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젠의 로마사 6

몸젠의 로마사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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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몸젠의 《로마사》, 로마사 연구의 고전이자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
몸젠의 《로마사》, 가장 위대한 고전들 중 하나
‘서양 인문학 전공자들의 필독서’, ‘실증주의에 입각한 탁월한 고대 연구서’, ‘역사적 저작들의 가장 위대한 고전 중 하나’.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1817~1903)의 《로마사 Römische Geschichte》를 수식하는 표현들이다.
로마 건국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사망까지를 그린 역사서 몸젠의 《로마사》는 기존의 로마사 연구서와 달리 역사적 근거를 제시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좀 더 실증적이며 객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몸젠은 1902년 12월 이 《로마사》로 독일 최초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역사 연구서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점은 《로마사》가 가진 의미, 즉 《로마사》가 역사 연구서를 넘어서는 인문학적 교양의 결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로마, 통치 이성이 마비된 시대로 향하다
《몸젠의 로마사 제6권-혁명: 술피키우스의 혁명부터 술라의 통치까지》는 2013년 《몸젠의 로마사 제1권-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출간한 후 선보이는 여섯 번째 결실이다.
로마의 탄생부터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를 다룬 《몸젠의 로마사 제1권-로마 왕정의 철폐까지》, 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를 다룬 《몸젠의 로마사 제2권-로마 왕정의 철폐에서 이탈리아 통일까지》, 카르타고를 중심으로 성장한 페니키아인들과 로마인들의 전쟁을 다룬 《몸젠의 로마사 제3권-이탈리아 통일에서 카르타고 복속까지》, 로마가 희랍 세계까지 세력권을 확장하는 과정과 카르타고 전쟁 및 마케도니아 전쟁 과정에서 생겨난 로마의 국가 체제 변화 양상을 다룬 《몸젠의 로마사 제4권-희랍 도시국가들의 복속》, 로마의 혁명 시대, 특히 그락쿠스 형제의 노력과 시도를 살핀 《몸젠의 로마사 제5권-혁명: 농지개혁부터 드루수스의 개혁 시도까지》에 이어 제6권에서는 로마 정부와 통치 계급이 보여주는 도덕적 타락과 무능력, 파국을 향해 치닫는 권력욕과 명예욕, 한계를 모르는 탐욕과 사치, 애국적 가치를 저버리고 당파적 이익 때문에 벌이는 갈등과 폭력 등을 목격할 수 있다.
저자

테오도르몸젠

저자:테오도르몸젠
19세기독일을대표하는가장권위있던고전문헌학자이자역사학자.다른대학을거쳐1858년베를린훔볼트대학에서강의를시작하여1861년로마고전문학정교수로자리잡았으며그곳에서1885년까지강의를맡았다.프로이센아카데미회원이었으며1871년부터1895년까지역사문헌학분과장으로수많은연구사업을주도했다.그가이룩한업적들가운데가장대표적인것은고대로마의비문들을모두모아놓은CorpusInscriptionumLatinarum과로마법연구의초석이된CorpusIurisCivilis와CodexTheodosianus다.《로마사》는독일최초로1902년노벨문학상을받았다.

역자:김남우
연세대학교철학과를졸업했고,서울대학교서양고전학협동과정에서희랍서정시를공부했고,독일마인츠에서로마서정시를공부했다.서울대학교에서호라티우스서정시연구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정암학당에서연구책임자로키케로연구번역을맡고있으며,희랍문학과로마문학,희랍어와라티움어를가르치고있다.베르길리우스의《아이네이스I》,프리드리히니체의《비극의탄생》,키케로의《투스쿨룸대화》와《설득의정치》,에라스무스의《격언집》,스넬의《정신의발견》등을번역했다.

역자:성중모
서울대학교대학원법학과에서고전기로마법의소유물반환청구소송에관한연구로석사학위를,독일본Bonn대학교법과대학에서민법상첨부에의한손해보상청구권의학설사적연구로박사학위를취득했다.현재서울시립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에서민법을교수하며민법,로마법,서양법사를연구하고있다.공동저서로《나는시민이다》,단독역서로《토피카》,공동역서로《몸젠의로마사》1~5권,《설득의정치》,《개설서양법제사》가있다.

