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 : 역사가 이영석이 남긴 서양사 담론

나의 공부는 여기서 멈추지만 : 역사가 이영석이 남긴 서양사 담론

$25.00
Description
치열하고 엄정했던 역사가가
전쟁과 근대 그리고 동서양 문명을 성찰하다
치열하고 성실했던 노학자의 유저遺著
이 책은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이영석 전 광주대학교 명예교수의 마지막 저술이다. “일류대학 출신도 아닌 국내파 학자로 지방대학에서만 30년간 강의한”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고 성실했던 역사가였다. 1994년 《산업혁명과 노동정책》을 시작으로 28년간 25권(단독ㆍ공동 저서와 역서 포함)의 책을 출간한 기록이 이를 입증한다. 국내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거의 매년 한 권의 책을 냈으니 이는 여느 사학자가 쉬 따르지 못할 성취라 할 수 있다.
책은 그가 말년에 쓴 12편의 글을 묶은 것이다. 여기에는 연구의 지평을 넓히려 한 지은이의 노력과 고심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래로부터의 역사’에 대한 애정
1부 ‘전쟁과 수난’에서는 전쟁과 국가폭력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의해 망각된 민초의 삶을 살피는 지은이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강제동원된 라인연방 출신 야코브 발터의 연대기를 분석한 글이 그런 예다. 이 진귀한 기록에서 지은이는 혁명의 열광, 해방, 자유 같은 추상적 슬로건이 아니라 신앙에 의지한 채 생존을 위해 전력을 다한 ‘개인’을 보여준다. 1819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정치 개혁을 요구하던 군중을 향해 기병대들이 칼을 휘둘러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피털루 학살 사건’, 영국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인도인 수백 명이 살해된 1919년 인도 암리자르시 ‘잘리안왈라 공원 학살 사건’은 영국 민주주의 흑역사를 보여주는 대목. 지은이는 이를 5ㆍ18광주민중항쟁과 더불어 민중의 저항으로 읽는다.

국가사를 넘어 … 지적 탐구의 확장
지은이는 오랫동안 영국사를 천착해왔다. 영국의 특정 시대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분야로 시야를 넓히겠느냐는 일종의 ‘지적 결벽증’ 탓이 컸다. 한데 이 유저의 2부 ‘근대의 성취, 근대의 한계’에서는 국가사를 넘어 지역사 또는 문명사로까지 눈길을 돌린다. 산업혁명이 곧 화석 문명의 문을 열어젖혔음을 지적하면서 “이는 자연의 수탈 필요성을 증대시켰고 …… 생존선 이상의 물질적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생존만이 아니라 욕구 충족과 즐거움과 소비 자체를 위한 소비”, 곧 무한한 낭비의 시대가 열린 것이라 갈파한 글이 그렇다. 그런가 하면 콜레라와 황열병의 만연으로 전염병 예방을 위한 국제공조가 이뤄지는 과정을 살핀 ‘전염병과 국제공조의 탄생’, 리처드 에번스의 역저 《힘의 추구》를 분석적으로 읽어낸 ‘19세기 유럽사를 보는 시각’에서도 저자의 이 같은 학문적 분투가 느껴진다.

서로의 눈에 비친 동서양의 근대
3부 ‘동양과 서양’은 영국 여행가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역사가 아놀드 토인지,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 이순탁 연희전문 교수의 여행기를 축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서양이 상대를 보는 시선을 비교, 분석한다. 여기서 일본의 봉건 지배층이 근대화를 위해 2,000년 이상 지켜온 기득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데 대해 감탄하는 영국 지식인들을 만날 수 있다. 1933년 당시로선 드문 세계 일주 여행에 나선 이순탁 교수가 거리 곳곳에 마르크스나 엥겔스 초상이 걸려 있고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파시즘에서 공산주의까지 극단적 정치 이데올로기를 설파해도 정치인은 물론 평범한 시민 모두 개의치 않는 풍경에 대한 감탄도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영국인들이 이렇게 사상에 관대한 것은 자신의 것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때문이라는 그의 지적에 공감하게 된다. 황화론黃禍論의 뿌리를 캔 ‘다시 돌아보는 황화론’ 역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백조의 노래’라는 표현이 있다. 백조는 죽기 직전에 노래한다는 북유럽의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작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시가나 가곡 등을 가리킨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지은이의 ‘백조의 노래’다. 뜻하지 않게 일찍 세상을 떠난, 우직할 정도로 견실하고도 엄정했던 역사학자의 마지막 글들이어서다. 그러기에 사학도들에겐 학문적 등대가 될 만하고, 역사 덕후들에겐 문명사의 숨은 결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저자

이영석

서양사학자(영국사).광주대학교명예교수역임.성균관대학교사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케임브리지대학교클레어홀과울프슨칼리지초빙교수를지냈으며,한국서양사학회와도시사학회회장을역임했다.평생영국사회사,노동사,생활사,사학사분야의많은논문과저서를쓰고,옮긴그는2022년2월세상을떠났다.그의연구논문앤솔로지를엮은이책은그의마지막저술이다.평소“일류대학출신도아니고국내파학자로지방중소대학의교양과목선생으로30년을지내다퇴직했다”고겸양을보였지만누구보다성실한학문적자세로젊은서양사학자들의롤모델로꼽히곤했다.

