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는 깊다. 2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우리 역사는 깊다. 2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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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전우용

저자전우용은서울대학교국사학과를졸업하고같은학교대학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서울시립대서울학연구소상임연구위원,서울대학교병원병원역사문화센터교수를지냈고,한양대학교동아시아문화연구소연구교수이자서울시문화재위원이다.저서로《서울은깊다》,《현대인의탄생》,《한국회사의탄생》,《오늘역사가말하다》,《서울의동쪽》등이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7월18일_을축년대홍수
인간은자연에얹혀사는존재일뿐
7월22일_자동차취체규칙제정
또하나의가족이된자동차,새가족을얻은대신잃은것들
7월24일_광무신문지법공포?
탄압받던언론에서‘한통속’이된언론
7월29일_양화진에외국인묘역조성
글로벌시대,한국인의사생관死生觀과외국인묘지
8월4일_김우진,윤심덕현해탄투신
자살률은시대의‘우울도’측정하는바로미터
8월6일_서소문화교들의삶
‘외국인혐오증’,우리가용납될공간도줄인다
8월10일_일제,서울시민의공동묘지용산땅을군용지로수용
기억에서지워진공동묘지용산,삶주변에서사라진죽음
8월12일_보건부,무면허의사275명적발
의료민영화,‘가난이사형선고’인사회를만든다
8월19일_한성전기회사,전등개설예식개최
‘불야성’을현실세계에구현한전등,그래도늘부족한현대인의시간
8월20일_청계천복개계획제출
복개에서복원까지,청계천의역사와인간의변덕
8월23일_여자정신근로령공포
만행의기록이문서로남는경우는드물다
8월29일_일본,한국국호를조선으로변경
남이이름지어준대로불리는자,식민지백성
8월31일_종로경찰서,종로변상점에변소설치지시
민주사회의관리들,다양하고상충되는시민들의요구경청하고설득하는자세필요
9월15일_추석임시열차증편운행
귀성과민족대이동,이제사라질지도모를한국적‘전통문화’
9월26일_일본제실박물관장,순종황제알현
‘빼앗은’나라의박물관과‘빼앗긴’나라의박물관
10월1일_가로명제정위원회,새동명과가로명고시
나라의중심가로세종대로,그러나나라의정치철학은?
10월7일_종두규칙공포
전염병예방의시대,예방할수없는것에대한공포
10월12일_대한제국선포
우리나라국호‘대한민국’에담긴뜻
10월22일_청산리대첩
청산리대첩의주역홍범도,그에게도이땅에설자리하나쯤은마련해주어야
10월23일_일본덴노,조선총독에게〈교육칙어〉하달
〈국민교육헌장〉으로이어진〈교육칙어〉의군국주의정신
10월27일_장충단설치
대한제국의국립현충원장충단,털어내지못한오욕의흔적
11월4일_훈민정음반포팔회갑기념식개최
‘반글’,‘암클’에서‘한글’이된훈민정음,지금다시‘반글’이된건아닌가
11월11일_경무청,채소도매상단속
물가단속으로민심다독이려한‘권력주연코미디’의서글픈역사
11월17일_우정총국개국,우편사무개시
우편사무개시와지번부여,모든것을숫자화하는시대를열다
11월27일_대한제국,정동부근에고층건물신축금지
고층화를향한욕망,뒷수습은어찌할까
12월3일_조청국경회담결렬
동북아영토분쟁,냉철한역사인식으로대처해야
12월10일_안창남의‘고국방문대비행’
여의도상공을비행한안창남,한국인에게3차원의시야를선물하다
12월17일_지전상인들,조선지주식회사설립
명분없는이득경계했던옛상도,지금우리기업문화에절실히필요한것
12월24일_셔우드홀,크리스마스실발행
유병장수有病長壽시대,질병과오래동거하면서도불행해지지않을방법찾아야
12월30일_경무대를청와대로개칭
경무대에서청와대로,민심살피고국민즐겁게하는‘대’라는이름에충실했으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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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출판사서평
오늘로들여다본어제오늘이말해주는내일
오래지않은오늘로오래지않을미래를그리다
‘오늘’의역사를말하다
1월7일과12월30일의역사
1927년1월7일,남산기슭에있던조선총독부가?경복궁앞에새로지은청사로이전했다.왜경복궁앞(정확히는경복궁경내)이었을까?총독부는조선왕조의역사를표상하는경복궁과일제의식민통치를표상하는새총독부건물이한시야에포착되기를원했다.조선건축기술의정화를담은경복궁조차총독부신청사의위용에비하면하찮고볼품없다는점을조선인스...
