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과거가소통하는역사서를꿈꾸며,
역사를읽는또다른창窓을열다!
과학적?실천적역사학의수립을통해한국사회의민주화와자주화에기여하기위해창립해현재700여명의학자들이참여하는,명실상부하게한국역사학계를대표하는학회로자리매김한한국역사연구회와역사의대중화에새지평을연푸른역사가함께펴낸‘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가《한국현대사》(전2권)를끝으로완간되었다.역사학계의중진학자들이참여해총10권(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각2권)으로완간예정이었던‘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지난2015년《조선시대사1─국가와세계》와《조선시대사2─인간과사회》의출간으로첫걸음을뗀후이번에선보이는《한국현대사1―해방과분단,그리고전쟁》과《한국현대사2―경제성장과민주주의,그리고통일의과제》출간으로전10권완간했다.‘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전시대전분야를망라해서서술하는대신,시대별로그시대를바라보는새로운틀을제시하고이를바탕으로소주제를선정해그동안축적돼온학계의연구성과를압축정리해깊이있는역사읽기를시도했다.
소통하는역사를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의편찬작업은2002년부터시작되었다.이후‘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편찬위원회’를구성,집필원칙과편찬일정을정하고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등각시대별로팀을만들어기획안을마련하고그에맞는필자를선정해집필에들어갔다.60명에가까운필자들이참가해공동작업으로10권의책을만들어내는일은지난한과정이었다.다양한필자들의의견을조율하고모으는작업부터완성된원고들을팀별로수차례검토하고수정하는과정에서열띤토론이벌어지기도했다.
이러한과정은지금우리의시대를돌아보게도한다.과거‘베를린장벽의붕괴’가상징하듯이세계는동구사회주의국가들의개혁과개방으로냉전이종식되면서체제와이념의대립보다는화해와교류의방향으로나가며21세기를맞이했다.한반도도1998년‘현대정주영회장의소떼방북’과2000년남북정상회담을계기로남과북이화해와교류?협력의방향으로나아갔다.
그러나21세기도18년이지난지금,세계는다시대립으로치닫고있다.이스라엘과팔레스타인의분쟁,미국과알카에다등이슬람진영의대립,시리아내전과이슬람국가의등장등중동내부의갈등과분쟁,러시아와우크라이나의분쟁등이계속되고있고,동북아시아에서도역사갈등과영토분쟁이치열하게전개되고있다.이전과차이가있다면이념대립보다는종교?문명대립의성격이크다는것이다.
그렇다면한국사회는어떠한가.안타깝게도한국사회는시대착오적인이념과지역갈등이여전한가운데신자유주의로인한경제적?사회적양극화가빠르게진행되는속에서세대와계층갈등까지심화되고있다.그리고천박한자본주의의이윤논리와정치사회적부패의사슬에의해일상생활의안전까지도위협받고있다.250명의어린학생들을비롯해304명이죽은‘세월호참사’는이러한한국사회의모순을상징적으로나타내주고있는사건이라고할수있다.
인간에대한예의와배려가사라진사회,국가가책임져야할안전과복지도국민스스로해결해야만하는사회,정의는실종하고신뢰와희망대신불신과체념만이가득찬사회에서과연역사학은어떠한역할을할수있을것인가?이‘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한국역사의체계화와소통에기여하기를기대한다.
역사는‘현재와과거의대화’라고했다.현재의입장에서과거를고찰하고그를바탕으로미래를전망하는것이다.역사가는이를이루기위해역사를부단히새로써야한다.이러한취지에서기획된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새로운시각에서한국역사를고대부터현대까지시대별로조망했다.
대전환의시기,
한국의민주주의발전과분단,대결극복의역사를살피다
한반도에서대전환의역사가전개되기시작됐다.대전환의서막은2016년10월점화된‘촛불항쟁’이었다.2만명에서시작했던촛불집회참가자는2017년3월10일20차집회까지누적기준으로1600만명을돌파했다.촛불집회는장기간이어진대규모집회임에도단한건의폭력사태도일어나지않는등유례없는비폭력?평화집회로우리나라민주주의의새로운역사를썼다.마침내헌법재판소는2017년3월10일오전11시21분대통령탄핵심판선고에서“피청구인대통령박근혜를파면한다”는주문을확정했다.현직대통령파면은대한민국헌정사에서최초의일대사건이었다.
