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역사학의모델
미시사를다시새롭게읽다
미시사로역사학의새로운가능성을살피다
미시사는역사학의지평을넓히는새로운출발점
이미지가범람하는오늘날,탈문자시대에문자를근간으로해서성립한역사학은실존적위기를벗어날방법은없는것일까?엮은이곽차섭(부산대학교사학과교수)은그대안으로1970년대이후서구사학계에서각별히주목받았던‘미시사’를새로운역사연구와서술의방법론으로제시했다.2000년출간한《미시사란무엇인가》는그결과물이다.이책은1970년대말에서1990년대말까지약20년동안미시사의이론과방법,그리고그것을둘러싼대표적논쟁에대해국내외에서씌어진글들을엮은미시사의본격적인입문서였다.
《다시,미시사란무엇인가》는《미시사란무엇인가》의확대개정판이다.초판에담겨있던미시사입문글들외에2000년대이후역사서술과전망의한부분으로자리잡은‘미시사’의진전과변화를확인할수있는글을추가했다.또한한국학계에서미시사가어떻게전유되어왔는지를살피는글도보충했다.다양한학문분야에서미시사가관심의대상이되고있는현시기,미시사의과거부터미래까지아우르는이책이독자들의미시사에대한이해를높이는데도움이되기를바란다.
미시사,구체적개인의삶의리얼리티를복원해일반적해석으로나가는방법론
‘미시사’는20세기의역사학적흐름을주도해왔던‘거시’와‘경제·사회’와는다른개념인‘미시’가접근방식의키워드다.즉마르크스주의역사학,독일의사회구조사,프랑스아날학파의전체사등이역사적거대구조의탐색에초점을맞추면서사회과학적분석과계량을중시하는거시사적방법이라면,미시(문화)사는구체적개인을통해역사적리얼리티의관계망을이해하고자하는방법론이다.
역사란추상적이지않고구체적이어야한다는생각에서출발한미시사는전체사적흐름이라는이름아래정작그주역인인간개개인의모습을제대로포착하지못한거시사적접근과는달리일정한지역내에서사람들이위기나사건에대처해가는전략이나가치관등을면밀히탐색함으로써역사속의복잡다단한리얼리티를구현해내는방법론으로평가받고있다.
엮은이는미시사의등장이지금까지의역사학적성과를좀더정교화하는데그치지않고무엇이역사인가에대한인식론적의문을새로이던지는데까지나아가고있다고지적한다.미시사의잠재력이어느정도로가시화될지좀더시간을두고지켜볼필요가있다면서도,지금까지의연구성과로미루어볼때또한번역사학의지평을넓히는새로운출발점이되리라고전망한다.
미시사를대표하는저작으로는《마르땡게르의귀향》,《치즈와구더기》,《이단자갈릴레오》가있다.엮은이는이저서를중심으로서구에서벌어진논쟁을묶어서구역사학계의최신성과를소개한다.
미시사는거시사에비교해어떤특징을갖는가
첫째,미시사는이름그대로역사의리얼리티를작은규모또는척도를통해보고자한다.영화적기법에비유할때,거시사가롱샷으로본것이라면미시사는줌으로사물을당겨보는것이다.역사가가어떤공동체나개인을선택하여그곳의특정제의나특이한행동들을‘촘촘하게’기술함으로써그스스로가스스로의정체성을말해주도록하거나,혹은그러한행위에대한면밀한분석을창으로삼아일반적해석의길로나아갈수있다는것이다.
둘째,연구의초점이개인또는공동체에있든간에,미시사가는거의언제나실제의이름들을추적한다.‘일상생활의구조’를지향한브로델류의역사가삶의물질적조건을평균적이고익명적층위에서제시한데반해,미시사가들은이러한조건들이개개인혹은공동체의층위에서구체적으로어떻게경험되었는가를중시한다.
셋째,미시사는대체로사회를문화적텍스트로간주한다.미시사에서의문화는종래의구분처럼사회나경제와는다른한부문이라는뜻이아니고,개인또는공동체의행동이나전략(경제적인것조차도)모두를가리킨다.
