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 (양장본 Hardcover)

백곡 처능, 조선 불교 철폐에 맞서다 (양장본 Hardcover)

$22.00
Description
“불교를 지키는 것이 죽어도 사는 길이다”
불교사를 바꾼 단 한 번의 상소!
시대정신의 불꽃, 백곡처능의 삶이 오늘 한국불교에 던지는 메시지

잊혀서는 안 되는 시대의 불꽃, 백곡 처능
왕조 국가에서 국왕은 절대점에 위치한다. 이런 국왕을 상대로 비판의 칼날을 겨누며 조선 불교를 지켜낸 분이 바로 승병장인 벽암 각성의 사법제자 백곡 처능이다. 백곡의 의기는 한국 불교사에 일대 획을 긋는 사건임에도 어찌 된 일인지 우리들 기억에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조선 중기를 가르는 왜란과 호란은 방만한 유교 사회에 불어닥친 외부적 충격이자 희대의 비극이었다. 전란의 상황에서 국왕과 유생들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도망칠 때, 스님들은 승병을 조직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며 산화하는 의기를 떨쳤다. 그럼에도 조선은 혼란이 수습되자, 스님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오히려 불교를 말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이때 죽음을 각오하고 임금을 정면으로 비판한 8,150자의 상소 〈간폐석교소〉가 현종에게 올라간다. 왕조 국가에서 국왕에 대한 비판은 유래가 없는 일이며, 그것도 숭유억불의 조선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온몸으로 불교를 지켜낸 숭고한 이, 그가 바로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 백곡 처능이다.

백곡은 백성과 함께 아파하고 시대의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한 진정한 수행자였다. 또 그가 쓴 <간폐석교소>에서 확인되는, 불교를 넘어서는 방대한 지식의 스펙트럼은 학인들의 지남철이 되기에 충분하다. 이런 점에서 백곡은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와 한국 불교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또한 조선 중기 가혹한 척불의 시대 상황에서 목숨을 내놓고 냉철한 논리로 척불의 시정을 촉구한 백곡 처능의 <간폐석교소>는 조선조 500년간에 걸친 배불 정책하의 불교사에서, 단 한 편의 반박 상소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높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현재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고 있는 벽산원행 스님의 이른바 첫 저술이다. 여러 권의 불교 교양서를 집필한 대표적인 학승 자현스님과 공동 저작으로서, 백곡의 숭고한 실천을 널리 알리고 시대를 뛰어넘는 귀감으로 삼고자 원행스님의 박사학위 논문 일부를 저본으로 삼고, 그 위에 백곡의 생애와 우리말로 번역한 <간폐석교소> 원문을 덧붙여 출판하게 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일대 전화기 속에서 한국불교에 가장 필요한 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책임의식과 선공후사 멸사봉공先公後私 滅私奉公의 자세이며 그것이 실천종교로서 불교가 가야 할 길이라는 저자들의 메시지는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저자

벽산원행

벽산원행碧山圓行
스님은1973년태공월주큰스님을은사로제17교구본사인금산사에서출가하였다.그뒤해인사승가대학과중앙승가대학교를졸업한뒤,동국대학교교육대학원과불교대학원에서수학하였다.학문에대한깊은열정으로2008년한양대학교에서석사학위를,그리고2013년에는한양대대학원에서〈조선초기관료들의성리학적정치이념과함허선사의《현정론》에관한연구〉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
학문과더불어사회적약자를배려하고실천하려는의지가강한스님은나눔의집원장,대한불교조계종호계원및중앙종회사무처장,제17교구금산사주지,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회장,중앙승가대학교총동문회장,중앙승가대학교총장,중앙종회의장등을두루역임하였다.현재대한불교조계종제36대총무원장과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그리고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대표의장직을통해불교와행복한사회발전을위해매진하고있다.

목차

출간에부쳐
여는글

해제척불정책에대한논리적반박,<간폐석교소>_벽산원행
1.백곡의생애와<간폐석교소>를저술한동기
2.<간폐석교소>의내용과의의
3.불교무용론과유해론에대한반박

제1부시대정신의불꽃,백곡처능의생애
1.유교의한계와양란사이의탄생및출가
2.백곡의출가계보와조선중기의불교계
3.선조의부마신익성에게유학을배우다
4.벽암각성을스승으로모시다
5.백곡의성지순례와서산대사에대한추모
6.전란의극복과정과조선정부의태도
7.유교의영향과불교의식집의재편필연성
8.백곡의문명文名과인조를위한천도문작성
9.봉은사의삼세불상불사참여와대둔산안심사의주석
10.예법의강조속에경직화되는주자학
11.예송논쟁과불교의말살을시도하는정국
12.국가의부름과수행자로서의삶
13.백곡의마지막을불태운금산사대법회

