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 평전 (양장본 Hardcover)

혜암 평전 (양장본 Hardcover)

$30.12
Description
가야산 정진불
내 삶이 나의 이름이니
≪혜암 평전≫ 출간!
혜암이라는 두 글자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말은 불자(佛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법호보다 그 말씀이 더 유명하다면 이분이 생전에 얼마나 수행을 강조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제자들은 혜암이 세상에 남긴 이 금과옥조와도 같은 말을 원당암 미소굴 옆 대형 석조 죽비에 새겨놓았다. 공부하다 죽는 일이 가장 수지맞는 일이라며 죽는 날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았던 가야산 정진불, 그가 바로 혜암慧菴(1920~2001)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대 종정, 해인사 해인총림 제6대 방장으로 한국불교 현대사에서는 혜암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혜암이라는 법호 두 글자보다 ‘가야산 정진불’ ‘두타수행자’라고 더욱 불리는 이유는 평생을 장좌불와長坐不臥하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면서 후학들과 함께 용맹정진했던 혜암의 모습이 대중들의 기억에 무섭도록 깊게 각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중의 방장으로 있던 칠십대 중반일 때도 안거 중 7일 철야 용맹정진에 반드시 참여해 단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정진에 임했던 철저한 수행자, 사람이 가지는 최고의 능력이 곧 깨달음임을 선언하며 본래의 마음을 깨치라고 늘상 부르짖었던 수행자, 혜암! 평생 시종일관 우리 스스로가 부처임을 확인하는 길을 설했던 혜암대종사 탄신 101주년을 맞아 한국불교의 기둥이 된 스승의 가르침을 되새기고자 《혜암 평전》을 출간하였다.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잘 사는 길은 공부하다 죽는 것이다. 한 물건을 깨닫는 공부가 참선이다. 이 공부가 대자유인이 되게 하며 영원한 행복으로 이끈다. 영원히 사는 길이 이 공부에 있다.”
_ 혜암慧菴(1920~2001)

“혜암대종사의 일백년은 한국불교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수행자로서 치열한 삶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를 후학들에게 남겼습니다. 시대적 아픔 극복과 개인적 번뇌 소멸 그리고 사회구제를 위해 선종적 방법으로 그 해결책을 제시한 이 시대의 스승이었기 때문입니다.
은사이신 혜암대종사의 탄신 101주년에 즈음하여 선사의 삶과 수행 여정이 오롯이 담긴 평전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_해인총림海印叢林 방장方丈 벽산원각碧山源覺
저자

박원자

朴元子
불교전문작가.대학시절에불교에입문한뒤마음공부를최상의가치로삼고정진하며글을쓰고있다.숙명여자대학교에서중국문학을전공했고,동국대학교역경위원을역임했다.지난30여년동안출가수행자들의생애와수행에대한글을썼다.지은책으로는《길찾아길떠나다》《경산스님의삶과가르침》《내인생을바꾼108배》《스님의첫마음》《인생을낭비한죄》《나의행자시절1·2·3》등이있다.

목차

추천의글-여산은멀리서봐야진면목을알수있으니|벽산원각
행장-혜암스님의삶과가르침

서장-이뭣고
여기한물건이있다
공부만이살길이다

제1장-숙세의선근인연

영원한행복은어디에있는가
한여인의편지
《선관책진》
사무친발심

제2장-대중도가야산도놀라다
저사람이과연무엇이되려나
백양사에서해인사로
가야산문에들어서다
허공에일원상을그리다
글자없는경전
7일간의사투

제3장-두타행이끊어지면정법안장이끊어진다
한국불교의두타수행자
봉암사결사,성철선사와의인연
부처님법대로돌아가자
탁발
도솔암은거
천고의학을참방하다
종두의화두일념

제4장-머리도꼬리도없되천백억화신으로나투다
자비보살인곡선사
불꽃에서꽃이피니
서른세살의하안거
내외가명철한가
구들장을파버리다

제5장-해가돋아하늘과땅이밝도다
전쟁중에들어간설악산오세암
오대산의봄길같던사람
편안한곳은비상
오도

제6장-꽃을들때내가보았다면
동화사효봉선사회상
사자새끼가한마리있군
지게지고달빛아래를걷다
영산회상의영취봉이여
탁마장양의노래
내일은없다
조실을가르치러다니네
육자배기타령

