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ㆍ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

동학ㆍ천도교와 기독교의 갈등과 연대, 1893~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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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인 15명, 기독교인 16명
천도교와 기독교는 어떻게 손을 잡았나
한국 역사를 살펴보면, 불교의 시대, 유학의 시대를 지나고, 1860년 동학의 창도에서부터 1919년 3ㆍ1운동에 이르기까지 60년은 근대전환기 종교지형의 변동이 격심하게 일어난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자주독립과 근대화의 과제를 놓고, 민족종교=신흥종교와 외래종교=서양종교의 한판 승부가 벌어진 시기였다.
이쯤에서 3ㆍ1운동과 관련한 가장 소박한 질문이 제기된다. 동학과 ‘서학’이란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는 천도교와 기독교가 어떻게 독립운동의 축으로 기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다. 《동학과 농민전쟁》(2004)을 내는 등 민중운동사에 큰 관심을 기울여온 지은이는 이 책에서 1894년 동학농민전쟁과 1919년 3ㆍ1운동 사이 동학ㆍ천도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파고들었다. 기포드학당 등에 붙은 기독교 비판 격문, 영문잡지에 실린 캐나다 선교사 매켄지의 체험담 등 다양하고도 귀한 사료와 통계를 이용해 3ㆍ1운동에서의 연대는 갑자기 민족독립을 위해 의기투합한 것이 아니라 15년에 걸친 모방과 경쟁 위에서 가능했던 것임을 논증했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전쟁 이후 영학당 등 동학여당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동학의 남접 변혁세력과 결별한 천도교의 창건과 기독교 ‘따라잡기’, 두 종교 간 연대의 한계 등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주장을 선명히 드러낸다.
저자

이영호

인하대학교사학과교수이다.서울대학교대학원국사학과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으며,한국역사연구회회장을역임했다.한국근대사회경제사,민중운동사,지역사라는세분야에관심을갖고연구해왔다.사회경제사중에서는지세및토지제도를연구하여《한국근대지세제도와농민운동》(2001),《근대전환기토지정책과토지조사》(2018),《토지소유의장기변동》(2018)을저술했다.민중운동사중에서는농민운동,동학운동,변혁운동에관심을갖고《동학과농민전쟁》(2004)을간행했다.근대전환기신흥종교의사회적역할에대한연구가필요하다고본다.지역사연구는《개항도시제물포》(2017)출간으로결실을맺었다.해양과관련된변경지역에대해관심을가지고있다.

목차

머리말

1부동학세력의변혁운동과기독교와의갈등

1장동학과서학의대립
동학의서학비판
동학세력의신원운동과외세비판
동학과천주교의충돌

2장동학세력의반기독교격문
격문에등장한기독교
격문발신자의정체
상호이해의가능성

3장매켄지선교사와황해도동학군
황해도동학군의봉기와기독교선교사
매켄지의선교활동과동학군
동학과기독교의소통

4장영학당의결성과기독교
영학당의봉기와주도세력
종교적외피로서의‘영학’
영학과기독교의관계

2부근대종교천도교와기독교의경쟁과연대

5장천도교의창건과기독교모델
변혁운동의해소
서북지방포덕과천도교창건
천도교의근대종교화와기독교모델

6장천도교와기독교의경쟁
연원제에서교구제로
기독교의선교시스템
현장의경쟁

7장천도교와기독교의교세비교
교세의양적성장
평안남북도지방의교세
평안북도군단위지역적분포

8장천도교와기독교의3ㆍ1운동연대
천도교와기독교의연대
중심지역평양의3ㆍ1운동과연대
경쟁지역의주의3ㆍ1운동과연대
경계지역선천-정주의3ㆍ1운동과연대
연대의한계

