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에 꽃이 피다 (최옥 시집)

절벽에 꽃이 피다 (최옥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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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최옥 시인의 시집 『절벽에 꽃이 피다』(작가마을)가 ‘작가마을시인선’ 71번으로 나왔다. 최옥 시인은 1992년 등단 이후 자기 참회적인 시를 많이 써왔던 시인이다. 물론 지금까지 펴낸 여섯 권의 시집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가 가톨릭이긴 하지만 종교적 색채를 떠나 스스로를 낮추고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언제나 따뜻한 시인이다. 이번에 펴낸 시집 『절벽에 꽃이 피다』 또한 그러한 시인의 심성을 바탕에 둔 시집이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삶’과 ‘존재’의 흔들림 없는 영위를 그려낸다. 그 존재적 가치를 일상적 시를 통해 부여하는 것이다. 그 모든 바탕에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종교적 신념이 자리한다. 그러하기에 일상에서 가져오는 행복도 불행도 모두 스스로에게 짊어진 기쁨이고 짐이다. ‘당신의 봄날’을 묻기도 하고 ‘유배의 땅 어디에도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고통을 감내하고 ‘배춧잎 구멍 속에 비친 자신의 삶’을 엿본다거나 ‘절벽에 핀 꽃’을 보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시인의 자의식이 눈부시다. 특히 3, 4부의 종교적 시들은 그녀를 관통하는 삶의 전부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들을 시인은 쉽게 쓰고자 노력하였음을 밝힌다. ‘시’란 명제에 갇혀 난해한 시, 어려운 낱말들의 동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자기 세계를 확고히 열어가는 시인’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 정훈 선생은 “허무와 고독의 공간을 믿음 하나로 채워나가려는 종교적 신념이 주를 이루는 ‘사유의 풍경’을 보여준다.”고 이번 최옥 시인의 시집을 평하고 있다.
저자

최옥

저자:최옥
시인최옥은경남하동에서태어나동양의나폴리로불리는예술의고장통영에서자랐다.1992년월간《시와비평》으로등단하였으며한국시인협회,부산문인협회,부산가톨릭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하고있다.오륙도문학대상과가톨릭문학상을수상하였으며시집으로『엄마의잠』,『한사람을위한기도』,『내가빛나는이유』,『당신은내인생에참좋은몫입니다』,『눈물속의뼈』,『오늘도내일도그다음날도내길을가리라』가있다.

목차

시인의말

제1부
삼월의흉터
당신의봄날은어떠한가요
우산
나무와마주앉다
배춧잎
절벽에꽃이피다
원형탈모증
어느날,아침
나무같다
마스크


무궁화속에서잠깐

저것은절벽이다
등대의시
소용돌이

제2부
모른척하기
푸른그리움
녹차수제비
아버지생각
경계선
힘겨운순간
연분홍손수건
이끼꽃
두려움
세상끝에서커피한잔
이해인수녀님의해인글방
내삶속에둘거야
아름다운인사
느린우체통
숨소리
상추

제3부
수도원기행1
수도원기행2
수도원기행3
수도원기행4
수도원기행5
꽃이되지못한몸짓들은
봄밤에는
행복
일기쓰는밤,당신께
커피마시는시간
그산길
절벽
뒹굴기
구원은진행중
뒷걸음
아름다운고통
거기있었다

제4부
너의비상을꿈꾸다
배론가는길
레지나,첫복사서던날
한치앞의생
미안합니다
나의소원은
당신이름을부르기전에
그돌을묵상하다
큰기다림
엠마오의길
교황성하,하늘로가시다
우리신부님손바닥에사는
다시,성탄을기다리다
어머니,당신은
전부
완전한사랑을꿈꾸오니
꽃잎떨구기
어느날당신이부르시면

해설:존재의행복에이르는진실한삶을위한기도-정훈(문학평론가)