그리고촛불항쟁의힘으로문재인정부가등장했고,‘촛불항쟁’의거대한파도는곧바로평화와통일문제로흐름이이어졌다.두차례의남북정상회담,역사적인첫북미정상회담은역사의대전환이새로운단계에들어섰다는것을보여줬다.이책이남과북의현대사흐름을민주주의발전과분단,대결을극복하는과정으로이해하고,대전환이진행되고있는현재와미래를진단하는데조금이나마도움이되었으면하는바람이다.
학계각분야의권위자13인이,
해방,분단,전쟁,경제성장,민주주의의틀로바라본한국현대사
이책은한국현대사를‘해방과분단,그리고전쟁’의시기(1권,정병준?정용욱?김광운?정창현?안김정애?기광서?정진아?김보영?노영기?김수자?양영조)와‘경제성장과민주주의,그리고통일의과제’시기(2권,홍석률?박태균?정창현)로나누어살핀다.
먼저한국현대사의첫시기는광복(해방)부터한국전쟁까지의8년사로현대사를압도적으로규정하는분단이형성되고고착화된때다.이시기는해방된후미국과소련이38선을사이에두고진주한국제적규정력속에서자주적으로민족통일국가를수립하려고시도했으나남북분단으로귀결되고,남북분단이전쟁으로까지치달은희망과좌절의시기였다.
두번째시기는남과북으로분단돼자본주의와사회주의체제로변화돼성장,발전,변화의길을걸은때다.전쟁을거친후평화나통일이아닌대결과체제경쟁이지속되는가운데남과북은서로다른가치관과사회구조를형성했다.남한에서는1인독재와군사독재가장기간유지되는가운데1960년의4월혁명,1964년6?3항쟁,1970~80년대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이어지는대중운동을통해민주주의가뿌리를내렸고,2017년의촛불항쟁을통해한단계성숙한민주주의로나갈수있는기반을마련했다.
반면북한에서는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이어지는장기집권체제가이어지면서국제정세의변화에제대로대응하지못하는한계를드러냈고,1990년대에들어와‘고난의행군’이라는최악의경제난을겪은후개발과개방의길을모색하고있다.
남과북은2000년첫남북정상회담에서6?15공동선언을발표하고,2007년두번째남북정상회담에서10?4선언에합의해화해와협력단계로들어섰고,이후다시나타난10여년의남북간대결시대를극복하면서2018년4월‘판문점선언’을통해새로운시대를열어가기위한초석을다지고있다.
《한국현대사1─해방과분단,그리고전쟁》의구성과내용
《한국현대사1─해방과분단,그리고전쟁》에서는‘해방’과‘분단’과‘전쟁’이라는주제하에해방이후의자주적국가건설운동,미?소의점령과점령정책,모스크바3상회의결정과신탁통치파동,좌우합작운동과남조선과도입법의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탄생,미군정기의경제와사회,단정노선과통일노선의갈등,남북연석회의와4?3사건,이승만정권의출범,한국전쟁의전개과정과영향등을꼼꼼하게살핀다.
〈해방과자주적국가건설운동〉에서는태평양전쟁기한반도를둘러싼여러국가들의대응과짧은해방-긴분단이시작되는원인등을개관한다.일본의패전과함께한국은해방되었다.국내외독립운동세력들은결정적시기를맞아결정적투쟁을벌이려시도했다.해방후한국의지위를둘러싼연합국과한국의인식차이는명백했다.2차세계대전기연합국은카이로선언을통해한국의자유와독립회복을약속했지만,자치능력이없다고판단해다자간국제신탁통치를대한정책으로선택했다.한국인들은즉시독립의자격과능력이있다고생각했고임시정부와건국준비위원회등을통해이를실현하려했다.연합국의38선설정은군사적편의와정책적목적이결합된것이었고,한반도에미소,남북,좌우라는3층위의갈등구조를불러왔다.건국준비위원회는자주정부수립을위한정치공간을확보했으며,한국인들에게자유로운정치공간을열어주었다.미소의점령과군정이실시되었다.미소는우호적정권수립을시도했는데,미국은국제적우위를,소련은국내적우위를정책적지렛대로활용했다.미소대결과남북분단,좌우의사상적대립속에민족적?계급적갈등이라는일제의유산,강한인적유동성,애국자들의귀향이결합되면서한국정치는폭발성을띠게되었다.
