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 대화로 읽는 국어 만들기의 역사

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 : 대화로 읽는 국어 만들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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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식민 잔재 청산과 한글 위상 강화에서
규범문법 확립과 근대 어문개혁 완결까지
기억과 대화로 엮은 근현대 국어 만들기의 역사
우리말은 어떻게 국어가 되었나
공기처럼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존재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언제나 곁에 있기에, 늘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에 ‘우리말이 어떻게 국어가 되었나’라는 근원적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어’가 항상 ‘국어’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고, 해방 후에는 무엇을 ‘국어’로 할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갈등이 벌어졌다.
《우리말이 국어가 되기까지-대화로 읽는 국어 만들기의 역사》는 ‘국어’의 이 같은 파란만장한 역사 탐색이다. 저자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 교육을 받고 자랐음에도 ‘국어’를 놓지 않고 “우리말과 우리 삶의 문제에 학문적인 해답을 내놓았던 국어학자”(346쪽) 김민수(1926~2018)와의 대담을 통해 근현대 국어학과 국어 정책의 역사를 촘촘히 훑는다. 저자들이 국어학자 김민수와 함께한 여정에는 해방 직후의 식민 잔재 청산과 한글 위상 강화에서 1960~70년대의 규범문법 확립과 근대 어문개혁 완결까지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야말로 ‘근현대 국어학의 역사’ 그 자체이다.

국어학자 김민수와의 두 번의 대화, 책으로 엮다
먼저 국어학자 김민수가 누구인지부터 살펴보자. 2018년 2월 15일, 평창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집중되던 때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민수에 대해 저자 중 한 명인 최경봉(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우리가 한 국어학자의 삶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는 ‘김민수가 누구인가’, ‘왜 김민수의 구술을 살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그 중 일부를 보자. “1926년에 출생한 선생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을 구독하던 친형 김윤수의 영향을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공과대 진학을 꿈꾸었던 19세 청년은 1945년 해방 직후 열린 조선어학회 간사장 이극로의 강연에 감명을 받고 우리말 연구에 일생을 걸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1945년 조선어학회 국어강습원 파견 강사 선발 시험에 응해 합격한 후 한글 보급 운동에 참여하였다.”(346쪽, 《오마이뉴스》 2018년 2월 23일)
저자들은 2007년 해방 이후 국어 정립을 위한 학술적ㆍ정책적 활동 양상과 관련한 김민수의 증언을 들었다. 김민수와의 첫 번째 대화였다. 두 번째 대화는 고인이 된 김민수와의 ‘대화’였다. 김민수의 증언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인이 남긴 증언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하고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증언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이루어진 두 번째 대화의 결실이다.
저자

최경봉,김양진,이상혁,이봉원,오새내

(1926~2018)

1926년강원도홍천에서태어났다.1951년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국어국문학과를졸업한후1975년문학박사학위를받았다.1955년부터1991년까지고려대학교교수로재직했으며,1964~65년에는미국하버드대학객원교수를,1993~94년에는중국인민해방군외국어학원객좌교수를역임했다.1996년재단법인동숭학술재단을창립한후2018년까지이사장으로일했다.2018년2월별세했다.

목차

프롤로그_근현대국어만들기의역사를되짚어보다

I.일제말조선인의삶과조선어그리고조선어학회
_일제의조선어정책과조선어학계의대응
1.조선인‘광김민수光金敏洙’의학교생활
2.‘마포국민학교’조선인교원의수업과조선인의언어생활
3.강원도홍천의청년김윤수와조선어학회
4.한청년의삶을바꾼조선어학회와의만남
5.일제강점기조선어학회의위상

II.해방그리고‘국어’가된조선어
_해방직후국어회복운동의방향성과갈등양상
1.해방직후의국어회복활동
1-1.조선어학회의재건활동
1-2.조선어학회의국어강습활동
1-3.국어규범정립활동
2.조선어학회중심의국어정책과갈등양상
2-1.해방직후국어정책의방향
2-2.한글전용정책
2-3.국어정화운동
3.조선어학회활동의역사적위상과공헌
4.분단과조선어학회의내적갈등

