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자김민수와의두번의대화,책으로엮다
먼저국어학자김민수가누구인지부터살펴보자.2018년2월15일,평창동계올림픽에관심이집중되던때93세를일기로세상을떠난김민수에대해저자중한명인최경봉(원광대국어국문학과교수)은〈우리가한국어학자의삶을기억해야하는이유〉라는글을썼다.이글에는‘김민수가누구인가’,‘왜김민수의구술을살펴야하는가’라는물음에대한답이담겨있다.그중일부를보자.“1926년에출생한선생은엄혹했던일제강점기에조선어학회기관지《한글》을구독하던친형김윤수의영향을받으며청소년기를보냈다.공과대진학을꿈꾸었던19세청년은1945년해방직후열린조선어학회간사장이극로의강연에감명을받고우리말연구에일생을걸기로결심하였다.그리고1945년조선어학회국어강습원파견강사선발시험에응해합격한후한글보급운동에참여하였다.”(346쪽,《오마이뉴스》2018년2월23일)
저자들은2007년해방이후국어정립을위한학술적?정책적활동양상과관련한김민수의증언을들었다.김민수와의첫번째대화였다.두번째대화는고인이된김민수와의‘대화’였다.김민수의증언을더이상들을수없는상황에서,고인이남긴증언의의미를설명하기도하고객관적자료를근거로증언의오류를지적하기도했다.이책은이렇게이루어진두번째대화의결실이다.
생생한증언,선연한진술
이책에서가장두드러진부분은구술자김민수의생생한증언이다.열여덟살소년이었던김민수가일제에강제로징병되어‘개죽음’당하기싫어서교사검정시험을준비했다는진술(25쪽),교사검정시험에합격한후총독부의발령을받아취업해야징용이나징병을유예받을수있는상황에서마포국민학교에발령을받고는“야,이제는살았구나”하고안도했다는증언(34~5쪽)에는일제강점기의엄혹한상황이오롯하다.“일본제국의식민지정책이라는게애초부터완전동화를계획한것으로보여요.그러니까다시말하면‘우리조선민족을그냥육체만남기고완전히소멸시켜버리자’라는정책인거지요.오늘날평가한다면천인天人,하늘과사람이함께공노할흉계이지요”(38~9쪽)라는한탄은작금의현실을되돌아보게한다.
해방직후조선어학회가중심이되어시행한정책에대해말할때는놀라운언급도한다.김민수는당시정책에‘한자폐지,한글전용화’와‘일제잔재일소,이른바우리말도로찾기’,이두가지가뚜렷하게담겨있었다고회고하면서“한글전용은조선어학회가공식적으로천명한사실을도무지찾을수가없어요”라고말한다.조선어학회가한글전용을천명했다는게확인이안된다는것이다.그러면서“한글전용정책은아마도당시편수국장이던외솔(최현배)의소신을정책에반영한것이아닌가이렇게추정이돼요”라고덧붙인다(108쪽).당시조선어학회의활동에대한심층적인연구가필요해보이는발언이다.
깊이있는질문,풍부한첨언
저자들의깊이있는질문과정리는구술자김민수의증언에힘을보탠다.해방직후조선어학회의국어강습회수업을듣고국어학에첫발을들였다는김민수의말에저자들은한글학회가2010년발표한《한글학회100년의줄거리》에기록된조선어학회주최‘국어과지도자양성강습회’의일정과과목명,강사명단등을덧붙임으로써(59쪽)김민수의기억에구체성을부여한다.1950년대국어정책에서큰사건이라할수있는한글간소화파동에대해김민수가말하자저자들은1948년부터1950년까지이승만대통령의담화나기자회견에서당시맞춤법에대해‘불편하다’와‘어렵다’,‘보기좋지않다’는표현이반복되어나타난다는점을지적함으로써(280쪽)독자들이당시상황을더욱쉽게이해할수있도록돕는다.
저자들은구술이“구술자의기억에의존하여이루어지기때문에고의성이없더라도구술자의기억이사실을왜곡할가능성”이있음을인지하고“구술자의구술을존중하되다른구술자의구술이나당대의문헌자료와대조”함으로써(11쪽)왜곡된사실을바로잡거나당대의상황을재해석하고자한다.예컨대1958년문교부의〈로마자한글화표기법〉이김선기개인의안이라는김민수의말에저자들은김선기가“국어심의위원회외래어분과장으로서그안을만드는데조력은많이했으나저개인의안이아님을밝힌다”고반박했다는기록을제시하여독자들의균형감있는사실인식을돕는다(295쪽).
‘국어’의파란만장한역사를한권에담다
1945년마포국민학교교사로발령받아4학년여학생반담임을맡은김민수는“일본말로가르칠수밖에없는시대”에“해방될때까지계속일본말로우리나라여성들을교육”한점을한탄하면서그것이“친일행위의일종인것은분명하다”고고백한다(35~6쪽).일제강점기에‘국어’는이렇게존재자체를부정당했다.
해방직후‘국어’는일제강점기에훼손되었던우리말되살리기를통해서서히되살아났다.국어회복을위한국어학계의활동은‘한자폐지,한글전용화’와‘일제잔재를일소하는국어정화’의두가지방향으로진행되었다.이과정에서주도적역할을한조선어학회는한글풀어쓰기등일부연구자특유의주장을규범화하려함으로써논란을일으키기도했다.
국어정책은1948년대한민국정부수립을기점으로체계화되었다.“정부에서는국어정책을세우고,민간에서는조선어학회를중심으로한글강습과사전편찬에나서고,대학에서는국어국문학과를개설하여우리말과글을체계적으로연구하고교수했던것이다.”(139쪽)
이처럼광복이후이어지던국어재건의학문적분위기는한국전쟁을겪으면서전환의계기를맞는다.자료유실,연구자사망,납북과월북등많은타격을입었지만대학설립후국어학을배우기시작한2세대가국어학연구의전면에등장하기시작한것이다.이들2세대는새로운과학적방법론도입을추구하고학술지와학회등을통해학문적경향을공유했다.
일제강점기부터이어진한국어의어문규범정립,사전편찬,한국어연구와교육을위한토대마련이라는근대적과제는해방이후교과서편찬,1950년대의《큰사전》발간등으로일단락되고있었다.그러나근대적과제를완결하는단계에서한글간소화파동이라는어문규범을둘러싼격렬한의견충돌을겪기도했다.
해방이후의국어연구와국어정책활동기록은단순한사실나열에그치는경우가많다.당시상황을알수있는인물등의구술로기록의빈칸을메울필요가있다.그런점에서기억과대화를통해근현대국어만들기의역사를살핀이책은근현대국어학과국어정책의전개맥락을이해하는데더없이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