목차

옮긴이서문

제7장이탈리아복속민들의봉기와술키피우스의혁명
로마인들과이탈리아인들|주인의무능력과부정행위들|불화의폭발|이탈리아동맹시민들과로마당파|이탈리아동맹시민과과두정|이탈리아동맹시민들과드루수스|로마에맞선반란:준비과정|아스쿨룸:반란의시작|친로마적인이탈리아동맹시들|반란을대하는로마인들의태도|반란세력들의정치조직|기원전91/90년의전쟁준비|양측의병력구성|전쟁의시작|캄파니아와삼니움의카이사르|마르시사람들과의전투|피케눔전투|움브리아-에트루리아의반란|전쟁첫해의최종결산|로마인들의낙담|이탈리아인들에게로마시민권을부여함|이탈리아내의켈트족에게라티움시민권을부여함|동맹시전쟁두번째해|기원전89년피케눔의전투|놀라까지캄파니아의복속|대부분진압된반란세력|미트라다테스전쟁의발발|기원전88년의이탈리아전쟁|로마의불안|군율의몰락|경제적위기|술키피우스법|정부의반대|마리우스가정권을잡다|술라의소환|술라의로마입성|술라의첫번째복고정치|술라의입법|새로운문제

제8장동방과미트라다테스왕
동방의상황|이집트|쉬리아|파르티아상황|소아시아|미트라다테스에우파토르|소아시아의민족구성|폰토스지역|미트라다테스의영토확장|이지역의희랍문명|미트라다테스가보스포로스왕들을정복하다|소(小)아르메니아|미트라다테스제국|로마와미트라다테스|원로원의개입|술라의카파도키아개입|미트라다테스의새로운공격|아시아로파견된아퀼리우스|전쟁과평화의교착|아퀼리우스가전쟁을원하다|미트라다테스의전쟁준비|로마의준비부족|미트라다테스의소아시아점령|반(反)로마적흐름|대학살의명령|점령지역의통치|폰토스의유럽진공|로마의상황|술라의상륙|오랜시간을끈아테나이의점령|술라의위기|폰토스보병의희랍입성|카이로네이아전투|승전의미미한결과|폰토스의제2차희랍파병|아시아가미트라다테스에게반기를들다|루쿨루스와아시아해안의함대|발레리우스플라쿠스의아시아상륙|핌브리아의전공|평화협상|델리온의예비회담|새로운어려움들|술라와핌브리아의대결|아시아사안들의처리

제9장킨나와술라
기원전87년이탈리아상황|킨나|킨나의혁명|이탈리아내의킨나당파|로마를포위한킨나일당|이탈리아인들과의협상|수도로마의항복|마리우스의공포정치|마리우스의마지막날들|마리우스의죽음|킨나의정부|킨나와술라|술라에대한정부의조치|타협의시도|술라의어려운처지|술라의이탈리아상륙|폼페이우스|캄파니아의술라|양측의준비상황|술라와아들마리우스의대결|프라이네스테의승리|메텔루스와카르보의대결|프라이네스테의격돌|북이탈리아에서술라의성공|술라파의에트루리아장악|민주당파와삼니움족의로마공격|프라이네스테의승리|속주들|히스파니아|시킬리아|미트라다테스와새로운갈등

제10장술라체제
로마의통치자술라|실행|법익박탈자명단|재산몰수|시민권문제|이탈리아공동체들의처벌|노병들의정착|로마의해방자유민들|그락쿠스질서의철폐|원로원의재구성|민회의역할조정|사제선거제도의복위|호민관의약화|최고정무관의제한|술라의권한조정|원로원권력의강화|호구감찰관의약화|국가재정|사법제도의개혁|술라의특별사문회|풍기관련법률|로마의자치도시제도|자치도시와국가의관계|자치도시의성장|장교들의반발|국정질서의복원|술라의성격|술라의정치역정|술라체제의가치|술라복고체제의비도덕성|퇴임후의술라

제11장공동체와그경제
국가의경제상황|속주로부터들어오는국가수입|징수비용|군사적징발|지역부담금|착취와수탈|국가재정상황의요약|국가재정과공공사업|혁명과정의국가재정|개인경제활동|산업|상업과금융|자본가과두정|화폐제도|속주의화폐|당시의생활상|혼인|희랍문물의영향

제12장민족,종교,교육
로마와희랍의지속적우세|희랍민족|인구의혼합|종교|희랍철학|로마의스토아철학|국가종교|이탈리아에들어온동방종교|교육|희랍어교육|라티움어교육|로마의연설교육|문학과연설의교육과정

