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 북촌편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 북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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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34꼭지로 그리는 북촌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북촌 미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정.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북촌편〉은 일제강점기 경성의 북촌으로 몰려든 미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정이다. 오랜 시간 북촌 지역에 거주하면서 많은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접했던 저자 황정수는 골목골목에서 그들의 흔적을 확인한다. 저자는 북촌을 거닐며 북촌과 북촌 주변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한국 근대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34꼭지에 담아낸다. 이를 통해 일반 독자는 여러 유명 미술가들의 흥미로운 삶 이야기를, 미술가를 꿈꾸는 이들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고달팠지만 아름다웠던 북촌 미술가들의 삶을 찾아
저자는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매천야록》 권1 상)에 있다 하여 이름 붙은 북촌을 산책하며 올라가던 길에서 서양화의 시작을 알린 고희동을, 내려오는 길에서 임금의 초상을 그린 인물화의 귀재 김은호를 만난다. 김은호가 살던 동네에서는 기억상실증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던 비운의 화가 백윤문, 장애를 극복한 의지의 화가 김기창, 남과 북에서 공명을 누린 서화가 이석호 등 김은호의 제자들과 마주친다. 발길을 돌려 찾은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근대 전각을 개척한 전각 명인 오세창, 근대 서화계의 어른으로 불린 김용진, 조선의 마지막 내시 출신 서화가 이병직의 자취를 접한다. 이들 북촌 지역 미술가의 생애와 작품에 더해 화가들이 흠모하던 슈퍼스타 최승희와 매란방, 근대 서화골동 매매 거리의 원조였던 인사동, 근대 미술의 요람이던 중앙고보와 휘문고보 등의 채취도 떠올린다.

북촌에서 만난 미술가들
북촌에는 안중식, 고희동, 김은호, 백윤문, 김기창, 이석호, 오세창, 김용진, 이병직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미술가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저자는 다재다능하고 신비로운 서화가 지운영, 근대 나전칠기를 개척한 공예가 전성규, 현대 건축의 산실 공간 사옥을 설계한 김수근, 유럽에 이름을 떨쳤던 첫 번째 한국화가 배운성 등 다양한 미술가들의 생애와 작품을 펼쳐 보인다.
한국 문인화의 정형을 정립한 장우성, 한국적 인상파 화법을 완성한 화가 오지호, 해방 후 좌익 미술계를 이끌었던 길진섭, 월북한 감성적 모더니스트 최재덕, 한국 최초로 시사만평을 그린 이도영, 좌주서의 신경지를 개척한 서예가 유희강, 죽음으로 예술을 완성한 비운의 조각가 권진규 등 저자가 만난 여러 미술가들의 생애와 작품은 한국 근대미술에 대한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저자

황정수

저자:황정수
조선시대미술이근대미술로이행해온과정에관한연구를주로하고있다.근대화과정에서필연적으로겪을수밖에없었던서구미술의영향과일제강점기한일간미술교류에도관심이많다.근래에는근대기미술가들의활동에대한글을신문과잡지등에연재하고있다.미술품감정에도힘을기울여미술관전시작품의감정을하고있고,감정에관한강연과교육도하고있다.
지은책으로《경매된서화》(공저,2005),《일본화가들조선을그리다》(2018),《진환평전》(공저,2020)이있고,〈소치허련의완당초상에관한소견〉(《소치연구》창간호,2003)외여러편의논문을썼다.

목차

책을상재하며

1_북촌
북촌근대서화골동매매거리의원조인사동
근대동양화단의좌장안중식
다재다능하고신비로운서화가지운영
근대전각의길을개척한전각명인오세창
근대난초그림을정립한서화가김응원
근대서화계의어른으로불린김용진
서양화의시작을알린고희동
조선조마지막내시출신서화가이병직
독립운동에앞장선서화가김진우
임금의초상을그린인물화의귀재김은호
금강산을잘그린산수화의거장배렴
기억상실증으로불행했던비운의화가백윤문
남과북에서공명을누린서화가이석호
장애를극복한의지의화가김기창
한국문인화의정형을정립한장우성
한국적인상파화법을완성한화가오지호
해방후좌익미술계를이끌었던길진섭
월북한감성적모더니스트최재덕
근대나전칠기를개척한공예가전성규
현대건축의산실공간사옥과김수근
근대미술의요람중앙고보와휘문고보

