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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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일본’, 이광수를 이해하는 키워드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이광수만큼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다양한 계기들을 껴안은 채 한국 근대사를 관통해온 작가도 드물 것이다. 이광수가 191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무정》은 한국 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한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이광수에게는 항상 ‘친일’이라는 단어가 수식어처럼 따라붙는다. 이광수는 왜 그런 삶의 방식을 선택했을까.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는 자료에 기초해 그간 묻히거나 망각되었던 역사적 맥락을 최대한 복원하면서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이광수의 삶과 문학이 놓인 자리를 꼼꼼하게 추적한다. ‘친일’과 ‘문학성’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일본’이라는 키워드로 이광수의 삶을 가감 없이 그리는 이 책은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온 우리 사회의 이광수에 대한 논란을 되돌아보는 데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

하타노세츠코

저자하타노세츠코波田野節子는니가타현립대학新潟縣立大學명예교수.아오야마학원대학靑山學院大學문학부를졸업하고현립니가타여자단기대학縣立新潟女子短期大學교수를거쳐니가타현립대학국제지역학부교수를역임했다.이광수를비롯하여한국근대작가연구에관한다수의저서를집필했고,최근에는이광수자료집간행작업에도힘쓰고있다.
저서에《李光洙ㆍ《無情》の硏究―韓國啓蒙文學の光と影》(2008),《韓國近代作家硏究―李光洙ㆍ洪命憙ㆍ金東仁》(2013),《韓國近代作家たちの日本留學》(2013),《李光洙―韓國近代文學の祖と‘親日’の烙印》(2015)이있고,역서에《無情》(2005),《夜のゲ?ム》(2010),《金東仁作品集》(2011),《樂器たちの圖書館》(2011)등이있다.

목차

한국어판서문
책머리에
이광수연보

I.유년시절―몰락,야심이싹트다


1.성장과정
탄생|나라와집안의쇠퇴|전통문화의세계
2.동학과의만남과러일전쟁
동학과의만남|손병희의문명개화노선|‘삼전론’의제자

II.일본유학(1905~1910)

1.멸시―20세기초반의아시아인유학생
‘문명’의충격|일본유학생의계보|아시아의유학생들|불쾌한몇몇사건들|거세지는아시아멸시
2.동학교단의분열과귀국
어학학교‘도카이의숙’입학|한국의보호국화―제2차한일협약체결|다이세이중학입학과홍명희와의사귐|귀국과단지사건
3.메이지학원편입―문학소년의길로
하쿠산학사와마루야마후쿠야마초|메이지학원보통학부에서의학창생활|기노시타나오에,톨스토이,바이런|기무라다카타로의《바이런문학계의대마왕》|제국주의시대의통념|루쉰과이광수,서로다른영향
4.초기의창작―일본어와조선어의구사
영화의‘번역’|이언어창작―일본어단편〈사랑인가〉와조선어단편〈무정〉|소설의모델이된이광수|《신한자유종》제3호|귀국의여정

III.교사생활의좌절에서대륙방랑으로(1910~1915)

1.오산학교―윗연배뿐인학생들
이승훈과안창호|오산학교부임|‘시로가네의세계’와‘오산의세계’
2.한국병합의충격
‘힘’에대한희구|헌신에서갈등으로|배척사건
3.대륙방랑의길―상하이,블라디보스토크,치타
빈번한우연|상하이―독립운동가들과함께|블라디보스토크|무링|치타|〈공화국의멸망〉|다시도쿄로
4.와세다대학입학―반일사상과특고의감시
5년만의도쿄|1910년대유학생들|두개의투고―상반된표현

IV.《무정》의시대―명성의획득과3ㆍ1운동

1.조선총독부‘기관지’의의뢰
아베미츠이에와나카무라겐타로|《매일신보》에글을쓴이유|춘원春園이광수|욕망의교육과〈자녀중심론〉|〈우리는금일어떻게아버지가될것인가〉
2.《무정》의집필―한국근대초기문학작품의배경
《무정》의탄생|《무정》의줄거리|과도기의조선을그린‘시대의그림’|‘영채이야기’에서《무정》으로|욕망을고취하는소설|계몽의이면에자리한고향의아내|나혜석―한국페미니즘의선구자|허영숙과결핵|《무정》속의허영숙
3.이언어연재와사랑의도피
두개의언어로쓴기행문〈오도답파여행〉|사랑의도피,베이징으로
4.독립운동에의참여―2ㆍ8독립선언서집필후상하이임시정부로
2ㆍ8독립선언서|3ㆍ1독립운동|안창호와흥사단|귀국―명망보다실질을