제2부불교폐지의부당함을알리는상소문:<간폐석교소>쉽게읽기
1.이치에맞는말이라면가벼이여기지마라
2.크게이루려는이는작은것조차버리지않는다
3.현종은최고의성군이며,이는백곡의영광이다
4.군주는간언을통해올바름을이룬다
5.백곡이진언한이유와당시의여섯가지불교비판
6.부처님에대한중국고대기록으로당위성을강조함
7.불교는진시황때시작되어당·송시대에꽃이피다
8.당시유행하던여섯가지불교비판에대한백곡의변증
9.불교를존숭한황제의뛰어난치적과엇갈린평가
10.불교를숭상한대표적인명신과고결한선비들
11.불교를배척한임금들의비극적인최후
12.불교를배척하고비판한신하들은혼란기의소수일뿐이다
13.책에적힌기록에는필연적으로오류가존재한다
14.불교를배척한유학자들도전폐를말하지는않았다
15.유교역사서의맹점과불교기록의의도적인누락
16.불교가전래하기이전의혼란한국가들과군왕
17.우리나라의불교전래와불교가국가를이롭게한역사
18.모든세상에는불교가있으니,함부로없애려고해서는안된다
19.도선국사는사찰을건립해국가가흥성할수있도록하였다
20.고승의존재유무는국가의흥망과직결되는가치이다
21.동아시아비구니의출가역사와내원당과외원당의구분
22.선대의유업을계승해사찰철폐의오류를시정하라
23.두비구니사원을없애고비구니를쫓아낸것은선왕을계승한것일수없다
24.사찰에군주의위패를모신연원과위패를없애고제사를그치면안되는이유
25.선왕의위폐를묻고제사를폐지하자가뭄이계속되는재앙이발생했다
26.자수원과인수원을복원하고당장불교탄압을중단하라

부록<간폐석교소>원문
백곡처능연표
백곡처능관련번역서와연구목록

출판사 서평

백곡처능,가혹한불교탄압에정면으로맞서다

조선초인태종대부터본격적으로시작된불교탄압정책은조선중기로오면서더욱심해진다.세조의돈독한신심과불교를옹호하기위한노력이있기는했지만,세조의죽음이후불교를탄압하려는시도는더욱격렬해진다.당시유생들의상소에실려있는표현그대로불교의뿌리를뽑기위해온갖행태가자행된다.그결과연산군·중종대에이르면그나마남아있던선종과교종두종파마저모두없어지고,조선초기이래로실시해오던승과고시제도마저철폐된다.이로써승려가될수있는길은차단되고,승려의신분을인정하는제도마저모두폐지되는등노골적인폐불정책이시행된다.당시이미조선의승려들은도성출입을금지당하는등심한신분적차별을받고있었다.더이상불교의소생을기대하기어려울정도로암담한상황이었다.
다행히문정왕후가등장하면서새로운국면이펼쳐진다.문정왕후는선종과교종을부활하고승과와도첩제를실시하여선종과교종양쪽에각각30명의승려를뽑고,전국300여개의절을공인하는등과감한불교중흥정책을전개한다.또한양주회암사에있던승려보우를맞아들여봉은사주지로임명했으며,훗날중종과함께묻힐마음으로서삼릉에있던중종의능을봉은사인근인정릉으로이장한다.문정왕후의노력덕분에불교교단은활기를띠었고,인재들이모여들었다.이때실시한승과를통해대두한인물들이청허당휴정과사명당유정,뇌묵당처영등이다.
그러나당시유생들은문정왕후의불교중흥노력에격렬히반발한다.각지에서보우를타도하라는상소와승과를폐지하라는상소가빗발친다.보우를죽여야한다는상소를올리다못해성균관유생들이성균관을비우는집단시위를벌이기도했다.문정왕후덕분에잠시나마부흥의빛을보였던불교계의고승들은유생들의탄압에다시금산속으로들어가야했다.얼마뒤발생한임진왜란과병자호란때에이들은승병이되어나라와백성들의어려움을구하는데에앞장선덕분에임진왜란이후승려들의사회적지위는다소나아졌지만,위정자및유생들의부당한핍박과시달림은계속되었다.
남한산성과북한산성을비롯한주요산성을쌓고지키는일은모두승려에게맡겼고,관가와유생들에게종이와기름,신발등을만들어바치게했으며,그밖에잡역도부가되었다.특히현종은즉위(1659년)와동시에양민이출가하여비구나비구니가되는것을금했고,이미비구나비구니가된사람들도환속할것을명령했다.또서울의비구니사찰인자수원과인수원을철폐하고,거기에모셨던여러선왕의위패를땅에묻어버렸으며,사찰소속의노비와밭은모두몰수했다.
이와같은가혹한불교탄압속에서정면으로자신의뜻을밝혔던승려가바로백곡처능이다.백곡은현종이불교를탄압하자그에항의하는장문의상소문을올려조선왕조척불정책과배불사상의잘못된부분을바로잡고자했다.이탄원형식의상소문이바로<간폐석교소>이다.<간폐석교소>는조선시대모든상소문중가장분량이많은것으로현종의불교박해를완화하는계기가되었다.

