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 서촌편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 서촌편

$20.05
Description
25꼭지로 그리는
서촌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서촌 미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정. 《경성의 화가들, 근대를 거닐다》 〈서촌편〉은 일제강점기 경성의 서촌으로 몰려든 미술가들을 찾아 떠난 여정이다. 오랜 시간 북촌 지역에 거주하면서 많은 미술가들의 이야기를 접했던 저자 황정수는 골목골목에서 그들의 흔적을 확인한다.

저자는 서촌을 거닐며 백악산 아래 경복궁 주변, 수성동 밑 옥인동 주변, 필운동과 사직동 부근 등 서촌과 서촌 주변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한국 근대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찾아 25꼭지에 담아낸다. 이를 통해 일반 독자는 여러 유명 미술가들의 흥미로운 삶 이야기를, 미술가를 꿈꾸는 이들은 한국 근대미술사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황정수

저자:황정수
조선시대미술이근대미술로이행해온과정에관한연구를주로하고있다.근대화과정에서필연적으로겪을수밖에없었던서구미술의영향과일제강점기한일간미술교류에도관심이많다.근래에는근대기미술가들의활동에대한글을신문과잡지등에연재하고있다.미술품감정에도힘을기울여미술관전시작품의감정을하고있고,감정에관한강연과교육도하고있다.
지은책으로《경매된서화》(공저,2005),《일본화가들조선을그리다》(2018),《진환평전》(공저,2020)이있고,〈소치허련의완당초상에관한소견〉(《소치연구》창간호,2003)외여러편의논문을썼다.

목차

책을상재하며

1_백악산아래경복궁주변
인왕산을바라보며경복궁을지나다
진명여학교를세운엄귀비와졸업생나혜석
서촌을대표하는동양화단의거목이한복
김정희의〈세한도〉를되찾아온손재형
근대서양화가들의산실경복고등학교
표지화에도능했던‘팔방미인’정현웅
만화가로도이름을떨친동양화가노수현
충청화단을대표했던설경의대가박승무

2_수성동밑옥인동주변
근대미술의자존심‘서화협회’와이완용
한양의아방궁‘벽수산장’과‘박노수가옥’
근대동양화의상징이상범
옥동패서양화가들의중심이승만
동양화가이여성과서양화가이쾌대,두형제이야기
박제가된두천재,구본웅과이상의운명적만남
화가이중섭의짧았던행복,‘누상동시절’
불꽃처럼살았던‘채색화의전설’천경자
월북한화가정종여와석굴암의인연
소년천재화가로각광받은이봉상

3_필운동과사직동부근
근대조각의선구자김복진
이제창이라는화가를기억해야하는이유
한국인최초로프랑스유학을한이종우
동?서양화에모두능했던귀재김중현
한글서예의산실배화여자고등학교
일제강점기서촌과일본인화가들
현대화가들에게도여전히매력적인인왕산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서촌을떠나지않은중인의후예들덕분에서촌은점차다른지역에비해문화수준이높은지역이되었다.궁궐에서가깝고창의문彰義門이가까워도성밖으로나가기좋았던입지도실용적인신흥세력들이모여드는계기로작용했다.일제강점기에들어왔던많은일본인들이서촌에자리잡은것도이러한입지때문이었다.자연환경도한몫거들었다.병풍처럼뒤를둘러싼인왕산,아름다운수성동계곡,마을앞을흐르는개천등산수가조화로운천혜의환경을가진곳이바로서촌이다(15쪽).

1906년에설립된진명여학교는1912년에진명여자보통학교와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분리되어새로운시대를맞이한다.이즈음진명여학교를다닌가장유명한인물은단연정월晶月나혜석羅蕙錫(1896~1948)이다(25쪽).

나혜석은비슷한시기에도쿄의여자미술전문학교를졸업하고돌아온후한평생거의서양화를손에서놓지않고살았다.학교교사를하면서도그림을그렸고,남편을따라유럽과미국을돌아다닐때에도그림을그렸고,세상을등지고산중에있을때에도그림을그렸다.그는천생화가였다(34쪽).

이한복은추사김정희를선양하는등한국전통미술을수용하고발전시키려노력한인물이었다.그는당시서양화에밀려소외되던동양화에대해서도“조선사람으로동양화에사랑이적은것은매우섭섭한일이다.일부에서동양화는일본화라고하며꺼리는이도있으나,어떠한양식으로든지자기네의‘국민의혼[國民魂]’만표현하면그만이라고믿는다.그리고조선미술전람회에서성공을할생각을하여야지일본의제국미술전람회를넘겨다보게되면도리어조선미술전람회의전도는낙관할수없다”며조선미술전람회의발전을기원한의식있는작가였다(47쪽).

한국근대서예를대표하는인물을꼽으라면단연소전素?손재형孫在馨(1903~1981)이다.그는조선시대부터내려온전통서예의맥을이었을뿐아니라새로운시대의변화에잘적응하여한국서예가나아갈길을제시한인물이었다.그가개척한새로운양식의서체는현대한국서예의중심축을이루었다(48쪽).

