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평설 병자호란. 1

역사평설 병자호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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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병자호란』제1권.《서울신문》에 2007년 1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2년 동안 연재했던《아픈 역사에서 배운다―병자호란 다시 읽기》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 이 책에서 저자는 병자호란을 살피는 것이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기 위함이 아니라, 한반도와 한민족의 운명에 외교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되짚어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병자호란의 참상을 반면교사 삼아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병자호란의 안과 밖을 세세하게 살핀다.
저자

한명기

저자한명기는서울대학교인문대학국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대학원국사학과에서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대,외국어대,한신대,국민대,가톨릭대등에서강의했으며,규장각특별연구원,계간《역사비평》편집위원,제2기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위원,동북아역사재단자문위원등을역임했다.현재명지대학교인문대학사학과교수로있다.
지은책으로는《임진왜란과한중관계》(1999),《광해군》(2000),《정묘?병자호란과동아시아》(2009)등다수가있다.동아시아사속에서한국사의위상을정립하는데관심이많은지은이는첫저서《임진왜란과한중관계》로2000년제25회월봉저작상을받았다.

목차

목차
책을내면서_‘G2시대의비망록’,병자호란
권력을쥐고자신감이높아지다
숙부와조카의숙원宿怨|‘반정反正’이성공하다|“금수의땅이다시사람사는세상이되었노라”|숭명배금崇明排金의열?기가고조되다|명,이이제이以夷制夷의호기를잡다
권력을빼앗길뻔하다
동요하는민심,권력을지키려는조바심|이괄,거병하다|인조의공주파천과이괄의서울점령|춤추는민심과이괄의몰락|실추된권위,흉흉한분위기
‘친명’의질곡속에사라진개혁의지
정권보위에모든것을걸다|‘은먹는하마’가나타나다|개혁시도가흐지부지되다
모문룡에게코가꿰이다
모문룡,조선의‘갑甲’이되다|날로심해지는‘은인’의작폐|‘밀수왕초’,‘해외천자’의사기행각
명은지고후금이떠오르다
명의말기적증상|요동의방어선이무너지다|원숭환,누르하치를제압하다|홍타이지,칸汗이되다|홍타이지,후금의전열을재정비하다
정묘호란이일어나다
홍타이지의승부수|인조,강화도로피신하다|아민,화의를제의하다|조선,후금의‘아우’가되다|북쪽과남쪽의의병|서북백성들의비극과모문룡의사기행각
자괴감,위기의식,그리고무대책
‘오랑캐’와화친한자괴감이커지다|그치지않는모반과역모들|총체적인난국에직면하다|표방은있으되실천은없다
일본의기가되살아나다
‘하늘을함께이고살수없는원수’|‘원수’,절호의상경기회를잡다|‘공허지국’조선,상경을허용하다
명,자멸하기시작하다
모문룡의본질이폭로되다|‘국제사기꾼’의최후|홍타이지,허를찌르고반간계를쓰다|‘장성’이무너지다
‘샌드위치’조선,가도정벌을시도하다
조선,‘샌드위치’가되다|모문룡의죽음과조선|‘1629년황성기습’의여파와조선의진퇴양난|유흥치의반란과조선의가도정벌해프닝|유흥치의역공과죽음,코가꿰인인조
