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무령왕, 신화에서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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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은 무령왕 톺아보기
‘섬소년’은 어떻게 중흥의 왕이 되었을까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백제는 ‘잊힌 왕국’이다. 실제 백제하면 삼천 궁녀, 낙화암, 의자왕, 계백을 떠올린다는 답이 70퍼센트에 가깝다는 조사도 있다. 기껏해야 근초고왕, 성왕, 아직기와 왕인을 더할 따름이다. 만주 등에서 한민족의 기개를 떨친 고구려, 한국사의 뼈대를 이룬 신라와 더불어 한반도의 패권을 다툰 백제에 어울리는 대접은 아니다. 고대 일본에선 ‘구다라 나이(백제 것이 아니다)’ 물건은 별 볼 일 없다는 인식이 퍼졌을 정도라는데 말이다.
백제사를 30년 넘게 천착해온 지은이는 이제 탄생 1560주년, 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은 무령왕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백제 제대로 보기’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성근 사료를 날줄로, 합리적 추론을 씨줄로 하여 의문에 싸인 혈통, 이국에서 태어난 섬 소년이 왕위에 오른 역정, 그리하여 “다시 강국이 되었음”을 선포하는 데 이른 치적을 짚어낸 이야기는 여느 역사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저자

정재윤

鄭載潤

전남영광출신으로서강대학교사학과및동대학원에서문학석사와박사학위를받았다.홍산박물관관장과독립기념관전시ㆍ자료팀장을역임하였으며,현재공주대학교교수로재직중이다.백제학회회장,공주대학교도서관장,문화재청문화재위원회위원을지냈으며,현재공주백제문화제집행위원장이다.지은책으로는《사료를보니백제가보인다(국외편)》,공저로는《백제와섬진강》,《한국사속의백제와왜》,《한류열풍의진앙지일본가와치河內》,《초기백제사의제문제》,《새로운동아시아국제질서의시작,한강유역과관산성》,《스러져간백제의함성》,《고대한류열풍의중심지아스카》등이있다.

목차

책을펴내며
프롤로그-5~6세기한반도의전운

I부백제사의역주행,무령왕릉발굴
1.1,500여년만에드러난무령왕릉
운명의그날,삽자루에걸린벽돌|무령왕릉발굴,우연인가필연인가|무령왕릉발굴이후
2.백제문화의진수를보여주다
정교하고화려한금속공예품|무령왕릉발굴의성과

II부탄생과설화
3.위기의백제를구하라-왜로간곤지
개로왕즉위의일등공신곤지,좌현왕에임명되다|곤지가왜로간까닭
4.‘섬’을이름으로가진아이
무령왕탄생설화는어디까지사실일까|무령왕이태어난가카라시마의위치|무령왕의이름은왜사마였을까
5.곤지,‘가와치신화’를창조하다
백제인들이정착한가와치지역과아스카|가와치지역에보이는백제인들의흔적|백제와왜,전략적동반관계구축-곤지파견의목적
6.홀로된사마,섬을무대로성장하다
사마는누구의아들일까-출생의비밀|섬을무대로활동한‘도군’,사마|이와이의난을통해본규슈지역백제계세력의실체|사마,백제중흥의뜻을세우다
7.천험의요새웅진으로
개로왕,무모한패장인가시대의희생양인가|500년도읍지한성이불타다|웅진,위기에빠진백제의새로운터전이되다

III부국인공모國人共謀
8.곤지의귀국과죽음,혼돈의시대로
곤지는어떻게귀국하였나|곤지의죽음-자연사인가음모인가|혼돈의극치,문주왕시해
9.모대와사마의입국
삼근왕의죽음을둘러싼의문|모대의입국|사마의입국|동성왕즉위배경|동성왕의정치적기반|동성왕즉위와사마의역할
10.사마의국내활동
동성왕의왕권강화노력과한계|사마,위기를반등의기회로
11.동성왕몰락과사마의결단
파국으로치달은권력투쟁|동성왕의몰락|동성왕몰락의전조|사마는어떻게살아남아왕이되었는가
12.동성왕시해와정변주도세력
동성왕시해사건의전모|동성왕시해와무령왕의역할|강에수장된역적