V.수양동우회와두개의신문사(1920~30년대)

1.〈민족개조론〉에대한비판
칩거―〈감사와사죄〉|〈민족개조론〉과수양동우회|동아일보사취직|〈민족적경륜〉|수양동우회에서동우회로
2.투병하의집필활동―민족애의고조
높이평가받은몇몇연재소설|결핵과의싸움
3.브나로드운동과안창호의체포
인민속으로―문맹퇴치운동|안창호의체포와귀국
4.절망감―아들의죽음과민족운동의좌절
아들의죽음|도쿄의집|《가이조》의야마모토사네히코|중학시절이래의일본어소설〈만영감의죽음〉|서구문명에대한반발의심화

VI.대일협력시절―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기

1.체포ㆍ사상전향의표명―동우회사건
동우회사건|〈무명〉과《사랑》|허영숙산원|사상전향표명―〈합의〉|‘내선일체’의논리|대일협력을향한발걸음
2.가야마미츠로香山光郞로의창씨개명―지식인학살명부에대한우려
일본어소설〈진정마음이닿아서야말로〉|《?기》와경성제국대학|일본어강제의강화―누구를향해썼는가|최종심에서의무죄판결|‘진정보편의전향’으로|지식인학살명부와대일협력
3.‘대동아전쟁’하의‘역할’
‘서양에대한반발’의부상|대동아문학자대회참가|괴로움의토로에대한비난|학병지원권유―일본유학생권유단|민족생존을위한고민
4.일본어소설을집중적으로쓴1년
이광수의일본어소설|〈가가와교장〉|〈파리〉|〈군인이될수있다〉|〈대동아〉|〈소녀의고백〉|춘원의망상

VII.해방후―‘친일’에대한비난,북한군의연행
해방의날|《나》와《나의고백》|《나의고백》|말미에붙인‘친일파의변’|‘나는민족을위해친일했습니다’|한국전쟁의발발과연행

주요참고문헌
부록―2ㆍ8독립선언서
저자후기
옮긴이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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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광수의눈에비친일본,
식민지조선이놓인시대적공기를포착하다

이광수,‘친일행적’과‘문학적성과’사이

‘이광수문학상’을둘러싼해프닝

2016년8월2일,한국문인협회는춘원이광수와육당최남선의이름을내건문학상을제정하겠다고발표했다.한국근대소설의효시인춘원의《무정》(2005)발표100주년이되는2017년을맞아한국근대문학의대표문인두사람의문학정신을발굴ㆍ계승한다는취지다.문효치한국문인협회이사장은문학상제정에대해“친일행적은비판받아마땅하나그들의문학성까지매몰돼선안된다”,“우리문학의여명기에공헌한사실도함께평가해야한다”고밝혔다.
2016년8월4일,역사정의실천연대와민족문제연구소등은기자회견을열어“춘원과육당은온민족의신뢰와기대를한몸에받게해준하늘이준재능을민족반역의길에내다버렸다”면서“한국문인협회는‘친일문학상’제정을즉각철회하라”고촉구했다.문학계안팎의거센역풍을맞은한국문인협회는갑작스럽게발표했던이문학상제정계획을며칠만에갑작스럽게철회한다.“당초육당최남선과춘원이광수의문학적업적을기린다는순수한차원에서이상을제정하고내년부터시행할예정이었으나,문단안팎에서그들의문학적성과보다는친일문제를중점부각함으로써이상의기본취지가크게손상됐다”는것이다.

이광수의삶과문학이놓인자리복원하기
한국근대문학사에서이광수만큼서로모순되고대립하는다양한계기들을껴안은채한국근대사를관통해온작가도드물것이다.따라서이광수의삶과문학을정당하게평가하는길은무엇보다도우선그모순과대립의계기들을제대로이해하는데서시작되어야마땅하다.
《이광수,일본을만나다》(일본어원서《이광수-한국근대문학의아버지와‘친일’의낙인韓國近代文學の祖と〈親日〉の烙印》,中央公論新社,2015)는일본어번역서《무정》(2005)을비롯하여《《무정》을읽는다》(2008),《일본유학생작가연구》(2012),《이광수의이언어창작에관한연구》(근간)에이르기까지이광수연구에집중해온니가타현립대학의명예교수하타노세츠코波田野節子의연구성과가고스란히녹아있는이광수평전이다.저자는자료에기초해그간묻히거나망각되었던역사적맥락을최대한복원하면서‘일본’과의관계속에서이광수의삶과문학이놓인자리를꼼꼼하게추적한다.‘친일’인가‘문학성’인가라는이분법에서벗어나‘일본’이라는키워드로이광수의삶을가감없이그리는이책은해방이후오늘날까지지속되어온우리사회의이광수에대한해묵은논란을되돌아보는데도시사하는바가적지않다.