오늘로들여다본어제오늘이말해주는내일
오래지않은오늘로오래지않을미래를그리다
‘오늘’의역사를말하다
1월7일과12월30일의역사
1927년1월7일,남산기슭에있던조선총독부가경복궁앞에새로지은청사로이전했다.왜경복궁앞(정확히는경복궁경내)이었을까?총독부는조선왕조의역사를표상하는경복궁과일제의식민통치를표상하는새총독부건물이한시야에포착되기를원했다.조선건축기술의정화를담은경복궁조차총독부신청사의위용에비하면하찮고볼품없다는점을조선인스스로깨닫게만들겠다는노림수였다.이뿐만이아니다.일제는경복궁전각을헐어버리고그자리에빠짐없이잔디를심었다.한국인에게잔디는죽은사람의집인무덤에만심는풀이었다.산사람이사는집에잔디를심는것은금기였다.잔디에서바로무덤을떠올리는한국인들의의식안에서,궁궐안의잔디밭은곧바로‘왕조의죽음’과연결되었다.일제는그렇게경복궁을경복궁이되경복궁이아닌것으로만들고자했다.
1960년12월30일,윤보선대통령은대통령관저였던“경무대가전前정권때폭정을자행한곳으로국민들에게원부怨府같은인상을준다”며명칭을경무대에서청와대로바꿨다.‘대臺’는하늘을올려다보거나땅을굽어보기위해평지보다높은곳에만든평평한구조물이다.때로는천문대가되어하늘에비치는민심을살피고,때로는무대가되어국민들을즐겁게해주는곳이라는의미가내재되어있다.‘경무대景武臺’는‘무예를구경하는대’라는의미로,정확히알수는없으나새로생긴대를무예구경용도로쓰겠다는의지를담은이름인것으로보아당대의권력자대원군이지은이름으로보인다.그런경무대를윤보선대통령이미국백악관WhiteHouse을본뜬것으로충분히오해받을만한이름청와대BlueHouse로바꾼것이다.‘푸른기와를얹은대’라는희한한뜻을지닌‘청와대’는그렇게만들어졌다.
60꼭지에담긴‘오늘’들
3월1일,7월17일,8월15일은굵직한역사적의미를지닌날이다.반면1월7일과12월30일에서특별한역사적의미를찾기는쉽지않다.그저새롭게시작된해의일곱번째날과그해의마지막하루전날일뿐이다.조선총독부가경복궁앞으로이전한것과경무대를청와대로개칭한것도,독립을외치고헌법을만들고해방을이룬것에비한다면그리큰의미를지니지못한사건이다.그저흥미로운교양상식늘려주는정도일뿐이다.
《우리역사는깊다》(전2권)는이처럼무의미한듯한‘오늘’들의별다를것없어보이는‘역사’들을되살려‘2015년대한민국’을곱씹는다.《서울은깊다》,《현대인의탄생》등여러저서를통해말해지지않은역사를소개하고그것을통해현재를성찰하는데힘써온역사학자전우용이〈역사학자전우용의한국근대읽기3부작〉중첫번째인이책에서주목하는것은바로이러한‘오늘들의역사’다(2부《근대의사생활》(가제)과3부《공간너머》(가제)는각각2016년,2017년에출간예정이다).저자는귀성풍습의기원,예방접종의시작,전등시대의개막,위생관념의확산,대중교통수단의도입등주로교과서에나오지않는‘오늘’의작은사건들을소개하고,성찰의재료로삼을만한요소들에대해나름의의견을덧붙인다.