2_북촌주변
사진관,화랑까지경영한서화가김규진
근대서예의체계를정립한김돈희
한국최초로시사만평을그린이도영
조선미술전람회입선한명월관주인안순환
금강산그림전통을이은산수화의명인변관식
늘경계인이었던월북서양화가임군홍
유럽에이름떨친첫한국화가배운성
좌수서의신경지를개척한서예가유희강
한글서예를개척한김충현과김씨4형제
죽음으로예술을완성한비운의조각가권진규
국립중앙박물관최초의유물사진가이건중
화가들도흠모했던슈퍼스타최승희와매란방
천도교중앙대교당을설계한나카무라요시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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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북촌은조선시대명문집안의후예들이살아경제적여유가있었고,서촌지역은본래경제적여유가있는중인들이많이산데다일제강점이후궁궐이나총독부와관련있는신흥부자들이있어미술인들을후원할만한곳이었다.이들은미술계의고객또는후원자역할을했다.점차더욱많은미술인들이북촌과서촌에몰려들었고,이들은전설같은이야기를만들어냈다(5쪽).

인사동이본격적으로서화골동書?骨董의중심지가된때는일제강점기이다.인사동이라는지명도1914년행정구역통폐합에따라만들어졌다.인사仁寺라는지명은‘관인방’과‘대사동’의이름에서연유한다.일본인상인들은인사동이서화골동유통의최적지라는것을느끼고이곳에자리잡기시작했다.광통교,경복궁과창덕궁,북촌으로연결되는인사동은이때이후본격적으로한국미술품매매의중심지가되었다(22쪽).

한국근대미술을언급할때그중심에는늘심전心田안중식安中植(1861~1919)이라는인물이있다.그는조선화단최고의인물이었던오원장승업의적통을잇는뛰어난화원이었을뿐아니라,새로운미술운동의중심에있던동양화단의좌장이었다(23쪽).

안중식은뛰어난화가였을뿐만아니라국민을계몽하는선각자로서많은활동을했다.잡지나소설의표지를그리기도하고,신문의삽화를그리기도했다.또한미술단체를만들어후배들을가르치는미술교육자로서의역할도대단했다.그의삶은한국근대화의최전선을보여준다는면에서중요한의미를지닌다(35쪽).

조선후기부터근대기에걸쳐활동했던예술가중가장신비롭고재주많은인물이라면단연백련白蓮지운영池雲英(1852~1935)을꼽아야하지않나싶다(37쪽).

단지서화에만충실했던다른서화가와달리,지운영은시에뛰어났으며사진술과도교?무술등다른활동에도뛰어난신비로운인물이었다.이런면에서지운영은새롭게관심을가져볼만한예술가이다(45쪽).

예술가오세창을대표하는모습은역시전각篆刻에서찾을수있다.그는자기자신을조충雕蟲(새김벌레)이라부를정도로전각을사랑했던당대최고의전각가였다.같은시대에활동한많은서화가들이오세창이새긴인장을사용했다(52쪽).

오세창의서예나문인화도전각못지않게뛰어났다.전각의기본이전서,예서인까닭에그또한전서와예서를즐겨썼다.특히전서와예서를혼합한독특한글씨나와당,고전古篆,갑골문형태의글씨는독창성이매우뛰어나‘위창체’,‘오세창체’라불렸다.또한대나무나난초등을소재로한수묵화도자신만의독특한미술세계를이루었다(52~55쪽).

김응원은김정희,이하응에게서난을배웠으나,단순히그림을습득하는데머물지않고세상에널리알리는데힘을기울였다.한국인제자들을가르치기도하고,일본인고위관리를교육하기도하고,웃음을파는기생에게도난초치는법을가르쳤다.김응원에게난초그림은자신의재주일뿐아니라,세상과소통할수있는눈에보이지않는널찍한길이었다(66쪽).

김용진은서화에모두능했다.글씨는안진경체를바탕으로격조높은해서와행서를주로썼고,한나라예서에바탕을둔품격있는예서를쓰기도했다.……서화가로서김용진의기량은사군자와채색꽃그림에서독보적이다.그의‘묵란’과‘묵죽’은민영익의화법을따랐으며,‘운미란芸楣蘭’을국내화단에보급하는데크게기여했다(73쪽).

고희동은그동안우리나라최초의서양화가라는역사적의미와새로운조형방법을후진에게가르친미술교육자로서높이평가받았다.……실제전하는그의작품들은당대에활동한대표적인화가들못지않은개성과미덕을가지고있다.원근이살아있는생동감넘치는산수화나뛰어난색채감을보이는개성적인화면은다른화가들에게서보기어려운새로운면이다(88쪽).

