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10월항쟁,민간인학살의시발점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진실화해위원회)는대구10월항쟁을“해방직후미군정이친일관리를고용하고토지개혁을지연하며식량공출을강압적으로시행하는것에불만을가진민간인들과일부좌익세력이경찰과행정당국에맞서면서발생한사건”으로정의하면서이와관련해일어난민간인학살사건을조사했다.
조사결과,항쟁진압과정에서비무장민간인상당수가재판절차없이불법적으로살해된사실을확인했다.희생자들은①항쟁참가자중교전지역이아닌곳에서비무장상태로재판등적법절차를거치지않고살해된사람,②항쟁참가자의가족이라는이유로항쟁참가여부와무관하게살해된사람,③면장ㆍ구장ㆍ마을대표등지역유지중항쟁참가여부와무관하게살해된사람,④토벌작전중이던군경의무차별검문과진압때문에살해된사람등다양했다.
‘국가’라는‘특수한권력’의이름으로자행된‘국가폭력’
2005년11월15일,농민대회시위도중경찰의과잉진압으로2명의사망자가발생하자노무현대통령은대국민사과담화를발표했다.“공권력은특수한권력입니다.정도를넘어서행사되거나남용될경우에는국민들에게미치는피해가매우치명적이고심각하기때문에공권력의행사는어떠한경우에도냉정하고침착하게행사되도록통제되지않으면안됩니다.그러므로공권력의책임은일반국민들의책임과는달리특별히무겁게다루어야하는것입니다.”
그러나한국현대사에서‘특수한권력’의행사는‘냉정하고침착하게행사되도록통제되지’못했다.“국민의모든자유와권리는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또는공공복리를위하여필요한경우에한하여법률로써제한할수있으며,제한하는경우에도자유와권리의본질적인내용을침해할수없다”는대한민국헌법제37조2항이무색할정도로법적절차없는살해가빈번했으며,대규모민간인학살도여러차례이루어졌다.‘국가’의이름으로야만적인‘폭력’이공공연히자행된것이다.
《한국현대사와국가폭력》은진실화해위원회의조사결과를바탕으로과거사정리의역사적의미및그동안은폐되었거나왜곡되어왔던한국현대사의‘국가폭력’을대중과공유하기위한책이다.대구10월항쟁과제주4ㆍ3사건,여순사건등해방직후좌우의이념갈등이라는소용돌이속에서발생한민간인집단학살뿐만아니라국민보도연맹사건,미군의민간인포격등한국전쟁이라는혼란한상황에서벌어진국가폭력,권위주의정권의통치아래에서발생한시국사건,간첩조작사건,의문사사건등각종인권탄압사건을꼼꼼하게살핀다.이를통해그동안진행되어온과거사청산의성과를평가하고,향후의방향과과제를새롭게설정하는데기여하고자한다.
《한국현대사와국가폭력》에서살피는대한민국국가폭력
전쟁전야―이념갈등속의민간인학살
이책은시대순으로3부로구성되어있다.한국전쟁발발을기준으로나눴지만,다소겹치는부분도있다.또해방이후1990년대초까지한국현대사의주요사건을다루고있지만,모든사건을포괄하지는못했다.함께묶기에너무비중이큰1980년광주민주화운동을비롯해진실화해위원회에서미처취급하지못한여러사건들이제외되었다.
제1부〈전쟁전야―이념갈등속의민간인학살〉은해방직후좌우의이념갈등이라는정치적소용돌이속에서희생된민간인집단학살문제를다루었다.1장〈민간인학살의시발점,대구10월항쟁〉에서는‘좌익주도의폭동’이라는시각때문에오랫동안정부차원에서진상규명시도조차하지않았던‘대구10월항쟁’이발생한원인,전개과정,피해현황,향후영향,진실화해위원회의조사결과와한계등을종합적으로살폈다.
