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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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김수상 시인이 ‘2023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시인의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작가마을)를 출간했다. 이번에 펴낸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는 김수상 시인이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독서와 사유로 채워온 자신만의 시작노트이자, 삶과 문학에 대한 철학에 다름아니다.

새벽녘 문득 깨어나 잠을 설치거나 여행 중에 얻은 단상들이며 타인의 한 줄 싯귀에서도 시인의 감성은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감성들을 잘 녹여내어 10여 년간 묵히고 삭혀서 365개의 단상을 만들었다. 그렇게 쓰여진 시인의 단상에는 무수한 생각의 가지들이 우후죽순 자라나 세상을 덮는다. 그가 생각하는 세상은 온통 詩의 세상이다. 시의 세상이 곧 우리가 사는 세상이고 광활한 역사이고 우주가 된다.

무엇보다 시인은 자신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소화하고 토해놓는지 이번 산문집에 고스란히 담았다. 미사여구가 없는 진솔한 감성의 고백인 셈이다. 하여 김수상의 아포리즘 『새벽하늘에서 박하 냄새가 났다』는 모든 시인들의 사유이자 시적 멘토이고 창작의 씨앗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인이 풀어놓는 시에 대한 상상은 찰지고 야무지다.
2023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저자

김수상

김수상시인은경북의성에서태어나2013년《시와표현》으로등단했다.시집으로『사랑의뼈들』,『편향의곧은나무』,『다친새는어디로갔나』,『물구라는나무』가있다.제4회박영근작품상과제7회작가정신문학상을수상했다.

목차

작가의말

껍질은이성이고과육은감상이다

불면이라는면빨!

희망은희망이전혀없는사람을통해서생긴다

새벽하늘에서박하냄새가났다

내속엔내가이길수없는슬픔무성한가시나무숲같네

깡통은비어야비로소깡통이다

나는내죄업의가여운상속자

절뚝거리는봄사랑하는사람이여

출판사 서평

작가서문

잠이안오는새벽에,한밤중에쓴단상(斷想)들을10여년정도모으고버릴것은버리니365개가남았습니다.1년은365일이니어느페이지를열어도독자분들께작은위안이되었으면하는바람인데,또실패인것같아두려운마음이앞섭니다.어떤문장은이미시에서써먹었고또다른문장은지나간괴로움이기도합니다.기쁜일과슬픈일에도그렇게호들갑떨지않게되었습니다.쓸데없는곳에힘을허비하지않기로다짐도해봅니다.인연생(因緣生)인연멸(因緣滅)입니다.솔숲의좁은산책길과밤과새벽의막막한시간들,아직까지저를거두어주고있는모든인연들께도큰절올립니다.

⊙시인의아포리즘엿보기
5
대부분의과일은껍질이과육을보호한다.껍질은이성이고과육은감성이다.이성이보호하기때문에감성의즙은달다.그러나이제는달라졌다.이성은분별하는마음인데이성을내려놓아야존재의바탕에도달할수있다.이성도감성도그바탕이아니면드러날수없다.

8
넘어간다.사멸하는해가안간힘을다해황금빛을뿌려놓았다.살아야한다.다시악착같이.

11
불안은육체에깃들지않는다.불안은영혼의표정이다.육체가아픈것을고통이라하고,영혼이아픈것을불안이라하자.고통은치유될수있지만불안은죽음까지함께간다.불안은영혼을‘장식’한다.

15
청어를먹은적있다.가시가많았다.하늘한모서리가신경다발을당겨감기시작했다.햇살이가시처럼튕겨나왔다.늦가을이었다.

17
프루스트당신의문체는절제가있고,고전적기품을지녔다.장황함을버리고나는당신에게서침묵을배우고싶다.표현되지않고희생당한것들이오히려당신의문체를우아하고아름답게한다.나도그러고싶다.그런데표현할것이없으니희생시킬것도없다.내문장은완전거덜나서너덜너덜한걸레가다되어간다.

25
아버지돌아가신날,신발이떡이되었다.봉분이올라갈무렵부터봄비가제대로내렸고,황토가달라붙은신발도밑창의살이올라슬픔의두께를제대로이룩했다.신발이,슬픔이나를질질끌고다녔다.

36
친구어머니의문상을다녀왔다.장맛비는내리다그치고다시내리고,아내가없는나는옛친구와그의아내들앞에서죽음과노후에대해침을튀기며연설했다.집에돌아와서개처럼엎드려생각하니,나의노후는오래된하수구의배관처럼낡디낡을것이불을보듯뻔한데,괜히오버한것이다.

46
누에는뽕잎을먹고뽕잎을그대로싸지않고비단을만든다.뽕잎에서비단은얼마나먼은유인가.작가는누에다.말의고치에갇혀서마침내비단을만드는운명.그러나말을먹고말을싸면벌레밖에안된다.

49
꿀벌은일생에단한번침을쏘는데침을쏠때,내장까지빠져나와죽는다고한다.시여,시시한내시여.너는언제내장까지따라나와단한번죽고말것인가.

56
청춘의어느때,대구백화점뒷골목술집에서친구가자기애인의토사물을두손으로공손하게받아내는풍경을본적이있다.시인이언어를대하는태도도그러해야한다.

73
명품은낡으면빈티지가되지만,짝퉁은낡으면빈티가난다.지식의자기내면화가필요하다.그래야지혜가된다.

83
자원은유한하고욕망은무한하다.경제학의대전제다.경제적인시란무엇인가.자음과모음은유한하지만언어의조합은무한하다.시는언어를비틀고조합하는자리에서탄생한다.언어를비튼다는것은인식을비트는일이다.인식을비틀지않고서새로운삶은얻어지지않는다.시에이르는길은새로운삶에이르는길이다.언어를날것으로포획하려는시인의이기심이야말로시의동력이다.시인은언어에대해이기적유전자를지닌사람들이다.

90
희망은희망이전혀없는사람을통해서생긴다.

102
어느참한저녁,벼르고벼르던시에달려들었더니시가송곳니로나를콱,물어버렸다.

138
불안은육체에깃들지않는다.불안은영혼의표정이다.육체가아픈것이고통이라면영혼이아픈것은불안이다.고통은치유될수있지만불안은죽음까지함께간다.

187
나의언어는오래된빵조각처럼굳어버렸다.가스통바슐라르여,내몽상을회복해다오.매우멀리까지꿈꾸어하나의물건이어떻게이름을만날수있었는지알려다오.아니면자폭할가스통이라도좀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