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담긴한국사
한국역사연구회에서새롭게기획한‘금요일엔역사책’(한국역사연구회역사선)의세번째책인『시간이놓친역사,공간으로읽는다』는저자가그동안습득한공간이론을한국고대사에접목한책이다.
왕궁이나도성등공간에담긴역사성을규명하기위해실증연구와이론모색을다각도로진행해온저자여호규(한국외국어대사학과교수)는근대역사학에서공간이제대로대접받지못한이유를밝히고,공간을체계적으로이해하기위한주요개념을고찰한다.그런다음‘사회적생산공간’개념을차용하여고대인들이도성을바둑판모양의계획도시로건설한까닭,삼국초기에경복궁과같은왕궁을짓지못한이유,지방각지에‘또다른서울’을건설한배경등을살펴본다.이를통해한국고대공간의역사를새롭게규명할연구방법론을탐색하고자한다.
도성,왕궁,별도의공간역사학
저자가펼쳐보이는한국고대의공간역사학은생경하지만흥미로운이야기로가득하다.저자는공간을왜주목해야하는지(1장),공간이해의출발점은무엇인지(2장)를살핀후공간이론을한국고대공간의역사에적용한다.먼저고대도성이조선의한양보다더계획도시였음을밝히며고구려,백제,신라삼국에서도성을격자형가로구획으로조영한까닭을들여다본다(3장).저자는격자형가로구획을‘공간을통한지배체제구축’으로본다.격자형가로구획의건설이“기존의장소정체성과지배질서를약화시키거나해체시키고,새로운장소감과지배질서를배태하는기반을제공”했으며,“왕궁을정점으로하는도성전체의위계적공간구조를창출하는데도중요한역할을담당했다”는것이다.
삼국초기에경복궁과같은왕궁을짓지못한이유를‘국왕중심의중앙집권체제미정비’에서찾는다(4장).삼국초기에는왕권이확립되지않아국가차원의의례공간이나집무실을국왕거주공간의바깥에마련했다는것이다.그러다가국왕중심의중앙집권체제가정비되면서왕궁내부에“경복궁의사정전과같은나라일을돌보는국왕의집무실”을마련하고,“경복궁의근정전과같은국가적인의례공간”도갖추었다는것이다.경복궁에비견할만한왕궁은고대정치체제의정비와함께오랜세월에걸쳐출현했다는것이다.
삼국이지방각지에‘또다른서울’을건설한배경또한‘고대국가운영시스템의특성’으로설명한다(5장).신라의소경,고구려의별도,백제의부도는모두도성과같은성격을지닌‘작은서울’이었다.지방제도정비초창기에삼국은집권력이강하지못했다.이에“각지의전략적요충지에지배거점을구축하는방식으로통치력을관철해나갔다.”“지방행정구역내의다양한상대공간을포섭하여공간통합”을진행한것이다.그런데신라도성인경주는삼국통일이후국토의한쪽에더욱치우쳐‘재화의공급집적지’역할을하기힘들었다.이에신라는“전국의교통요지에소경을여러개건설하여도성중심의물류망을구축하고영역전체의공간통합을이룩했다.”이러한소경은고려이후점차사라지는데,고려의개경이나조선의한양이한반도의중심부에위치해‘재화의공급집적지’역할을원활하게수행했기때문이다.
바둑판모양계획도시가고대신분제의구현과연관되고,왕궁의공간구조는정치체제의변화에따라여러차례달라졌으며,지방각지에건설한‘또다른서울’은고대국가의영역지배원리와연관된다는저자의고찰은낯익은대상을새로운관점으로바라볼수있도록돕는다.“공간이론을한국고대사에접목하는과정에서다소성급한결론을내린부분도없지않”다는저자의걱정에도불구하고이책이가치있는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