2장〈제주4ㆍ3사건과브레이크없는국가폭력〉은1947년3월1일3ㆍ1절기념대회에참가한후관덕정광장을향해행진하던참가자행렬에경찰이발포하여6명이사망한사건을기점으로1948년4월발생한소요사태,그리고1954년9월21일까지제주도에서발생한무력충돌과그진압과정에서많은주민들이희생된제주4ㆍ3사건을상세하게들여다본다.이장을집필한전명혁은45개마을에서100명이상씩희생된잔혹한국가폭력의실상을파헤치며제주4?3사건을“미국의후견으로등장한국가가자신의존재를구축해나가는출발점”이자“제도화된폭력의담지자인국가가폭력을행사했을뿐아니라,폭력이국가형성을완성시키는기제로작동하면서‘공식역사’로대체되어가는과정”이었다고평가한다.
3장〈여순사건,빨치산토벌과정서희생확대〉에서는‘1948년10월19일여수주둔제14연대소속군인들이반란을일으킨뒤,1950년9월28일수복이전까지약2년동안전남ㆍ전북ㆍ경남일부지역에서군경의토벌작전과정에비무장민간인이집단학살되고일부군경이피해를본’(진실화해위원회)여순사건을다룬다.여순사건은분단반공체제의이념장벽때문에오랫동안침묵속에묻혀있다가1997년여수지역사회연구소등시민단체의조사활동을통해수십년만에세상에드러나게되었는데,이장에서는반군과지방좌익의경찰?우익인사학살뿐만아니라진압군의민간인학살,토벌대의산간지역민간인학살,군경의반군에서이탈한군인들학살등을종합적으로세세하게살핀다.
전쟁과국가폭력
제2부〈전쟁과국가폭력〉은한국전쟁전후민간인집단학살문제와관련된주요사례를가해주체와사건의성격에따라다섯가지로분류하여정리했다.대부분은전쟁중에일어난사건이지만,국군의빨치산토벌과정에서발생한민간인학살은전쟁이전에도있었고전쟁중일어난민간인학살과도밀접한연관성이있기때문에함께서술했다.
1장〈인민군과좌익세력에의한민간인학살〉은특히한국전쟁중에많은희생자가발생한인민군과좌익세력에의한민간인학살을살핀글이다.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과거사기본법〉에의거하여인민군과좌익세력에의한민간인학살사건을총칭해서‘적대세력사건’으로분류했다.이른바‘적대세력사건’은한국전쟁발발이후인민군점령시기,군경에의한수복시기,1?4후퇴시기등세시기에발생했다.주로지방좌익에의한희생과인민군에의한희생사건,빨치산에의한희생사건등이많았는데,이장에서는공음면정씨일가의희생사건,영광지역희생사건,당진읍지역집단학살사건등의발생원인과전개과정등을구체적으로들여다본다.
한국전쟁이발발한직후이승만정부는국민보도연맹원등요시찰인들에대한단속과검거를단행했다.내무부치안국은1950년6월25일‘전국요시찰인단속및전국형무소경비의건’이라는통첩을일선경찰서에하달했다.이후6월말부터9월중순경까지육군본부정보국CIC와경찰,헌병,해군정보참모실,공군정보처소속군인과우익청년들이이들을연행,구금한후살해했다.이른바국민보도연맹사건이다.형무소재소자들또한이명령에따라체계적으로학살당했다.대부분의형무소에서는무기징역등중형이상의정치ㆍ사상범과주요보도연맹원을가장먼저학살했고,마지막으로후퇴가임박한시기까지몇차례에걸쳐정치ㆍ사상관련미결수와일반보도연맹원을학살했다.이른바형무소재소자집단희생사건이다.2장〈예비검속희생자들〉에서는바로이국민보도연맹사건과형무소재소자집단희생사건을대표적사례를중심으로분석한다.
3장〈부역이라는누명을쓴사람들〉은인민군점령지역을수복한후군경또는그하부조직이점령치하에서적에게협력했거나아군에게위해가되는행동을했다는이유로다수의민간인들을법적절차없이처형한‘부역사건’을살핀글이다.강화도를죽음의섬으로만든강화도민간인집단학살사건,경기도고양군금정굴집단학살사건등을세세하게고찰한다.
