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빙실자유서 (중국 근대사상의 별 량치차오, 망명지 일본에서 동서 사상의 가교를 놓다)

음빙실자유서 (중국 근대사상의 별 량치차오, 망명지 일본에서 동서 사상의 가교를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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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110년 만의 완역과 정본화 『음빙실자유서』. 《자유서》는 1903년 상하이 광지서국에서 처음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이후 중국에서는 1936년에 발간된 《음빙실합집》 2책에 몇몇 편이 추가되어 발간되었다. 일본에서는 1904년에 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1908년에 언해본이 발간되었다. 이번의 번역은 1903년에 발간된 광지서국본을 기본으로 하여 다섯 종류의 판본을 모두 비교하고 보충해 완역하고 정본定本을 만들었다. 번역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이 담당했다. 한림과학원은 2007년부터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인문한국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림과학원의 아젠다는 ‘동아시아 기본개념의 상호소통 사업’으로, 학계에서는 이른바 ‘동아시아 개념사 연구’로 통하는데 그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번역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인력은 모두 13명이다. 작업 기간은 중국사상 전공자인 강중기·양일모 교수를 중심으로 중국사·중국문학, 한국사·한국철학 전공자가 참여했다. 한문 전공자가 주축이지만 일본근대사상, 서양사, 국문학 전공자 등이 참여한 것도 이채롭다. 작업 기간은 총 6년이 소요되었다. 초벌 번역과 재벌 번역에만 4년이 걸렸고, 2년간 강중기·양일모 교수가 꼼꼼하게 교정했다. 판본 비교 및 꼼꼼한 주석도 주목되고, 량치차오 사상을 소개한 해제와 한국 수입을 소개한 해제 2편도 눈에 띈다. 번역자들은 “량치차오가 서양의 원저를 자기 방식대로 소개하다 보니 어디서부터가 원전이고 어디서부터가 량치차오의 서술인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고, 백화문과 고전한문이 뒤섞이고 중국 고전을 마음대로 활용해 이를 일일이 확인하고 원사료를 복원하는 일이 힘들었다”고 소회를 털어놓았다. 량치차오의 저술이, 한국에서 끼친 영향력에 비해, 번역이 턱없이 빈약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

량치차오

梁啓超(1873∼1929)

량치차오는중국역사상그어느시기보다중요한근대전환기를살면서끊임없이시대를이끌어간대표적지식인이다.신문·잡지및교육을기반으로변법유신變法維新을도모하고,근대화된서구문명을선전함으로써폐쇄된근대중국에새로운개혁의기풍을일으켰다.특히탁월한계몽주의사상가,정치가,언론인,교육자,문학가로서중국문화사文化史에서절대적인역할을수행했다.자字는탁여卓如,호號는임공任公이며,필명筆名으로음빙실주인飮?室主人·음빙자飮?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등여럿을사용했다.
서구열강의침략과대항의최전방지역이던광둥성廣東省신후이新會사람으로,반경반독半耕半讀의향신鄕紳인아버지량바오잉梁寶瑛과어머니조씨趙氏사이에서장남으로태어났다.동치同治12년(1873),즉아편전쟁이일어난지33년뒤,태평천국의난이평정된지10년뒤,서구충격이중국을향해거세게가해지던시기다.여섯살에오경五經을완독하고,열두살에수재가되었으며,열일곱에거인擧人이된천재였다.하지만1890년회시會試에낙방하면서실의에빠진그가새롭게성장한계기는스승캉유웨이康有爲와의만남이었다.신학문에눈뜬그는1895년당대뛰어난대학자캉유웨이를도와《만국공보萬國公報》를창간하고본격적인변법운동에들어선다.1898년캉유웨이와함께이른바‘백일유신’을시작했으나,운동은실패로끝나고일본으로망명했다.
일본에서서양사상을접하며쓴글들을자신이직접창간한여러잡지에연재하면서그의명망은중국은물론한국과일본에널리전파되었다.특히《청의보淸議報》에실린글들은뒷날《음빙실자유서飮?室自由書》편찬으로이어졌다.중국내외에서‘언론계의총아’,‘걸어다니는백과사전’이라불린그의명성에걸맞게,《음빙실자유서》는구학문에대한탄탄한기반을지닌량치차오가망명지일본에서신학문을왕성하게섭취하며동서사상의가교를구상한책이다.
신해혁명다음해인1912년에야중국으로돌아온그는신정부에서사법총장司法總長,폐제국총재幣制局總裁,재정총장財政總長등각종직책을맡아정치활동을했고,말년에는중국의역사와학술을중심으로한연구활동에주력했다.
그밖의주요저술로는《소년중국설少年中國說》,《중국역사연구법》,《선진정치사상사先秦政治思想史》,《중국근삼백년학술사中國近三百年學術史》,〈신민설新民說〉,《리훙장전李鴻章傳》등이있으며,량치차오가생전에편찬한《음빙실문집飮?室文集》에신문과잡지등에발표한단편들이더해져《음빙실합집飮?室合集》(중화서국,1936)이출판되었다.

