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의 문장들 (상언에서 독자 투고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격정의 문장들 (상언에서 독자 투고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20.98
Description
여성을 넘어 아낙의 너울을 벗고
권력과 시류에 맞서 정론을 외치다
묻히고 잊혔던 ‘절반’의 목소리를 되살리다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게 생긴다. 조선 시대의 상언과 근대 계몽기의 여성 독자들이 쓴 독자투고를 톺아본 이 책 또한 그 같은 신선한 충격을 준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국법을 어기고 편법을 행했다고 당당하면서도 간절하게 호소한 양반 부인의 상언上言, 시집을 향해 온몸을 다해 항변한 원정原情을 보면, 유교 가부장제 사회의 강요된 부덕婦德을 지켜야 했던 여성상과는 다른 모습을 본다. 여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대궐 앞에 엎드린 부인들, 세상의 절반인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 신문 독자, “첩이 부인만 못하리까, 슬프다 대한의 천첩된 자들아”라고 외친 첩들의 목소리 역시 묻혀 있고 잊혔던 존재들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한 발췌ㆍ나열을 넘어선 ‘경청’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를 조선 후기와 근대 계몽기로 나눠 여성들의 글을 살핀 이 책은 인용된 글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새삼스럽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딸이 양반가 첩으로 들어가자 절개를 지키지 않았다고 잡혀가자 사회적 비난은 받을 수 있을지언정 관의 처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 항변한 조원서의 처가 올린 원정(76쪽)은 논리정연한 항변의 예이다. 한데 이 책은 그저 단순한 발췌ㆍ인용이나 기계적 나열에 그치지 않는다. 글에 얽힌 역사적ㆍ사회적 맥락을 짚어 이해를 돕는 것은 적극적인 해석으로 여성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이를테면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남녀동등사상을 설파한 김송재의 글을 한문판에서는 “남자에게만 맡겨 두지 아니함이 우리 여사의 의무일까 하노라” 등 여성의 각성을 촉구하는 구절을 뺀 점을 지적하며 주독자층인 남성들을 의식한 듯하다고 본 대목(172쪽)이 그렇다.

권력 앞에서도 당당히 따지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인용된 글들이 흥미롭다. 권력에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할 말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신선하다. 19세기 후반 우의정을 지낸 심상규의 손자 심희순의 첩이라는 기생 출신 초월이 시국의 적폐를 고발하고 개선책을 제시한 상소문은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사람됨이 특히 모자라고, 행동이 경솔하고 무례하며 가난한 선비를 능멸하고 사람들을 무시하며”, “지각이 없어 소견이 어둡고 생각이 막혀 있으니 밥 부대일 뿐”이라고 남편을 비판하며 삭탈관직해 시골에 보내 10년간 성현의 글만 읽도록 하면 좋겠다고 하니 말이다(100쪽).
1899년 북촌 부인들이 주축이 된 찬양회가 축첩 반대 상소를 올리면서 고종 황제에게 “상감께서 먼저 후궁을 물리치시고 공경대부로부터 미관말직과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 절대로 첩을 두지 말라는 칙령을 내려 줍소서”라고 한 것(128쪽)은 또 어떤가.

분발을 촉구하고 평등을 꿈꾸다
근대 계몽기 들어선 여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삼아 순한글로 간행한 제국신문 등 신문이 근대 여성의식이 형성되는 공론장 역할을 하면서 여성들의 독자투고도 활발해졌다. 이들은 먼저 여성 교육의 중요성에 눈 돌렸는데 1898년 “북촌의 여중군자” 몇 명은 여학교의 필요성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여학교설시통문〉을 내면서 “혹시라도 이목구비와 사지오관육체가 남녀가
다름이 있습니까? 어찌하여 병신 모양으로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 먹고 평생을 깊은 규방에 처하여 남의 절제만 받으리오?”라고 여성들의 각성을 촉구한다(115쪽). 나아가 장경주란 이는 “우리 여자 된 동포 자매”들을 향해 일찍 교육을 받지 못해 사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한층 분개하라”고 당부한다(164쪽). “손가락을 속박만 하는 가락지를 팔아 국채를 갚고 보면 …… 우리 여자의 이름 세상에 전파하여 남녀동등권을 찾을 것”이라는 설득(191쪽)을 접하면 국난을 당해선 남녀 할 것 없이 분투하던 모습이 엿보인다.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조선 시대 여성생활, 특히 여성의 글과 글쓰기에 관해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 책은 그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조선 여성들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열망과 혜안을 적실하게 보여주어 우리의 눈과 귀를 틔워주는 값진 성취이다.
저자

김경미

출간작으로『격정의문장들』등이있다.

목차

들어가는말

1부권력에도전하는목소리들-조선후기여성의공적발언

1장상언
1.임금을향해올린글
2.궐문밖상언현장
3.국가와가족,법과윤리사이에서따지다
아들의목숨구하기|국법을어긴데대한해명|남편의억울함을풀기위해|용서받기어려운죄인줄은알지만
4.여성상언의말하기전략과정치성
그들의말하기전략|상언의화자에서사건의주체로

2장원정原情
1.관습에도전한목소리들
2.딸을재가시킨어머니의항변
3.어느종부의원정:《규한록》
불에넣지마시고읽어주시길|물은건널수록깊고산은넘을수록험하여|종가보존하사이다|천지를뚫고깨치올듯물솟는듯쏟아낸말들

3장상소문
1.기생초월의정치비판
무능한남편,어지러운조정|정치와일상을오가는말하기

2부신문한귀퉁이에서세상을향해말하다-근대계몽기여성의공적발언

1장통문과상소
1.여성군자들이되게하려이제여학교를창설하니,〈여학교설시통문〉
2.찬양회의상소와기생농희의상소
여학교를설립하여문명한나라로|구경거리가된축첩반대시위|정치적폐단을지적한기생농희

2장신문의등장과여성의독자투고
1.신문의등장
2.여성독자의투고상황

3장여성계의새사상으로참여하고연대한다-여성독자투고의내용
1.여성교육에대한강력한문제제기
여자교육이없어서는안된다|김운곡의남녀교육동등론|이지춘의여자교육시급론과장경주의여자교육론|남녀동등,여자의독립,여자사회발전을위한여성교육의필요성
2.부인계의새사상,남녀동등사상
한국부인계의새사상,자유와평등|여성을위한의료의필요성|여성의힘,윤정원의여성인식
3.시국문제에대한적극적견해표출
국가재정에대한평안도여노인의의견|열강의침략에대한유식한여노인의경고|국채보상운동참여를촉구하는목소리들|부인계에권고함|신교육에대한비판의목소리
4.신문을통한여성들의연대와신문에대한여성들의지지
애국부인회를방해하는남성에대한성토와지지|어진스승이자좋은벗인신문
5.첩과과부의목소리
슬프다대한의천첩된여인들아|‘대한광녀’의청춘과부개가론

4장분개하듯노래하듯자유와평등을주장하다

에필로그_말하는여성,여성주의적주체의발견-여성독자투고의특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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