III.대한민국정부수립,국어정책과국어학의새출발
_국어정책의체계화와국어학계의재편
1.정부수립이후의국어정책
1-1.대한민국정부수립의의미
1-2.정부수립직후국어정책양상
2.대학의설립과국어국문학과의개설과정
2-1.일제의대학제도와조선어문학전공자의육성
2-2.국어국문학1세대의활동과신세대의출현
2-3.제2세대의국어국문학전공이수과정―해방이후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상황
3.신세대가주도하는국어국문학연구회
3-1.초기서울대학교국어국문학과재학생및졸업생의활동
3-2.서울각대학조선어문학연구회의조직과활동

IV.한국전쟁기,국어학의모색
_혼란의수습과학풍의혁신
1.전쟁의폐허속대학의정비
1-1.대학의혼란과국어학자의선택
1-2.부산피란시절의대학과국어학
2.학풍의혁신과국어국문학회의출범
2-1.국어국문학회의창립과학회지발간과정
2-2.국어국문학회의연구활동과성과

V.《큰사전》의완간그리고국어정책과국어학의전환
_근대적과제의완결과새로운문제제기
1.전후국어학계의재건과국어정책적대응활동
1-1.환도후국어학계의재건활동
1-2.‘한글간소화’파동과국어학계의대응
1-3.로마자표기법에대한의견
2.국어규범사전의출판
2-1.한글학회편《큰사전》의완간과규범사전시대의개막
2-2.《큰사전》이후사전의출판과성과
2-3.한일국어학자의교류와한일사전의발간
3.학교문법의통일과문법파동
3-1.학교문법통일문제가부각된계기
3-2.학교문법통일논의의전개과정과그평가
4.국어정책과국어학의전환맥락
4-1.근대적과제의완결후국어정책과국어학의전개
4-2.국어정책연구기관의설립모색
4-3.남북언어통일을위한모색
4-4.한국어의세계화를위한모색

에필로그

주석
참고문헌
인명색인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국어학자김민수와의두번의대화,책으로엮다
먼저국어학자김민수가누구인지부터살펴보자.2018년2월15일,평창동계올림픽에관심이집중되던때93세를일기로세상을떠난김민수에대해저자중한명인최경봉(원광대국어국문학과교수)은〈우리가한국어학자의삶을기억해야하는이유〉라는글을썼다.이글에는‘김민수가누구인가’,‘왜김민수의구술을살펴야하는가’라는물음에대한답이담겨있다.그중일부를보자.“1926년에출생한선생은엄혹했던일제강점기에조선어학회기관지《한글》을구독하던친형김윤수의영향을받으며청소년기를보냈다.공과대진학을꿈꾸었던19세청년은1945년해방직후열린조선어학회간사장이극로의강연에감명을받고우리말연구에일생을걸기로결심하였다.그리고1945년조선어학회국어강습원파견강사선발시험에응해합격한후한글보급운동에참여하였다.”(346쪽,《오마이뉴스》2018년2월23일)
저자들은2007년해방이후국어정립을위한학술적?정책적활동양상과관련한김민수의증언을들었다.김민수와의첫번째대화였다.두번째대화는고인이된김민수와의‘대화’였다.김민수의증언을더이상들을수없는상황에서,고인이남긴증언의의미를설명하기도하고객관적자료를근거로증언의오류를지적하기도했다.이책은이렇게이루어진두번째대화의결실이다.

생생한증언,선연한진술
이책에서가장두드러진부분은구술자김민수의생생한증언이다.열여덟살소년이었던김민수가일제에강제로징병되어‘개죽음’당하기싫어서교사검정시험을준비했다는진술(25쪽),교사검정시험에합격한후총독부의발령을받아취업해야징용이나징병을유예받을수있는상황에서마포국민학교에발령을받고는“야,이제는살았구나”하고안도했다는증언(34~5쪽)에는일제강점기의엄혹한상황이오롯하다.“일본제국의식민지정책이라는게애초부터완전동화를계획한것으로보여요.그러니까다시말하면‘우리조선민족을그냥육체만남기고완전히소멸시켜버리자’라는정책인거지요.오늘날평가한다면천인天人,하늘과사람이함께공노할흉계이지요”(38~9쪽)라는한탄은작금의현실을되돌아보게한다.
해방직후조선어학회가중심이되어시행한정책에대해말할때는놀라운언급도한다.김민수는당시정책에‘한자폐지,한글전용화’와‘일제잔재일소,이른바우리말도로찾기’,이두가지가뚜렷하게담겨있었다고회고하면서“한글전용은조선어학회가공식적으로천명한사실을도무지찾을수가없어요”라고말한다.조선어학회가한글전용을천명했다는게확인이안된다는것이다.그러면서“한글전용정책은아마도당시편수국장이던외솔(최현배)의소신을정책에반영한것이아닌가이렇게추정이돼요”라고덧붙인다(108쪽).당시조선어학회의활동에대한심층적인연구가필요해보이는발언이다.