미술로가장주목받은학교는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경복고등학교)였다.1921년에개교한경성제2고보는경성제1고보(현경기고등학교)다음가는명문학교였다.이학교는훗날한국근대미술계를대표하는화가를여럿배출한다(60쪽).

화가로서의입지가구축되자그[정현웅]는신문사와잡지사등에취직하여표지장정과삽화를그리기시작했다.온화하고섬세했던그의성품과잘어울리는일이었다.일제강점기에서해방공간에이르는기간에출판된책가운데표지장정을가장많이그린이가정현웅이다(77쪽).

한국최초의만화가라할수있는이는이도영이다.이도영은안중식문하에서공부한뛰어난동양화가이기도하지만,1909년창간된《대한민보》에한국인최초로만화를수록했던한국만화의개척자이기도하다.그의만화는한면으로된만평漫評이었는데,국운이기울어가던당시일제가들어오는과정에서생긴사회의부조리나이에부화뇌동하는친일파의사회적활동을우스꽝스럽게비판하는내용이었다(90쪽).

노수현은바위산을중심으로나무와수풀을점묘로그리는산수화가주특기였지만동양화의유려한필법을바탕으로삽화나만화도잘그렸다.삽화와만화가당시노수현이추구하는미술의본령은아니었으나,근대삽화와만화발전의선구적역할을했다는데에는이의가없을것이다.그런면에서노수현은일제말기활동으로친일미술인이었다는시비가있지만한국근대미술사의일부를구성하는중요한작가다(98쪽).

박승무는타고난재능의화가가아니라진득하게노력하는화가였다.그의화조화나사군자는장승업이나안중식등재능을타고난화가들의그림과는달리예리하고세련된맛이적고,담담하게자신의마음을펼쳐보이는그림이었다.그래서인지그의그림은처음보면그다지매력이느껴지지는않으나오래두고보면점차정이들어친숙해지는특징이있다.특히산수화에서그런느낌이강하다(108쪽).

“한국최초의근대미술단체”로불리는서화협회는1918년한국의동양화가들과서양화가들이모여결성한단체다.서화협회는결성한지3년후인1921년서화협회전을개최하여전통화와서양화를함께전시한다.서화협회전은한국미술의근대화를촉진시키며한국근대미술발전에크게기여했다.이러한역할이조선미술전람회의출범을자극한것이다.그러나아쉽게도서화협회는1936년일제의금지령으로해산되고만다(114~16쪽).

1960년대이후부터박노수는대담한구도와독특한준법을구사하며감각적?추상적인회화를시도했다.특히소년,말,사슴,그리고강,수목등을소재로한박노수특유의그림은실험적이며독자적인화풍으로한때시대를대표하는그림으로평가받기도했다.그의그림은다양한실험을하면서도동양적인선묘線描를잃지않았고,신선한색채감각과격조높은정신세계를보여주었다.그는동시대에활동했던어떤이들보다구성력이나필력,감각,그리고정신적인면에서특출한성과를보인뛰어난화가였다(133쪽).

청전靑田이상범李象範(1897~1972)은……모르는이가드물정도로유명한화가다.한국전통미술에관심이적더라도한국의수화하면떠올리는이미지는대개이상범의그림이다.특히한국의시골마을을서정적정취로그린산수화는한국미술을지탱하는상징으로자리잡고있다.그만큼이상범이라는이름은한국미술을대표하는고유명사이다(134~35쪽).

이승만은한국미술사에서특이한지점에있는작가다.그는일본에유학하여서양화를공부했으나한국에돌아와서는서양화보다신문소설의삽화로이름을알린‘삽화의명수’였다.그가삽화에전념하게된것은혜원蕙園신윤복申潤福(1758~?)의풍속화에심취하게되면서부터다.신윤복의풍속화를현대적으로구현하기위해신문의삽화를그리게되었다고한다.그는신문의역사소설삽화를계속해서그리며명성을쌓아갔다(154쪽).

서촌에서살며뜻을펼치던이들중이여성과이쾌대李快大(1913~1965)형제가있었다.……형이여성은다방면에많은재능을가진이였다.사회운동가이자언론인이며,화가이자,학자요,평론가이기도했다(160쪽).

이쾌대는1945년광복후에조선조형예술동맹및좌익계열의조선미술동맹간부가되어사상적경향성을보이기시작한다.……그는이때부터자신의인생역정과조국의현실을반영한작품들을쏟아내기시작한다.그의대표작이라할만한〈군상〉연작도이때제작되었다.〈군상〉은훗날한국근대미술사의기념비적인작품이된다(168~69쪽).

서촌에살던예술인중서양화가구본웅과시인이상의만남은하늘이내린인연이었다.두사람은외형적으로는서로가까워질수없을것같은이질적인조건을가지고태어났지만,그동안‘지음知音’이라불렸던수많은인물들보다더욱막역한관계를유지한다(172쪽).

서촌누상동에서지낸1954년한해는이중섭에게는참으로행복한시절이었다.주변사람들의도움으로안정을찾고제대로된작업을할수있었기때문이다.……그는전시를열어성공하면일본에가서가족을데리고올수있다는꿈에부풀어그림을그렸다.가장희망에찬시기였다.……창작열이고조된덕에이곳에서좋은작품을많이남긴다(184~86쪽).