조선의마지막내시중한명인송은松隱이병직李秉直(1896~1973)또한유력한내시가문의후예였다.이병직은권력을누리는대신서화가로활동하는한편뛰어난감식안과경제력을바탕으로고서화와골동품을모아수장가로서도크게이름을날렸다(90쪽).

김진우의대나무그림은굳은줄기에댓잎이붙은듯떨어진듯날렵하게흩날린다.마치날카로운창칼같기도한이같은댓잎하나하나를두고김진우의독립의지가표현된것으로설명하기도한다.난초그림또한단정하면서도굳건함이조금도흐트러지지않는다.그의굳고고결한품성의모습이잘반영되어나타난듯하다(106쪽).

김은호는……특히인물화를잘그렸다.하루가다르게실력이늘고이름이조금씩알려지기시작하자갑자기덕수궁에있던고종이‘어진초본御眞艸本’을그려오라는명령을내린다.……김은호가온힘을기울여초본을그려보내니고종이흡족해했다.결국김은호는어진화사가되어고종의어진을그리게된다(113쪽).

배렴의산수화를대표하는것중의하나가금강산이다.당시누구나금강산을좋아하긴했으나배렴의금강산사랑은남달랐다.배렴은1939년금강산을방문하여명승지구석구석을스케치한다.그는이때남긴방대한양의스케치를바탕으로금강산의주요경관을그려이를중심으로1940년화신화랑에서개인전시회를열었다.전시회는많은사람들이찾아성황을이루었고,판매도잘되었다고한다.이때그린그림을그의대표작이라생각하는사람들이많다(122쪽).

〈축수도〉는백윤문의뛰어난그림과글씨솜씨를웅변한다.그러나36년이라는긴공백을가지고재기한뒤에는유감스럽게도구성이나필치,글씨등모든면에서예전의면모를보이지못했다.그런면에서그는기억상실증이라는천형으로전성기를놓쳐버린‘비운의화가’였다(133쪽).

이석호는일제강점기와남북분단이라는어려운시대를겪었지만,체제가다른남북양쪽모두에서화가로서는비교적행복한삶을누린것이아닌가싶다(146쪽).

김기창은어려서병을앓으며얻은귀가들리지않는천형과한평생함께하면서도많은훌륭한작품을남겨한국미술사에한획을그었다.그는남다른창작욕구로한곳에머무르지않고새로운미술의경지를찾아나서결국이뤄내고야마는불굴의의지를보였다(147쪽).

〈오염지대〉는인간이편리를위해추구한근대화가만들어낸공해의폐해를비판한작품으로유명하다.……기력을잃어날갯죽지조차들지못하는한마리학의모습이애처롭다.결국그안에서죽어갈지도모르는상황임에도인간은현실을뉘우치지않고있다.장우성의그림에는이같은모습에대한비판이담긴듯하다.어쩌면그는자신의그림을문명화된세상에서인간성회복을위한마지막비상구라고생각했는지도모르겠다(173쪽).

근대서양화가들이일본에서인상파화법을단순히수입하는데바빴으나,오지호는자신만의변별적인화풍을만들어내려애썼다.그의그림에는다른작가들이흉내내기어려운자연스러움이있다.어쩌면그의작품에서보이는이런자연스러움이‘한국적인풍경화’의모습일지도모르겠다(186쪽).

길진섭과관련된이야기로가장관심을끄는것중하나는시인이상이숨을거두었을때그의데드마스크를떴다는이야기이다.……이상의데드마스크를뜨자는의견이나와길진섭이시신이된이상의얼굴에기름을바르고석고를덮는작업을했다.석고가굳은뒤벗겨냈더니얼굴에바른기름이모자랐던지수염이몇가닥같이뽑혀나와그때서야친구들이“정녕이상이죽었구나”하는생각이들어더욱슬퍼했다고한다(194쪽).

빼어난감성으로좋은그림을그렸던최재덕이었지만,북으로가서는자신의화풍을제대로이어나가지못했다.그의감성적이고예민한예술적성향이사회주의리얼리즘을주창하는북한의예술론과는어울리지않는면이많았을것이다.그가계속남쪽에남아그림을그렸다면또어떤작품을남겼을지,아쉬움이남는대목이다(205쪽).

