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빙떡도 웃었다 (오인순 수필집)

그날은 빙떡도 웃었다 (오인순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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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의 글들은 음식을 통해 새삼 기억되는 추억의 제주 음식 이야기다. 이 음식을 먹으면서 어른이 된 작가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음식을 그릇에 담고 사유와 성찰이란 양념으로 감칠맛 나게 끓이기도 하고 무치기도 했다.

아궁이에 묻은 세월의 때를 토해내듯 사라져 가는 제주 음식을 추억하고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수필가이자 음식문화연구가인 오인순 작가. 그는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음식 공부의 길을 나섰다. 제주에서 서울로, 대구로, 영양까지 날아다니며 제주 향토 음식과 약선 음식, 반가 음식을 배웠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먹던 음식 맛을 기억하며 만들던 것들은 그에게 음식 이상의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래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고소한 향기가 나는 이 음식 이야기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장으로 나누어, 봄에는 '당신의 달콤한 고백을 듣는 감자전' 등 9편, 여름에는 ‘어머니가 걸어온 길 마농지' 등 10편, 가을에는 '너럭바위에 핀 소금꽃의 경전 소금빌레' 등 9편, 겨울에는 '주름처럼 여울진 그 맛 돗괴기엿' 등 9편, 모두 37편이 담겨 있다.

편편마다 음식에 얽힌 작자의 사연이 함초롬히 녹아 있으며, 작자가 할머니, 어머니가 만드는 음식을 보고 배운 레시피가 맛깔스럽게 소개되어 있다. 일생 고단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밥상이 그리워지는 지금. 풀꽃처럼 떠오르는 그리운 어머니의 음식은 삶의 노래가 되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가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 묻힌 음식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내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입맛도 변하고 옛 음식은 사라지고 있다. 질리도록 먹었던 보리밥은 힐링 음식이 되고, 쌀밥은 어디서든 언제든 먹을 수 있다. 아궁이 대신 전기압력밥솥이 있어 가마솥밥은 하지 않아, 누룽지의 추억도 아슴아슴하다. 그래서 숙제를 해치우듯 만든 음식은 맛을 느낄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작가의 말'에서 "음식은 배고플 때만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고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온몸을 휘감는다. (...) 추억의 음식을 지난날에 대한 향수로 내 가슴에 담는다. 그 시절로 돌아가 마음으로 냄새를 맡고, 맛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라는 진심 어린 고백이 긴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자

오인순

저자:오인순
제주에서태어났다.제주대학교가정교육과를졸업하고40여년간교사생활을했다.음식과건강에관심을가지고원광디지털대학교한방건강학과,제주대학교식품영양학과박사과정을수료하였다.한국최초한글조리백서인장계향의《음식디미방》1급과정을마치고약선음식과건강에관련한강의를여러곳에서해왔다.

2017년《문학청춘》신인상,2020년《에세이문학》추천완료로작품활동을시작했으며,수필집《서리달에부르는노래》와공저《흔들리는섬》이있다.

탐라문화제전국글짓기공모전‘한라상’,한국해양재단주최‘해양문학상’은상을수상했으며,<서귀포신문>‘문필봉’과<제주헤럴드>‘화요에세이’및‘오여사의수랏간,그유혹’의필진으로활동하고있다.

목차

작가의말…5



당신의달콤한고백을듣는감자전…14
삶은누구에게나공평한가머위꽃된장…20
어머니품속처럼깊은맛이나는보말미역국…26
따뜻함으로품어주는취나물국수…32
오랜기억의봄향기가날아드네냉이된장국…37
나른한봄날생기찾고싶으면시래기영양밥…42
먹고나면괜찮아질거야애탕국…47
대접해주고싶은날엔탕평채…52
삶의짭조름한문장같은미역국…59

여름

어머니가걸어온길마농지…66
여름날의어우렁더우렁호박잎수제비…71
그리움은왜뒤늦게오는가자리돔구이…76
얼큰했던아픔과사랑의그냉면…82
달아오른얼굴과등판을식혀준쉰다리…87
땀도눈물도보리꽃처럼보리개역…92
조급하던마음도느릿느릿서늘하게초계탕…97
놓칠수없는여름의맛상추쌈…103
열아홉살청무꽃이핀열무김치…109
어른의맛으로깨닫는가지덮밥…114