그때그때날짜에맞춰총60개의주제를선정했기때문에꼭지들간연관성은거의없다.하지만모든꼭지를관통한저자의문제의식은역사란시간?공간?인간의유기적이고총체적인변화라는생각이다.저자는수많은작은‘오늘’들의다양한시간과공간과인간의이야기들을통해100년전과현재가얼마나어떻게다르고같은지를살핀다.저자가풀어놓는어제의‘오늘’들은낯설지만흥미롭다.저자가어제의‘오늘’들로지금의‘오늘’에던지는메시지는쓰지만통렬하다.
과거의‘오늘’이현재의‘오늘’에말해주는것들
시간,여전한역사의시계바늘
6월10일,우리에게이날은1926년6월10일대한제국의마지막군주였던순종의장례식을기해일어난독립만세운동이나1987년전두환전대통령의‘4?13호헌조치’발표후이에반대하는6월항쟁의시발점으로기억된다.반면저자는‘시時의기념일’이라는다소낯선역사를들려준다.
1921년일본은기원후60년경누각漏刻이라는시계를만들었다고전해지는덴치天智왕을기리고시간을엄수하는문화를만들자는취지에서6월10일을‘시時의기념일’로선포하고조선에도적용했다.하지만당시시계는평범한사람은절대가질수없는고가품이었다.시계의보급률이현저히낮았던그시절보통사람들이시각을알수있는길은정오의오포午砲소리를듣는것뿐이었다.오포는일본도쿄의표준시계에연결된발신기가일본제국전역의주요지점에설치된수신기에알려준시각,즉시보時報에맞춰쐈다.그러나이는잘맞지않았다.
그연유에대해우스개아닌우스개가떠돌았다.일제강점초기오포는남산헌병대에설치되어있었는데,오포쏘는병사가정오무렵망원경으로일본인동네시계점안의시계를살피다가그중마음에드는시계가정오를가리키면그때에맞춰포를쐈기때문이란다.항간에이같은우스개아닌우스개가떠돈이유는,총독부는일본인들의여론만살펴그에따라정책을결정하고일본거류민단은또그들대로총독부의의중에맞춰자기들여론을만드는세태때문이었다.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식민지원주민의시간은크게고려할사안이아니었다.그들에게중요한것은식민지의시간,즉역사를식민지인들자신의과거와단절시켜자기들의시간에편입하는것이었다.권력이특정세력의여론만살피고그특정세력은또권력의의중에맞춰움직이는모습,지금이라고다를까?100여년이흘렀건만역사의시계바늘은그대로다.
공간,역사를품고인간을품다
8월10일,대부분의현대인들에게별다른의미를갖지못하는이날에서저자는산자와죽은자의공간분할을떠올린다.옛서울의공동묘지를추적하고,그공동묘지를군용지로강제수용해버린일제의약탈을파헤친다.그리고이를통해삶과죽음의의미를사색한다.
1905년8월10일,일본군은수백년간서울시민들의공동묘지이던용산땅의군용지수용을마무리한다.그리고이렇게빼앗은광대한땅위에거대한병영과연병장,철도시설을짓고,남은땅은일본인들에게나누어준다.
산업화이전,한국인들에게산은제2의집터이자농토였다.살아서는평지에지은집에서기거했고죽어서는산에만든집에서영면했다.산자와죽은자의공간을평지와산지로확연히나누는점에서한국은가히독보적이었다.하지만서울도성안산에죽은자의자리를허락할수는없었다.왕궁을굽어보는산지에무덤을쓰는것은왕보다높은자리를주는것으로곧불경不敬이었다.도성안에무덤을만들수없었기때문에서울에서죽은사람은왕이든평민이든모두도성밖으로나가야했다.도성밖으로빠져나간시체의행선지는제각각이었지만시골에연고가없던서울사람들은대체로애오개주변과남산남사면(지금의미군용산기지일대)에묻혔다.이런일이500년넘게되풀이되면서도성밖남산기슭은온통무덤천지가되었다.
1904년2월23일대한제국정부를협박해〈한일의정서〉라는군사협정을체결한일본군은3월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