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욕을지향해왔던시인에게남아있는유일한욕망은시의욕망이다.시인은그것마저도버리고자한다.“갈때보았던이슬이/올때는흔적도없다/다내려놓고맑게걷기로한다/시의목적은무엇일까/왜시를쓰는걸까/하도미심쩍은세상이라/나의지적게으름과/문학적비겁함의변명으로일관된/몇줄의묘사와서술에/어찌인생을건단말인가”(「시가시시해졌다」)시에대한욕망마저내려놓을줄아는것이시인에게진정한무욕의삶이라는깨달음이다.시마저시시해져버리고시로부터자유로워진마음이란어떤것일까.시인은“둘레길걸으며입을닫고귀를열며/마음의공복空腹을나는새가된다”(「유둣날」)는문장을남기고있다.시인의언어가시의욕망마저버리고도달한풍경이아닐수없다.그아름다운시인의내면풍경에경의를표한다.
-박대현(문학평론가)
책속에서
<자화상>
재색명리(財色名利)를좇은적없지만
재다신약(財多身弱)이부자(富者)의팔자라는데
돈도없고몸도약하니
하늘이내게또다른심난함을주었구나
동백꿀을빠는동박새날개아래
통영장사도,거제지심도,여수오동도,강진백련사,고창선운사
동백꽃들은망초처럼얼굴을쳐들지않고아래로다소곳이벙글어
필때이미질것을알고열매를위해한몸기꺼이던질줄안다
꽃질때더아름다운저생멸의미학
<기억은볼수없어서슬프다>
곧사라질존재들은
아무르표범,검은코뿔소,보르네오오랑우탄,크로스강고릴라,매부리바다거북,말레이호랑이등등이고
다시는볼수없는존재들은
백두산호랑이,도도,나그네비둘기,황금두꺼비,흰코뿔소,양쯔강돌고래,태즈메이니아늑대등등이다
그리고
내어머니
<묵은지>
저녁밥상에김장김치가올라왔다
갓버무린저날것의풋내
저건요리가아니라반찬일뿐
누구와도어울리는친화력의너른품도아니고
밥한술에소주한잔을부르지도않는다
메마른그눈썹에시방지리산은눈첩첩이겠다
묵은지김치찌개의곰삭은정나눔은언감생심이라
고등어나갈치조림의새콤,짭짤,얼큰에이르러
다진마늘에대파썰어넣고한소끔끓인다면
묵직하고진한식구들의하루도그저따뜻할터
묵어야만빛이나는게김치뿐이랴
고향뒷산의소나무도그렇고
내가오늘만나고온그도마찬가지라
문밖에찬바람처마를훑고가도
뻘건국물의힘에이마를훔치면
너와나는얼마나부드럽고은은한사람인가
그리하여우리는얼마나글썽이는사람인가
<사우디박과이선생>
내가대학에입학할때
정유생닭띠동갑내기인
박서방은사우디로날아갔다
모래사장밀주막걸리를마시며
삼년을지진그는작은공장사장이되었고
칠년을버틴나는시골중학교선생이되었다
너나가라중동(中東)!
너나가라사대(師大)!
거룩한말일수록실천된세상은없었고
숭고한사상일수록사람세상과멀었다
밤이나도토리처럼우리도보늬가있을까
아무리베이비부머라천대해도
이선생과사우디박
새가양날개로날듯
우리는그렇게살았고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