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려관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 양장본 Hardcover)

봉려관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 양장본 Hardcover)

$17.00
Description
봉려관 스님,
2백여 년의 제주불교 암흑기를 끝내고
근대 제주불교 역사를 일으켜 세우다!
봉려관의 출생과 출가,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킨 배경 및 과정, 그의 품성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기존 연구자들의 추측과 상상에 의거한 억지 주장에 맞서 반론을 펼치고 진실을 밝힌다. “봉려관에게 가사袈裟를 전수하여 출가 결심을 세우게 한 ‘운대사’는, 봉려관도 단 한 번 조우한 미지의 스님”이며 “봉려관의 은사는 비구 청봉이 아니라 비구니 유장”이라는 사실, 그리고 “관음사는 봉려관 홀로 1909년 봄에 창건하였기에, 1908년 창건설이나 여타 인물의 공동 창건설은 오류”라고 밝힌다. 1938년 봉려관이 입적하기까지 그의 행적들을 좇는 여정은, 봉려관에 의해 비로소 근대 제주불교의 맥이 살아났음을 일깨우는 귀중한 발견이다.
저자

정진희(혜달)

정진희鄭眞熙(혜달慧達스님)
1982년법희스님(광주흥룡사)을은사로,자운스님을계사로사미니계를수계하였다.1987년자운스님을계사로구족계를수계하였고,1988년3월봉녕사승가대학대교과를졸업하였다.
1994년국립대만사범대학에서학사학위를취득하였다.1997년국립대만사범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2002년박사학위를취득하였고,중국당·송대조사선,묵조선,간화선을전공하였다.
논문으로는「마조도일과그선학사상연구」,「묵조선과간화선비교연구」,「흑수성본『겁외록』교감」,「공안의표현형식과지도법의변화」,「간화병통에서본간화수행법」,「묵조선과간화선의오문悟門에대한견해」,「근대한국여성의선구자해월당봉려관스님」,「해월당봉려관스님」,「항일지사봉려관죽음을둘러싼의혹」등이있다.
저서로는『제주의여성리더봉려관』이있다.어른들이읽는동화『고마워요봉려관』을기획및감수하였다.10여년에걸쳐고의적으로왜곡시킨봉려관의행적과근대제주불교사近代濟州佛敎史를교차검증해서바로잡고있으며,봉려관의항일독립운동을최초로세상에알렸다.
일본리쓰메이칸대학교환연구생,일본하나조노대학연구원,동국대학교(서울)선학과강사,(사)보조사상연구원연구위원을역임하였다.현재관음정사(제주)문화원장,BBS제주불교방송운영위원(감사),(사)봉려관선양회이사,(사)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원장을역임하고있다.

목차

출간에부쳐/7
들어가는말/12

제1장1900~1930년대제주의종교분위기/18

제2장비양도飛揚島-관음신앙확신/26
1.출생/26
2.1882~1900년초/32
3.1900년후반~1901년/47

제3장산천단山川壇-출가수계의지확립·하화중생下化衆生의지발아/53
1.출가수계의지를확립하다/53
2.근대제주불교최초‘부처님오신날’행사를봉행하다/70
3.운대사로부터가사전수傳受/75
4.국추의가사공양을받다/101
5.한라산산신제를복원하다/104

제4장대흥사大興寺-근대제주불교최초비구니탄생·항일독립의지발아/113
1.근대제주불교최초비구니가탄생하다/113
2.승려봉려관의초기활동(관음사창건전前)/127
3.항일독립의지발아/134

제5장관음사觀音寺-근대제주불교발원지/140
1.한라산관음사를최초창건하다-근대제주불교최초사찰/141
2.기층민중과함께하다/169
3.의혹을남긴봉려관입적/175
4.관음사역사를다룬기록물/190

제6장법정사法定寺-항일독립실천/221
1.봉려관,법정사를창건하다/221
2.봉려관이창건한법정사위치/226
3.봉려관,항일의꽃을피우다/229
4.1918년제주항일독립운동의성격논란과그문제점/239

제7장봉려관,근대제주불교역사를써내려가다/283
1.성내포교당창건-포교중심도량·신여성양성/284
2.고관사·불탑사·법화사-역사적가치소유사찰을복원하다/303
3.백련사·월성사·소림사-지역포교를활성화하다/309