IV부갱위강국更爲强國
13.준비된개혁군주
제도적인왕권강화로|무령왕가계의골족의식|귀족들의서열화
14.위민정치의실천
무령왕의위민의식|국가주도의제방축조|백성들의귀환과호적정비|백성의나라임을선언하다
15.강을열고,바닷길을잇다
흔들리는백제의위상|백제의기지개,가야와의알력|남방정책,섬진강유역을장악하다|동아시아교역로를주관하다
16.갱위강국의선포
무령왕정권의지향점|숙원인고구려를격파하다|《양직공도》에보이는백제의위상|갱위강국을만방에선포하다
17.사마,잠들다
한성순무,시작과끝|마지막고뇌,신라와가야|웅진땅에잠들다

에필로그-무령왕,끝나지않은신화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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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의문에싸인혈통과탄생
백제제21대왕개로왕의동생곤지는461년왜로향한다.이때임신한개로왕의부인이동행한다.일본으로가는여정중각라도에서태어나시마(섬)란이름이붙은소년이훗날25대무령왕이된다.곤지가일본에간이유,시마의혈연적부친이개로왕인지곤지인지,시마는왜곤지와떨어져따로성장했는지등을꼼꼼하게파고든다.시마는규슈일대에자리잡은유력한백제계도왜인집안출신의어머니를둔곤지의서자(135쪽)라는설득력있는설명을제시한다.이과정에서일본아스카지역에서꽃피운백제문화의유적을짚는것은덤이다.

덕으로닦은권력기반
귀족세력을견제하기위해정치적라이벌인형곤지를다시부른문주왕의조치에따라,혹은훗날동성왕이된동생의귀국에따라규슈에서활동하던시마역시백제로돌아온다.그리고는문주왕이해구에의해시해된후동생동성왕의즉위에일정부분기여한다.이어왕권강화를추구하며기근에시달리는백성을외면한동성왕의견제를받았으나전라도지역에파견되어민심을얻는다.《삼국사기》에서“인자하고너그러워백성들의마음이그를따랐다”고평한대목에근거한유추이다(202쪽).그결과민심을잃은동성왕이중신백가에게살해당하자‘나라사람들(國人)’의추대로왕위에오른다(228쪽).나이마흔때일이다.

갱위강국更爲强國을선언한명군名君
왕권을쥔무령왕의위민정책이돋보인다.재위6년(506)춘궁기에창고를열어백성들을구휼(252쪽)하고,재위9년(509)에임나지역유민의호적을복구하는가하면(255쪽),재위10년(510)봄에국가주도로제방을완비하고놀고먹는자들을몰아농사를짓게했다(252쪽).이것이부국富國을겨냥한것이라면집권하자마자달솔우영을보내고구려수곡성을공격하고(230쪽),재위12년(512)임나4현을수복하는등섬진강유역을확보해일본과중국을향하는물길을확보(269쪽)한것은강병强兵을지향한것이라하겠다.그결과521년‘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강국이되다)’을선포하고동쪽을편안하게했다는‘영동대장군’의작을받으니이는당시고구려안장왕보다높은품계로(292쪽)백제의국제적위상을드높인외교적개가였다.

성근사실史實을보완한합리적추론
지은이는한ㆍ중ㆍ일의사료를섭렵하고고고학적연구를토대로무령왕일대기를구성했지만사실史實자체는성글다.망국의역사를누가성실하게기록했을것인가.지은이는이를합리적추론으로메우는데성공한것으로읽힌다.그렇게해서무령왕의이야기를신화에서역사의영역으로자리매김하는한편,무령왕릉발굴품을살펴‘검이불루화이불치(검소하되누추하지않고화려하되사치스럽지않다)’를지향한백제문화에미래지향적가치를부여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