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

프랑스혁명사는 논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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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인권 신장의 신기원”-“폭력으로 얼룩진 비극”
찬양과 저주 사이, 프랑스혁명의 민낯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한 입체적 조명
프랑스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위대한 실험이요 거대한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일 년 남짓한 ‘공포정치’ 기간에 50만 명이 감옥에 수용되었고 3만 명 이상이 처형되었다는 사실 등 폭력성 또한 혁명의 또 다른 얼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의 프랑스 혁명사 이해는 혁명을 예찬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감이 있다. 이 책은 ‘인권’이라는 ‘빛’에 초점을 맞추어 혁명을 바라보았던 그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 ‘폭력’이라는 ‘어둠’에도 시선을 돌려 혁명의 참모습을 파악하려는 시도에서 기획한 것이다.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혁명을 ‘쫓아가지’ 않는다.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지은이는 혁명과 반혁명, 혁명가, ‘혁명사’로 나누어 혁명의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사건을 날줄로, 혁명가를 씨줄로 삼아 혁명의 맥락을 짚어내는 방식이다.
저자

김응종

1955년대전출생.1978년서울대학교서양사학과졸업후1984년프랑스낭트대학교에서석사,1987년프랑스프랑쉬콩테대학교에서박사학위를받았다.1988년이래충남대학교인문대학사학과교수로재직했으며,현재는충남대학교사학과명예교수이다.충남대학교평생교육원장,인문대학장,한국프랑스사학회회장등을역임했다.저서로는《아날학파》,《오늘의역사학》(공저),《아날학파의역사세계》,《서양의역사에는초야권이없다》,《페르낭브로델》,《서양사개념어사전》,《관용의역사》등이있고,역서로는《프랑스혁명사》,《16세기의무신앙문제》,《고대도시》,《랑그도크의농민들》(공역),《유럽은어떻게관용사회가되었나》,《라로슈자클랭후작부인의회고록》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고등학교교과서의‘프랑스혁명사’|새로워진프랑스혁명사연구|혁명의배신|혁명ㆍ혁명가ㆍ혁명사

연표

I.혁명과반혁명

1.인권선언
세헌법,세인권선언|1791년헌법과〈인간과시민의권리선언〉|콩도르세헌법안과산악파헌법|열월파헌법과〈인간과시민의권리와의무선언〉|자유와평등의드라마
2.방데전쟁의폭력성
제노사이드논쟁|반혁명전쟁|양민학살|누구의책임인가|혁명의폭력성
3.리옹반란
혁명의분열|지방의저항|리옹시민봉기|혁명정부의응징|연방주의반란
4.슈앙반혁명운동의여러모습
‘슈앙’의등장|라로슈자클랭후작부인이겪은브르타뉴의농민들|장코트로형제의순교:“국왕과종교를위하여”|망명귀족에서슈앙으로:클로드오귀스탱테르시에|불굴의전사조르주카두달|제2의방데전쟁
5.가톨릭교회의수난
성직자시민법과선서|선서거부신부처벌법과수난|탈그리스도교|‘열월정변’이후|정교분리
6.‘열월정변’과공포정치의청산
부적절한개념,‘반동’|로베스피에르의몰락|공범자들|공포정치의청산|부르주아혁명으로의복귀

II.혁명가

7.라파예트-세혁명의영웅
자유주의귀족|미국독립혁명참전|“두세계의영웅”에서“혁명의배신자”로|1830년혁명의영웅|‘자유’의혁명가
8.시에예스신부-혁명의시작과끝
신부에서혁명가로|《제3신분이란무엇인가?》의수사학|부르주아혁명의비전|보나파르트와더불어혁명에마침표|의회주의자
9.콩도르세-계몽사상가에서혁명가로
투쟁적인계몽사상가|입법의회와국민공회의원|불발로끝난민주적헌법안|인류진보에대한낙관|위대한휴머니스트
10.당통-구국의영웅인가부패한기회주의자인가
왕실참사회변호사|코르들리에선거구의투사에서법무장관으로|“대담함,또한대담함,언제나대담함”|제1기공안위원|단두대에오른관용파|실용주의적혁명가
11.로베스피에르-혁명의수사학
루소의사도|“민중이주권자다”|“혁명은끝나지않았다”|“적은우리안에있다”|덕과공포|덕의공화국|타협을거부한이상주의자
12.마라와코르데-혁명의두순교자
“민중의친구”|코르데의결심|마라의죽음|코르데재판|자유의순교자?|구국의순교자?