깊이있는질문,풍부한첨언
저자들의깊이있는질문과정리는구술자김민수의증언에힘을보탠다.해방직후조선어학회의국어강습회수업을듣고국어학에첫발을들였다는김민수의말에저자들은한글학회가2010년발표한《한글학회100년의줄거리》에기록된조선어학회주최‘국어과지도자양성강습회’의일정과과목명,강사명단등을덧붙임으로써(59쪽)김민수의기억에구체성을부여한다.1950년대국어정책에서큰사건이라할수있는한글간소화파동에대해김민수가말하자저자들은1948년부터1950년까지이승만대통령의담화나기자회견에서당시맞춤법에대해‘불편하다’와‘어렵다’,‘보기좋지않다’는표현이반복되어나타난다는점을지적함으로써(280쪽)독자들이당시상황을더욱쉽게이해할수있도록돕는다.
저자들은구술이“구술자의기억에의존하여이루어지기때문에고의성이없더라도구술자의기억이사실을왜곡할가능성”이있음을인지하고“구술자의구술을존중하되다른구술자의구술이나당대의문헌자료와대조”함으로써(11쪽)왜곡된사실을바로잡거나당대의상황을재해석하고자한다.예컨대1958년문교부의〈로마자한글화표기법〉이김선기개인의안이라는김민수의말에저자들은김선기가“국어심의위원회외래어분과장으로서그안을만드는데조력은많이했으나저개인의안이아님을밝힌다”고반박했다는기록을제시하여독자들의균형감있는사실인식을돕는다(295쪽).

‘국어’의파란만장한역사를한권에담다
1945년마포국민학교교사로발령받아4학년여학생반담임을맡은김민수는“일본말로가르칠수밖에없는시대”에“해방될때까지계속일본말로우리나라여성들을교육”한점을한탄하면서그것이“친일행위의일종인것은분명하다”고고백한다(35~6쪽).일제강점기에‘국어’는이렇게존재자체를부정당했다.
해방직후‘국어’는일제강점기에훼손되었던우리말되살리기를통해서서히되살아났다.국어회복을위한국어학계의활동은‘한자폐지,한글전용화’와‘일제잔재를일소하는국어정화’의두가지방향으로진행되었다.이과정에서주도적역할을한조선어학회는한글풀어쓰기등일부연구자특유의주장을규범화하려함으로써논란을일으키기도했다.
국어정책은1948년대한민국정부수립을기점으로체계화되었다.“정부에서는국어정책을세우고,민간에서는조선어학회를중심으로한글강습과사전편찬에나서고,대학에서는국어국문학과를개설하여우리말과글을체계적으로연구하고교수했던것이다.”(139쪽)
이처럼광복이후이어지던국어재건의학문적분위기는한국전쟁을겪으면서전환의계기를맞는다.자료유실,연구자사망,납북과월북등많은타격을입었지만대학설립후국어학을배우기시작한2세대가국어학연구의전면에등장하기시작한것이다.이들2세대는새로운과학적방법론도입을추구하고학술지와학회등을통해학문적경향을공유했다.
일제강점기부터이어진한국어의어문규범정립,사전편찬,한국어연구와교육을위한토대마련이라는근대적과제는해방이후교과서편찬,1950년대의《큰사전》발간등으로일단락되고있었다.그러나근대적과제를완결하는단계에서한글간소화파동이라는어문규범을둘러싼격렬한의견충돌을겪기도했다.

해방이후의국어연구와국어정책활동기록은단순한사실나열에그치는경우가많다.당시상황을알수있는인물등의구술로기록의빈칸을메울필요가있다.그런점에서기억과대화를통해근현대국어만들기의역사를살핀이책은근현대국어학과국어정책의전개맥락을이해하는데더없이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