제8장누가봉려관생애를망쳐놓았는가?/313

나오는말/322
부록ㆍ봉려관연보/327
ㆍ두옥문도-봉려관계보/332
참고문헌/334

출판사 서평

다시,바로세우는봉려관생애
근대제주불교의역사를이끈비구니봉려관.그가입적한지팔십여년이흘렀다.봉려관은그의인생에서31년을제주도불교를재건하고중흥시키는데바친인물이지만,그간봉려관에대한객관적이고진실한연구는미비한실정이었다.이에혜달스님은,일부연구자들이십여년에걸쳐고의적으로왜곡시킨봉려관행적과근대제주불교사를교차검증하는작업을몸소진행했다.혜달스님은사단법인봉려관선양회와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원장을역임하면서,여러문헌을살피고아흔여분의구술을채록하는등분명한사실에근거하여봉려관스님의발자취를재구성했다.
이책에서는봉려관의출생과출가,제주불교를다시일으킨배경및과정,그의품성과일상에대한이야기까지,기존연구자들의추측과상상에의거한억지주장에맞서반론을펼치고진실을밝힌다.“봉려관에게가사袈裟를전수하여출가결심을세우게한‘운대사’는,봉려관도단한번조우한미지의스님”이며“봉려관의은사는비구청봉이아니라비구니유장”이라는사실,그리고“관음사는봉려관홀로1909년봄에창건하였기에,1908년창건설이나여타인물의공동창건설은오류”라고밝힌다.1938년봉려관이입적하기까지그의행적들을좇는여정은,봉려관에의해비로소근대제주불교의맥이살아났음을일깨우는귀중한발견이다.

제주근대불교역사를일으켜세운여성리더,봉려관
조선시대제주목사로부임한이형상은“불교가세상을어지럽히고백성을속이는‘혹세무민’을일으킨다”라며불교를폄하했다.많은신당과사찰을부쉈고,제주불교는2백년간암흑기를맞으며불교의맥이끊기고토속신앙이활발했다.봉려관이살던시대는정치적으로혼돈기였고,섬이라는환경의제주도는사회·문화적으로타지역보다발전이느렸다.더욱이일제강점기라는시련속에서,봉려관은관음신앙에의지하여사찰들을창건하고제주도민에게생소한종교였던불교를포교하여근대제주불교를다시일으킨다.
봉려관은30대중반의나이로부처님께귀의하여불교의관음신앙을받아들인다.그러나고향사람들로부터핍박을받고쫓겨나,제주산천단에새거처를마련한다.1901년늦봄불상을구하러제주비양도로가다돌풍을만난봉려관은관세음보살의신통력을확신하고,많은대중을구제하겠다는하화중생下化衆生의지를다진다.약초에대한지식이해박했던봉려관은제주도촌락을다니면서약방이나병원에갈엄두조차못내는아프고가난한이들에게처방을해주고병을낫게해주는단비와같은존재가되었다.더욱이관세음보살기도를권유하고부처님의자비를곳곳에서실천함으로써민중을불법으로인도했다.
봉려관은1907년해남대흥사로가서출가수계하여근대제주불교최초의비구니가된다.그후,봉려관은1909년봄혼자의힘으로관음사를창건한다.관음사를중심으로관음신앙을제주불교의주요수행방편으로삼아제주전역으로펼쳐나가며,지역포교를위해성내포교당을창건함으로써근대제주불교의꽃망울을터뜨린다.이후봉려관은제주불교부인회와제주불교소녀단을창립하여여성불교신자들에게포교했고,불교친목회들도조직한다.제주전역에포교당과사찰이설립되고,비로소근대제주불교는부흥하게된다.

항일의꽃을피운여성항일독립운동가,봉려관
항일운동당시봉려관스님은30여년간군자금을지원하는방법으로항일독립운동에조력했다.1909년7월,해남대흥사로관음사창건을보고하러간것으로보이는봉려관은,일본군에의해순절하게된항일의병들의피로흥건해진심적암의참상을목격한뒤항일독립운동의지를다지고,생명존중사상을우선시하게된다.그리하여1911년9월인적이드문지역에홀로법정사를창건한다.법정사는1918년제주항일독립운동주체세력들의은신처가되었다.봉려관은그들에게쌀과돈등을지원하는등누구보다적극적으로항일을후원했다.이책에서는봉려관의항일독립운동가로서의면모에주목하여봉려관이위대한선각자였음을다시한번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