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5·18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그들의 5·18 (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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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군부는 무엇을 노리고, 어떻게 움직였나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 새롭게 보기
올해는 5ㆍ18이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바뀔 만큼의 시간이 흘렀지만 5ㆍ18은 현재 진행형이다. 특별법 제정, 국회 청문회, 진상규명위원회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무엇보다 ‘북괴군 침투설’을 비롯해 계속되는 5ㆍ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그들의 5ㆍ18-정치군인들은 어떻게 움직였나》는 그동안의 5ㆍ18에 대한 접근이 주로 항쟁의 주역들을 중심으로 한 것과는 달리 군을 중심으로 5ㆍ18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보안사령부 자료를 비롯한 방대한 군 자료를 비판적으로 분석, 검토하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자 미덕이다.
저자

노영기

전남영광에서태어나광주에서초ㆍ중ㆍ고ㆍ대학을마치고서울로올라와대학원에서한국현대사를공부했다.조선대,성균관대,충남대,서울대에서강의했으며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선임연구원을지냈다.조선대학교기초교육대학에재직하고있다.
‘왜국민의군대가국민들에게총을쏘았을까?’라는질문을안고서한국현대사공부를시작했다.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2007년까지조사관으로활동하며12ㆍ12와5ㆍ18과관련된새로운자료를검토하고관련자들을만나그들의목소리를들었다.이책은당시보았던자료와만났던분들의증언에기초한결과물이다.
주요논문은〈5ㆍ16쿠데타주체세력분석〉,〈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에관한자료실태와연구현황〉,〈5ㆍ18항쟁기민간인희생자들을위한진혼곡〉,〈5ㆍ18항쟁초기군부의대응〉,〈5ㆍ18항쟁기록물의생성과유통〉,〈여순사건과국가폭력의구조〉등이있다.《전쟁과재현:마을공동체의고통과그대면》(한울아카데미),《한국현대사1:해방과분단,그리고전쟁》(푸른역사),《한국사,한걸음더》(푸른역사)등을함께썼다.

목차

책머리에
서장|5ㆍ18진상규명투쟁의역사

1_유신의그림자
박정희정권의유산
군의정치동원에물꼬를트다
새로운정치군인들,신군부
정치군인들,학원소요를‘고대’하다
육군본부의시위진압지침

2_5ㆍ17쿠데타-비상계엄전국확대
신군부,학생시위에군투입을벼르다
군사작전을방불케한시위대책
대국민사기극,‘북풍北風’
‘서울의봄’을앗아간5ㆍ17쿠데타

3_항쟁의시작
군대,대학을점거하다
군,정치개입에서권력장악으로
비상계엄의실체

4_폭력과야만의시간
가자,도청앞으로!
5월18일,그날의시작
학생시위에서시민항쟁으로
군의최초발포는언제인가?
도시게릴라식난동을진압하라!
공수부대의소요진압을넘어선‘폭동진압’
왜,광주였는가

5_항쟁과발포사이
차량시위와집단발포의시작
두구의시신,항쟁의전환
누가실탄을지급했고,발포를명령했나
정확히밝혀지지않고있는희생자규모
시민들,언제총을들었는가
군의작전변경,광주외곽을봉쇄하라
민간인학살과오인사격의조작
광주의소식을전하다
두개의지휘권

6_일어서는광주
시민들,공동체를지켜내다
시민군의수습안대무장해제
항쟁파가주도권을쥐다
‘폭도’와양민분리와배제의의미
군,상무충정작전을준비하다
상무충정작전실행전야
아!5월27일새벽
시민을상대로한전투의후과

5ㆍ18항쟁이남긴과제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신군부는정치개입을‘예비’했다
지은이는5ㆍ18의역사적맥락을인과관계에따라추적하고있다.우선군의정치적동원(계엄령과위수령,긴급조치등),공수부대의시위진압투입,정치하는군인들(신군부)등이박정희정권이남긴유산임을지적하고있다.
그리고1979년10ㆍ26이후,12ㆍ12군사반란을통해군지휘권을장악한이후신군부가무엇을지향하고있는가를검토하고있다.이어보안사령부의부마항쟁평가와육군본부의보고서에1980년공수부대의폭력이배태되었으며,이같은군의강경진압을부추기는지침이1980년5월광주에서는공수부대에의해더욱잔혹하게적용되었음을실증적으로보여준다.
신군부는시위진압용‘충정훈련’을강화했으며,5월15일대학생시위대의‘서울역회군’등군투입의명분이희석되는와중에도5월17일비상계엄을전국으로확대하는등정치군인들의‘야욕’은차근차근진행되었다.