넷째,소규모공동체의개개인들을추적하여그들의행적과관계망을구체적으로밝히다보니,미시사가들의서술은자연스럽게이야기식으로이어진다.역사를이야기체로쓴다는것은곧역사서술의문학성을의미하고,이러한점이야말로미시사저작들이종종베스트셀러목록에오르는이유중하나다.긴즈부르그의《치즈와구더기》,레돈디의《이단자갈릴레오》,데이비스의《마르땡게르의귀향》에서다루어지고있는이야기는책의출간에앞서두종류의영화로까지만들어졌다(프랑스판〈마르땡게르의귀향〉과헐리우드판리메이크〈섬머스비〉).
다섯째,미시사는거의예외없이‘가능성의역사’를지향한다.여기서‘가능성possibilit?’이란엄격한실증적의미에서의‘증거prove’와대비되는말로서,증거의단편성이문제될때에는증거와증거를잇는최선의가능성을받아들여야한다는뜻을함축하고있다.긴즈부르그의이른바‘추론적패러다임’혹은‘실마리찾기paradigmaindiziario’의방법이좋은예다.전통적역사가들은이를단지상상력일뿐이라고비판하지만,긴즈부르그나데이비스처럼미시사가들은결코무책임하게‘상상력’을남용하고있지않다.결국미시사의새로운입증방법은종래의지나치게엄격한실증주의를비판하면서도문학과역사의경계를무너뜨리려는해체주의적시각에도동조하지않는제3의길을가고있는셈이다.
여섯째,미시사가들은작은사례를창으로삼아바깥넓은곳을바라본다.하지만미시사는이미테두리지워진거대이론이나인식틀을정당화하는또하나의사례를제공하는역할보다는종종그것을뒤집기도하는잠재적반발력을그미덕으로삼는다.
《다시,미시사란무엇인가》,무엇을담고있는가
《다시,미시사란무엇인가》는크게4부13장으로구성되어있다.1부〈미시사의이론과방법〉은미시사의개념과방법을다루고있고,2부〈‘베난단띠,메노키오,샤먼’-긴즈부르그의민중문화론에대한논쟁〉과3부〈‘마르땡,아르노,베르뜨랑드’-내털리제이먼데이비스와역사적진실에대한논쟁〉은각각미시사의대표주자라할수있는까를로긴즈부르그와내털리데이먼데이비스의저작을둘러싼서구의논쟁을소개하고있다.확대개정판에서새롭게추가된4부〈2세대미시사와한국적전유〉에서는거의중세와근대초의이탈리아(혹은독일)에국한되었던1세대미시사와달리시대적제약을벗어던지고좀더유연해진저술방식이두드러지는2세대미시사를구체적으로살핀다.나아가한국사에서미시사가어떻게전유되는지를소개한다.
미시사란무엇인가
서설에서는최근30년간미시사의전개양상과특징을대표적저작들을중심으로개관하고있다.민중문화의뿌리찾기를시도한긴즈부르그,근대초평범한농촌여인의선택을보여준데이비스,근대국가와시장경제라는거대조류에맞서그들만의삶을꾸려간농민들의일상적생존전략을그린레비,대담하게도갈릴레오재판의‘진실’을전복하려한레돈디등의저작을통해,미시사의특징이잘경계지어진소집단의개개인을추적하는‘실명적역사’,실증에매몰되지않으면서도합리의길을벗어나지는않는‘가능성의역사’,사건의전말을말로풀어나가는듯한‘이야기로서의역사’임을보여주고있다.
미시사의이론과방법-징후의실마리로풀어가는질적역사
여기서제시하고자하는주요논점은두가지다.첫째,서구에서의미시사가좌파적이념이확고한이탈리아역사가들로부터세력을얻고있다는사실을근거로미시사가결코역사적상대주의에매몰되지않고과도한실증과상대주의의위험을모두지양하는제3의길을모색하는방법론임을입증하고있다.둘째과연이러한제3의길이가능한가를질문하면서,‘실마리찾기’추론적패러다임이라는새로운사료입증방법에의해실증과해체어느쪽에도치우치지않는새로운사료입증방법에의해그것이가능함을증명해주고있다.한마디로역사학은질적?경험적합리주의의영역이지자연과학과같은계량적합리주의의영역이아니라는것이다.
‘베난단띠,메노키오,샤먼’-긴즈부르그의민중문화론에대한논쟁
까를로긴즈부르그의《치즈와구더기》는이미이방면의고전이된저작이다.그주제는메노키오란별명을가진16세기한방앗간주인의세계관이다.이탈리아동북부프리울리지방의한조그만마을에서방앗간을가지고마을촌장격인지위에다글을읽고쓸줄알았던그는,51세가되던1583년이단혐의로피소되었고,이후여러번투옥과방면의과정을반복하다가결국은1599년말화형에처해지고말았다.