목차

옮긴이의말
일러두기

서언?言
성공과실패成敗[1]
비스마르크와글래드스턴?士麥與格蘭斯頓
자유조국의선조自由祖國之祖
세계제일의보수주의자地球第一守舊黨
문명과야만의세등급文野三界之別
영웅과시세英雄與時勢
근인과원인에관하여近因遠因之說
초야에서올린직언草茅危言
양심어록養心語錄
이상과기력理想與氣力
자조론自助論
위인넬슨의일화偉人訥耳遜?事
자유를방기하는죄放棄自由之罪
국권과민권國權與民權
파괴주의破壞主義
자신력自信力
잘변신한호걸善變之豪傑
카부르와제갈공명加布兒與諸葛孔明
강권을논함論强權
호걸의공공정신豪傑之公腦
탄쓰퉁이남긴글譚瀏陽遺墨
정신교육은자유교육이다精神敎育者自由敎育也
전사를기원함祈戰死
중국혼은어디에있는가中國魂安在乎
비난에답함答客難
우국과애국憂國與愛國
중국을보전함保全支那
문명을전파하는세가지이기傳播文明三利器
꼭두각시를말함傀儡說
동물이야기動物談
유심惟心
혜관慧觀
이름없는영웅無名之英雄
지사잠언志士箴言
세상에대가없는것은없다天下無無價之物
혀아래영웅없고붓끝에기사없다舌下無英雄筆底無奇士
세계에서가장작은민주국가世界最小之民主國
유신도설維新圖說
러시아인의자유사상俄人之自由思想
20세기의새로운귀신二十世紀之新鬼
백성의윗사람되기어려움難乎爲民上者
영감煙士披里純(INSPIRATION)
무욕과다욕無欲與多欲
후회에관하여說悔
괴테의격언機埃的格言
부국강병富國强兵
세계밖의세계世界外之世界
여론의어머니와여론의노예輿論之母與輿論之僕
문명과영웅의비례文明與英雄之比例
간섭과방임干涉與放任
결혼하지않은위인不婚之偉人
신문을좋아하는국민嗜報之國民
노예학奴?學
희망과실망希望與失望
국민의자살國民之自殺
성공과실패成敗[2]
가토박사의《천칙백화》加藤博士天則百話
일본헌법에대한스펜서의비평記斯賓塞論日本憲法語
중국의사회주의中國之社會主義
일본의한정당영수의말을기록함記日本一政黨領袖之言
월남망명가의말을기록함記越南亡人之言
장근과공일화張勤果公佚事
손문정공식종지전孫文正公飾終之典
수에즈운하의옛길蘇?士運河故道
민병과용병의득실民兵與傭兵之得失
다스림의도구와다스림의도리治具與治道
학문과관료의길學問與祿利之路
학문을좋아하지않음의폐해不悅學之弊
구차함을경계함警偸
설랑스님의어록두단락雪浪和尙語錄二則
법은반드시행해지는법이되어야한다使法必行之法
다스림을다스리지,어지러움을다스리지않는다治治非治亂
군주는책임이없다는학설君主無責任之學說
명령과바람所令與所好
수양을좋아함好修
하늘을원망하는자는뜻이없는것이다怨天者無志
좋아하고싫어함과버리고취함欲惡取舍