무리수의시작,공수부대투입
5월18일오후4시경부터광주시내에공격형특수부대인공수부대의투입이결정되었다.충분한경찰병력이있었음에도그랬다.지은이는공수부대의시위진압양상이어떠했는지를군과민간의자료를통해재구성하고있다.
1980년2월경부터진행된충정훈련(폭동진압훈련)과공수부대원들의인식,상부의명령이공수부대원들에게끼친영향등이복합적으로작용해공수부대원들의폭력적이며야만적인행위를초래했다.진압과정에서나타난공수부대원들의폭력과야만,김대중연행에대한시민들의분노가중첩되어5월19일부터학생시위가시민항쟁으로전환하게되었다.5월19일군의최초발포가있었으나정식명령계통(공수부대-31사단-전교사-2군사령부-계엄사령부)에따른보고가이루어지지않았으며,보고된부대(공수부대-보안사령부와계엄사령부)에서도적절한후속조치를취하지않았다.이것은이후발생한군의발포에서공통된현상이다.

북괴군침투는원천적으로불가능했다
1980년5월에는‘남북총리회담을위한실무회담’이열리고있었다.미국(한미연합사)과육군본부에서도‘북괴남침설’이근거없다고판단했다.실제로도외곽봉쇄기간에군은광주를드나드는국민들을대상으로무차별총격을가해많은희생자들이발생했을정도로군은광주외곽을봉쇄했을뿐더러해안경계를강화했기때문에북한군의광주침투는있을수없는일이었다.신군부스스로이를주장하는것은경계실패를드러내는자기모순인만큼‘북괴남침설’은‘북풍北風’이자대국민기만행위에불과하다.

공수부대는시민을‘적’으로간주했다
시민들의저항은5월20일오후차량시위를계기로상승했다.이날밤광주역부근에서공수부대의집단발포와광주역에서전남대로의철수가있었는데,이와관련된어떠한명령도내려지지않았음에도집단발포와철수가이루어졌다.이후5월21일집단발포로인해많은시민들이희생(최소55명이상추정)되거나다쳤다.
상무충정작전은단순히무력진압이아닌‘국민들을상대로한전투’였음은탱크18대,무장헬기등작전에임하는부대의장비와군인들의의식과작전활동을통해확인할수있다.무엇보다1980년5월열흘간광주에서‘작전’을편군부대가51만여발의총탄을소모했다는군자료가이를입증한다.2차대전때쓰인카빈소총과최신M-16의대결은흡사격투기선수와어린아이의싸움으로보아도지나치지않다.

군내부지휘권은따로놀았다
비상계엄전국확대이후계엄사령부는실무적인역할에그치고있으며정치적사항에대해서는보안사령부가장악하고있었다.말하자면지휘권의이원화인데이를구체적으로보여주는사례는전교사사령관교체와5월24일두건의오인사격이다.전남북계엄분소장으로광주전남의계엄업무를지휘하는전교사사령관은뚜렷한이유없이5월21일교체되었다.보다큰문제는5월24일오전과오후에발생한오인사격이다.군은사전에실탄통제,수하誰何등을명령했음에도하루에만두차례나발생했다.오인사격중오후에발생한송암동오인사격은이후보복학살이있었다.게다가이날오인사격의희생자들은‘폭도와의교전’에의한전사로왜곡되었다.

과제는여전히남았지만의미있는진전
지은이는이책이‘미완’이라고여운을남긴다.‘세척’되거나묻힌군자료를복원하고발굴해시민에대한사격명령의진상,여성피해자들이야기등왜곡과조작을넘어광주의진상을알리기위해풀어야할과제가남아있다고인정한다.하지만전체적으로《그들의5ㆍ18》은그동안발굴되지않았던각종자료를통해많은사실을밝히고있다.예컨대안종훈장군이5월17일오전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군의정치적동원에반대한사실(104쪽),박춘식장군이무력진압(상무충정작전)에반대한사실(384쪽)이그렇다.지은이의학문적겸양에도불구하고이책이광주의진실을밝히기위한‘의미있는진전’이라평가받아야할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