제7장-사자전승
정진제일의유나
이렇게가르치다
퇴설당3년결사
수행자의복
주지임기넉달

제8장-연꽃을비추어보아자비로중생을교화하라
첫회상
그리운태백산동암
문수보살의수기
칠불암선풍
동백나무잎하나
혜암이사랑한지리산상무주암
21일단식용맹정진
청매와혜암
대중처소로가라

제9장-가야산정진불
지리산도인
가야산법주가되다
오직화두하는그놈만이나다
오후불식하라
방장의용맹정진

제10장-석가도예수도내아들이다
재가불자선원을열다
집을지으면공부할사람이온다
원당암의법음
7일단식용맹정진
품위있게사는길
대통령에게한법문

제11장-공부하다죽어라
어떻게살것인가
팔만대장경에는법이없다
삶도죽음도벗어나라

제12장-이치에도일에도걸림이없네
종단의대쪽
배사자립

제13장-단박에깨쳐라
돈오돈수
이‘한물건’을깨달으라
화두참구
이렇게공부를점검하라

결장-돌사자는소리높여부르짖도다
조계종종정에추대되다
여든살노승의평상심
적멸에들다

글을마치며
혜암당성관대종사연보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부처란무엇인가

“내가여기원당암에서이십년동안한말이이것입니다.쉼없이일어나는생각을쉬세요,한생각을내지않는사람이바로부처입니다.그리고남에게져주세요,그사람이바로부처입니다.”
혜암은수행자가자신의분수를알고자신의능력을정확히파악해서맡은바일을성실히하면바로그것이자기를지키는일이요도인의삶이라고했다.이러한당부가그저수행자에게만해당하는말일까?자신을제대로알고,자신을지키는일이라면지금의현실을살아가는사람모두가따라야할삶의수칙이아닐까.매일아침눈뜨면어제의나는죽은것,새로운삶이시작된다.오늘밤눈감을때까지목숨을걸고자신의시간을소중히보내야한다.‘목숨을내놓고정진하라’‘공부하다죽어라’등혜암의서슬퍼런일갈은문득돌이켜보면우리가일상에서매일할수있고,또해야만하는일인것이다.
《혜암평전》에서는혜암스님이전하는불법,즉진리의가르침이시간과공간을넘어생생하게이어질수있도록했다.

봄길같던혜암

“혜암큰스님께서방장이되시고얼마안되었을때스님을처음뵈었다.퇴설당에서삼배를받으시던스님의모습이떠오른다.칠십대중반이셨지만마치순수한소년한사람을보는듯했다.작고마른몸에안경너머의눈빛이맑고따스했다.(…)평전을준비하는몇해동안스님의육성법문을수없이들었다.그어떤자료보다큰스님이어떤분이었다는것을아는데생생한도움이되었다.스님의삶을글로쓰면서비로소깨달은후의삶이어떻게전개되는지를알았고상구보리하화중생의삶이어떤것인지알게되었다.미혹속에빠져있는중생들을깨우치려했던스님의노력을마주하면서정진하는삶만이생명의존엄을드러내는일임을깨닫게되었다.발심하지않을수없었다.”_지은이박원자〈글을마치며〉중에서
《혜암평전》의또다른재미는혜암스님의일상을기억하는이들의말을통해대쪽같이한결같은수행자이면서도한없이따뜻하게만물을대하는혜암스님의맑은일상을눈앞에떠올릴수있다는점이다.주위를깨끗이하고,시간이나면호미를들고밭을일구고,일체중생을꽃이라하며항상미소짓고계셨다는아름다운모습을만날수있는것이다.《혜암평전》을통해사진으로남아있는스님의생전모습과당시의사찰근황을볼수있으며,변화가있는곳은현재의사진을실어이해를도왔다.《혜암평전》이근현대한국불교역사에귀중한자료가되는부분이다.아무리좋은가르침도후세에전해지지않으면소용이없다.아무리좋은가르침도실천하지않으면소용이없다.《혜암평전》을통해누구나자신을지키는삶을살아가게되기를서원한다.

