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 조선 후기 산림 황폐사

조선의 숲은 왜 사라졌는가 : 조선 후기 산림 황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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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영우

1951년경남마산에서태어났으며,고려대학교임학과를졸업하고미국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산림생물학박사학위를받았다.현재국민대학교산림환경시스템학과명예교수이다.‘숲과문화연구회’회장,‘숲해설가협회’공동대표,(사)생명의숲이사장,문화재청의문화재위원등을역임했으며,현재(재)동숭학술재단사무국장,‘솔바람모임’대표를맡고있다.산림문화활동에헌신한공로로홍조근정훈장(2004),자연유산의보존에기여한공로로은관문화훈장(2019)을수훈했고,불교출판문화상우수상(2011,2019)과‘가장문학적인학자상’(2011,문학의집서울)을수상했다.
그와소나무의본격적인인연은1993년8월로거슬러올라간다.대관령자연휴양림에서개최한‘소나무학술토론회’를주관하면서맺어진인연을계기로지난25년동안우리문화속에내재된소나무의상징성을발굴하고,정리분석하여『우리가정말알아야할우리소나무』(2004),『한국의명품소나무』(2005),『궁궐건축재소나무』(2014)등을펴냈다.또한사라져가는우리소나무의가치와아름다움을널리공유하고자문화예술인들과함께2004년2월‘솔바람모임’을결성하여소나무사랑운동을펼치고있다.소나무동호인들과함께소나무의독특한운치와품격을감상하는게이즈음그의가장큰즐거움이다.
지은책으로는『산림문화론』(국민대출판부,1997),『숲과한국문화』(수문출판사,1999),『나무와숲이있었네』(학고재,1999),『숲?보기,읽기,담기』(현암사,2003),『산』(웅진닷컴,2003),『우리가정말알아야
할우리소나무』(현암사,2004),『森と韓?文化』(일본동경,?書刊行會,2004),『숲과문화』(북스힐,2005),『한국의명품소나무』(시사일본어사,2005),『TheRedPine』(BooksHill,2009),『ForestsandKoreanCulture』(BooksHill,2010),『비우고채우는즐거움,절집숲』(운주사,2011),『궁궐건축재소나무』(상상미디어,2014),『한국의사찰숲』(모과나무,2016),『송광사사찰숲』(모과나무,2019)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부조선의숲은언제사라졌나?
2부조선의소나무정책이불러온산림황폐화
1장조선의송금정책
2장18세기봉산금양
3장조선후기부실한봉산관리가불러온산림황폐화
4장17~19세기조선과외국의산림정책비교
3부18~19세기조선의조악한조림기술과산림황폐화
1장18세기정조의현륭원식목사업
2장19세기국가관리산지의소나무식목
3장19세기외남산의산림조사
4장낙후된조림기술이불러온조선후기의산림황폐
4부조선후기민간의산림황폐화대처
1장노상추의산림육성
2장송계(松契)를통한산림금양
3장사찰의산림금양
4장민간의참여부재가불러온산림황폐화
5부조선후기목재유통체계의미비와산림황폐화
1장민수용목재조달
2장관수용목재조달
3장국용목물조달
4장목상의봉산침탈과취약한목재유통구조가촉진한산림황폐화
6부조선후기분야별임산물소비량과산림황폐화
1장조선후기가옥건축재소요량
2장조선후기조선재소요량
3장조선후기임산연료소요량
4장수공업용임산연료소요량
5장조선후기가정용땔감소비증대가불러온산림황폐
7부산림의지속가능성훼손과산림황폐화
1장지속가능성과산림
2장산림의지속가능성훼손과산림황폐화
8부조선사회의산림인식과산림황폐화
1장조선사회의수목인식
2장조선정부의수목인식
3장조선사대부의수목인식
4장산림에대한조선사회의무관심이불러온산림황폐화
맺는말과거에서배우는교훈
부록조선의지리지와문집에수록된수목