결론
주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갈등속에서도존재한두종교간의소통통로규명
제1부‘동학세력의변혁운동과기독교와의갈등’에서는두종교간의갈등과소통에초점을두고몇가지사례를분석했다.동학은서학(천주교)에반대하여창도되었으나실제로서로간에큰충돌은없었다.1894년동학농민전쟁이일어나전라도일대에서동학농민군이천주교성당과교우촌을공격한적은있으나이후서로충돌은거의일어나지않았다(41쪽).1885년처음한국에들어온기독교도서학의범주에속하므로동학과는본래적으로적대적이었으나동학은기독교와도접촉할기회가거의없었다.오히려서로배척하면서도동학농민전쟁이후동학의남접세력이기독교란외피를쓰고변혁운동을전개한영학당사례나황해도동학군봉기를지켜본매켄지선교사이야기를통해소통의가능성이열려있었다는점을보여준다.특히존스와매켄지사례를통해한울님,하나님이란신관神觀의유사성을통해두종교의소통통로가상존했음을설득력있게지적한다.

천도교의기독교따라잡기배경과의미를짚다
제2부‘근대종교천도교와기독교의경쟁과연대’에서는3ㆍ1운동에서만세시위운동을선도적으로촉발한천도교와기독교가어떻게연대할수있게되었는지그배경을파헤쳤다.1905년12월창건된천도교는기독교를모델로삼아근대종교로의개편을꾀했다.서울에천도교중앙대교당,지방의각교구에교회당을건립해나갔다.제사형식의의례를일요일의공중예배형식으로바꾸었다.중앙집권적교구제를통해포덕을공개적으로확대해나갔다.교회당설립,예배형식,포덕방식에있어서천도교는기독교를모방하고(211~216쪽)또경쟁하면서교세를급격히확대했다.천도교인40만,기독교인20만을일컬을정도로천도교세가기독교의2배에달했다(266쪽).민족적의제에의기투합하여천도교와기독교가3ㆍ1운동에서연대하게된배경에기독교를모델로한천도교의근대종교화,천도교와기독교의경쟁을통한상호교세의확장등이자리잡고있었던점을의주ㆍ선천등서북지방관련자료를중심으로구체적으로논증했다.

동학과천도교의노선전환과단절을조명
동학농민전쟁의정신을계승한변혁운동은1904년경에이르면소진된다.이미동학의남접변혁세력은동학의북접교단과는결별하여노선을달리해왔다.북접교단도남접변혁세력을배척하면서교단의재건과포덕의확장에매진했다.동학의3대교주손병희는문명개화로의노선전환을선택했다.서북지방에서의포덕성공을바탕으로교단재건에매진했다.일본으로망명했던손병희의지시에의해일어난1904년진보회운동은문명개화노선의기조하에전개되었다.러일전쟁에서일본군을지원하는한편대한제국의친러파광무정권을비판하는정치운동이었다.교세의확장,진보회운동등을기반으로1905년12월손병희는천도교를창건했다.천도교는동학의남접세력이주도한동학농민전쟁의역사를교단사에서완전히삭제하여완전한결별을선언했다.책에따르면1905년12월1일신문에실린천도교창건광고문에는동학에관한언급이한마디도없을정도였다(194쪽).이렇게천도교가문명개화노선으로전환함으로써그계통에속한기독교와도연대가가능하게되었던것이다.지은이는이과정에서서북지방에서벌어졌던두종교의교세확장경쟁등을실증적으로보여준다.

한국은식민지가되면서민족종교와외래종교의각축은오랫동안지속되었다.근대화의과제가부각되는추세속에서민족종교의역할은위축되어갔다.그렇지만적어도1919년까지는민족적위기를극복하고근대화의과제를달성하기위해민족종교=신흥종교와외래종교의연대가빛을발했다.흔히종교문제를정치사회와는무관하게종교사,교단사로취급하는경향이있다.그러나한국근대전환기는정치사회적혼란과동요가종교에도그대로반영된시기이고,종교가정치사회의문제를주도적으로풀어나간시기이기도하다.
3ㆍ1운동은초기에천도교와기독교가연대하여만세시위운동을촉발했지만,후기에는민중의역동성이아래로부터분출했다.동학농민전쟁에서3ㆍ1운동에이르는이러한민중운동의계보가충실히규명될필요가있는이유이다.바로이점에서,동학의변혁세력과기독교,그리고동학의후신인천도교와기독교의관계에초점을맞춘이책은의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