천경자에게누하동살던시절은정신적으로가장여유롭고낭만적감성이흐르던시절이었다.이때그린그림들은서정적인감성이가득하고여성적부드러움이넘쳐흐른다.서울에올라와자리를잡지못하다처음으로자신의집을갖는등마음의안정을찾아자유로운화풍을보이게된듯하다.삶의여유가인간의아름다운순간을그리게하고삶의긍정적인모습을표현하게한것으로보인다.특히뱀을형상화한〈사군도蛇群圖〉(1969)같은그림은예전에그린〈생태〉와비교해봐도작품에얼마나많은변화가있었는지짐작하게한다(205쪽).

그[정종여]는한국에서도또한일본에서도,그리고남북분단후북한에서도승승장구한화가다.또한일제강점기의저항과순응,해방공간의좌익과우익,남한과북한의이념대립과같은굴곡의역사속에서정체성을찾지못한복잡한인물이기도하다.이런복잡한인생때문에월북작가에대한연구의성패는정종여연구에달려있다해도과언이아니다.더늦기전에정종여미술세계의전모를파악하는작업이이루어지길기대해본다(221쪽).

이봉상은비교적과작이라남아있는작품이적은편이다.아쉬운일이지만작품세계를평가하기에는그런대로모자라지않은양이다.그림의구성이나기교어느하나다른이에뒤지지않는다.기품있는색감과다감하게다가오는화면의질감은높은격조를보인다.그런면에서이봉상은김환기,이중섭,유영국못지않은뛰어난작가라할만하다(230쪽).

한국최초의근대적의미의조각가인정관井觀김복진金復鎭(1901~1940)은서촌지역에서거주하거나활동했던중요한작가중한명이다.그는행인이승만이중심이되어어울렸던‘옥동패’의큰축을담당했다(234쪽).

이제창은최초로서양화가가된고희동과그의영향을받은후예들이화가로성장하는과정에서다리역할을했던중요한인물이다.……활동이없었던것도아니고친구들이적었던것도아닌데,한국미술사에그에대한기록이너무적은것은아쉬운일이아닐수없다(248쪽).

이들세명[고희동,김관영,김찬우]은한국근대서양화단을개척한3인방으로꼽힌다.이들은한국에돌아와처음에는서양화보급에힘쓰지만곧서양화작업을그만둔다.작가로서성공했다고말하기어려운이유다.오히려이들에이어일본에서유학을하고돌아와평생화가로사는정월나혜석과설초雪蕉이종우李鍾禹(1899~1981)가진정한의미의한국최초서양화가라할만하다(260~61쪽).

김중현은……초기에는소박한기법의자연풍경과인물상이나정물등을그렸다.1930년대에접어들면서는점차서민층의삶과풍속적인정경을토속적인기법으로표현해독창성을드러냈다.당시서양화계에서인물중심풍속화를그리는이는그가유일했다(276쪽).

관동학회를세운남궁억은궁체에바탕을둔한글서예에독보적인실력을갖춘뛰어난예술가였다.이만규는남궁억에게감화되어한글서예에관심을갖기시작한다.이때부터이만규는직접한글글씨를쓰며궁체연구에집중한다.두사람이경성의같은학교[배화여고보]에서교사생활을한것또한인연이라하지않을수없다(284쪽).

이만규는6남매를두었는데,딸이넷이었다.그는선각자적교육열로당시로서는드물게네딸을모두전문학교에보냈다.첫째는임경姙卿,둘째는각경珏卿(1914~?),셋째는철경喆卿(1914~1989),넷째는미경美卿(1918~)이다.……그는네딸모두에게한글서예를가르쳤다.……이각경과이철경은뛰어난재주를보여아버지의전폭적인지원을받았다.경성사범학교를졸업하고초등학교교사로일하고있던큰언니이임경도막내인이미경에게글씨지도를할정도로네자매가모두한글서예에뛰어난실력을보였다(285~86쪽).

개항후많은일본인들이한국에들어와살게되었다.……이들의상당수가정치?경제의중심지인경성에살았으며,서촌지역에도일본인들이많이들어와살게되었다.서촌에들어와산일본인중에는화가도상당수있었다.이들은주로근처에있는학교의교사로일했으며,일부는본격적인화가로작품활동을했다(291쪽).

오늘날에도적지않은화가들이서촌지역에살면서서촌을소재로그림을그린다.특히인왕산은화가들의단골모티브다.바위로이루어진산세는화가들에게많은창조적영감을준다.다른지역의산들은세월의변화에따라시각적으로많이달라졌지만인왕산은크게달라지지않아예전과비슷한느낌을간직하고있다.그래서인지조선시대화가들못지않게현대미술가들의그림에도자주등장한다(303쪽).

현대의많은작가들이여전히인왕산을좋아하고작품으로그리는것은인왕산이그림의소재로서매력적인산이기도하지만,나라를이끌어가는지배층을굽어보는곳에있다는상징성때문이기도할것이다.이런지정학적측면을보면인왕산은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