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시장의 탄생 (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

미술시장의 탄생 (광통교 서화사에서 백화점 갤러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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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묄렌도르프에서 간송 전형필까지
이왕가박물관에서 미쓰코시백화점 갤러리까지
근대 미술 거리를 걷다
감상에서 거래로, 미술시장 만들어지다

중절모를 쓴 외국인 신사, 조선백자를 들고 흥정하다
120년 전, 한양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한 외국인 신사의 모습을 보자. 중절모를 쓴 그는 조선백자 항아리를 들고 조선인 상인들과 흥정을 하고 있다. 갓을 쓴 조선인 상인 2명은 짐짓 여유를 가장하고 있다. 그 가격엔 팔 의향이 없다는 듯한 포즈다. 몸이 단 쪽은 서양인으로 보인다. 서양인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상인들이 알아차린 것 같다. 낯선 서양인의 출현이 신기한지 코흘리개 동네 아이들이 현장을 빙 둘러싸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더 그래픽The Graphic》 1909년 12월 4일 자에 실렸던 이 삽화는 개항 이후 서양인의 등장이 ‘은둔의 나라’였던 한국의 미술시장에 끼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저자

손영옥

미술시장및제도에관심을갖고글을쓰고연구하며비평으로영역을확장하고있다.경북대영어영문학과를졸업했으며,미국존스홉킨스대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석사학위MIPP를,명지대예술품감정학과에서석사학위를받았다.이후서울대에서미술경영학박사학위를취득했다.박사학위논문으로〈한국근대미술시장형성사연구〉를썼다.국민일보에서문화부장을거쳐현재미술ㆍ문화재전문기자로재직중이다.
논문으로〈단색화새로읽기:포스트식민주의와글로벌리즘사이〉,〈이왕가박물관도자기수집목록에대한고찰〉,〈일제강점기서양화거래에관한고찰〉,〈미국스미소니언박물관소장버나도Bernadouㆍ알렌Allenㆍ주이Jouy코리안컬렉션에대한고찰〉,〈개항기,서양인이미술시장에끼친영향연구〉등을썼다.
저서로《아무래도그림을사야겠습니다》,《한폭의한국사》,《조선의그림수집가들》,《독일리포트》(공저)등이있다.2020조선일보신춘문예에미술평론(필명손정)으로당선됐다.

목차

책을펴내며
서장│120년전,한양에서어쩌다마주쳤을서양인

1부개항기_1876~1904년

01외교고문묄렌도르프와선교사앨런도미술컬렉터였다
구미박물관은왜묄렌도르프와앨런에게수집을부탁했을까|개항기에서양인에의해재발견된풍속화‘수출화’|일본인보다먼저고려자기에눈뜬서양인들|개항장에서화점포가들어서다
02청나라와의교류_‘기명절지화’에담긴중인부유층의욕망
상하이의감각적미술을받아들이다|떠오르는중인부유층,미술시장흐름을바꾸다
03민화를사러지전에가다

2부일제‘문화통치’이전_1905~1919년

04이토히로부미와데라우치마사타케,고려청자대조선서화
이토히로부미의고려청자‘사랑’|데라우치마사타케와조선시대서화
05이왕가박물관과일본인상인커넥션_그들만의리그
최초의일본인고려청자골동상곤도사고로|일본이이식한고미술품시장|이왕가박물관과‘미술정치’|한국인고려자기골동상이창호와쏟아진한국인골동상|이왕가박물관과일본인골동상의커넥션|조선서화시장까지진출한일본인골동상
06조선총독부박물관의‘동양주의’선전_중국불상구입
07화랑의전신‘서화관’과한국판사설아카데미‘화숙’
화랑의맹아,서화관|사설아카데미,화숙

3부‘문화통치’시대_1920년대

08고려청자의대체재,조선백자의‘발견’
09‘경성의크리스티’경성미술구락부
설립배경|운영방식
10전람회시대의개막
봇물터진각종민ㆍ관전람회|과도기적성격|외국인미술품유통공간
11서양화전시회는언제부터시작됐을까
1920~1940년대:서양화가격의변화|동양화와가격추이비교|누가서양화를사들였을까|서양화의인기가동양화를누르다|미술품,가격으로거래되다

4부모던의시대_1930년대~해방이전

12미술품,투자대상이되다
13무르익는재판매시장
경성미술구락부|조선미술관
14한국인,마침내고려청자의주인이되다
한국인수장가들의등장|한국인골동상점의시대가열리다
15근대적화랑‘백화점갤러리’의등장
젊은서양화가,미술시장의주역으로부상하다|서양화전시공간의등장