제13장문학과예술
스키피오동아리|비극:파쿠비우스|비극:아키우스|희랍희극|민족희극|아텔라희극|공연방식의발전|서사시|풍자문학|로마의역사서술|로마연대기|비망록과서신,연설|일반학문|수사학|철학|특수학문|예술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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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몸젠의《로마사》,가장위대한고전들중하나
‘서양인문학전공자들의필독서’,‘실증주의에입각한탁월한고대연구서’,‘역사적저작들의가장위대한고전중하나’.테오도르몸젠TheodorMommsen(1817~1903)의《로마사RomischeGeschichte》를수식하는표현들이다.
로마건국부터율리우스카이사르의사망까지를그린역사서몸젠의《로마사》는기존의로마사연구서와달리역사적근거를제시하는방법으로진행되어좀더실증적이며객관적이라는평가를받고있다.몸젠은1902년12월이《로마사》로독일최초의노벨문학상을수상했다.역사연구서가문학상을받았다는점은《로마사》가가진의미,즉《로마사》가역사연구서를넘어서는인문학적교양의결실이라는점을다시한번되새기게한다.

로마,통치이성이마비된시대로향하다
《몸젠의로마사제6권―혁명:술피키우스의혁명부터술라의통치까지》는2013년《몸젠의로마사제1권―로마왕정의철폐까지》를출간한후선보이는여섯번째결실이다.
로마의탄생부터로마왕정의철폐까지를다룬《몸젠의로마사제1권―로마왕정의철폐까지》,로마왕정의철폐에서이탈리아통일까지를다룬《몸젠의로마사제2권―로마왕정의철폐에서이탈리아통일까지》,카르타고를중심으로성장한페니키아인들과로마인들의전쟁을다룬《몸젠의로마사제3권―이탈리아통일에서카르타고복속까지》,로마가희랍세계까지세력권을확장하는과정과카르타고전쟁및마케도니아전쟁과정에서생겨난로마의국가체제변화양상을다룬《몸젠의로마사제4권―희랍도시국가들의복속》,로마의혁명시대,특히그락쿠스형제의노력과시도를살핀《몸젠의로마사제5권―혁명:농지개혁부터드루수스의개혁시도까지》에이어제6권에서는로마정부와통치계급이보여주는도덕적타락과무능력,파국을향해치닫는권력욕과명예욕,한계를모르는탐욕과사치,애국적가치를저버리고당파적이익때문에벌이는갈등과폭력등을목격할수있다.

이탈리아복속민들의봉기와술키피우스의혁명

동맹시전쟁발발
“이탈리아인들이독립을위해벌인마지막전쟁은퓌로스를물리치면서마무리되었다.”(2쪽)로마가혁명으로흔들리기시작하기전까지이탈리아동맹시민들은조용했다.하지만혁명이시작되자이탈리아동맹시민들도권리평등을위해로마혁명당파의움직임에동참했다.한걸음더나아가로마인들과동등한권리를얻기위해서가아니라새로운국가를건설하기위해투쟁에나섰다.결국로마건국663/664년(기원전91/90년)반란세력인“사비눔황소와로마늑대의전투가시작되었다.”(21쪽)
반란세력은전쟁첫해동안정치적기반을다지는데성공했다.반면로마는타협으로기울었다.“로마를굴복시키고파괴하려고먼저무기를든공동체들의요구조건을로마가들어주지않을수없는가혹한상황에이르렀다.”(34쪽)결국로마는이탈리아내에거주지를가진모든사람에게로마시민권을획득할수있도록했다.150년이상굳게닫혔던로마시민권의폐쇄성을고려할때이런양보는매우놀라운일이었다.하지만이는몰락직전의흔들리는공동체들을굳건히하고적대세력으로부터많은이탈자를확보하는효과를낳았다.