4장〈빨치산토벌과민간인희생〉에서는한국전쟁전후한국정부에저항하여봉기한좌익무장집단인‘빨치산’을토벌하는과정에서벌어진민간인집단학살사건을살핀다.한국전쟁중빨치산활동은전라남북도와경상남도일원의산악지대에서활발하게전개되었다.군경의토벌작전또한이일대에서집중적으로펼쳐졌다.이렇게빨치산과군경이충돌하는과정에서전남의영광,영암,함평과경남의산청,거창,함양등지의산간지역주민들은양측으로부터큰피해를입었다.특히당시빨치산토벌을감행하던11사단이전개한이른바‘견벽청야堅壁淸野’작전은작전지역내민간인희생을증폭시킨주요원인이되었다.이장에서는이러한민간인희생을종합적으로들여다본다.
1950년9ㆍ28수복이전,특히8월에서9월사이낙동강방어선이형성되던시기경상도해변가마을에는북쪽에서온피란민과피란을가지못한주민들이모여있었다.이곳에미군이여러차례폭격하여민간인학살사건이발생했다.5장〈난을피하다난을만나다〉는흥해읍흥안리사건과북송리사건등‘해변마을피란민폭격사건’과단양곡계굴사건등‘내륙의인민군점령지또는교전지폭격사건’을통해한국전쟁기미군의피란민공격문제를구체적으로들여다본다.
독재정치하의인권탄압
제3부〈독재정치하의인권탄압〉은이승만정부를비롯하여역대권위주의통치하에서일어난각종인권탄압사례들을시국사건,간첩조작사건,강제징집과노동운동탄압및의문사사건,언론탄압과언론인강제해직사건등네가지로분류하여정리했다.
1장〈시국사건〉에서는1952년과1956년대통령선거에출마하여이승만에대항했던조봉암과진보당에‘간첩죄’를덧씌워조봉암을사형시키고진보당을궤멸시킨진보당과조봉암사건,5ㆍ16쿠데타세력이자행한《민족일보》폐간및조용수사형사건,김일성이보낸‘특사’로볼증거가있는황태성을‘간첩’으로몰아사형시킨황태성사건,유신체제하의대표적인인권침해사건인인혁당사건과민청학련사건등여러시국사건을통해권위주의정권의인권탄압실태를들여다본다.
분단이낳은오랜반공독재시절동안우리에게는국가안보라는이름으로‘간첩’을조작했던어두운역사가있다.국민의지지와신뢰를받지못하는정권이‘국가안보’라는미명하에실제로는정치적반대세력을탄압하고‘정권안보’를위해무고한시민을간첩으로조작하곤했던것이다.2장〈간첩조작사건〉은울릉도간첩단조작사건등월북가족관련간첩조작사건,납북귀환어부간첩조작사건,재일동포유학생간첩조작사건등을통해이같은간첩조작사건의실체를촘촘하게살핀다.
3장〈인권의사각지대〉에서는박정희ㆍ전두환정권에서자행한녹화사업과강제징집,노동운동탄압,전향공작및의문사사건을들여다본다.정권이학생운동을억압하기위한수단으로국방의의무를악용한강제징집,선후배와동기들을감시하는‘프락치’활동을강요한녹화사업,노조간부를불법연행하고노조활동을감시하고도시산업선교회를탄압하는등다양한형태로이루어졌던노동운동탄압,비전향수형자를전향시키기위해5단계의공작을행했던전향공작,민주화운동탄압과정에서각종공안기관들이개입하여사인을조작하거나은폐한여러의문사사건등을세세하게고찰한다.
4장〈언론탄압과언론인강제해직〉은권위주의정권시기벌어진각종언론탄압과언론인강제해직사건을살핀글이다.1974년10월동아일보기자들이유신체제의언론탄압에맞서〈자유언론실천선언〉을발표하자광고주들에게압력을넣어동아일보와자매회사의광고를해약하도록했던《동아일보》광고탄압사태,‘사이비기자’척결과언론사주의비리철폐를내세워정부에비판적인언론을길들이려했던신군부의언론통폐합사건등을꼼꼼하게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