〈미?소의점령과점령정책의실시〉는미군의남한진주와점령정책실시,소련군의북한진주와점령정책실시과정?영향등을살핀다.1945년광복,해방의날은밝았지만,미국과소련의한반도분할점령으로한국민은통일?독립을이루지못했다.미국과소련은자국의전후세계전략과동아시아정책에근거하여북위38도선을경계로각자일제강점기제도와질서를해체하며,새로운질서와규율을만들어갔다.이과정에서두국가모두현지한국인들을끌어들여정도의차이는있지만,한국인화Koreanization정책을추구했다.미국과소련은2차세계대전의연합동맹국으로서서로협의를통해한반도문제를해결하는모습을보여주고자했지만,결국그것은분단의고정화였고,동족상쟁의비극을잉태하는과정이었다.더불어전후미국과소련의점령정책은한국현대사흐름에커다란영향을미쳤으며,오늘날에도중요정치적변곡점마다지속적으로작용하고있다.
〈모스크바3상회의결정과신탁통치파동〉에서는모스크바3상회의결정과그것이국내정치세력에미친영향,신탁통치파동등을개관한다.1946년12월모스크바에서열린미국,영국,소련의3국외상회담에서논의된한국문제결정서와이결정서를둘러싼국내정치세력의분열은해방후정치상황과역학관계에중요한영향을미쳤다.모스크바외상회담에서미국은“미,영,중,소대표들이모든권한을행사하고1회연장이가능한5년간의신탁통치를실시하자”고제안했다.소련은“조선임시민주정부를수립하고,신탁통치도이정부와협의하여결정하자”고했다.논란끝에미국과소련은결정안을확정했다(1945.12.27).모스크바3상회의의주된결정사항은미소공동위원회를열어조선임시민주정부를수립하는것이었다.그리고신탁통치는조선임시민주정부와협의하여결정한다는것이었다.
〈좌우합작운동과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해방정국에서벌어진좌우합작운동전개과정과결과,좌우합작운동와중에설치된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활동과한계등을살핀다.역사에가정은없다지만해방정국에서국내외정치세력들이하나의세력으로단합했더라면강대국에좌우되지않는독립적이고자주적인단일정부를수립할수있었을까?좌우합작운동은2차세계대전의대일본연합전선당사국인미국과소련양강대국에의해1945년8월에한반도가분할된이후해방정국에서이를극복하고자하는이른바중도파로불리는국내정치세력들의움직임으로나타났다.좌우합작운동와중에설치된남조선과도입법의원(1946.12.12)은미군정이군정초기부터자신들의남한지배에정통성을부여하기위해필요했던한국인대의기관의도를관철시킨것으로,1차미소공위실패(1946.5.8)후좌우합작과함께중도파육성을위해미군정에의해설치되었다.남한단독정부수립전인1948년5월19일에해산된입법의원은법률공포와심의등을수행했으나미군정의입김에서자유롭지못했기때문에독립국가의입법기구와는거리가멀었다.
〈북한정치사회의변화와국가권력의형성〉에서는해방후북한지역의권력구조변화와새로운질서구축,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탄생과정등을개관한다.해방후북한전역에서자생적으로조직된자치기관인각급인민위원회는최초의권력기관이었다.각급인민위원회는좌우연합의성격을띠었으나모스크바3상회의결정으로인한좌우분열과조만식그룹의축출로인해좌파가독점적주도권을쥐게되었다.1946년2월김일성이이끈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북한최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