출판사 서평

조선후기삼남의산은모조리민둥산으로변했다
오늘날한국은단위면적당산림축적증가율이세계에서가장빠른나라이다.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을거치면서완전히헐벗은산림환경에서출발해조림을해왔기때문이다.그럼일제강점이전의조선의숲은어떤모습이었을까?산업도크게발달하지않았고식민착취가시작되기이전이었으니한반도전역이울창한숲이었을것이라고생각하면큰오산이다.1910년실시된조선총독부의산림조사에따르면당시의전체산림면적(15,849,619정보)가운데1/3이채안되는32.3%만이무성한숲일뿐,나머지는조악한어린나무로구성된숲이거나(41.8%),아예나무가없는헐벗은(25.9%)상황이었다.특히인구밀도가높은남부지방의산림황폐화는극심해서대부분의산이민둥산이었다.
조선의숲은대체왜이렇게황폐해졌을까?산림은쉽게복원하기도어렵지만,쉬망가지지도않는다.언제부터어디서부터어떤이유로어떤과정을거쳐조선의숲이망가지고사라졌는지,완벽하게입체적으로추적한『조선의숲은왜사라졌는가』가나왔다.책은조선의산림황폐화가이미임진왜란직후부터시작되었다고증언한다.

1611년의실록은벌목으로인해도성안팎의산들이민둥산으로변한책임을한성부당상에게묻고있다.나라에서금령을엄히다스려도“도성사방에있는산들이볼품없이벌거숭이가되어이미민둥산이되어버렸다.”는1621년기사는산림파괴의심각성을증언한다.18세기에이르러헐벗은한양의사산(四山)에서유출된토사가청계천의하천바닥을높여도성에물난리(1752.1.27.)가발생하고,종국에는청계천준설(1760)로이어져도성주변이모두헐벗었음을전한다._41p,

저자에따르면조선숲의황폐화는적게잡아도17세기중반부터19세기말까지250여년동안진행되었다.정밀한연구에바탕을둔추정을통해저자는조선건국초기(1400년)에비해조선남부5도의임목축적량이1700년에이미절반으로,1900년에는1/3수준으로떨어졌음을보여준다.인구증가까지감안하면정조시대였던1800년1인당임목축적량은건국당시의9%수준으로줄어든것이다.250년에걸친조선숲의황폐사를책은절절한마음으로담아낸다.

기술적검토와문헌추적으로밝혀진지도층의문제점
그렇다면조선의숲이이렇게까지고갈되고황폐해진이유는무엇일까?이책은인구증가와소빙기도래에따른목재사용량증가등그간에학계에서추론하고있던사항외에도다각적인분석을시도한다.저자는조선시대공식기록물은물론사대부의문집과향리에낙향한무신노상추의일기까지뒤져조선의산림이황폐화된과정을추적했다.이를통해기후변화나인구학적인요인외에도조정과사대부등지배층의안이한산림인식,왕가와권문세족의이기적인산림이용과산림의지속가능성을고려하지않은벌목부족한양묘및조림기술,수목의가치에대한지도층의인식부재,부실한제재도구(켜는톱)와목재운송수단(수례와도로)등지금까지학계에서도제대로파악하지못한기술적,사상적후진성까지꼼꼼히살펴본다.
예를들자면,산림의지속가능성을고려하지않고가까운산의나무를남벌한데에는운송수단의미비도크게영향을미쳤고그이면에는지배층의이념적성향이작용했다.