‘일본’,이광수를이해하는키워드

‘친일’작가이광수
이광수라는이름이한국에서오래기억돼온이유는문학사적으로중요하기때문은물론이거니와,일본어로창작하고솔선해서창씨개명했으며태평양전쟁말기학병권유강연에나섰기때문이기도하다.요컨대‘친일親日’작가로기억되고있는것이다.
이광수에게는항상‘친일’이라는단어가수식어처럼따라붙는다.다이쇼大正시기와세다대학에유학한이광수는민족을계몽하기위해많은논설을쓰고,장편소설《무정》을집필했다.1919년3ㆍ1독립운동직전에는도쿄에서〈2ㆍ8조선독립선언서〉를기초했고,그후망명해상하이임시정부수립에도참여했다.민족과함께살기를선택하고조선으로돌아온후에는국내에서독립운동을모색했다.그러나식민지시대말기이광수는‘친일’활동을하고해방후에는‘민족반역자’로지탄받는다.

이광수의삶에일본이끼친영향
이광수는왜그런삶의방식을선택했을까.일본이한국을지배했기때문이라는것은말할필요도없다.일본의근대에희롱당한식민지작가이광수는항상일본을주시하고있었다.‘한국근대문학의아버지’로간주되는인물의생애에일본이지대한영향을끼쳤던것이다.이광수는조국을삼키려하는일본의제국주의적원동력을‘욕망’이라갈파하고,쇠퇴한민족을재생시키려면자신들도‘욕망’을가져야한다고주장했다.
메이지시기와다이쇼시기에걸쳐일본에유학한이광수의눈에일본은어떻게보였을까.이광수에게일본은어떤존재였을까.이책은‘일본’이라는프리즘을통해이광수의생애를더듬은것이다.동시에그의삶을통해과거의일본을응시한것이기도하다.

이광수를만든몇가지계기들

빼앗긴나라를도로찾는것은‘힘’

1905년여름현해탄을건너도쿄에도착한소년이광수의눈에가장먼저들어온것은즐비하게늘어선벽돌로지은서양건축물이었다.한성의남대문역주위는초가집뿐이었던무렵이었으니,이광수의중학유학은근대일본이구축한‘문명’의충격과더불어시작되었던셈이다.
그러나이러한문명의충격도잠시,이해11월대한제국은제2차한일협약과더불어외교권을빼앗기고보호국으로전락한다.1907년에는고종의양위에잇달아대한제국군대가해산되고이에맞선의병운동이전국적으로확산된다.이국에서조국이스러져가는것을지켜보던이광수는소년회를조직하고등사판회람잡지《신한자유종》을간행하여애국심을북돋는비분강개한문장을동료들과공유한다.하지만이는곧관헌의눈에띄어압수,극비문서속에잠들어있다가2012년에야발견되었다.
이광수가오산학교에서교사생활을하고있던1910년8월29일에는한일병합조약이공포되고한국은정식으로일본에병합된다.

나는여행을중지하고정거장에서나와서학교로향하였다.‘인제는망국민이다’하는생각을,한참길을걸은뒤에야할수가있었다.
나는중도에앉아서얼마동안인지모르게혼자울었다.나라가망한다망한다하면서도설마설마하고있었던것이다.‘왜?대황제가이나라의주인이냐?그가무엇이길래이나라와이백성을남의나라에줄권리가있느냐?’
이런생각도났으나그것은‘힘’이있고야할말이다.힘!그렇다힘이다!일본은힘으로우리나라를빼앗았다.빼앗긴나라를도로찾는것도‘힘’이다!대한나라를내려누르는일본나라의힘은오직그보다더큰힘을가지고야밀어낼수가있다(《나의고백》,1948).

여행을위해역으로나갔다가대합실벽에붙은,‘대한제국의황제는신민臣民과통치권을대일본제국의천황에게양도한다’는조서詔書를본이광수는일본과‘힘’을등치시킨다.나아가빼앗긴나라를다시찾기위해서는일본보다더큰‘힘’이필요하고,자신의장래가이‘힘’을찾는데바쳐질것이라는점을명확히한다.

