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1960년
인제지역사람들이겪은남북한체제
한국전쟁과‘수복지구’의탄생
분단과한국전쟁은‘수복지구收復地區’라는매우특수한지역을탄생시켰다.한반도는1945년8월15일해방과동시에미소에의해38선으로분단되었고,한국전쟁(1950~53)으로남북을가르는선은휴전선으로바뀌었다.그결과‘38선이북이면서휴전선남쪽인지역’이생겼는데,바로‘수복지구’라불리는지역이다.행정구역상으로,경기도연천과강원도철원(김화)화천양구인제고성양양(속초)등이해당한다.미국은이지역을‘공산권에서해방된첫지역’이라의미부여한바있고,한국정부는헌법영토조항을바탕으로‘본래대한민국의영토인데일시잃었다가되찾은지역’이라는뜻에서수복지구라지칭했다.
수복지구는해방과한국전쟁을전후로일제,북한,유엔군사령부(사실상미군),남한의통치를차례로받았다.해방과동시에약5년동안북한체제하에있었으며,한국전쟁기유엔군사령부의통제하에있다가정전협정이체결되고도1년이훨씬지난1954년11월17일남한으로이양되었다.수복지구는일제식민지체제,북한인민민주주의체제,남한자본주의체제로의급격한변동을겪었으며,그에따라이곳주민들은해방전에는‘일제신민’이었고,해방이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민’이었으며,‘유엔군정의주민’을거쳐‘대한민국국민’이되어야했다.수복지구와이곳주민들의삶에한국근현대사의질곡과모순이고스란히응축되어있는것이다.
‘분단의경계지대’수복지구사람들의삶
그동안한국사회는수복지구에대한관심이너무적었다.저자는남한이이지역을인수할때는‘수복지구’라고명명하면서‘통일을위한시험지대’라고의미를부여했지만,그에비하여이지역을인수하는과정과그땅에서살아온사람들이겪은변화를학문적으로나정치사회적으로진지하게살피려는노력이부족했다고말한다.이지역민은‘북한땅’‘북한사람’이었다는점에서오랫동안불신과차별을받았기때문에,지역내에서도자신들의역사와삶이‘약점’으로여겨져‘수복지구’‘수복민’이라는언급을꺼려할수밖에없었다.‘수복지구’라는이름은잊혔고그이름조차생소해졌다.
저자는한국전쟁과냉전적인국제적역학관계남북관계속에서불과10여년만에급격한체제전환을겪은지역민들의삶을찬찬히살펴보아야한다고말한다.이곳주민들이자발적으로체제를선택한경우도있지만,대개는국제관계와남북관계속에서벌어질수밖에없던문제들이었다.수복지구주민들의삶도극단적으로대립하는남북한두체제사이에서살아남고적응하기위한부단한노력과갈등으로채워졌다.수복지구는이러한경험과상처를역사로가지고있다.이것이‘분단의경계지대’에처한수복지구(민)의모습이었다.저자는수복지구에서살아온사람들의삶을한국근현대사의영역으로끌어들이는것은학문적정치사회적으로그들의삶을이해공감하고상처를치유할뿐아니라,슬기롭게미래를대처하는하나의길이될것이라고강조한다.
사례지역:강원도인제군
저자는한국전쟁전후前後수복지구의체제변동을강원도인제지역의사례를중심으로아주생생하고도체계적으로그려낸다.
한반도의분단처럼강원도인제군은38선과군사분계선에의해분단되었다.해방직후미소의38선획정으로인해대부분의지역(서화면북면인제면기린면일부남면일부)이38선이북으로,나머지지역(기린면일부남면일부)이38선이남으로나뉘었다.38선이북의인제지역은인제군으로보전되었고,38선이남의인제지역은홍천군신남면으로편입되었다.한국전쟁이후에는38이북인제의대부분이남한에편입되었지만,서화면의일부(이포리,서희리,가전리,심적리,장승리)는군사분계선이북에속해있다.해방직후북한체제를경험했던대부분의인제지역이전쟁이후남한체제하로들어왔지만,인제는여전히분단상태에있다.