조선조정이도로정비와수레개선을도외시했던배경에는잘정비된도로가외적의침략통로가되어한양이쉽게점령당할수있다는군사적우려와수레의보급이성리학적통치이념에반하는상공업의발달을촉진할수있다는우려가잠재되어있었다._275p,

목재유통의또다른제약요인에는제재도구도있다.원목을판재로제재하기위해서는성능좋은철제톱이필요했지만켜는톱을제작하는전문장인이많지않아널리보급되지도못했고,때문에재질이단단한참나무같은활엽수종은제대로이용할수없었다.자연히도끼나자귀등으로쉽게다듬을수있는소나무위주로목재사용이편중되어산림의황폐화에일조하게된다.열악한종묘및조림기술또한산림황폐화를막지못한큰원인이었다.저자는18세기정조의현륭원식목사업에관한문헌『현륭원등록』,『일성록』등을샅샅이뒤져그기술수준을따져본다.

한정된능역에많이심을수밖에없었던이유는이처럼식목후생존율이낮았기때문이었다....(중략)...이두자료는18세기말에도조선에는제대로된양묘기술이없었음을의미한다.재배수종뽕나무는15세기에이미양묘기술이개발되었지만,산림수종소나무와참나무와가래나무의양묘기술은현륭원식목사업이진행된18세기말은물론이고20세기초에도존재하지않았다.그때문에19세기말에도나라전역에서이루어진소나무조성사업은대부분파종조림으로이루어졌다._107~108p,

현륭원은영조의둘째아들이자정조의부친사도(장헌)세자와혜경궁홍씨가함께묻힌곳이다.왕조시대에임금이직접관장한국책조림사업조차인근에자라는소나무를옮겨심어야했기때문에10그루중겨우2그루나살릴수있을만큼조림양묘기술이극히낙후했던것이다.이처럼문헌과기술적분석,분야별목재사용량에대한자세한추정등입체적으로진단한끝에내린저자의결론은조선지배층이산림지속성유지에대해무지하고무관심했다는것이다.

결국조선의산림황폐는산림정책부재,조림·양묘기술미비,민간참여배제,권력층의부패,목재및땔감생산체계부재와온돌의전국적보급이결합한결과였다.산림황폐에부정적영향을끼친이모든원인은산림자원의가치와중요성에무지하고무관심했던조선사회와그당시지배층의잘못된산림인식탓이었다._14p,

노상추의일기와70대노산림학자의집념
『조선의숲은왜사라졌는가』는우리숲의장기적생태사를정리해낸생태학적으로높은가치를지닌저작인것은물론,조선시대의생활상을이해하는데에도큰도움이되는탁월한미시사분야의역작이기도하다.책은관의부당한벌목이얼마나자행되었는지(196쪽),민간에서는조림을위한공동활동이어떤방식으로이루어졌으며이를통한경제적수익은어느정도였는지(197~214쪽),당시일반주택한채를짓는데목재가어느정도소요되었는지(291~295쪽)등나무를매개로한선조들의생활사를눈앞에그려질듯펼쳐보인다.
이책의상세한분석은많은문헌검토와고증을통해이루어졌는데그가운데특히흥미로운것은정조시대퇴역무인이었던노상추의일기이다.노상추(1746~1829)는17세부터84세(1829년)까지67년간한문일기를썼고,그중에는산림조성과관리에대한내용도포함되어있다.저자는이일기가조선후기산림육성과송계활동,당시의산림상황을생생히전하는주요자료라고평가하며많은지면을할애한다.낙향한무신이평생기록한일기가조선의숲탐구에매우중요한역할을한것이다.그런데이책을쓴저자또한70대에접어든은퇴한산림학자로서우리산림에대해연구하고기록하며많은책을집필한인생행로가2백여년의세월을넘어노상추의행적과아름다운동행을이룬다.
조선후기의산림황폐화연구는관심을둔연구자도드물고관련자료조차구하기쉽지않기에시간적여유가있는칠순의산림학자가도전하기좋은과제였다.-머리말에서
『조선의숲은왜사라졌는가』는이처럼평생을우리숲연구에바친노학자가집념으로써내려간역작이며역사,생태학,산림학분야의귀중한성취이다.푸르른우리강산을오래도록보존하기위해서도이책이찾아낸역사의교훈을소중히돌아보아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