어난데다독서량또한만만치않은당대의지식인이었다.동아일보기자를잠깐이지만했는데글쓰는솜씨도남달랐다.오빠가죽기전원고지5천매정도의회고록을남겼다고들었다.책으로출간하겠다고해도큰올케가보여주지않으니내용을모르겠지만『혼불』의‘매안이씨’기록만큼이나흥미진진한‘청해이씨’가문이야기가담겨있을것이다.
‘최명희’는‘삭녕최씨’로『혼불』배경지인남원사매면에서성장기를보냈다.그곳에삭녕최씨종가가있다고한다.소설속매안이씨종부청암부인이살던곳이다.최명희씨집안이종부집안이었는지는모르겠다.

추측건대,오빠와‘최명희’씨가다방에서잠깐만나고헤어지지는않았을것이다.한번인지두번인지모르겠으나한번만났다해도둘의이야기는전주천흐르듯이어졌을것이다.그물살이아쉽지만‘최명희’는평생해야할일을하자면독신이어야기능했을것이다.특히한국사회에서는.
“『혼불』은나의온존재를요구했습니다.”
그녀말대로온존재를던져야가능한일을결혼해서남편이며시댁식구,자식에게시간을나눠주다보면흐지부지‘혼불’은빠져달아나고말지않았을까.작가의아버지도한몫거들었을지도모르겠다.최명희씨부친이평생술에서헤어나지못하여가족을힘들게했다고하니결혼에회의를품었을수도있겠다.

생뚱맞게플로베르가떠오른다.그는하루18시간을오직글만쓰며살았다고한다.독신으로살았기에가능한일이었다.독신이었지만누군가뒷바라지를해주었기에가능한일이었겠다.역시독신이던누나가평생뒷바라지를해주었다고하니17년간계속된『혼불』을썼던작가역시독신이어야하지않았을까?
『임박한재앙』을쓴소설가‘린샤론슈워츠’는“좋은여자와작가가동시에되기는불가능하다.서른두살때나는둘중하나를선택해야한다는걸깨달았다.좋은사람이되느냐,작가가되느냐.나는작가가되기로결심했다”고밝혔다.‘최명희’는이미스물네살에독신을선택했다.국자와펜을들고고민하다가그녀도과감히국자를담밖으로던져버렸다.
유하의시처럼‘사랑의지옥’을겪게할만큼,사람을혼미에빠지게할만큼매력이있는오빠가아니어서다행이다.‘최명희’가어떤누구와도결혼하지않았기에,소설가이청준이평했듯,‘찬란하도록아름다운소설’을남길수있었으니까천만다행이다.작가‘최명희’는『혼불』을쓰기시작하면서부터다른어떤작품도쓰지않았다.오직이한작품만을위해이지구,지구중에서도한국에온사람이었다.

여름에오래된책들을정리했다.오래된책들로그렇지않아도더운여름이더더웠다.누렇게바랜『혼불』을내놨다가들여놓기를반복했다.결국버리지못하고다시제자리에꽂았다.『혼불』보다나는그녀가썼다는수필몇편이더궁금하다.『혼불』은『토지』를읽을때만큼몰입하지않았다.완벽을기하려는서술묘사가사람을지치게했고,소설의일차적특성을반감해서띄엄띄엄읽거나어느부분은읽지않을권리를가동해야했다.

후기
사전을보니‘혼불’을전라도방언이라고써놓았다.납득이가지않는다.전라도만이아니라전국적으로쓰고있을법하다.크기에대한설명도마음에들지않는다.종발만하다고써놓았는데내가어린시절어른들에게듣기로는머리가주먹만하고꼬리가길게이어져있다고들었다.혼불은죽은뒤에빠져나오는불이지만역설적이게도생명의불이다.생명의불은어디선가또다른생명에게불을지피고있을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