III.혁명사

13.버크와페인의엇갈린예언
증언과논쟁|버크의비관적성찰|페인의이상과좌절|공포정치|증인이자예언가였던버크와페인
14.미슐레의공화주의프랑스혁명사
혁명의“소생”|민중과엘리트|반혁명의보루,교회|반사회주의역사학|낭만적민중인식
15.한나아렌트와프랑스혁명
전체주의의기원|공화주의적자유|빈자들의개입|‘행복’을위한사회혁명|정치문화의차이|실패한혁명,프랑스혁명
16.알베르소불의마르크스주의프랑스혁명사
도시민중에주목한마르크스주의역사가|도식적인‘구체제위기론’|부르주아혁명에서민중혁명으로|“자유의전제專制”|편파성
17.프랑수아퓌레의수정주의프랑스혁명사
공산주의자에서자유주의자로|혁명의궤도이탈|혁명의교리문답|환상의과거|혁명사연구의정치적전환
18.장클레망마르탱의프랑스혁명구하기
혁명과폭력|폭력의평범성|방데학살은제노사이드가아니다!|공포와공포정치|로베스피에르를위한변명

맺음말
자유와평등의혁명|형제애|프랑스혁명의희생자|혁명의교훈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반혁명민중봉기와잔혹한진압이란숨겨진얼굴
1부‘혁명과반혁명’은혁명의결실이라할인권선언‘들’과혁명에대한‘반동’을정리하고분석한다.그과정에서1791년교황피우스6세가인권선언이인간의‘권리’만선언했지‘의무’는선언하지않았음을지적했다든가,올랭프드구즈가인권선언이남성중심인것을비판하며〈여성과여성시민들의권리선언〉을작성했고,후일사회주의자들은소유권을신성불가침한자연권으로규정한것을비판했다(45쪽)는사실을만날수있다.무엇보다17만명이희생된프랑스서부의방데전쟁(64쪽),리옹반란,슈앙(올빼미)이라불린농민군등우리가몰랐던반혁명의민낯이드러난다.지방의농민봉기가귀족주도가아니었다는점,혁명정부가이들을잔혹하게진압했다는사실(77쪽)등을접하면혁명의‘신화’가깨지는충격을경험하게된다.

영웅에서배신자로,청렴지사에서독재자로
혁명의‘별’로베스피에르외에라파예트,시에예스신부,콩도르세,당통,샤를롯코르데같이반혁명가나기회주의자로낙인찍힌혁명가들을조명한2부‘혁명가’는드라마틱하다.혁명가들의생애,사상,의의를약전형식의글은간략하지만신선해서일반독자들의시선을끌만하다.‘두세계의영웅’에서‘혁명의배신자’로몰린라파예트(229쪽),1789년《제3신분이란무엇인가?》로혁명의불을지폈으나1799년보나파르트와함께쿠데타를일으켜혁명을끝낸시에예스(268쪽),잔다르크를자처해마라를살해한코르데(388쪽)등의삶은보통사람에게인간적흥미와더불어생각거리를던진다.민중은그의원칙주의와청렴함에열광했으나시종일관완전한‘개혁’을요구하며끊임없이‘적’을만들어낸끝에동료혁명가들에의해독재자로몰려처형된로베스피에르의행적(372쪽)은오늘날에도자못시사하는바가있는것으로읽힌다.

‘정통해석’과‘수정해석’의엇갈림
3부혁명사는서양사연구자들또는역사애호가들을위한파트다.프랑스혁명의비극적종말을예고한버크,이상을좇았던페인을시작으로혁명을보는역사가들의시각변화를짚어내기때문이다.민중사관이라할미슐레,미국독립혁명과의차이에주목한한나아렌트에이어알베르소불의마르크스주의혁명사,프랑수아퓌레의수정주의혁명사가꼼꼼하게정리해냈다.여기에이른바‘정통해석’과‘수정해석’의엇갈림을소개하면서지은이는이에대한이의를제기한다.“수정주의역사가들은정통주의역사가들과‘다른’생각을한것이지‘틀린’생각을한것이아니다.다른생각을틀린생각이라고단죄하는것이야말로독선이며틀린생각이다.”(529쪽)

