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사연구의새로운지평제시
국내에서북한사연구분야는그역사도짧고연구진도두텁지못했다.게다가2000년대초까지만해도자료입수에많은제약을받았다.이제는우리사회의민주화와사료개방정책덕분에,중국당안과몇몇러시아아카이브를제외하고,북한관련자료의제한이대부분풀렸다.그에힘입어이책은결이다른글쓰기를시도하고있다.역사학자라면누구나탐낼만한신선한사료를바탕으로과거를추적하기때문이다.
20년넘게북한사를연구해온지은이는북한당국이체제유지혹은강화를위해개개인들로부터수합한879인의자술서?이력서그리고이에대한상급자의평정서들을중심으로북한사의핵심이슈들을흥미롭게엮어냈다.이자료들은한국전쟁당시북한에진주했던미군이노획해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보관중이던사료들이다.교수교사학생공직자간부노동당원군인등북한의젊은이들이생존을위해혹은출세를위해털어놓은그들의삶은그만큼진솔하다.그러기에그간정치사제도사중심으로진행돼왔던북한사에서한걸음더나아가고있다.
(참고:미군이전시에북한지역공공기관에서탈취한이문건들은그기관에근무한직원들개개인의기록물이다.구체적으로김일성종합대학교수진,평양공업대학교수진,흥남공업대학교수진,평양의학대학교수진,함흥의과대학교수진,청진의과대학교수진,평양교원대학역사과?지리과?노어과?수학물리과?화학과?체육과학생들,황해도재령군내각중학교교사들,강원도김화군?평강군내각중학교교사들,함경남도영흥군?함주군내각중학교교사들,황해도벽성군?송화군?은율군내참심원들,조선인민군하사관과병사들,조선중앙통신사직원들등의자서전?이력서이다.)
이제까지연구자들이주로활용한북한관련자료는잡지나신문처럼딱딱하고무미건조한자료들이대부분이다.철저한검열의전통이지속돼왔기때문에,북한의공식간행물에서생동감이란전혀찾아볼수없다.자서전?이력서는당시를살아간사람들의진솔한이야기를담고있다.그들의집단경험은혁명에착수한북한의시대상과사회상을생생히보여준다.
‘아래로부터의’진솔한이야기들
흔히역사는승자의기록이라고한다.대체로맞는말이다.일상사미시사연구의활성화는이를보완하는데큰도움이되고있다.지금까지의북한연구가통치자나지도자들을집중적으로조명해왔다면,이연구는북한을살았던이름없는일반인들을조명하고있다.
이제까지의북한연구가통치자나지배층의시각을통해역사상을바라보는방식이었다면,지은이는대중또는민중으로일컬어지는일반인들의관점을통해북한사를재구성함으로써나름의성취를보여준다.즉이책에는진정한“아래로부터의역사”가풍성하게담겨있다.
황해도송화군에소련군이진주했을때공산청년동맹과적위대는사이렌을울리며주민들의피신을유도했을뿐만아니라,재산과부녀자들을잘간수해야한다는경고도했단다(124쪽).한선일이라는젊은이가소개한대목인데,소련군에대한일반의인식이당시좌익단체조차불신했을만큼좋지않았음을드러낸다.공식기록과다른민초의시각을보여주는좋은예이다.
우리가놓쳤던역사의이면들
역사를읽는큰재미중하나는종종뜻밖의사실을알게된다는점이다.여기서무릎을치기도하고고개를끄덕이기도한다.이를테면군의軍醫로타이완에끌려갔던황수봉이란젊은이이야기가그렇다.그는해방후진급을시켜주겠다는사령관의회유를뿌리치고탈주해현지에서1300여명에달하는조선인병사들을모아‘인민의용군’을창설해일본군은물론중국국민당중앙군과협상해1946년무사귀국을성사시켰다(107쪽).
북한의국가건설에경성대학교수등남한전문가들이참여했다는사실은어떤가?‘국립서울대학교설립안’에반대했던경성공업대학수학교수홍성해,경성대학이공학부교수이한희등이그주인공들이다(301쪽).1947년김일성종합대학에임용예정인전문가중남한출신이절반가까운44.4퍼센트라는기록도보인다.
따지고보면역사라는것은사람들의이야기이다.당대를살았던이들의육성을생생히전달하고있는자서전?이력서야말로정사가놓치고있는역사를재현하기에최적화된자료이다.
흐름을짚으며디테일을함께살리다
지은이는자서전?이력서를단순히나열하는데그치지않았다.해방의감격과혼란,국가건설과정,토지개혁,연좌제등해방공간북한에서벌어진굵직한이슈들을따라자서전과이력서를정교하게엮어냈다.예컨대북한의토지개혁이수많은‘혁명의밀알’을낳아체제의버팀목이되었다는의미를짚어내며,이를둘러싼환호와탄식을섬세하게보여주는식이다.
황해도재령군의머슴출신오남제는토지개혁으로논800여평을분여받고는어엿한가정을이루었다.얼마나기뻤던지첫수확후가장먼저현물세로쌀네가마니를납부하고도‘애국미’여섯가마니를추가로헌납했을정도였다(272쪽).해방직후북한에불어닥친러시아어학습열풍을“인텔리나대학생이라면러시아어서명을만드는일이유행처럼번졌다.정성스레자서전을마무리한그들은작성일과성명을기입한뒤,멋들어진러시아어서명을남겼다”(130쪽)고그리거나,출신성분과사회성분을따진북한에서황충환이란이는기독교장로인장인과평양신학교에재학중인처남을둔“불순한가정”과혼인관계를맺었다는이유로시달림을받았다는이야기도여느역사책에선볼수없는세밀화이다.
북한사가중요한이유는현재우리의삶뿐만아니라,우리미래의삶의질에관련된문제이기때문이다.특히북한사람들의일상삶과문화그리고그들의생각을들여다봄으로써통일의시대에대비해야한다.그런점에서이책에실린자서전과이력서를통해엿볼수있는일상사사회사미시사는북한사람들의의식과심리에다가갈수있는훌륭한길잡이구실을할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