글을마치며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근대적형태의미술시장,태동에서완성까지
‘시장’은‘여러가지상품을사고파는일정한장소’이기도하지만‘상품으로서의재화와서비스의거래가이루어지는추상적인영역’을지칭하기도한다.미술시장은미술품이라는구체적인재화,미술품제작이라는구체적인서비스의거래가이루어지는영역으로서의의미가강하다.그렇다면우리나라에서근대적의미의미술시장이출현한것은언제부터일까.
《미술시장의탄생-광통교서화사에서백화점갤러리까지》는우리나라에서근대적형태의미술시장이언제태동해서어떤과정을거쳐어떻게완성되었는지그답을찾는책이다.미술시장및제도에관심을갖고연구하면서비평으로영역을확장하고있는손영옥(국민일보미술ㆍ문화재전문기자)은한국미술시장이전근대적성격을벗어나근대적인자본주의적생산방식으로이행한시점을개항기라보고한국근대미술시장형성사의첫머리를개항기에서시작한다.지금은한국을대표하는최고의고미술품으로인정받는‘미술로서의고려청자의발견’이이뤄진것도개항기이고,갤러리의전신인‘지전’과‘서화관’등이모습을드러낸것도개항기라는것이다.
개항기에서첫발을뗀저자는이후여정을일제문화통치이전(1905~1919),‘문화통치’시대(1920년대),모던의시대(1930년대~해방이전)로옮기면서한국미술시장형성사의세세한풍경을탐색한다.이여정에는거래가양성화된후최고의미술상품으로자리잡게된고려자기,일본인들끼리사고파는그들만의리그가되어버린고려자기시장,천정부지로치솟은고려자기를소유할수없던일본인지식인층에의해고려자기의대체재로서‘발견’된조선백자,컬렉터로서이름을날리는한국인자산가층의등장,갤러리ㆍ경매회사ㆍ전람회등서서히자리잡기시작한자본주의적미술시장제도등이주요풍경으로등장한다.저자의발자취를따라상투튼남정네들이외국인과마주치는게낯설지않았을개항기의한양종로길로떠나보자.

개항기(1876~1904),한국미술시장태동하다

미술시장의수요자로참여한서양인
개항기는고종이직접통치를한지수년뒤인1876년(고종13)일본과강화도수호조약을맺은것을기화로구미여러나라와통상조약을체결하며봉건적사회질서를타파하고근대적인사회를지향해가던시기를말한다.
대외개방은미술시장에도영향을미쳤다.서양인들이외교,선교,사업등여러목적으로들어왔고,이들은미술시장에새로운수요자로참여했다.수요는공급을창출한다.화가들은서양인의취향과목적에맞춰‘수출화’라는풍속화를개발해만들어팔았다.중개상들은서양인들의동양도자기애호취미를눈치채고무덤에서꺼내진옛도자기와토기들을몰래거래하기시작했다.또한서양인들은민속품을수집해고국의민족학박물관에제공하기도했다.

서양인,한국미술시장에역동성을부여하다
청나라와교역이늘어남에따라상하이를중심으로번성한해상화파의감각적이고실용적인화풍이한국으로건너와유행하게된다.고종의근대화의지에따라신식학교가생겨나고철도가부설되고전차가놓이고신분제가폐지된새로운시대,이렇게달라진세상에서청나라의감각적이고세련된화풍은크게사랑받았다.
한반도지배권을둘러싼열강의다툼이일본의승리로끝나면서개항기도막을내린다.러일전쟁에서승리한후을사늑약(1905)을맺어한국의외교권을뺏은일본은서양인들에게출국을강요한다.개항기는30년이채안된다.그시공간을야누스의얼굴을하고활보했던서양인들은공과를떠나한국미술시장에역동성을부여했다.

일제‘문화통치’이전(1905~1919),일본인들이한국미술시장을장악하다

한반도를장악한일본인,고려자기거래를시작하다
한반도지배권을둘러싼열강간치열한다툼의최후승자는일본이었다.그변곡점은러일전쟁의승리였다.일본은1904년에시작한이전쟁에서승리하자1905년7월에미국과밀약을맺고,8월에는영일동맹을수정해한국지배권을인정받았다.마침내그해11월에는고종황제의허가없이체결에동조하는5명의대신과을사늑약을맺어외교권을빼앗고간접통치기구인통감부를통해한국을지배하기시작했다.
러일전쟁승리후서울은완전히일본의세상이된다.자국에서기회를잡지못한일본인들이물밀듯이조선으로밀려들었다.일본의무법천지가된세상에서일본인상인들이재빨리움직였다.개성에서도굴된고려자기를거래하기위해경매와골동상점이서울(경성)에서차례로문을연시점이1906년이라는사실은그래서시사적이다.