혜암당성관대종사행장(慧菴堂性觀大宗師行狀)

1920년음력3월22일전남장성군장성읍덕진리720번지에서탄생하였다.부친은김원태金元泰이고모친은정계선丁桂仙이며이름은남영南榮으로칠남매중차남이다.어려서부터매우총명하였으며,타고난성품은강직하면서도자비로웠다.
1933년(14세)장성읍성산보통학교를졸업하고동리의향숙鄕塾에서사서삼경四書三經을수학한후제자백가諸子百家를열람하였으며,위인전을즐겨읽었다.
1936년(17세)일본으로건너가동서양의종교와철학을공부하던중어록을보다가,다음구절에이르러홀연히발심하여출가를결심하고귀국하였다.

나에게한권의경전이있으니我有一卷經
종이와먹으로이루어지지아니하였네不因紙墨成
펼치면한글자도없지만展開無一字
항상큰광명을놓도다常放大光明

1946년(27세)초봄,합천해인사로입산출가하여인곡麟谷스님을은사로,효봉曉峰스님을계사로수계득도하고‘성관性觀’이라는법명을받았다.출가한날로부터평생토록일일일식一日一食과장좌불와長坐不臥두타고행頭陀苦行으로용맹정진勇猛精進하였다.가야총림선원에서효봉스님을모시고첫안거를하였다.
1947년(28세)문경봉암사에서성철·자운·우봉·보문·도우·법전·일도스님등20여납자와더불어‘부처님법대로살자’는봉암사결사에참여하였다.
1948년(29세)해인사에서상월霜月스님을계사로비구계를수지하고오대산상원사한암스님회상에서안거하였다.
1949년(30세)범어사에서동산東山스님을계사로보살계를수지하고금정산범어사동산스님회상과가야총림선원에서안거하였다.
1951년(32세)초봄에해인사장경각에서은사인곡스님과문답하였다.

“어떤것이달마대사가한쪽신을둘러메고간소식인고?”如何是達磨隻履之消息
“한밤중에해가서쪽봉우리에서떠오릅니다.”金烏夜半西峰出
“어떤것이유마힐이침묵한소식인고?”如何是維摩杜口之消息
“청산은본래청산이요백운은본래백운입니다.”靑山自靑山白雲自白雲
인곡스님께서“너도또한그러하고나도또한그러하다”하시며,汝亦如是吾亦如是

다만이한가지일을只此一段事
고금에전해주니古今傳與授
머리도꼬리도없지만無頭亦無尾
천백억화신으로나투느니라分身千百億

하시고‘혜암慧庵’이라는법호를내렸다.이후범어사금어선원,통영안정사천제굴闡提窟,설악산오세암五歲庵,오대산서대西臺와동대東臺,태백산동암東庵등지에서목숨을돌아보지않고더욱고행정진하였다.
1952년(33세)범어사동산스님회상에서하안거대중88명가운데유일하게안거증을받았으며,천제굴에서는엄동설한에도불구하고방바닥한가운데구들장을파내고성철스님과함께용맹정진하였다.
1953년(34세)봄,육이오전쟁말기인민군이점령하고있었던설악산오세암에몇번이나죽을고비를넘기며들어가고행정진하였다.
1955년(36세)오대산동대관음암에서는적멸보궁까지6개월동안밤낮없이걸어다니며행선行禪정진을하였다.
1957년(38세)겨울,오대산사고암史庫庵토굴에서방에불을때지않고검정콩10알과한줌의잣잎으로일종식一種食과장좌불와용맹정진하며수마睡魔를항복받았다.5개월동안초인적인고행정진끝에주야불분晝夜不分하고의단疑團이독로獨露하더니홀연히심안心眼이활개豁開하여오도송悟道頌을읊었다.

미혹할땐나고죽더니迷則生滅心
깨달으니청정법신이네悟來眞如性
미혹과깨달음모두쳐부수니迷悟俱打了
해가돋아하늘과땅이밝도다日出乾坤明

이로부터동화사금당선원,오대산서대와북대,상원사선원,지리산상무주암,통도사극락암선원,묘관음사선원,천축사선원,용화사법보선원등제방선원에나아가더욱탁마장양琢磨長養하였다.
1967년(48세)해인총림이개설됨에첫유나소임을보았다.
1970년(51세)대중의요청에따라잠시해인사주지를역임하였다.
1971년(52세)통도사극락암선원에서동안거중에조실경봉스님이‘봉통홍중공峰通紅中空’의운자韻字에맞추어심경心境을이르라고하시니,다음과같은게송을지었다.

