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고유의첨단제지술,도침
지은이가꼽은전통한지제조비법의핵심은종이를쌓아놓고다듬이질하듯두드리는도침搗砧이라는마무리과정이었다.조선에서만시행된도침법을거친닥종이는광택,밀도,먹의스밈,방수효과등품질이뛰어나중국과일본에서인기를모았다.이에따라명,청은주요조공품으로막대한양의종이를요구해전체방물예산의3분의1이종이관련인때도있었다(102쪽).뿐만아니라1425년에는명황제가세종에게‘종이만드는방법을적은글’을바치라요구하기도했으며역시세종때인1420년엔후지厚紙3만5,000장을바치며금은의조공양을줄여달라고청했을정도도한지의가치는컸다(89쪽).그런가하면도침은군역은대신할정도로고된일이었기에조선후기에는장인중가장높은공임을받는고급기술이기도했다.
‘쓰레기’의화려한변신,휴지?환지
도침과더불어지은이가전통한지의과학기술사에서주목한것은휴지休紙,환지還紙라는친환경적재활용술이다.한번쓰고난종이를가리키는‘휴지’는오늘날의쓰레기취급이아니라‘돌아온종이’환지가되어신발,삿갓은물론북방을지키는군사들의갑옷,새색시가타고가는가마안의요강으로다시태어났다.면화를키울수없었던북방의백성들은과거시험낙방자들의답안지인낙폭지외투가솜보다낫다고반겼으며(147쪽)군기감은쇠사슬로만든갑옷보다가볍고방호효과가뛰어나다며종이갑옷을제작하기도했다(130쪽).
이에따라휴지확보에비상이걸려세초洗草한실록의초고와지방에서공린재실災實장계까지활용했다.이와중에지방에서실시된과거시험의낙폭지를모두서울로보내도록했는데1705년에는낙폭지수송량이적다는이유로한시험관이일종의‘휴지횡령죄’로파면되는등휴지는청렴한관료제확립에기여하기도했다.
체제의버팀목이자변혁의불씨
지은이가파악하기로종이는단순한소비재가아니라체제를유지하는버팀목인한편정치사회의변화를가져온불씨이기도했다.조공품으로대중관계에서중요한역할을한것은물론15세기에백성에게유교적덕목을기르기위해《삼강행실도》와불경등다양한간행사업을추진하느라종이공납수량이껑충뛰고(90쪽)세종이《자치통감》인쇄를위해100만장을조지서에배정하며지장紙匠이아닌승려에게옷과음식을주고종이를뜨게한것(91쪽)도종이의국가적비중을보여준다.그런가하면과거시험을치르는유생들의두껍고좋은종이를고집하자금령을내리고1702년엔두꺼운종이를쓴장원급제답안에대해왕이자격을박탈한사실(108쪽)에서는종이가사회변화의한나침반이었음을엿볼수있다.또한지역紙役에시달린승려들이절비우기,격쟁,상소등으로저항하거나조선후기화전민,거사,송상松商이손을잡고국경을넘는시장을개척한사례를통해변화의물결을보여준다.
지은이는닥종이의기술문화사를단선적으로살핀것이아니다.북학파를비롯한실학자의‘과학’에의문을제기하는등조선의‘닥종이연대’가발휘한기지를추적해사물과오랜시간함께하는새로운과학기술과노동을입체적으로보여주는덕분에이책은과학기술사이상의과학기술사로자리매김할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