“신은실로우둔하여전하께서무엇을생각하시는지엿보지못하겠습니다.”
:백곡이<간폐석교소>를집필한동기

백곡처능은조선시대가혹했던배불정책에대해공식적으로그잘못을지적하고바로잡기를촉구했던유일한승려로기록되지만,그의생애에대한기록은제대로전해지지않는다.다만그의유문집인《대각등계집》과《백곡선사탑명》,이탑명을쓴최석정의《명곡집》등단편적인기록을통해그의행장을일부살펴볼수있는데,여기서분명히알수있는것은그의시적재능이무척뛰어났다는것이다.당시걸출한선배들의아낌없는사랑과칭찬을받았음은물론,효종역시세자로있을때백곡의글재주가높은경지에있음을극찬할정도로시에대한재주가탁월했다.
백곡은많은사례와경전등을근거로하여8,150자에달하는장문의<간폐석교소>를지어당시가혹했던배불정책에대해공식적으로그부당함을지적하고바로잡아줄것을간청했다.백곡은이글을통해불교를비판하는근거가논리적타당성을갖추지못하고있다고조목조목대응했다.그러면백곡이이와같은장문의<간폐석교소>를제출한동기는무엇일까?

“삼가승정원에서반포한의결사항을보고엎드려성지를받잡건대,승려를모두말살하기위해비구니는환속시키고비구도역시없애기로의논이되었다하옵니다.신은실로우둔하여전하께서무엇을생각하시는지엿보지못하겠습니다.”

그가절박한마음으로붓을들수밖에없었던직접적계기가있다.우선현종이즉위하자양민이출가하는것을법으로금지하고,비구나비구니가된자는모두환속시켜그것을어기는자는벌을받도록하는조치를취했기때문이다.또한이듬해정월에는부제학유계兪棨가상소를올려이단을척결하는의지를보여주어야한다고주장하자,현종이그건의를받아들여도성안에있던자수원과인수원의혁파를명령했다는것도직접계기가되었다.《현종실록》에따르면자수원에봉안된여러성인의위패를땅에묻도록했다는사실과선교양종의수사찰이었던봉은사와봉선사까지도철폐하여승려들을환속시키고불교를무너뜨리려했던정황도백곡을자극했다.이와같은당시불교계의절박한현실문제가상소의직접동기가되었지만,근본적으로는도첩제와승과제의폐지등가혹한척불시책에대한부당함이백곡으로하여금<간폐석교소>를쓰게하였다.

<간폐석교소>의내용과의의
1)“무릇천하에는불교가없는나라가없다(梵天下未有無佛之國)”

백곡의<간폐석교소>가우리의주목을끄는이유는불교에대한정치적·사회적분위기가살기를드리울정도로경색되어있던시기에유학자들의맹목적인불교비판에맞서이를논리적으로반박했기때문이다.백곡은먼저부처님의탄생과열반그리고불교가중국에전해지고널리알려지게된역사에대해간단히서술하고나서본론에들어가우리나라에서불교를배척하는근거를6개항으로간결하게정리한다.
<간폐석교소>의핵심내용은크게두가지로,첫째는폐불의이유로추정되는6가지주장에대한반박이고둘째는불교무용론에대한반박이다.전자나후자모두6가지조항으로구성되어있으며,주로폐불의이유로거론되는것에대한백곡의반박이핵심을이룬다.즉백곡은‘불교가인도에서생긴것이라는점’‘윤회를주장한다는점’‘농사를짓지않으며재물을소모한다’는등여섯가지이유때문에왕이불교를말살하는정책을펴고있음에주목하고,많은사례와경전등에근거하여그것이잘못임을조목조목반박한다.불교를배척하는것이부당함을폭넓은사례와해박한지식을예로들어논리정연하게역설하여위정자들의시정을촉구한다.
대체로이들여섯가지이유는불교의철학적교리보다는현실적인면을강조한내용들이다.백곡은숭불과억불에대한중국의사례를들어불교를배척하는위정자들의주의를환기시키는가하면,우리나라로눈을돌려불교를중시했던삼국과고려의정책이국가통치에유해하지않았음을언급한다.그뿐아니라태조이래조선의역대왕이실질적으로는불교를숭상하였음을예를들어보임으로써,당시국왕현종에게거듭불교의무해성을강조하고불교의이로움을강력히천명한다.특히풍수지리설을믿던당시에땅의기운이약해질때산천의중요한곳에사탑을세워약해진기운을보완한다는도선의‘비보사탑설’을호소력있게강조함으로써거듭불교의이점을강조한다.또한상소의궁극적목적인자수원과인수원을복구하고봉은사와봉선사를훼손하지말아야한다는데초점을맞추면서,폐불훼석廢佛毁釋(불교와관련된것들을훼손하는행위)의부당함을주장하는것으로글을마무리짓는다.