술키피우스의혁명과술라의반격
상황이완전히역전되었다.로마인들은새로운용기를가지고반란세력과대결을이어갔다.승세를타고진격하던반란세력은곳곳에서패전했고희망을잃어버렸다.이때“거의죽어가던반란세력에게숨구멍을터주”는사건이수도로마에서발생했다(46쪽).호민관푸블리우스술키피우스루푸스가민회에혁명적인법안을제출한것이다.원로원의원중일정금액이상의부채를가진이는원로원의석을상실한다는법안,해방노예들에게도똑같이투표권을허용하는법안등이었다(52쪽).
이는정치적?군사적?경제적위기를불러왔다.술키피우스의제안들은당시원로원다수의극렬한저항에부딪혔고,정변을예상한술키피우스는동맹시전쟁진압에혁혁한공을세운루키우스술라의최고명령권을박탈할계획을준비했다.
“위험한이탈리아반란을제압하는데다른누구보다큰공헌을한사내”(59쪽)술라는만만한사람이아니었다.군사를이끌고로마에입성하는데성공한술라는현존하는폐단들을철폐하고미래의변혁을방지하기위해새로운법률적규정을만들었다.술키피우스법들은법률적으로무효화되었고,법안제안자와널리알려진추종자들은도주했다.
하지만술라역시집정관임기가끝난후선택을강요받게된다.“후임자킨나혹은아마도스트라보와충돌하여다시한번로마로진군하거나,아니면이탈리아사안은그대로방치하고다른대륙으로떠나는두가지선택이가능했다.”(69~70쪽)술라는후자를선택했다.로마건국667년(기원전87년)초,술라는그의군단들을이끌고동방을향해길을나섰다.

동방과미트라다테스왕

아시아와동방의상황변화
“혁명은반복되는화재경보와외침으로로마정부를숨도쉴수없는긴장속에붙잡고있었”다(71쪽).이런상황에서로마정부가속주상황에관심을두기란무리였다.특히아시아와동방이그러했다.“멀리떨어진평화로운민족들은아프리카,히스파니아,알프스저쪽이웃들과달리로마정부의관심을유발하지않았기때문이다.”(71쪽)
하지만속을들여다보면로마지배의성격은전반적으로크게바뀌고있었다.모든독재정권에자연스럽게나타나는지속적억압의가중때문에,부분적으로로마혁명의직접적영향때문에그자체로도이미견디기어려운로마지배는아시아에서더욱가중되었다.기치를들어올릴줄아는사람이출현한다면“이평화로운땅에서놀라운경이로운사건이일어날수도있었다.”(75쪽)

미트라다테스왕의등장과4년간의전쟁
당시폰토스왕국을다스리고있던에우파토르라고불리는미트라다테스6세가바로그런인물이었다.미트라다테스왕은“동방에서로마에진지한고민거리를제공한로마의유일한적”으로,“사냥꾼에게맞서는사막의사자처럼로마에맞섰”다(79쪽).로마는군대를파견하는대신킬리키아총독인루키우스술라를파견하여문제를해결하려했다.로마에맞서투쟁을수행할수있는처지가아님을알고있던미트라다테스는상황을로마와의공개적단절과전쟁으로이끌지않으려했다.하지만그와중에도끈질기고조용하게소아시아로세력을확장하려는계획을실행했다.
로마건국666년(기원전88년)의시작과함께미트라다테스는공세를펴소아시아를점령했다.소아시아의대다수는로마가아닌폰토스로,미트라다테스왕으로돌아섰다.나아가미트라다테스는유럽도공격하기로계획했다.소아시아와희랍은완전히,마케도니아는상당부분그의수중에들었다.미트라다테스의폰토스함대는어떤경쟁자도없이바다를지배했다.
하지만미트라다테스가로마총독들이보여준독재정을뛰어넘는폭정을펼치자소아시아의상황이크게달라졌다.인내하던소아시아인들이공개적으로저항하기시작한것이다.로마도가만히있지않았다.수륙양면에서미트라다테스왕을몰아붙였다.상황이불리해지자미트라다테스는평화협상을시도했다.술라는왕이정복하여가지고있는모든것의반환을요구했다.미트라다테스가협상안을거부하자술라는갑자기평화회담을중단하고마케도니아를수복하는등아시아가까이이동했다.결국4년의전쟁을치른후폰토스는다시로마의피호국이되었고,희랍과마케도니아와소아시아에서안정된단일정부가회복되었다.

킨나와술라

혼란이지속되던로마에등장한킨나
무력을통해동맹시들의봉기와술키피우스의혁명을진압했음에도로마의상황은혼란의연속이었다.경제위기로직격탄을맞은자본가들은분노했고,반란세력들은전혀권리가없는예속상태에불평을토로했으며,동맹시들은반쯤주어진양보들에만족하지못했고,새로운시민들과자유민들은특히술키피우스법의철회에강한불만을품었으며.도시빈민들은곤궁함에시달렸다.“이모든불만은새로운폭력적계급충돌을예고하는것이었다.”(139쪽)
이불만세력들이국가의최고권력자로호명한인물은루키우스코르넬리우스킨나였다.킨나는호민관다수의지지를등에업고새로운시민권자들과해방노예들의정치적평등은물론,술키피우스혁명이후추방된사람들의복권까지담은법안을즉시제출했다.이에원로원은집정관킨나를파면하는결의안을통과시켰고,그를대신하여루키우스코르넬리우스메룰라가선출되었다.