가을

너럭바위에핀소금꽃의경전소금빌레…122
그날은빙떡도웃었다빙떡…128
까칠하게살아도괜찮아비빔밥…135
쉼표가필요한날엔는쟁이범벅…142
결국어머니의맛으로되돌아오는토란조림…147
먹어서즐겁고불러서즐거운매작과…153
기다리는법을깨우치는호박오가리짐너물…159
나의소울푸드양하버섯튀김…165
사바사바로달랬던감칠맛고등어조림…172

겨울

주름처럼여울진그맛돗괴기엿…180
그리움만드리워놓고떠난국…185
겨울냄새가묻어나는무밥…192
추억없는인생은쓸쓸하잖아고구마빼떼기…198
눅진한정으로죽을쑤다콩죽…204
이제는찾을수없는오합주…208
언제까지그맛을기억할까소복만둣국…214
반전의빛날날을기다리며치자단무지…221
리셋인생을꿈꾸며삼겹살김치말이…226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감자전한조각을입에넣는다.바삭거리는촉감과찰진맛이혀끝에달라붙는다.남편도입꼬리가올라가며배시시웃더니맛있다고거든다.막걸리두어잔걸치고나니남편얼굴에홍조가어린다.희끗희끗한머리카락을쓸어넘기며내손을힘주어잡으며떨리듯말문을연다.
“남은인생선물이라생각하자.이젠당신의뜻대로따르리라.”
느닷없이그말을들으니먹먹하다.눈가에맺힌눈물방울속으로외롭고고단했던시간이도미노처럼무너진다.대답은하지못했지만나도존경과사랑으로감자꽃의꽃말처럼‘당신을따르겠습니다’하고수줍은새색시처럼마음속으로되뇌어본다.
---p.17「감자전」중에서

머위쌈밥이좋은것은겨울언땅을뚫고올라온초록빛생명으로새숨을불어넣기때문이다.김이모락모락오르는머위쌈밥을맛볼수있다면봄은소박한아름다움으로물들것이다.
머위줄기를삶아서껍질을벗긴후들깻가루를넣고볶아주면한끼반찬으로봄향기가득한식탁이된다.프라이팬에들기름을두르고머윗대와마늘과간장,육수조금넣고볶다가홍고추,청고추,양파를넣어조금더볶는다.들깻가루와대파를넣고섞어국물이걸쭉해지면부족한간을소금으로맞춘다.머윗대의쌉싸름한매력적인그쓴맛은이웃을부르고싶은맛이다.
---p.23「머위꽃된장」중에서

오늘저녁메뉴는애탕국이다.‘나는프로다’라고생각하며레인지불을켜고애탕국을끓인다.간단한음식이지만마치내가대단한음식솜씨가있는것처럼어깨가으쓱해진다.어쩌면지금껏맛보았던수많은맛뿐아니라추억속의뒤섞인맛을보고싶은지도모르겠다.

어린쑥을헹궈내고치맛바람날리듯숭덩숭덩썬다.곱게간소고기에다진파,다진마늘,참기름,소금,후추양념을한다.여기에두부를으깨어썰어놓은쑥과함께동글동글하게완자를빚는다.급해지는마음을완자로굴리면서어떤기억을버무려넣을까,잠시생각한다.

깊이묻어두었던초록빛기억을가만가만물들여본다.내아이들도나처럼추억할만한음식하나,특별한음식하나가지게될까?완자에눈가루날리듯밀가루를뿌려옷을입히고달걀물에담근다.냄비에육수를넣고끓으면완자를넣어동동떠오르면완성이다.그릇에담고마름모꼴달걀지단을고명으로올린다.“애탕국대령이오!”하고한그
릇대접하면겨우내움츠렸던몸에활기가되살아나리라.
---pp.50-51「애탕국」중에서

텃밭에서따온호박잎은잘라손빨래하듯바락바락비벼서초록풋물을뺀다.씻는다고거칠던그아픔이사라질까.냄비에다시마우린물과비린내가나지않도록타닥타닥하게볶은멸치를넣고끓인구수한육수를만든다.
펄펄끓는육수에감자를숭숭썰어넣고밀가루반죽을하늘하늘할정도로얄팍하게늘려가며뚝뚝떼어넣는다.감자가익고수제비가구름처럼떠오른다.그모양이얼마나아름다웠으면구름을물에띄워삶은운두병雲頭餠이라했을까.낭화浪花는또어떠한가.수행승의공양받는사찰음식으로끓는가마솥장국에반죽을툭툭던질때의모습이‘물결치는파도’라니.옛사람들의은유적감성이멋들어지다.
애호박을반달모양으로썬다.칼날지난자리에맺힌이슬같은물방울이방울방울맺는다.끓는육수에들어선애호박이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땅에서캐낸감자와수제비를보니어찌애틋하지않으랴.연둣빛색깔을잃지않고생기를더한다.이게세상을살아가는삶의이치가아닐까.
---pp.73-74「호박잎수제비」중에서