저자는수복지구인제군이라는하나의지방사회를중심으로,시기적으로는일제말부터수복시기까지,지역적으로는남과북을중층적으로아우르는역사를서술한다.그리고각시기마다경제적토지소유관계,정치적권력구조,국가구성원으로서의정체성변화등을추적한다.수복지구중에서도강원도인제지역의사례를촘촘히살피면서도,그지역(민)이한체제에서다른체제로편입될때남북분단상황에서지역주민들의삶의변화가어떻게구현되었는지를한국근현대사는물론냉전사적인맥락에서파악한다.때문에이책은과거북한지역에대한연구이자,한국전쟁의장기영향에대한연구이다.나아가분단극복을위한방안을역사적경험속에서찾으려는시도이다.
이책의제1부는해방직후북한체제하에서인제군을비롯한38선이북의접경지대가어떻게관리되고변화했는지를다룬다.이를위해일제식민지시기의지방조직및지역주도층,사회경제적상황과주민의동향들부터이야기를시작한다.이어서해방이후북한의인민민주주의체제하에서이들의재편과변화를살핀다.제2부에서는한국전쟁이후이지역이남한체제로편입되는과정을다룬다.전쟁이전에구축되었던북한체제가전시전후유엔군정기를거쳐남한체제하에서어떻게변모했는지를살펴본다.
방대한문헌자료수집과수년간의현지조사및구술채록
이를위해저자는방대한문헌자료를수집분석하는한편수년간현지조사를실시하여현지경험자들의구술을채록했다.
저자는북한통치기의지역사회변화를살피기위해한국전쟁중에미군이탈취하여미국립기록관리청NARA에소장되어있는‘노획문서’(RG242,RecordsSeizedbyU.S.MilitaryForcesinKorea,CapturedKoreanDocuments)를수집분석했다.이자료들중에일부가국내에소개된바있지만,저자는국내에출간되지않은자료들까지수집하여해방이후북한의인민민주주의체제구축과그로부터초래된주민들의의식변화까지규명했다.북한통치기의인제를비롯한강원지역인민위원회선거와군중동원속주민들의모습사진,조선신민당북조선공산당북조선노동당입당원서,강원도당이인제군당에파견한당원간부명단등은매우흥미로운자료들로서,국내에입수되지않은새로운자료들이다.
저자는한국전쟁이후인제지역의유엔군정과남한체제로의편입을분석하기위해미국립기록관리청이소장한미국정부와군부가생산한문서들은물론한국정부국회군軍자료와현지조사를통해지역사료와주민들의증언을수집했다.이과정에서《농지관계철農地關係綴》(인제면,1957~1961)을발굴하기도했는데,이자료는수복지구농지개혁을전후로한토지소유관계의변화를추적하는데핵심적인자료이다.저자는이자료를통해수복지구농지개혁의구체적인과정과의미등을규명하고,북한통치기인제군토지개혁과비교한다.나아가수많은관련자료들을분석하여수복이후토지소유관계,권력구조와지역사회동향,주민들의의식변화등을밝힌다.
한마디로말하면국내외를넘나든문헌자료수집과장기간의현지조사를통해수복지구인제지역주민이겪은남북한체제를국제관계남북관계국가와민의관계라는세층위에서의변화를복합적으로펼쳐보인다.
수복지구의경험이오늘날우리에게시사하는것들
구체제와신체제의단절과지속
수복지구의체제전환은일제식민지배,북한체제,남한체제간의단절과지속이거듭하는과정이었다.북한은구체제인일제식민잔재를제거하고신체제로서인민민주주의를구축하고자했고,남한은반공주의를바탕으로북한체제를제거하고자본주의를이식하려했다.그과정에서일제식민잔재의청산과재등장이반복되었으며,남북한의냉전적인식및체제경쟁이결부되었다.
그런데신체제의구축및이식과정에서구체제와의연속적인모습들이나타나기도했다.북한통치하의인제지역의정치권력구조도기본적으로는빈농을중심으로새롭게짜였고일제잔재와반민족행위자의철저한청산이부르짖어졌지만,한편으로는일제시기관료유지층이과거그들이활동했던분야와비슷한곳에배치되었다.인제군에서의북한체제는기본적으로는혁명이었지만,부분적으로일제로부터연속되었다.상호모순적으로보이는혁명과연속이동시에이루어질수있게한것은‘갱생更生’이었다.