2)“정명도程明道는불상을배척하지않았고,주희朱熹는불서읽기를좋아했습니다.”

불교가국가적으로무용하다는비판은비교적오래전으로거슬러올라간다.불교가중국에전래되어토착화되고그세력이팽창하면서,유교와도교를중심으로한배불론자들은불교무용론을끊임없이제기했다.그이유도다양하지만,주된이유는불교의윤리관과풍속등이중국전통의유교와는너무다르다는점때문이었다.중국의문화적영향을직간접으로받았을뿐아니라,특히성리학이주도했던조선초기와중기사회전반의분위기에는배불론이상당히팽배할수밖에없었다.
이와같은시대적상황에서백곡은불교무용론에대한반론을전체적으로는크게여섯항목으로제기한다.첫째불교를믿은군신의사례와그과보,둘째폐불과관련된군신의사례와그과보,셋째유학자들의척불과숭불사례,넷째무불설에대한반박,다섯째불교유해론에대한반박,마지막으로우리나라의숭불사례가그것이다.또중국의유학자들이불교를탐탁지않게생각하기는했지만,불서佛書읽기를좋아했다는예를들어보이기도한다.

“유교를업으로삼는사람으로서정자程子와주자朱子만한현인은없습니다.그런데정명도程明道는불상을배척하지않았고,주희朱熹는불서읽기를좋아했습니다.”

불교를공격하는유학자들의논리핵심에는여전히중화중심주의와유교적가치관이내재되어있다.보편적이고상대적인가치관을인정하지못했던배불론자들의시각이편협하고포용성이부족한반면에,호불론자들은불교적인보편적이고상대적인가치관에입각해부처님의가르침을설파하기위해노력했다.요컨대백곡은배불론자들의논리전개에대응하기위해나름의논리를전개하며,궁극적으로는유교적시각에서벗어나포용정책을펼것을현종에게간절히호소했다.이처럼<간폐석교소>에서백곡은유교에서벗어나고자한것이아니라불교와유교의융합과조화를시도함으로써배불논리에대응하고자했다.백곡의이같은주장은당시시대적상황을고려한다면필연적이면서도과감한주장이아닐수없다.

<간폐석교소>,그후
백곡이상소를올린결과가어떠했는지는정확히전해지지않는다.다만그후몇가지조치와추이과정을통해짐작해볼뿐이다.서울의비구니사찰인자수원과인수원의양원은이미철폐되었지만,봉은사와봉선사는끝까지존속되었다.또현종이만년에봉국사奉國寺를창건하는등불교를믿은흔적이보인다.그리고현종15년에백곡이남한산성도총섭에임명되었다는점등은백곡처능의상소가어느정도주효했던것으로판단된다.

백곡처능(1617∼1680)
백곡은광해군8년인1616년인도스님에게구슬2개를받아삼키는태몽속에잉태되어,이듬해인5월3일아버지전씨와어머니김씨사이에서탄생했다.이후12세에벽암각성의제자인의현에게출가하고,17세부터20세까지는선조의부마인신익성에게승려의신분으로유학과시문을수학한다.이는백곡이유학과역사및시문에능한배경이되는데,이로인해문장가로서의명성을크게떨치게된다.
이후20여년간사법스승인벽암각성을모시며,전란과정에서파괴된사찰과민중을추스르는실천행을한다.그러다45세가되던1661년현종과유교대신들이불교를말살하려는움직임을보이자,목숨을내놓고불교탄압의부당함을주장하는〈간폐석교소〉를올린다.이로인해폐사의위기에직면했던봉은사와봉선사가존치될수있게된다.50세에백곡은정부로부터남한산성승통僧統에제수되며,54세에는남한산성도총섭에오른다.그러나중생구제를더중시한백곡은오래지않아사임하고,교화와수행에매진한다.1680년64세의고령으로모악산금산사에서5일간의대법회를주관하고,6월20일가벼운병증이나타나7월1일금산사에서평온한입적에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