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제국의 그라운드 제로, 흥남

식민지/제국의 그라운드 제로, 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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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도시사를 넘어 식민주의 본질 톺아보기
기업도시 흥남의 ‘발명’에서 ‘민낯’까지
흥남 하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굳세어라 금순아〉)와 함께 한국전쟁기 피난민들의 극적인 이산 장면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이 강렬한 기억 때문에, 흥남이라는 도시가 일제시기 일본질소비료주식회사가 그곳에 ‘동양 최대 규모의 전기-화학 콤비나트’를 건설하면서 비로소 생겨났다는 사실은 기억되지 않는다.

약 200여 호가 터 잡았던 작은 어촌 마을은 제국 자본의 ‘개발’ 10여 년 만에 그곳은 인구 약 20만의 공업도시로 급변했다. 흥남의 전기-화학 콤비나트는 화학비료로 산미증식계획에 기여하고, 전시에는 화약, 항공기 연료 등 군수품 생산에 동원되며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국책에 깊이 개입했다. 조선 총독 우가키 가즈시게가 금강산, 소록도 나환자 수용시설과 함께 식민지 조선의 3대 자랑거리 중 하나로 내세울 만큼, 식민지 통치자에게 흥남은 ‘식민지 공업화’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다.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부 부교수인 지은이는 문헌 자료, 생존 일본인 노동자 인터뷰, 다양한 문학 텍스트 분석을 통해 흥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적ㆍ경제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곳에서 살아가던 조선인들은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촘촘히 드러낸다.
저자

차승기

조선대학교국어국문학부부교수.일제말기의근대비판언설을탐구한논문으로박사학위를받았다.이후일제말전시체제기의문학,사상,언설을초경계적관점에서연구하는한편,식민주의재생산의구조속에서식민지/제국체제의한계지점을발견하기위한연구에주력해왔다.
지은책으로는《반근대적상상력의임계들》,《비상시의문/법》이있고,공저로《‘전후’의탄생》,《주권의야만》등이있다.최근에는근대동아시아의교착된경험과글쓰기의관계를새롭게개념화하는일에관심을두고있다.

목차

머리말

1부
1장식민지/제국의신흥콘체른
2장흥남의발명

2부
3장식민지/제국의그라운드제로란무엇인가
4장미나마타병의식민주의적원천
5장자본의도시,노동의도시
6장“식민지는천국이었다”

3부
7장식민지/제국의언어-법-미디어체제에서글쓰기-이북명의노동소설들
8장식민지/제국의언더그라운드
9장노동하는신체의해방전/후

에필로그:언더그라운드가말하는방식-정우상의〈목소리〉를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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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일제의병참기지역할을한‘노구치왕국’
기업도시흥남은일제에의해만들어졌다.노구치시타가우가세운‘일질콘체른’은1927년조선질소를설립하고함흥군에서1930년본격적인비료생산을시작한다.이때까지‘흥남’은없었다.부전강등의값싼수력전기를받기용이하고,비료의수송에편리한이점때문에선택된곳,함흥군의복흥리와호남리일대가공장지대로선택되어탄생한곳이었다.그렇게‘발명’된흥남은‘노구치왕국’이되었다.선주민의토지수용때공권력이동원되고,초대흥남읍장이노구치본인이었으며,기업이발행한‘구매권’이화폐처럼통용되고,자본가가출생과사망신고를받는곳이었다.그러면서조선질소는화학비료로산미증식계획에기여하고,전시에는화약,항공기연료등군수품생산에집중하며일제의식민지개발,전쟁,점령에중요한역할을했다.

식민주의를파악하는새로운틀
문학을전공한지은이가흥남을보는눈은독특하다.1920년대중반이후제국자본과식민권력이일체화되어선주민들을추방하고요새같은공장을중심으로주변세계와인간을새로운생산체제에편입시켰다는점에주목해,저자는흥남을식민지/제국의그라운드제로라명명한다.그라운드제로란우선식민질서의재생산을가능하게하는원천적장소를뜻하며,동시에식민지를장악하려는식민주의적폭력의최전선을뜻한다.저자는흥남을세가지전선이교차하는곳으로의미부여를하면서식민주의재생산의구조를입체적으로성찰한다.수은중독에의한미나마타병의원천을파악한것이그사례라할수있다.지은이에따르면식민본국의‘공장법’규제를받지않은채기술실험을자행해흥남이미나마타보다뒤늦게개발되었음에도불구하고1930년이후로산업공해또는그로의심되는증상이만연되었다.

내지인의천국,조선인노동자의무덤
지은이에따르면흥남은두얼굴을지녔다.비료공장에일하러온내지인들에게는‘천국’이었다.이른바‘조선수당’이붙은임금은본토에서보다두배가까이로뛰었고,사택과기숙사,합숙소가제공되었다.오후5시가되기전에퇴근해각종취미생활과유흥을즐길수있었으며,물가까지저렴해‘귀족생활’을즐길수있었다.조선인노동자들에게‘군림’할수있었던것은물론이다.
조선인들은달랐다.구룡리로쫓겨간선주민들은마실물조차부족해생존마저위협받을지경이었다.유독물질과각종미세화학물질속에서일하는노동자들은“전쟁할때의하졸과같이공포속에서”일하느라호흡기질환을앓아야했으며원인미상의질병과전염병이돌아흥남은‘전염병도시’‘병마의도시’로불릴정도였다.

미처몰랐던그때그곳의인간과문학
어쩌면조금은낯선틀로흥남을바라본이책에인간과문학의이야기가더해져풍성해졌다.대표적인물은함흥태생의영화배우주인규.나운규영화〈아리랑〉등에출연했던그는조선질소흥남공장의노동자가되어노동운동을벌이다‘제2차태평양노조사건’에연루돼옥고를치르는문제적인물이다.동생주선규ㆍ주인선과지하인쇄물을제작하거나,명태장수로변장해블라디보스토크에서‘불온문서’를반입하는등그의‘활약’은여느역사책에서좀처럼만날수없는이야기다.
그런가하면이책은문학에적지않게의존하고있다.선주민의애환을다룬한설야의소설〈과도기〉가글첫머리를장식하거니와그의문학적제자이자흥남공장노동자출신인이북명의노동소설들에는아예한장을할애해흥남의실상을생생히보여준다.김남천의〈공장신문〉,정우상의〈목소리〉등우리문학사에서소홀히다뤄진작가ㆍ작품이야기도값지다.

읽고나면이책이과연역사인지문학인지물을지모른다.그러나역사는역사가의전유물이아니며역사는하나의틀로만보아야만하는것도아니다.중요한것은어떤사실을어떻게드러내고거기에서무슨의미를찾아내느냐하는것일터다.그런의미에서우리가간과하고있던흥남의‘두얼굴’을그려낸이책은,아프지만잊어서는안되는역사의단면을담아낸의미있는성과로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