‘노예가노예의주인이되는악순환’에빠지다
에도江戶시대말기서양에의해개항을강요받고메이지유신을단행함으로써민족분열과독립의위기에서벗어난일본은제국주의시대에살아남는길은스스로제국주의자가되는것밖에없다고믿게된다.그리고청일전쟁,러일전쟁에잇달아승리하며마침내제국주의열강의대열에들어선다.
이무렵일본에서중학시절을보낸이광수는일본이조국의국권을조금씩강탈하는모습을이를갈며지켜본다.그리고마침내조국이일본에병합되었을때,그는힘의논리(제국주의의논리)가진리임을통감하고조선민족에게남은길은힘을기르는것밖에없다고생각하게된다.

‘살아라.’삶이동물의유일한목적이니차此목적을달하기위하여는도덕도무無하고시비是非도무無하니라.기아飢餓하여사死에빈瀕하거든타인의것을약탈함이어찌악이리오.자기가사死함으로는녕寧히타인이사死함이정당하니라.

생존경쟁에서도태되지않으려면우리민족이힘을길러야한다는이광수의외침은타민족의도태정당화로까지이어진다.1917년1월《학지광》에발표한〈위선수獸가되고연후然後에인人이되라〉은이러한이광수의사고가가장노골적으로드러난글이다.일본이앞서간길을좇는그길은‘노예가노예의주인이되는’악순환의길이었다.

‘이마를바늘로찌르면일본피가나올만큼일본인이되라’
1944년11월이광수는난징에서열린제3회대동아문학자대회에참석했다.이때그와동행했던평론가김기진金基鎭은1974년《동아일보》에연재한회상기〈편편야화片片夜話〉에서다음과같은일화를소개하고있다.
당시숙소에서이광수와한방에들었던김기진은이광수에게,일전에춘원당신이《경성일보》에조선사람의이마를바늘로찌르거든일본피가나올만큼조선인은일본정신을몸속에넣어야한다는글을썼고,이를읽고분개한현상윤이여러사람이있는좌석에서이를비난하자아무런대답도못하더라는이야기를들은일이있는데,그게사실이냐고물었다.그러자이광수가사실이라고하면서이런이야기를했다고한다.

조선인은일본인보다우수한민족이다,따라서조선인이선거권을가지고국정國政에참여한다면조만간문부대신文部大臣도나오고재무대신財務大臣도나올것이다,그러면일본인은이러다조선인이일본을장악할날이멀지않을것이라는생각에‘합방’한것을취소하자고할것이다,이때우리는못이기는체하고조선반도를일본에서되찾아독립한다,“나는앞일을이렇게내다보기때문에지금일본인이조선인을믿도록보이기위해그런글을썼던거라오”라고…….

김기진은이이야기를듣고어처구니가없어“삼척동자도곧이듣지않을소리”라고말하곤전등을꺼버렸다고한다.그는이일화에‘춘원의망상妄想’이라는제목을붙였다.
이일화에대해저자는이무렵이광수가진심으로그렇게생각했을것이라고말한다.‘이마를바늘로찌르면일본피가나올만큼일본인이되라’는말의출처는《매일신보》의〈황민화皇民化와조선문학〉(1940.7.6)이었다.이어지는문장은다음과같다.“끌려가는일본국민이어서는아니된다.구경하는국민이어서는아니된다.자발적적극적으로내지창조적으로저마다신체의어느부분을바늘끝으로찔러도일본의피가흐르는일본인이되지아니하여서는아니된다.”관점에따라선일본인이되어야한다는주장을구실삼아조선인독자에게적극성을가지라고호소하고있다고도읽힐수있는문장이다.

문학과정치,민족과반민족의이분법을넘어서

이광수를바라보는우리사회의눈은어느곳을향하고있을까.여전히‘한국근대문학의아버지’대‘친일파=반민족주의자’의해묵은논란에서벗어나지못하고있는듯하다.문학은정치의논리로오염되어서는안된다는문학옹호론과대일협력자의문학은문학으로서일고의가치도없다는정치주의는일견상반된것처럼보인다.그러나문학과정치,민족과반민족의이분법에갇혀정작이광수그자체에대한이해에소홀하다는점에서는크게다르지않다.
이책은이광수를평가하지않는다.저자는이광수가‘친일인사인가탁월한문학가인가’라는역사적평가에서한걸음물러서있다.그저그의문학을,그의삶을펼쳐보이면서이광수를있는그대로되살린다.이광수는‘힘’에매몰되어있었다.‘일본’은그러한‘힘’을현실세계에구현한현실태였다.이광수에대한이해는바로여기에서시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