킨나,수도로마의성문을열다
평민파집정관을불법적으로파면하고인민의권리를침해한원로원의만행은평민병사들을자극했다.캄파니아군대는킨나를집정관으로인정하면서그에게충성을맹세했다.이들은새로운시민권자들과동맹시구성원들로이루어진무리의핵심이되었다.
먹구름이수도로마주변으로몰려왔다.로마를포위한킨나일당에대처하기위해원로원은과거동맹시전쟁에참여했으나무기를내려놓고이후옛동맹관계를상실한모든이탈리아공동체에추가적으로시민권을부여했다.하지만정부는반란군의수괴들과협정을맺는것외에다른선택지가없었다.킨나에게사신들이급파되었다.수도로마의성문들이열렸다.킨나는그의군단들을이끌고입성했다.공포정치와함께독재정이등장했다.킨나는4년동안내리집정관을역임하며국가권력의정점에있었다.혁명정부는이탈리아에서제약없는권력을행사했다.

술라의반격
추방당한과두정의유일한해방구는,술라가장악하고있던마케도니아속주밖에없었다.로마건국671년(기원전83년)이른봄,술라는그의군단을데리고브룬디시움항구에내렸다.첫전투결과술라는아풀리아,피케눔,캄파니아의복속,한집정관부대의해산,다른집정관부대의격퇴와봉쇄를이루어냈다.
이후술라파는북이탈리아에서성공을거듭하면서에트루리아를장악했다.결국로마입성에성공한술라휘하의장군들은철퇴를들어혁명당파와민족주의자들의마지막저항까지하나씩끝장내버렸다.10년의혁명과반란이종식되었다.국가는다시통일적정부를구성했고,대내외적으로평화를이룩했다.

술라체제

승리자술라,상벌을내리다
로마국가체제는폐허가되었고재건이필요했다.혁명은진압되었지만그렇다고옛체제를다시부활시킬수는없었다.승리자로서모든권력을장악한술라는국가의새로운주인으로로마성벽안에등장했다.
술라는새로운관직의권한에따라정부를인수한직후,혁명을위해활동한이들중눈에띄게혁명을지지한자들을국가의적으로선언하고그들의법익을박탈했다.이들을받아준사람은아주가까운친척일지라도매우무거운처벌을받았다.국가의적들이가졌던재산은전쟁노획물처럼국가에귀속되었다.그들의자식들과손자들은공직진출에서완전히배제되었다.
이탈리아공동체들에도상벌이내려졌다.술라에게협력한일등공동체들은보상을받았다.죄가크지않은공동체들은벌금,성벽철거,성채파괴를명받았다.아주완강하게저항했던공동체들의경우통치자는토지일부나전체를몰수했다.

제도개혁,그리고퇴장
술라는제도개혁에도착수했다.기사계급법정은철폐했고이를원로원의원들로다시채웠다.원로원은입법,사법,행정에서최고권력으로다시태어났으며,유일한특권계급이되었다.민회는역할을축소하는방향으로조정했고,사제단은충원의권리를무제한적으로사제단에게되돌려주었다.
술라는선거에는개입하지않고,다만정무관권한을제한하려했다.호민관은약화시켰고,최고정무관도제한했다.시민영역을통치하는정치적권한과비非시민영역을통치하는군사적권한을완전히분리하고,모든최고정무관임기를2년으로연장하여임기첫해는시민업무에,두번째해는군사업무에전념토록했다.모든정무관가운데가장높은호구감찰관은형식적으로없어지지는않았지만배제되었다.
사법제도역시개혁의대상이되었다.술라의사법개혁의핵심은세가지였다.첫째,법정의수를크게늘렸다.둘째,재판지휘와관련하여여러사문회들의지휘를맡을여섯명의법무관을두었고,가장수요가많았던살인사건을다루는법정의경우또다른책임자들이추가되었다.셋째,심판인자리를기사계급이아니라원로원의원들이다시맡게되었다.이것이루키우스코르넬리우스술라가로마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