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16.42
Description
“한 사람이 가고 한 문장이 지다”
김서령이 남긴 영롱한 ‘인생 레시피’

빛나되 눈부시지 않은 ‘서령체’
이 책은 한 문장가가 세상에 흩뿌린 마지막 광휘이고, 한편으로는 그를 위한 기념비이기도 하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김서령이 그간 음식과 관련해 썼던 글을 그러모은 그의 투병 막바지에서였다.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의 말씀대로 “보석처럼 반짝이는 조각글”이 흩어져 사라져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된 편집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서령의 인간 됨됨이를 그리워하고 김서령의 글을 아끼는 이들을 위한 일종의 유고집이 되고 말았다.
해서 통상적인 ‘머리말’ 대신 그의 글 중 한 편이 앞자리를 차지한 파격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눈여겨보기를 당부하고 싶은 것은 김서령의 글 자체이다. 형용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 그의 글솜씨는 ‘서령체’라 불릴 정도로 자기만의 빛깔을 빚어내서다. 《여자전》 등 그의 전작들이 글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서 많은 아낌을 받은 이유다.
염무웅 선생은 그의 글을 두고 “읽을 때마다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어휘와 생생한 비유에 감탄했고 글이 만들어내는 삶의 진실에 전율 했어요”(7쪽)라고 했다. 그러면서 “안동 지방 양반가의 내실 풍속과 사랑채 역사를, 그들만의 독특한 언어와 감정세계를 속속들이 알고 손에 잡힐 듯 묘사하는 작가를 이제 우리 문학은 어디서 찾아야 하나요”라고 아쉬워했다. 자청해서 추천사를 써준 심리기획자 이명수 선생도 “당대의 문장가란 수식을 넘어서는 치유적 힘이 그녀의 글에 있었다”고 추모하면서 “내밀한 끌림이 있고 읽으면 단정해지고 맑아졌다. 문장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의 모든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김서령을 통해 알았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한 꼭지도 버릴 수 없고, 한 구절도 흘려보내기 아까운, 일단 한 편만 읽는다면 놓을 수 없는 음식 에세이, 그 이상의 에세이이다. 또한 잊혀져가는 고향의 정취를 되살려낸 일종의 풍물지이기도 하고, 삶의 지혜가 얼비치는 인생론이기도 하며 빛나되 눈부시지 않은 문장 전범이고 한 책이다.
저자

김서령

칼럼니스트,안동출생,경북대국문과졸업.남의이야기듣기를즐겨급기야사람을만나이야기듣는것을직업으로삼게됐다.사람이우주이며한인간의생애안에가히우주의천변만화가담겨있다는생각에동의한다.숱한사람들을만났지만지난세기초중반한국여자로태어나우리역사의우여곡절을온몸으로밀고온분들,그들의삶앞에서전율의농도가가장컸다.이책은그감동의기록이다.앞서간사람의발자국이우리들의가장훌륭한교과서가된다.과일이서리를맞아야단맛이돌고향기를풍기듯인생도고난속에서익어간다는것을믿는다.여기실린이야기들이지금행복한사람에겐삶의확장을,지금불행한사람에겐삶의깊이를줄수있었으면좋겠다.팔뚝이잘린사람앞에선손가락이잘린고통쯤은아무것도아닐수있다.앞세대가몸부림치며살아온이야기가뒤세대의가슴을울리기를,그울분과통한이서로를연대하고위안하고사랑하게만들기를,더불어고통을뚫고나와더너그럽고강인해진분들을통해인생의의미와가치를통찰해내기를희망한다.한때는국어교사였다가신문,잡지에칼럼을쓰기시작했다.지금은사라진잡지[샘이깊은물]에서인물인터뷰의매력에눈떠인터뷰칼럼을주로써왔다.펴낸책으로『김서령의家』,『김서령의이야기가있는집』,『삶은천천히태어난다』,『참외는참외롭다』등이있다.2018년10월,향년62세를일기로세상을떠났다.

목차

차례


아름다운사람김서령

먼저한꼭지_외로움에사무쳐봐야안다,배추적깊은맛을
*‘철철문장’상의할매의‘보단지타령’

책을내며_옛부엌의아침과저녁들이앞다퉈떠오르니
*“편차고하다맛을베레뿐다”

1부아득하거나아련하거나

어머니의마술,콩가루국수
*히수무레하고부드럽고슴슴한
엄마의레시피를귓전으로흘려들었다
내제사상에는호박뭉개미만있어도될따
그순간생에감사했다
콩간데에미손간데라
무언가고프고그리운이들에게찔레순맛을
여름더위물렀거라,야생취나물무침
삶이‘삶은나물보다’못할리야
*고요한시간겸허한마음으로
입이굼풋하믄좋은소리가안나오니,군입거리
백석이그리도좋아하던가자미
*야위어서푸르른가자미한토막
육개장과하수상한토란의만남