동상이몽속흔들리는형제관계
후금의무역에대한갈망|개시문제를둘러싼파열음|명사처럼대접받고싶었던후금사신들|후금,조선에배[船]를요구하다|후금,조선을떠보다
대릉하성의비극
홍타이지,대릉하성을포위하다|부메랑이된홍이포|조대수의투항과홍타지이의배포
조선,내우외환에신음하다
‘청북포기론’에민심이동요하다|원종추숭을둘러싼논란이지속되다|후금의엄포에도가도에대한미련을버리지못하다|기세등등한후금,명을흉내내다
후금,대조선정책을확정하다
후금은다시배를요구하고,조선은절교를결심하다|공경孔耿,반란을일으켜후금으로귀순하다|조선,고래싸움에다시휘말리다|군사력의균형이무너지다|후금,조선을‘손안에든물건’으로규정하다
노유녕과강학년
또다른‘중원의대도’가입국하다|강학년,인조에게직격탄을날리다|이어지는충돌,훈수하는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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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국제전쟁으로서병자호란을조망한최초의본격통사通史
●광범위한사료섭렵을통해확보한학문적엄밀성과전문성
●한국사는물론중국사,일본사의자료와연구성과까지흡수하여확보한시?야의국제성
●‘과거’이자‘역사’로서병자호란을다루면서도그것을‘오늘’의우리가직면한‘과제’를푸는데필요한반면교사로서승화시킨문제의식
●복잡하고전문적인역사적사실을간결하면서도유려한문체로재구성해낸스토리텔링의매력
병자호란,‘과거’가아닌‘현재’
고국을그리는정이늙을수록더욱간절한데...
국제전쟁으로서병자호란을조망한최초의본격통사通史
●광범위한사료섭렵을통해확보한학문적엄밀성과전문성
●한국사는물론중국사,일본사의자료와연구성과까지흡수하여확보한시야의국제성
●‘과거’이자‘역사’로서병자호란을다루면서도그것을‘오늘’의우리가직면한‘과제’를푸는데필요한반면교사로서승화시킨문제의식
●복잡하고전문적인역사적사실을간결하면서도유려한문체로재구성해낸스토리텔링의매력
병자호란,‘과거’가아닌‘현재’
고국을그리는정이늙을수록더욱간절한데왜나를죽을곳으로내모느냐
1675년(숙종1)봄,만주벌판을달려온한사내가압록강의중강中江에도착했다.사내의이름은안단安端.청나라를탈출하여조선으로향하던도망자였다.병자호란이일어났던1636년,안단은청군에게붙잡혀심양으로끌려가노비가된다.그리고1644년,청이북경을차지하자자신의주인을따라그곳으로이주한다.
1674년,오매불망고국으로의귀환을열망하던안단에게기회가찾아왔다.주인이북경을비웠던것이다.1673년오삼계등이반란을일으켜강남이혼란에빠지자,안단의주인은진압군으로차출되어강남으로떠나게되었다.주인이돌아올기미를보이지않자안단은탈출을감행한다.물경38년만의시도였다.북경을출발하여산해관을통과하고심양을거쳐만주벌판까지무사히가로질렀다.탈출의성공을눈앞에둔안단은의주의조선관리들에게입국을허용해달라고호소했다.
그러나절체절명의순간행운은안단을외면한다.공교롭게도의주에는마침청나라칙사들이입국해있었다.의주부윤조성보는안단의사연을칙사들에게알렸고,칙사들은안단을묶어봉황성으로압송해버린다.참으로허망한결말이었다.끌려가면서안단은절규했다.‘고국을그리는정이늙을수록더욱간절한데왜나를죽을곳으로내모느냐’고말이다.
38년만에탈출을시도했던안단은어찌되었을까?십중팔구처형되었을것이다.의주부윤조성보는이불쌍한궁조窮鳥를보듬어줄수는없었던것일까?안단의기막힌사연을떠올릴때마다병자호란이남긴고통의그림자가길고도길었음을새삼절감한다.
참담했던병자호란,무엇을말하고있는가
병자호란의결과는참담했다.국왕이무릎을꿇었고,수많은백성들이죽거나다치고붙잡혀끌려갔다.38년만에탈출을시도했다가좌절되었던안단의비극이웅변하듯피로인被擄人들(병자호란당시후금군에게사로잡혀끌려갔던사람들)의고통과슬픔은특히처절했다.그렇다면이참혹한전쟁의책임은누구에게물어야할까?전쟁을일으켰던가해자청에게가장큰책임이있음은물론이다.하지만청의침략가능성을뻔히알면서도별다른대책없이전쟁의소용돌이에휘말렸던조선의문제점또한간과할수는없다.우리는과연병자호란을통해어떤교훈을얻어낼수있을까?