박물관,일본인골동상들의한국미술시장장악의발판이되다
공식적인식민지전락은1910년의경술국치이지만이처럼미술시장에서체감된일본의지배는5년앞섰다.한국근대미술시장사를서술하는이책이문화통치이전의시기구분을1905∼1919년으로설정한이유다.
일제의제국주의기획에따라개관한이왕가박물관(1908)과조선총독부박물관(1915)의수집행위는일본인골동상들이발빠르게미술시장을장악하는발판이되었다.일본인골동상들은‘골동신상품’인고려자기뿐아니라전통적으로애호되던조선시대고서화분야까지진출했다.나라가망하자양반가에서흘러나온고서화는그렇게일본인중개상을거쳐일본인상류층호사가의손으로넘어갔다.식민지조선의권력과부를거머쥔일본인들은미술시장의핵심수요자로부상했다.바야흐로일본인들이미술시장을쥐락펴락하는세상이됐다.

‘문화통치’시대(1920년대),근대적미술시장본격화하다

전람회,보편적인미술관람형식으로자리잡다
1919년3ㆍ1만세운동은일제의한반도정책이무단통치에서문화통치로바뀌는분수령이되었다.문화통치의산물로1922년부터조선총독부가주최하여시작된조선미술전람회는1920년대를가히‘전람회의시대’로특징짓는기폭제가되었다.앞서민간에서도최대미술단체인서화협회가주최한서화협회전람회가1921년부터시작했는데,여기에관전인조선미술전람회가가세하며전람회는보편적인미술관람형식으로자리잡게되었다.
특히신진작가등용문인조선미술전람회는관전이갖는권위로인해이른바‘선전鮮展스타일’을낳으며일제가피지배민족을순응시키는통치기제로활용되었다.개인전도활발하게열렸는데,일본유학파2세대에의해서양화개인전이본격적으로등장한것도이시기다.

조선백자의미적가치‘발견’
일본의통치가10년을넘기면서미술수요층에서도슬슬손바뀜이일어나기시작했다.초기고려자기수집가층이사망하거나본국으로귀국하면서물러나자신규수장가층이시장에진입했다.이에따라고미술시장의파이가커졌고이를겨냥해골동상들이연합해만든경성미술구락부가생겼다.경성미술구락부는주식회사형태를취하고주기적으로경매를하면서경매도록과진위감정서까지발행하는근대적시스템을갖췄다.
경성미술구락부운영초기조선백자는수요가형성되어있지않아가격이너무저렴했다.조선백자의미적가치를‘발견’한주역은야나기무네요시와아사카와노리타카,아사카와다쿠미등일본지식인이었다.이들은조선백자에미술의아우라를입힘으로써1930년대조선백자붐을여는단초를제공했다.

모던의시대(1930년대~해방이전),자본주의영향이확대되다

백화점갤러리,본격상업화랑의출현
1930년대는자본주의가관통한시대였다.식민지조선의부가집결된경성의경우건축물이만들어내는도시의스카이라인뿐만아니라도시속을활보하는사람들의심리에서도자본주의의영향은확연했다.
자본주의의꽃이라고불리는백화점의증축과확장은이런거대자본의한국진출분위기속에서이루어졌다.서울에는미쓰코시,미나카이,조지아,화신등서양건축의외관을한여러백화점이도시의풍경을바꾸었다.백화점은엘리베이터와옥상정원등첨단시설을갖춰두고상류층고객을겨냥해갤러리도만들었다.
백화점갤러리는전시전용공간의탄생이라는점에서혁신적이었다.전시는상설화되고기획전까지열렸다.지금의서울삼청동에있는갤러리와별반다를바없는본격상업화랑이출현한것이다.

미술품,투자의대상이되다
이시기미술수요자들에게서주목되는것은자본주의적태도다.금광개발,주식거래시대의개막과함께미술품역시적절한시점에팔아차익을실현할수있는투자의대상이라는인식이형성되기시작한것이다.전근대시대에는없던이런투자심리가기저에흐르며경성미술구락부등미술시장은번창했다.
한국인수장가와한국인중개상이미술시장의전면에등장한것도1930년대다.한국인수장가층이부상하는과정에는고려자기와조선백자,서화등이지켜야할민족정신의기호로상징화되어수집이장려된시대적분위기도작용했지만,근저에는경제적욕구가자리잡고있었다.1937년부터일본이중일전쟁을일으키면서전시경제체제로들어갔지만미술시장은해방이전까지상승세를이어갔다.미술은상류층의문화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