원문
량치차오연보

해제
근대동서사상의가교,《음빙실자유서》_강중기
《음빙실자유서》의일독법-한국사상사에서보는량치차오_노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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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근대동아시아지식인들의필독서《음빙실자유서飮?室自由書》
1907년의최초번역이후다시번역되다!

20세기초‘언론계의총아’,‘걸어다니는백과사전’으로불린량치차오梁啓超,
문명구상에서일상의단상까지,중국의고전과불경에서서양사상가까지
종횡무진빠른행마로동서고금을논한다!

청년량치차오의일본망명
1898년9월21일스물여섯살청년량치차오梁啓超(1873~1929)는일본으로가는배에몸을실었다.이른바‘백일유신’이라불리는변법운동이서태후일파의정변으로실패하자신변의위험을느꼈기때문이다.그는스승캉유웨이康有爲와더불어‘강·양康梁’이라불리며변법자강을주도했었다.
량치차오는이날의도피가무려15년에걸치리라고는꿈에도생각지못했으리라.하지만실의에젖어떠난망명길은그에게새로운기회이기도했다.당시일본은근대서양사상을수입하는창구였고,수입한사상을자양분삼아근대국민국가건설에매진하고있었다.량치차오는일본에물밀듯들어온서양사상을탐욕스럽게섭취했고,일신日新하는일본의면모를속속들이관찰했다.
그리고동서고금을종횡으로달리는수십편의주옥같은글을썼다.그글들은1903년이후중국은물론일본과한국에서《음빙실자유서飮?室自由書》(이하‘자유서’)라는이름으로여러차례발간되며동아시아사상계를흔들었다.

‘량치차오시대’
량치차오는여섯살에오경五經을완독하고,열두살에수재가되고,열일곱에거인擧人이된천재였다.구학문의천재였던량치차오는1890년회시會試에낙방했다.낙담한그가새롭게성장한계기는스승캉유웨이와의만남이었다.신학문에눈을뜬그는1895년에캉유웨이를도와《만국공보萬國公報》를창간하고본격적인변법운동에들어선다.1898년에는캉유웨이와함께이른바‘백일유신’을시작했다.그러나운동은실패로끝나고그는일본으로망명했다.일본에서서양사상을직접접하며쓴글들은중국은물론한국과일본에전파되어날로명망이커졌다.
신해혁명의성공으로량치차오는1912년에귀국했다.여러관직을거치며정치일선에서활동하면서,위안스카이등이주도한복벽주의에반대했다.1919년부터는정계에서은퇴하고강연과저술에몰두하다사망했다.
량치차오가1895년《만국공보》를창간한뒤1929년세상을떠나기까지35년동안을중국100년언론사에서는‘량치차오시대’라고부른다.그의막대한영향력을잘보여주는영예로운호칭이다.