2부고담하거나의젓하거나

‘명태보푸름’의개결한맛이여
*“상미하게”“이식하시게”
슴슴한무익지,‘니맛도내맛도없는’
*손님상엔꿀넣은‘약지’
달콤함을옹호한다
수수조청고던날저녁
*수수는수수몫이,내게는내몫이
봄의맛,햇장타령
*콩나물밥에달래간장!
수박의5덕德을찬讚하노라
*겨울수박은수박이아니다
새근한‘증편’의색깔고운자태라니
‘난젓’,물명태와무가빚어낸싱그러운단맛
샤또오브리옹도흥칫뽕!정향극렬주
두견주한잔받으시라
*한겨울사랑방에핀꽃,안동다과상
순하되슬쩍서러운갱미죽
*가을새벽,홀로차를마시며

3부슴슴하거나소박하거나

팥소든밀가루떡,‘연변’을아시나요
들큰알싸,먹을수록당기는집장
쑥국한그릇에불쑥와버린봄
*“님은쑥을캐겠지”
*나의〈오감도〉
*쑥을뜯으며엄마를생각하다
그노랗고발갛던좁쌀식혜는어디로가버렸나
*‘식혜르네상스’유감
*안동‘알양반’은안동식혜를꺼렸다
덤덤하나반가운맛,감자란놈
*아버지가못내잊지못한,그제주고구마
밤에보늬가있는까닭
물고기잡이인술이야기둘
끝내다못쓴간고등어이야기

편집후기_한사람이가고한문장이지고

출판사 서평

슬쩍서러운고향의맛에대한헌사
배추적에관한추억이그렇다.달고살짝고소하고은은하게매콤한겨울배추에밀가루를묻혀구워낸‘배추적’은무슨맛일까.밤마실온마을처녀들과아지매,할매들이겨울밤입이궁금할때한두레구워먹던,지금은낯선그음식말이다.밍밍하고싱겁지만‘깊은맛’을가진배추적의맛은생속을가진이들로선제대로알수없으리라.헛헛한속을달래주던배추적은어디서맛볼수있을까.
햇볕을실컷받고천천히여문쌀알을다시낮은열로뭉근히익힌후오래묵은간장을똑똑끼얹어먹는갱미죽은어떤가.“아무것도안넣은흰죽,입안의아픈부분을순하게따스하게다정하게어쩌면슬쩍서러운듯도하게,상처에바르는연고처럼솨르륵도포하던그것!”(188쪽)아플때엄마가동솥에끓여주던그옛날의흰죽을떠올리는이는행복하리라.

스러져가는옛것에보내는연서
음력오뉴월에담가먹던찹쌀술‘정향극렬주’가간신히명맥만이어가고있다.“무슨무슨블루라벨이니송로버섯향이난다는샤또오브리옹이니등이름난술을웬만큼은마셔봤다.아아,그러나300년전정향극렬주,정성이진주처럼녹아든그술에비한다면다만싱겁고머쓱할뿐”이란다.곁에이런술을두고도우린와인과사케의목록만을주워섬긴다니!(183쪽)
“짜지않지만간이맞고달지않지만들큰하고맵지않지만알싸한이런장이,슴슴하고덤덤하고쿰쿰하고은은한”집장에대한‘증언’도있다.콩과보리와쌀을발효시켜가루를내고엿기름을부어꺼룩한즙이생기게한뒤고추씨가루를얹고무와가지,버섯등건더기를넣은집장은‘밥도둑’이어서이를언급하지않고넘어가는것은결례고폭력(209쪽)이라는데이를어디가서맛볼것인가.

웅숭깊은삶의지혜로그득한인생론
조율이시,대추?밤?배?감이라해서조상께제사를드릴때기본으로올랐던밤의속껍질보늬에서도삶의교훈을길어낸다.“곶감이란형태로가공되어겨울을나고대추가쪼글쪼글마른채겨울을난다면밤은수분이사라지면존재이유까지위협받잖아요.겨우내제사상에올라가려면몸을보늬로,야문껍데기로무장할수밖에없었던겁니다”면서“매사입장바꿔생각할줄알아야한다니깐요.그래야세상의전체구도가보이지않겠어요?”(253쪽)란깨달음을설파한다.
넌지시“범사에감사하라”는귀띔도한다.지은이엄마이야기다.“공중에휘날리는복사꽃이파리가좋아그순간생에게감사했다.천지가이토록고우니인간으로태어난것은얼마나고마운일인가.”(71쪽)그엄마가“시조모와시조부,홀로된시어머니와어린시동생둘,그들의음식수발과옷수발과한해열세번이나지낼제사를홀로감당해야할운명을목전에둔”신행길에서있을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