영산회상의영취봉이여!靈山會上靈鷲峰
만리에구름한점없으니만리에통했도다萬里無雲萬里通
세존께서들어보이신한송이꽃은世尊拈花一枝花
천겁이다하도록길이붉으리歷千劫而長今紅
꽃을들때내가보았다면拈花當時吾見參
한방망이로때려죽여불속에던졌으리라一棒打殺投火中
본래한물건도없어언어마저끊겼건만本來無物亡言語
천진한본래성품공하되공하지아니하도다天眞自性空不空

1972년(53세)봄,수행처를남해용문사로옮겨정진함에제방의납자와재가불자들이모여들어첫회상을이루었다.
1973년(54세)해인사극락전에서철조망을치고결사정진을했다.
1976년(57세)지리산칠불암七佛庵에서더욱용맹정진하니사부대중이운집하여다시회상이이루어졌다.그해봄운상선원雲上禪院을중수重修할때먼지속에서작업도중홀연히문수보살을친견하고다음과같은게송으로수기授記를받았다.

때묻은뾰족한마음을금강검으로베어내고塵凸心金剛?
연꽃을비춰보아자비로써중생을제도하라照見蓮攝顧悲

1979년(60세)해인사조사전에서3년결사를시작으로1990년(71세)까지총림선원대중과함께정진하였으며,유나·수좌·부방장으로서해인총림의발전과수행가풍진작을위하여진력하였다.특히,출가이후가야산해인사선원,희양산봉암사선원,오대산상원사선원,금정산범어사선원,영축산극락암선원,지리산상무주암과칠불암선원,조계산송광사선원등제방선원에서당대선지식인한암·효봉·동산·인곡·경봉·전강선사등을모시고평생토록일일일식과장좌불와를하며용맹정진하였으니,그위법망구의두타고행은가히본분납자의귀감이요,계율이청정함은인천의사표라아니할수없다.
1981년(62세)해인사원당암에재가불자선원(달마선원)을개설하여매안거마다1주일철야용맹정진을지도했다.매월2회토요철야참선법회를개최하여약500여회에걸쳐참선법문을설하는등오직참선수행으로써20년동안수많은재가불자를교화하였다.
1987년(68세)조계종원로회의의원으로선출되었다.
1993년(74세)11월,당시조계종종정이며해인총림방장이었던성철대종사께서열반에드심에뒤를이어해인총림제6대방장에추대되어오백여총림대중을지도하였다.특히선원대중에게는오후불식을여법히지키도록하고‘공부하다죽어라’,‘밥을적게먹어라’,‘안으로부지런히정진하고밖으로남을도와라’하며납자로서철저히수행정진할것을강조하였다.또한매결제안거중에총림대중이함께참여하는1주일철야용맹정진기간에는노구임에도불구하고한시간도빠짐없이대중과함께정진하며직접후학을지도하고경책하였다.
1994년(75세)원로회의의장으로추대되었다.조계종개혁불사와1998년종단분규사태시에는원로회의의장으로서종도들의정신적지주가되어주었다.
1999년(80세)4월,대한불교조계종제10대종정에추대되어종단의안정과화합을위하여심혈을기울였다.
2001년(82세)12월31일오전,해인사원당암미소굴에서문도들을모아놓고‘인과因果가역연歷然하니참선공부잘해라’고당부한후임종게를수서手書하였다.편안히열반에드니세수는82세요법랍은56년이었다.

나의몸은본래없는것이요我身本非有
마음또한머물바없도다心亦無所住
무쇠소는달을물고달아나고鐵牛含月走
돌사자는소리높여부르짖도다石獅大哮吼

2002년1월6일해인사에서5만여사부대중이운집하여영결식을종단장宗團葬으로엄숙히거행하고다비를봉행하니,오색영롱한사리86과가출현하였다.100일동안사리친견법회를봉행하였더니날마다인산인해를이루었다.
2007년12월문도들은친필유고를모아서《혜암대종사법어집Ⅰ,Ⅱ》를발간하고해인사일주문입구에위치한비림碑林에사리탑과행적비를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