저서로는『산업혁명과노동정책』(1994),『다시돌아본자본의시대』(1999),『역사가가그린근대의풍경』(2003),『사회사의유혹』(전2권,2006),『영국제국의초상』(2009),『공장의역사:근대영국사회와생산,언어,정치』(2012),『지식인과사회:스코틀랜드계몽운동의역사』(2014),『역사가를사로잡은역사가들』(2015),『영국사깊이읽기』(2016),『삶으로서의역사』(2017),『유럽의산업화와노동계급』(공저,1997)이있고,번역서로『영국민중사』(1988),『역사학을위한변론』(1999),『옥스퍼드유럽현대사』(공역,2003),『자연과학을모르는역사가는왜근대를말할수없는가』(2004),『잉글랜드풍경의형성』(2007)등이있다.

목차

추도사1
책머리에

제1부전쟁과수난
1장한평범한인물의기록에나타난나폴레옹전쟁
2장전쟁과동원,그리고제국
3장공습과피난의사회사―제2차세계대전기영국인의경험
4장국가폭력과저항―피털루,잘리안왈라공원,그리고광주

제2부근대의성취,근대의한계
5장인간과자연,그리고역사
6장19세기유럽사를보는시각
7장전염병과국제공조의탄생
8장노년과노령연금―담론,의회조사,입법

제3부동양과서양
9장여행기를통해본일본과일본인
10장다시돌아보는황화론
11장아놀드토인비가바라본동아시아의근대도시
12장영국과미국―한식민지조선지식인의인상

책을마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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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사2

출판사 서평

‘아래로부터의역사’에대한애정
1부‘전쟁과수난’에서는전쟁과국가폭력이라는거대한역사의수레바퀴에의해망각된민초의삶을살피는지은이의따뜻한시선을느낄수있다.나폴레옹의러시아원정에강제동원된라인연방출신야코브발터의연대기를분석한글이그런예다.이진귀한기록에서지은이는혁명의열광,해방,자유같은추상적슬로건이아니라신앙에의지한채생존을위해전력을다한‘개인’을보여준다.1819년영국맨체스터에서정치개혁을요구하던군중을향해기병대들이칼을휘둘러수백명의사상자를낸‘피털루학살사건’,영국군의무차별사격으로인도인수백명이살해된1919년인도암리자르시‘잘리안왈라공원학살사건’은영국민주주의흑역사를보여주는대목.지은이는이를5·18광주민중항쟁과더불어민중의저항으로읽는다.

국가사를넘어…지적탐구의확장
지은이는오랫동안영국사를천착해왔다.영국의특정시대도잘모르는데어떻게다른분야로시야를넓히겠느냐는일종의‘지적결벽증’탓이컸다.한데이유저의2부‘근대의성취,근대의한계’에서는국가사를넘어지역사또는문명사로까지눈길을돌린다.산업혁명이곧화석문명의문을열어젖혔음을지적하면서“이는자연의수탈필요성을증대시켰고……생존선이상의물질적번영의길로들어서는순간인간은생존만이아니라욕구충족과즐거움과소비자체를위한소비”,곧무한한낭비의시대가열린것이라갈파한글이그렇다.그런가하면콜레라와황열병의만연으로전염병예방을위한국제공조가이뤄지는과정을살핀‘전염병과국제공조의탄생’,리처드에번스의역저《힘의추구》를분석적으로읽어낸‘19세기유럽사를보는시각’에서도저자의이같은학문적분투가느껴진다.

서로의눈에비친동서양의근대
3부‘동양과서양’은영국여행가이사벨라버드비숍,역사가아놀드토인지,식민지조선의지식인이순탁연희전문교수의여행기를축으로19세기말20세기초동서양이상대를보는시선을비교,분석한다.여기서일본의봉건지배층이근대화를위해2,000년이상지켜온기득권을스스로내려놓은데대해감탄하는영국지식인들을만날수있다.1933년당시로선드문세계일주여행에나선이순탁교수가거리곳곳에마르크스나엥겔스초상이걸려있고런던하이드파크에서파시즘에서공산주의까지극단적정치이데올로기를설파해도정치인은물론평범한시민모두개의치않는풍경에대한감탄도읽을수있다.그러면서“영국인들이이렇게사상에관대한것은자신의것에대한애정과자부심때문이라는그의지적에공감하게된다.황화론黃禍論의뿌리를캔‘다시돌아보는황화론’역시생각거리를던져준다.

‘백조의노래’라는표현이있다.백조는죽기직전에노래한다는북유럽의전설에서유래한것으로,작가가죽기전에마지막으로지은시가나가곡등을가리킨다.이책은어떤의미에서지은이의‘백조의노래’다.뜻하지않게일찍세상을떠난,우직할정도로견실하고도엄정했던역사학자의마지막글들이어서다.그러기에사학도들에겐학문적등대가될만하고,역사덕후들에겐문명사의숨은결을보여주기에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