교회당국이이단이라판단했던그의주장들은크게두가지로나뉜다.그하나는자연발생적우주생성론이라이름붙일만한것이고,다른하나는종교적교리와신앙생활에대한매우개방적인태도다.그는우선,태초에모든생명체들이마치치즈가숙성하는과정에서구더기가나타나듯이우유처럼뒤엉킨물질덩어리로부터생성되었다고주장한다.심지어는신과천사까지도이렇게만들어졌다는것이다.이와함께그는예수의신성과부활을부정하면서그는단지위대한예언자일뿐이라고말했으며,자신이기독교인이고투르크인이아닌것은원래그렇게태어났기때문이지다른종교가틀렸기때문은아니라든지,대부분의성사는사제들의사사로운이익을위해만들어진것일따름이라는,그당시로는매우과격한주장들을내놓았다.
이렇게극히자연주의적이고범신론적인것처럼보이는메노키오의시원론始原論과유토피아적으로까지보이는사회개혁에대한열망들은무엇을의미하는것일까?긴즈부르그는재판기록을면밀히검토하고메노키오가읽은책들의내용을그의주장과하나하나대조한끝에,그의이야기가엘리트적문헌문화의압력아래서서히사라져가던민중문화의흔적을상징적으로보여주고있다고해석한다.잠벨리를비롯한비판자들은메노키오의주장들이빠도바학파를중심으로한당시의개혁적지식층으로부터배운것이라고말하지만,긴즈부르그에따르면그것을엘리트문화로부터그냥배운것이아니라,분명히그나름의고유한기반위에서스스로의필요에따라변형시켜온특색을가지고있다는것이었다.그는특히물질주의적우주생성론의뿌리를멀리고대인도의베다전통으로까지소급시키고있다.
긴즈부르그가메노키오이야기를통해말하고자하는것은결국다음의두가지점이다.그첫째는근대초유럽의농민들에게서나타나는민중문화는당시의엘리트문화에의해단순히‘부과된’것이아니라오랜세월속에서나름의가치를‘생산해’왔다는것이고,그둘째는그러한유럽민중문화의뿌리가멀리고대의우랄알타이계샤머니즘에근거하고있다는것이다.그의이러한주장은이미근대초농촌의이단신앙을다룬자신의데뷔작《베난단띠》(1966)에그단초가있고,최근의파노라마적저작《밤의이야기:사바의해독》(1989)을통해샤머니즘과농촌제의들간의관계망을시베리아에서남유럽까지그리고수천년전의아득한고대로부터근대초에이르기까지의방대한그시공간적궤적을추적한바있다.
‘마르땡,아르노,베르뜨랑드’-내털리제이먼데이비스와역사적진실에대한논쟁
내털리제이먼데이비스의《마르땡게르의귀향》은16세기중엽프랑스남부지방에서실제로일어났던기상천외한재판사건을토대로지극히평범한한여성의가치관과행동방식들을복원하고자한연구다.혼인후3년만에아무말도없이집을나가8년만에홀연히새사람이되어돌아온남편마르땡게르,그리고어느날그가가짜라는혐의를받아여러번의재판을겪는우여곡절끝에막무죄가선고되려는찰나재판정에나타난진짜남편마르땡게르.데이비스는도저히있을법하지않은이재판에대한당대의기록들을미시적으로면밀히검토하고그주변정황들을보충하여이사건을둘러싼이야기의전말을(영화〈마르땡게르의귀향〉보다더)생생히그려내고있다.
이저작의초점은남편으로가장한아르노뒤띨과게르의아내베르뜨랑드드롤의미묘하고도아슬아슬한행동과,그들이그러한행동을선택한심리적?문화적동기에맞추어져있다.데이비스는이를통해근대초프랑스농촌의한평범한여성이과연어떠한가치관을가지고있었는지,그리고그녀에게부과된사회적한계내에서어느정도로스스로의행동을선택할자유가있었는지를살피려하고있는것이다.
로버트핀레이는이책이사료적사실보다는상상력에기반하고있기때문에,역사라기보다는일종의로망스에가깝다고비판한다.데이비스는여성의정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