전성규는고려,조선을거치며전통적인방식을답습하던나전칠기를새로운기술과새로운도구를받아들여한층더발전시킨인물이었다.그는시계공장에서사용하는서구식실톱을사용하는새로운방법으로자개를여러장포개어동일한무늬여러개를단번에썰어내거나,무늬복사용지를사용하는등의혁신으로작업능률을향상시킴으로써전통기법을개선한최초의인물이었다(212쪽).

김수근은많은훌륭한건축물을설계한한국현대건축계의대부로추앙받지만,한편으론‘왜색’과‘독재에협력했다’는비판을받기도한다.……하늘이맑은가을날김수근의초심이온전히담긴아름다운‘공간’사옥을보면,현대건축사에아름답지만은않게기억되는그가떠올라몹시안타깝다(224~25쪽).

북촌의많은학교들중계동골목에있던중앙고와휘문고는……미술쪽에서의활동도눈부셨다.두학교가가까이있어고희동이나이종우,김용준등이두학교에모두수업을나가거나영향력을행사할수있었기때문이었다(227~28쪽).

김규진은하나의예술통로만으로는설명이쉽지않은복합적인물이다.그는당대최고의서화가로이름을날렸을뿐아니라미술교육자로서영향력이매우컸고,사진기술도입의선구자로서도공이크다.또한근대적의미의화랑발전사에도큰발자취를남겼다(240쪽).

김돈희의삶은빛과그늘이교차된이중적모습을보인다.미술이라는것이사랑과희망,기쁨뿐만아니라슬픔과좌절,고통을담듯이,미술사연구도빛을보인측면뿐만아니라그늘진모습도담아야하지않을까.단순하게친일서예가로서홀대할것이아니라그가보여준미술세계의‘공功’과‘과過’를엄격히따져,한국서예사의본모습을이해하는기준으로삼아야할것이다(261쪽).

이도영은당시상당수의화가들이애호가들의취향에맞는감상용회화를그릴때,새로운미술형태인시사만평을비롯하여교과서원화,잡지의표지화나삽화등에눈을돌린선구자였다.이도영의활동은인쇄매체의대중적역할을일찍이깨달은데서나온행동이었다.이러한매체들을통해대중들의각성과애국계몽을실현시키고자했다는점에서이도영은근대미술사에서긍정적인평가를내릴만한중요한인물이다(271쪽).

유명한요릿집명월관을세운……안순환은요릿집을경영한사업가로유명했지만한때서화를수집하고서화거간도했으며,서화에능하여묵죽?묵란으로조선미술전람회에서입선까지한재능있는사람이었다(272~73쪽).

많은이들이술만자제했으면변관식이더오래살면서좋은작품을더많이그렸을것이라아쉬워한다.그러나화가에게술이없으면무슨그림을그릴수있겠으며술없는인생이변관식에게무슨즐거움이있었겠는가?술은그에게그림을그리게하는가장좋은원동력이아니었나싶다.그런의미에서보면,그는또한명의아름다운‘화선畵仙’이었다(289쪽).

그동안화가임군홍에대한한국화단의시선은그리따뜻하지않았다.……그는철저하게어느한곳에머무르지못한‘경계인’이었다.그런탓에한국화단에서금기시하는화가였고중요한작가로평가받지못했다.이제사상적으로해금도되었고다행히연구할작품도많이남아있다.그에대한적극적인연구가진행되어가능한한빠른시일내에재평가가이루어져야할것이다(299쪽).

배운성은그리평안한삶은아니었지만늘미술과함께하는예술적인인생을살았다.그는독일과프랑스에서그림을그렸고,귀국하여남쪽에있을때에도그림을그렸고,북쪽에가서도늘미술과함께살았다.그는평생미술과함께한천생미술가였다(317쪽).

서예는필획의움직임에따라글씨의구성이달라지기때문에손이바뀌면본래의글씨수준을이루어내기어렵다.유희강은이를극복하고새로운‘좌수서左手書’의세계를열었다.이때부터그의서예세계는‘우수서右手書시대’와‘좌수서시대’로나뉜다.이러한재기는세계서예역사에서도찾기힘든불굴의인간승리라아니할수없다(321쪽).

김충현의한문글씨는전?예?해?행?초5체에두루걸쳐있다.‘북비남첩北碑南帖’이라불리는전통서예학습에전념하여해서를습득했고,금석문을바탕으로전서를갖추었으며,한나라예서를바탕으로예서를가다듬었다(333쪽).

권진규는주로인물이나말,닭등의동물모습을흙으로구워제작하는테라코타terra-cot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