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살아가겠지 - 작가마을 시인선 62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살아가겠지 - 작가마을 시인선 62

$10.02
저자

박숙자

박숙자시인은2005년《부산시인》으로등단했으며‘마루’동인으로활동하고있다.시집으로『그여름별자리를만나다』(작가마을,2020문학나눔도서선정)가있다.

목차


박숙자시집

시인의말

제1부
기억을우려내다
달다,귤이
기억은열살이다
밥을벌다
죽도시장
어울려서산다
처음운전
꼬투리속시간
화손대에앉아
이랑끝에서
나를위하여
수산오일장
내탓
파프리카마을
가불로산다
보이지않는손

제2부
꽃이환하다
바람만남아있네
이곳은삶의이력이보인다
소나기처럼
고구마줄기를다듬으며
방아잎좋아하나
기러기떼날아오르다
꽃길을가다
엄마의노래
불을지피다가
기억을벗다
또다른나의얼굴
실로암에서
그립다는것은

제3부
봄밤에젖다
그때는
아침산책길에서
길곡가는길
봄비가슬픈날
가을끝에는
편백숲에서
봄은또오고
우도에서
올레15
대지포전복죽
사천무지개
목도마을
한재마실
통영포구에서
남해로가는길

제4부
가슴에피는꽃
전나무숲을걷다
나전역에서
오늘
밥이버거울때
물고기반지
옹이로남다
같이보고
물들이다
내나이예순
문을열고나서다
시간의흔적
시간을떠올리다
불이켜진다
혼자되내는말
쉬다
염치가없네,잡풀
바람이거칠때

해설:존재의자리,과거와현재를넘나드는길의언어-김정수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퇴직을하고뒤를돌아보았더니,
무엇이든시작이쉽지않은시간에와있었다.
여행을다니면서나를인정하는법을배우고
받아들이는방법을배우면서
살아가는이야기를글로쓰며행복을찾았다.
또다른길이주어진다해도
미리걱정하고겁내지않고살도록
힘이되는글과의동행,
나와의대화가
누군가에게도위로가되고싶다.
2023.겨울박숙자

추천사

박숙자시인이엄마에대한기억(추억)속으로떠나는여행은외롭고쓸쓸하다.특정한사물과공간,관계속에엄마가존재한다.특히세월이흘러조건없이희생하던엄마를인식하고이해할수있는나이가되자엄마에대한그리움은한결더깊어진다.시인에게엄마의존재는기억의화수분과같다.담장에기댄접시꽃을보다가,바구니한가득고구마줄기를벗기다가,누군가불러주는엄마의애창곡을듣다가,마루에앉아땅콩종자를까다가수시로엄마에대한기억을소환한다.아니멈추지않고끊임없이흘러나온다.“왜엄마생각이드는지모를일”이란표현은아니에르노가말한“존재한다는것은목이마르지않아도마시는것”(앞의책)을연상하게한다.시인의마음속에존재하는엄마는그리워하지않아도그리운것이다.늘그자리에존재한다.한데시인이엄마를그리워하면할수록왠지외로움을더느낀다.엄마와같은자리(혹은위치)에가까울수록외로움의농도는더짙어진다.
-김정수(시인)

책속에서

<기억은열살이다>

동짓달여드레
문고리에손이얼어붙는그겨울
아버지의주검을기억한다
초가집지붕에아버지의옷이던져지고
요령을흔들며용마름위에서
죽음을고하는소리를들었다
밖에서는더없는호인
집에서는모든탓
모든화풀이를엄마에게퍼붓는
집으로돌아오는모습이두려웠다
한살된막냇동생을업고
엄마가울면따라울고
세살터울육남매저어린것들어찌할꼬
상여꾼들의장송곡을들으며
꽃상여타고가시며
빚을남기고화를거두어가셨다
온산과들에까마귀를부르시고
아버지의한같은울음소리
까-아-아악
열살어린나는온힘을다해까마귀를쫓았다

<밥을벌다>

거가대교를달리면서
노동의일상이시작된다
전화로문자로
하루의흐름이전파되고
더하고덜할뿐
초침돌아가듯
가시돋친혓바닥에오늘도쫓긴다

희끗희끗한중년의머리칼
유연하게흔들리는억새들이
잘살줄아는
꺾이지않고휘어질줄아는
직장인,우리의모습같아
위로받으며길을달린다

내가사는곳
이곳에서한끼의밥이되고
서늘함을덮는옷이되어
장거리출근도감사하고
귀로듣는생채기도잘견딜수있다

하루하루삶을마감짓고
노동의결과도마감짓고
길위에놓인무게로
끝을향해달려가고있는지모를일이다

<화손대에앉아>

제목이생각나지않지만
편안히들었던클래식음악이흐른다
해안가에서계단을오르면
사스레피나무숲길이나오고
테니스장을지나면야자매트길
산책을나온듯걸음이가볍다
참꽃이봄길을서두르고
몇갈래갈림길에서면
숲사이로언뜻언뜻보이는바다
호수같이잔잔하다
산길은주식등락그래프
잠깐정상인가하더니
줄을타고,내려야할정도로
가파른것이삶의질곡과닮았다.
그것이끝이라면
의지없이추락만하겠지만
끝에서만나는너럭바위,화손대암석
억겁의지층변화를끌어안고
시간의온기를느낀다
보상받는위로이고저점에서만나는안식
건너다보는따뜻한시내풍경
짭조름한태고의맛
그림으로오늘에저장하고짧은휴식이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