지은이는맺음말에서“혁명가들이“혁명의정의를실현한다”는명분으로스스로제시한혁명이념을파괴했을뿐만아니라,혁명의적을만들어내고학살”(568쪽)했다고지적한다.아마도책을읽고난독자들대부분도이책이“프랑스혁명의실상은프랑스혁명을‘자유,평등,박애’의모범적인시민혁명으로동경하고,혁명을이상적인사회변혁의수단이라고생각하는이상주의자들에게경종을울린다”(578쪽)는데동감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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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으로]이어서

시에예스는1789년에《제3신분이란무엇인가?》로혁명을열었으며1799년에보나파르트와함께쿠데타를일으켜혁명을끝낸사람이다.프랑스혁명사에서그의이름은무엇보다도‘국민의회’의탄생에뚜렷이새겨져있다.……그는“제3신분은모든것이다”,“제3신분은국민이다”,“국민이법이다”라는유명한공식이주는선입견과는달리민중을인정하지않았다(269쪽).

미국독립혁명은영국의지배로부터벗어나공화국을세우는정치혁명으로그쳤으나,프랑스혁명은전제정으로부터벗어나는것으로그치지않고,전제정을떠받치고있던귀족들과교회의지배로부터도벗어나는사회혁명으로치달았을뿐만아니라,프랑스전제정과연대하고있던유럽의전제군주들의간섭과도싸워야하는일종의국제혁명으로확대되었다.프랑스혁명은인간정신의진보에크게기여했다(299쪽).

콩도르세는……저명한계몽사상가가운데유일하게프랑스혁명에투신한사람이라고도말할수있다.그는볼테르처럼“편견,불관용,미신”을타도하기위해투쟁했고,여성,유대인,흑인노예같은약자들의권리를지지했으며……프랑스에서가장먼저공화주의를지지했고,민주적인헌법안을만들었으며,교육을통해평등사회를건설하려했다(301쪽).

당통은1789년인권선언에명시된권리의평등을넘어“재산의평등”으로나아가려는과격한사회혁명요구를“불가능한”요구라고선을그은것이다.당통은온건,중도,유화,타협의길을선택했다(312쪽).

당통은불신과증오심에사로잡혀있던코뮌이나무기력한지롱드파보다전쟁수행의지와혁명적통합의열정을상징했다.당통은임시행정위원회의진정한리더였다.전쟁을일으킨것은지롱드파였지만전쟁을수행한것은당통이었다.미슐레에의하면,이시기의당통은“가장강력하고가장통찰력있는혁명가”였다(314쪽).

11월26일당통은파견의원들이자행하는공포정치를고발했다.“우리는배신자들을끝까지추적하되실수와범죄를구분해야한다.민중의의지는공포정치가실시되어야한다는것이지만,그것은공화국의진정한적들에게만향해야한다.혁명적열정이부족한사람을죄인인양다루는것은민중의의지가아니다.”(327쪽)

로베스피에르는전적으로민중의편에섰다.……로베스피에르에게민중의폭력은정당했다.그것을단죄하는것은민중을단죄하는것이며,7월14일의민중폭력이없었더라면성공할수없었던혁명을단죄하는것이었다(343쪽).

제헌국민의회시기에로베스피에르는민중과민주주의원칙에충실했고현실과타협하지않았다.1791년6월무렵부터로베스피에르는‘청렴지사l’incorruptible’라는별명을얻었다(349쪽).

로베스피에르는이상과현실의괴리를인정하지않고이상과원칙을고수했으며타협을거부했다.민중은그의원칙주의와‘청렴함’에열광했으나동료혁명가들에게서는지지와우려가교차되었다.그는시종일관완전한개혁을요구했고,그럴수록그의수사학은이분법적으로단순화되어적을만들어내고적의음모를고발하는무기가되었다.1794년7월27일(열월9일)로베스피에르는국민공회에서‘폭군’,‘독재자’로몰려체포되었다(372쪽).

마라는민중,즉빈자들과약자들의친구를자처했으며공화주의이념을지니고있었다.《민중의친구》는제8호와제9호(9월18일과19일)에처음쓴사설에서부터국민의회의숙정을요구했다.주권자민중은‘민중의적’에게저항하여‘정의’를행사할권리를가진다는것인데그구체적인수단은폭력과학살을넘어‘절멸’로치달았다(379쪽).