소금빌레,나직이읊조려본다.오랜세월을속삭여온단어같지않은가.그이름앞에서니겸손해진다.밭에서꽃이피어열매를맺듯돌염전에서피워낸소금의간간한맛이지나가는바람처럼달달하고안온하게다가온다.단맛에밀리고감칠맛에더밀렸던짠맛이너른바닷물에녹아낸깊은맛으로살아난다.
마당장독대의장맛과젓갈의맛도소금이다독이며군맛방패막이되어주었다.찌개나국을끓이고장아찌를만들어맛있는밥상을누리는것도소금덕이다.생선비린내도,부패도잡아주는것이소금아닌가.항아리속에서기다림과삭힘의미학이깃든젓갈을갓지은밥위에얹어먹어보라.입안에퍼지는개운함으로쌓인스트레스가허공으로날아가리라.힘든삶에소금의힘으로에너지가생기고위로가되어줄것이다.
살아보니소금은혀끝의간만맞추는것이아니었다.어머니에게소금은자식을위한희망이었다.소금을항아리에담고신주모시듯현관에놓곤했다.정제된소금이외부의액운을물리칠수있다고믿고이사때마다구석구석뿌리곤했다.비손으로불운을벗어난삶을바라던어머니의주름진모습이선연하다.
---pp.122-123「소금빌레」중에서

할머니가차롱에서터진빙떡을꺼내내게건네며입안에한조각넣는다.씹으니슴슴하다.내가무나물있는곳만쏙베어먹어가장자리는할머니몫이다.할머니도이슴슴한빙떡이맛있었을까.어쩌면짭짤한짠맛이거나거칠고떫은맛이어도아들을만난듯단맛처럼느끼지않았을까.매일다람쥐쳇바퀴돌듯이맛도저맛도아닌단조로운나의일상과는다른맛이었지않나싶다.무채에깻가루뿌려고소한맛을내듯,고달픈삶에서할머니빙떡처럼먹어도질리지않는그런맛이그리워진다.
비는멈추고살랑거리는바람에꽃잎이흔들리며가을을끌어낸다.지는꽃잎쓸어주던할머니빙떡이메밀꽃향기에젖어흩날린다.축제장을빠져나가는어린아이가흥얼거리는빙떡송‘빙떡먹으레옵써’가귓전을두드린다.옛날할머니빙떡이웃으며내게말을걸어온다.
“나도살아시메빙떡하영먹고으멍웃으멍살라.”
---p.133「빙떡」중에서

제주의엿은씹어먹는엿이아니라진액처럼숟가락으로떠먹는건강식이자보양식이다.겨울철에는해산물마저충분하지않아단백질섭취가어려웠다.그래서추렴한돼지고기를엿으로만들어먹었다.
돗괴기엿(돼지고기엿)을만드는과정은너무나간단하다.그렇지만삶을어루만지듯하룻밤을넘기는인내의시간을지녀야한다.맨처음돼지고기를삶는다.돼지고기의누린내를없애기위해끓는물에마늘과된장을넣고반쯤익혀건진다.
질게지은차조밥과엿기름을함지박에넣고미지근한물을부어주물럭거린다.고루섞다보면엿기름물이손가락사이사이를미끄러지듯지나간다.엿기름물을방안아랫목따뜻한곳에이불을덮고대여섯시간쯤둔다.그러고나면당화가일어나며뭉그러진다.차조밥과엿기름은깊은흔적없이삭혀져엿물이된다.엿물을바라보면척박한둥지의힘들었던시간도삭으며누그러진다.
엿물을베주머니에넣고치대며주물러즙을짠다.그건한여름뙤약볕이쏟아졌던조밭고랑의시간이라고할까.시뻘겋게달아오른얼굴,불로지지듯달군등짝도,쉴새없이이마에흘러내리던땀도쓰라리게녹아내린다.
---pp.182-183「돗괴기엿」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