《임진왜란과한중관계》(1999),《광해군》(2000),《정묘?병자호란과동아시아》(2009)등다수의저서를통해동아시아사속에서한국사의위상을정립하는데매진해온저자한명기(명지대사학과교수)는《역사평설병자호란1?2》에서이러한질문을던지며‘병자호란’을단순한‘과거’가아닌‘현재’의일로자리매김한다.
저자가《서울신문》에2007년1월부터2008년12월까지2년동안연재했던〈아픈역사에서배운다―병자호란다시읽기〉를근본적으로재구성한이책에서저자는병자호란을살피는것이단순히‘과거의역사’를되돌아보기위함이아니라,한반도와한민족의운명에외교가얼마나결정적인역할을하는지되짚어보기위함이라고말한다.저자는명과청이라는패권국사이의‘조선’과미국과중국이라는두강대국사이에끼어있는‘대한민국’을교차시킨다.미국과중국중심의G2(Groupof2)시대라일컬어지는현재,그리고G2세력의영향권에속해있는한반도.두강대국간갈등이고조된다면,우리는과연어떻게해야하는가?저자가병자호란에주목하는이유는여기에있다.병자호란의참상을반면교사삼아앞으로우리가나아가야할길을찾고자한것이다.병자호란의안과밖을세세하게살피는이책은바로그런점에서‘지금여기’에큰의미를던져준다.
동시출간된병자호란소설그리고강좌,병자호란에대한이해높이다
저자는지난10월3일부터EBS역사특강에서〈G2시대에병자호란을돌아보다〉라는제목으로병자호란관련강의를진행하고있다.그리고저자의부인유하령은돌아갈‘조국’이없던조선포로들‘화냥년’을통해병자호란당시전쟁포로로끌려간이들의지난했던삶을섬세하게그린《화냥년―역사소설병자호란》을썼다.《역사평설병자호란》과의동시출간이다.
“병자호란은‘과거’가아니다.어쩌면지금도서서히진행되고있는‘현재’일수있으며,결코‘오래된미래’가되지않도록우리가반추해야할‘G2시대의비망록’이다.”이강좌와소설이병자호란에대한이해를좀더풍성하게함으로써독자들이병자호란의현재적의미,병자호란을‘G2시대의비망록’이라힘주어말하는저자의함의를살피는데도움을줄것이다.
인조정권,내정과외교양면에서파탄을드러내다
병자호란이란?
주지하듯병자호란은1636년12월9일에시작하여1637년1월30일에종료된청의조선침략전쟁이다.1592년의임진왜란,1627년의정묘호란으로인해이미쇠락해진조선은청이침략한지두달여만에항복하고만다.
1627년정묘호란뒤후금後金은조선과형제관계를맺으면서평화유지를약속했다.그러나그들의요구는점차조선이감당할수없을정도로심해졌다.거기에조선집권층의강한숭명배금崇明排金사상이후금과의실리적외교를제한했다.문제의싹이자라나고있었다.
점차세력을키우던후금은1636년4월국호를청으로고치고청태종홍타이지皇太極는황제의자리에오르는즉위식을갖는다.그런데즉위식에참석했던조선사신나덕헌과이확은홍타이지에게절을올리는예를거부했다.이에청태종은조선이왕자를보내어사죄하지않으면대군을이끌고침략하겠다고협박했다.조선조정은격분했다.척화론자斥和論者들은나덕헌등을유배시키고,주화론자主和論者인최명길崔鳴吉등을탄핵했다.
홍타이지의명령을받은청군은1636년12월9일,압록강을건너조선으로밀려든다.청군철기鐵騎의가공할기동력과전투력을감당하지못한인조는남한산성으로피신했다.그리고45일만에항복했다.삼전도三田渡에서인조는청태종에게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세번절하면서그때마다세번씩머리를땅에조아리는것)를행했다.치욕이었다.그뿐만이아니었다.백성들은더욱처참했다.50만명에이르는조선인이청에포로로끌려가노비로전락했다.비싼속환가로인해고국으로돌아오기도어려웠지만돌아온후에도‘화냥년’이라는굴레에서벗어나지못한채손가락질을받았다.그렇게병자호란은백성들에게돌아갈‘조국’마저앗아갔다.
인조,‘정권안보’에만급급
조선은명과청,두강대국사이에끼어있는약소국이자‘종속변수’였다.‘끼어있는’약소국이자존을유지하며생존하려면역량을키우는것이절실했다.그러나그것은짧은시간안에쉽게이룰수있는일이아니었다.그러면어떻게했어야할까?내정과외교양면에서극히전략적으로사고하고행동했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