중국언론계의총아가구상한근대문명과동학東學
《자유서》는구학문에대한탄탄한기반을지닌량치차오가망명지일본에서신학문을왕성하게섭취하며동서사상의가교를구상한책이다.중국내외에서‘언론계의총아’로불렸던그의명성에걸맞게,문명구상에서일상의단상까지,중국의고전과불경에서몽테스키외·홉스·스피노자·루소·다윈·스펜서등서양사상가까지다양한주제를빠른행마로종횡했다.제목처럼‘자유’롭고분방하다.
《자유서》란이름이그때문에붙은것은아니다.제목은존스튜어트밀의저술에서따왔다.량치차오는〈서언〉말미에서존스튜어트밀의“인간사회의진화에서는사상의자유와언론의자유와출판의자유보다더중요한것이없다.이3대자유는모두나에게갖춰져있다”라는말을인용하고,‘자유서’라는책제목을거기서따왔음을밝히고있다.
《자유서》중에가장많은부분은근대문명과국가개혁에관한것이다.문명,자유와민주,국권과민권,국민,법과법제,여론과신문,개혁을향한의지,개혁에필요한자세,개혁의방법과이론등이그것이다.또영웅호걸과위인,부국강병,군대,무사도와상무정신등도그범주에속한다.이글들을통해서양과메이지유신이후의일본의장점을직접접하고중국또한근대국민국가로발돋움하기를바라는량치차오의기대를읽을수있다.
한편량치차오는,일반적으로근대중국지식체계의전환과정에서가장큰영향력을끼쳤다고평가받는다.《자유서》는그렇다면지식체계의전환에서어떤위치에있는가.두가지로평가할수있다.하나는서양개념의소개다.문명과야만,자유와민주,국권과민권,국가와국민,군대,법,신문,여론등근대문명에관한기본개념들이소개되고있다.서양서적의번역과개념의수입에는당시다른학자들도물론기여했지만,량치차오만큼모든영역에서새로운풍조를연인물은드물었다.둘째,개념과사상의수입이량치차오의선택과해석을거쳤다는점이다.량치차오의망명지에서의단상을통해우리는,무술정변이후새학문에대한중국지식인의갈망과서학을소화시켜중국인의‘동학東學’으로만들려는고민과흔적을풍부히살필수있다.

한국에서《자유서》의소개
량치차오의저술이한국에본격적으로소개된것은대한제국시기다.소개된저술은크게두가지유형이었다.하나는량치차오의역사단행본작품들이다.우리에게익숙한《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현채역,1906),《이태리건국삼걸전伊太利建國三傑傳》(신채호역,1907)등이대표적이다.
둘째는문집과소품류다.《황성신문》1906년11월에《음빙실문집》과《자유서》가나란히소개되었고,이어《중국혼中國魂》(장지연역,1908)등이소개되었다.말하자면《자유서》는1906년말에문집과함께,상당히높은지명도를가지며소개되었다고볼수있다.그뒤에는1907년까지《자유서》에속한소품들이《대한자강회월보》,《태극학보》,《서우》등의학회지에여러차례소개되었다.
《자유서》에대한사회적인수요가어느정도충족되자1908년두권의책이본격적으로출판되었다.하나는‘탑인사본《자유서》’(현공렴발간,1908)이고다른하나는‘언해본《자유서》’(전항기역,1908)다.전자는중국본을영인한것으로총66편이수록되었고,후자는65편을언해하여수록했다.언해본의등장은량치차오가가졌던대중적인인기를잘보여준다.

신지식인의환영과구학문의반발
한국의근대지식인사이에서도량치차오의영향력은지대했다.먼저소개된역사·전기류는변법과애국,자강을지향하는많은지식인에게영향을미쳤다.이후소개된량치차오의문집과《자유서》등의소품은서양사상의핵심개념의이해와국가개혁의방향과관련해서많이읽혔다.그리고대중화될수록찬반양론이있었다.
안창호가평양에설립한대성학교에서《음빙실문집》을한문교과서로사용한일은유명하다.안창호와같은계열에있던신지식인들은‘(상류사람들의)심성개량의속성과速成科’로소개하고있다.
《자유서》에실린글들을적극적으로소개한지식인은박은식과장지연이었다.박은식은자신이주필로있던학회지《서우》(1906.12.~1907.12.)에연달아소개했다.장지연또한《대한자강회월보》와《조양보》에소개했다.
구학을지지하는유학자들의반대는격심했다.대한제국기의큰유학자였던전우,곽종석,유인석등이모두량치차오를비판했다.그들은량치차오를불교와기독교를섞어쓴이단이고,왕도와패도를혼용했다고비판했다.특히유인석은《자유서》에대해“한고조,명태조를큰도적이라비난하고,예악을강압적인제도라고비판하는등고금에들어보지못한괴이하고패륜한책자이므로다시는읽지않았다”고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