출판사 서평

추천사

삶의희로애락을겪으면서때로는떠나간사람을그리워하기도하고,때로는주어진현실에자족하면서더욱나은삶을계획하기도한다.누구나자기삶의바탕이되어주는존재를떠올리면그존재로하여금뿜어져나오는기운과에너지에정신을의탁하는경우가많다.대개는물질적이거나눈에보이는사물에기대는수가흔하다.돈이나권력이그것이다.사람들이쉽사리현혹하곤하는물질적이고경제적인풍족은그런대로삶의윤택함을가져다주지만,그것이결국허무함으로귀속된다는사실은세월이지나면서차차깨닫게되는진실이다.세계속먼지와도같은인간이기에늘불안과긴장을껴안고살수밖에없다.물질은영속적이지않으면서결국인간에게근본적인성찰을제공할수없다.시인은인간이갖춰야할정신적인영역못지않게이세계에서인간으로서바라보고견지해야할눈에보이지않는조건을늘궁구하는사람이다.최옥시인의시도그런고심의결과이다.그의시는일상에서벌어진틈의자리가어디에서연유하는지,그공간에서생겨나는감정의결을훑으면서끝내삶의존재이유를믿음에서찾으려는사유의풍경을보여준다.빈자리가불러일으키는허무와고독의공간을믿음하나로채워나가려는종교적인신념이주를이룬다.하지만그런종교심의발로나표현이전에시인의마음자락을도드라지게보여주는작품을간과할수는없다.
-정훈(문학평론가)

책속에서

<당신의봄날은어떠한가요>

누군가는봄날을즐기려고
꽃놀이를가고
누군가는벚꽃아래서
꽃비를맞으며웃던그봄날
당신과내가팽팽하게붙잡고있던선이
툭,하고끊어졌다

그때부터였을까
누구와도눈을맞출수가없었다
시선은허공을맴돌았고
몸을스쳐가는공기는쓰리고아팠다
수많은기억도,하고싶었던말도
단한줄이되었고
나는늘다음말을잇지못했다

내눈속을돌아다니던
눈물한방울이
떨어지지도,없어지지도않던
그눈물한방울이
전하지못했던말을거듭어루만졌다

당신이옆에서하던말도
수시로되묻곤하던나
오늘은내가먼저말을걸어본다
지금당신의봄날은어떠한가요
혹시,나의봄날이궁금하지는않으신가요

<나무와마주앉다>

또다시저녁이오네요개와늑대의시간이라는
그야릇한시간속에나를숨기며
묵주하나들고돌산공원으로갑니다
또하루를살았다는안도감을내려놓고
나무와마주앉습니다늘그러하듯저나무는
오늘도먼산에있는나무만보고있을뿐
한번도나를보지않습니다나무의딱딱한껍질에
쏟아지던내숨결은이내차가운바람속에섞이고마네요
그나무앞에서보니엠의바빌론을듣습니다
바빌론강가에앉아서시온을생각하며울었다던
유다인들,그유배의서러움을듣고또들었습니다

당신이없는곳은어디든유배의땅
나무와천년만년마주앉는다해도
당신을볼수없다는고통은결코
저나무껍질처럼단단해지지않겠지요

<절벽에꽃이피다>

절벽에핀꽃을보다가
멀미가났다아찔한현기증이났다
바위틈에뿌리박은꽃은
아무렇지도않은표정으로
그저바람에흔들릴뿐
꽃은자기자리가절벽이라는걸알까
한걸음만움직이면
천길아래로떨어진다는걸알고있을까
살수도없을것같은자리에서
어찌저다지도아름답게피었을까

살아온날들을돌아보니
절벽인줄모르고살았던순간들이
모두꽃으로피어있었다

<경계선>

가끔그런생각을한다
당신과나의경계선은무엇일까
보임과보이지않음
들림과들리지않음
마주보며주고받던말이
이제는혼잣말이됨,따위가
경계선이될수있을까
내가알던사람들과의관계가
회복하기힘든낯설음이되었지만
지금당신의부재는꿈이고
이꿈에서깨면당신을
다시볼수있다,그리믿지만
이승과저승의경계라는건
어쩌면없을지도몰라
당신과나의거리는
그리움이가장깊은곳까지닿을수있는
그리고사랑한다는말이
가장완전하게전달될수있는
바로옆자리일지도몰라

<수도원기행1-왜관베네딕도수도원을찾아가다>

영혼이없는듯펄럭이던육신을
수도원안에들여놓던날
아무것도위로될것이없다고되뇌면서도
그분의위로를기대하고있었다

빨간벽돌의옛성당
그위에높이서있는십자가를보며
고통중에보는아름다움은
고통을배로키울뿐임을확인했다

수사님들이가꾸는채소들은
푸르고싱싱했지만
내게남은날들은모조리시들어버렸고
가지마다풋복숭아가주렁주렁열렸지만
내삶은언제까지나
텅빈가지로흔들릴것같았다

시간경기도시간이되면
빈틈없이까만수도복을입고
성무일도를바치던수사님들의
정갈한목소리를들으며
까맣게타버린가슴을껴안았다

수도원구석구석피어있는
야생꽃들과눈이마주치면
어김없이떠오르는얼굴
내가부르면그는
바위틈에핀꽃이되었고
나무가되었고구름이되었고
바람이되어서나를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