코르데는바르바루를찾아가만났다.바르바루는다음과같이말했다.“새로운잔다르크가없다면,하늘이보낸해방자가없다면,프랑스는끝장이다.”코르데는레날신부의책을읽고폭군살해는정당하다고생각했기때문에마라살해는정당한행동일뿐만아니라구국의행동이라는생각이들었다(388쪽).

마라를가장잔인한혁명가로꼽는데역사가들사이의이견은없다.당통은민중의폭력행사를막기위해의회가대신폭력을행사하자고말했으나마라는민중의직접폭력을촉구한인물이었다.마라는전쟁과반혁명으로상황이급박해짐에따라극도로과격해졌고,학살대상도처음에는궁정,의회,교회,군같은공식기관의공적인물로제한했으나점점모든반혁명파,모든혐의자로확대했다(406쪽).

버크는유구한역사와전통으로빛나는프랑스의왕정체제가혁명에의해붕괴되는것을보고대중독재와전쟁,그리고장군의지배를예견했다.버크의예언은정확했다.페인은미국에서일어난공화주의혁명을프랑스를넘어전유럽에확산시키려한이상주의자였다.그는프랑스혁명이정치혁명에서사회혁명으로비화되어파국을맞이할것을내다보지못했다(443쪽).

미슐레는……프랑스혁명에서는빈곤문제나사회문제보다관념문제가더중요했다고말한다.혁명은“결핍의자식이아니라철학(계몽사상)의자식”이었다는것이다.의회앞에서와마찬가지로빵집앞에서도사람들은기근보다는거부권,미라보의최근연설을놓고이야기를나누었다고말한다(459쪽).

민중은언제나선하고언제나옳다는그의민중관은다분히낭만적인인식임을지적하지않을수없다.9월학살의민중은7월14일의민중이나8월10일의민중과는다른민중이었다는미슐레의변론은역사적이지못하다.민중은처음부터폭력적이었다(465쪽).

프랑스혁명이미국혁명과다른경로를취하게된것은아렌트에의하면빈자들이개입하여사회적평등을요구했기때문인데,이러한‘사회혁명’을위해제시된개념이‘행복’이다.……18세기에‘행복추구’는일종의‘강박현상’이었다.‘행복의추구’가정치적인의미를가지고제시된것은1776년7월4일의미국〈독립선언문〉이다(481쪽).

소불이근대의농민을중세의농노처럼묘사한것,귀족의특권을과장한것,부르주아혁명의성과에대해지나치게인색한것,민중혁명의폭력성에대해둔감한것등은바로이념적편향성에서나온것이다(505쪽).

퓌레에게있어서상퀼로트의무기는폭력이었고,그들의행동은“지나간‘황금시대’에토대를둔고래의유토피아와연결된반동적인행태”였다.상퀼로트의운동에초점을맞추어프랑스혁명의성격을규정하면그것은부르주아혁명이아니라반부르주아혁명이다(516쪽).

장클레망마르탱의전략은‘공포terreur’는인정하되‘공포정치Terreur’는부정하는것이었다.방데전쟁에서학살은있었어도제노사이드는없었듯이,공포는있었어도정부차원의체계적이고법적인공포,즉‘공포정치’는없었다는것이다(543쪽).

역사가는이들을포함하여공포정치의희생자를3만5,000명에서4만명으로추산한다.공포정치기간에감옥에수용된혐의자의수는50만명으로추산된다(570쪽).

이들이원한혁명은‘자유’의혁명이었다.반면에……로베스피에르같은과격혁명가들은정치혁명을넘어사회혁명으로나아가려했으며,의회제가아니라직접민주주의를요구했다.소유권을제한하고재산을몰수하고재산을분배하려는움직임까지보였다.민중이혁명에적극적으로개입하여‘평등’을요구함에따라,버크가우려한“자연적질서의전복”이벌어졌다(577쪽).

민중이계몽되지않은상태에서무리하게진행된혁명은엄청난부작용을낳는다는것을프랑스혁명은잔인하게보여주었다.혁명,그것은순수,선함,독선,위선,오만,광기가용솟음치는거대한소용돌이이며,잔혹한격전장이다.혁명은전쟁이고폭력이다.……혁명은미래를위해희망의이념을제시했지만현실에서는엄청난희생자를발생시켰다.프랑스혁명의실상은프랑스혁명을“자유,평등,박애”의모범적인시민혁명으로동경하고,혁명을이상적인사회변혁의수단이라고생각하는이상주의자들에게경종을울린다(57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