38선이북중동부지역이남한으로편입되었을때의구체제와신체제의관계는조금더복잡했다.북한체제에대한부정과연속,일제잔재의부활,남한체제의이식등이얽혔다.지역권력구조재편의메커니즘은반공주의였고,‘인민’이었던주민들도반공주의를통해대한민국국민으로‘재탄생’했다.
38선이북지역에대한통치권문제
저자는38선이북에위치한이지역이남한으로이양되는과정이순탄치않았다고하면서,북한지역에대한통치권문제를제기한다.
1950년가을한국전쟁기국군과유엔군이38선이북지역을점령했을때이승만정부는북한지역통치와관련하여아무런공식적인권한을행사하지못했다.38선이북에위치한수복지구도그연장선에서유엔군사령부에의한군정軍政(militarygovernment)이실시되었고,이승만정부는미국,유엔군사령부,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등의이양결정을기다려야했다.그결과한국전쟁정전협정이체결된지1년이훨씬지난1954년11월17일유엔군사령부의수복지구행정권이양으로비로소남한이편입할수있었다.더구나이지역을이양할때,최종적인법적dejure지위에대한이양은보류하고,유엔군사령관이이지역에대한군사적관할권을보유하고,남한정부는사실상의defacto행정권을인수하는방식으로처리되었다.이러한방식의수복지구이양은‘한국의법적인통치권이북한지역으로자동적으로확대되지않는다’는원칙의재확인이기도했다.
현북한체제에이변이발생할경우당연히대한민국의통치권이북한지역으로확대될것이라고생각하기쉽다.저자는수복지구의경험을볼때문제가간단히않음을직시해야한다고강조한다.
수복지구농지개혁과남북간법적쟁점
저자는수복지구에서발생한남북간의복잡한법적쟁점들과그전개를서술한다.남한은헌법의영토조항을근거로북한지역을남한영토로간주하고북한체제를인정하지않았지만,실제로38선이북중동부지역을편입하여남한의제도를이식적용하는과정에서여러가지모순적상황에부딪혔다.대표적인예가수복지구농지개혁이었다.
이승만정부는이지역을인수하면서수복지구라명명했지만,이지역을어떻게편입재건할것인가에대해서는체계적인준비가되어있지않았다.특히1946년토지개혁과유엔군정이래복잡해진토지소유관계에대한이승만정부의접근태도는반공주의적이었으며,비체계적이었다.농지개혁실시를통한토지소유관계정리까지3년이상의시간이소요되었다.결국수복지구에농지개혁법(1949년제정,1950년개정)을적용하는방식으로토지소유관계를정리하기로결정했고,1958년4월에〈수복지구농지개혁시행령에관한특례〉가공포되기에이르렀다.
남한에서제정되었던농지개혁법을수복지구에적용하는방식으로수복지구의토지소유관계를정리하는것은중요한함의가있었다.이는‘38선이북~휴전선남쪽지역’과남한이대등한‘통일’을이룬것이아니라,‘기존의’남한에이지역이일방적으로‘편입’되었음을보여주는단적인조치였다.그동안북한지역에는남한의통치력이미치지못했으며당연히남한의제도가북한지역에시행될수도없었는데,그랬던북한지역에,일부작은지역이지만,남한의제도가확대적용될수있게된것이었다.이는다름아닌남한의‘체제이식’이었으며,이지역에서는이와같은‘남한으로의편입’이진행되었다.그런데냉전적사고에의한남한제도의이식은큰성과를거두지못했다.
수복지구,분단극복의고리
수복지구의경험은남북한의통일이전쟁과점령이라는방식을통해어느한쪽체제에일방적으로‘편입’하는방식으로이루어질때어떠한결과를가져올것인지를매우실질적으로보여주며,상호존중의체제통합및전환과그에대한체계적인준비의중요성을일깨운다.
수복지구의체제전환은한반도를둘러싼국제적역학관계,남북관계,남북한국가와민의관계라는세층위의문제들이복잡하게얽혀진행되었다.이는한반도의분단극복이이세층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