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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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술이 빚은 시인
이규보가 읊조리는 고려로 가다

고려를 알고 싶다면 지나칠 수 없는 그 이름, 이규보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았을까?’ 옛날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진 사람, 역사 삼매경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품었음직한 의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 예컨대 사극이나 역사서, 박물관의 전시에서 당대 사람들의 생생한 삶과 생각은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널리 알려진 인물이나 굵직굵직한 사건이나 휘황찬란한 문화유산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이름이다. 800여 년 전 고려라는 왕조를 살면서 자신의 진솔한 심정을 담은 방대한 기록,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남겨서다. 《동국이상국집》에는 권력자의 뜻이나 특정 필요에 따라 지은 글도 있지만, 이규보가 살면서 붓 가는 대로 자신의 처지와 생각을 풀어 놓은 시와 글이 더 많다. 찬찬히 읽어보면 무신정변 후 무인들이 정권을 잡고 호가호위하던 고려의 혼란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식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누구에게는 아부꾼으로, 누구에게는 대문호로 평가받는 이규보가 그리는 고려,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저자

강민경

저자:강민경
성균관대학교한문교육과를나오고,같은학교사학과에서석사과정(고려시대사전공)을졸업한뒤박사과정(고려시대사전공)을수료했다.성균관대학교박물관조교를지냈고,서울대학교규장각한국학연구원조선왕조실록정본화사업팀연구보조원으로있다가2017년말국립중앙박물관채용시험에합격했다.2018년부터2021년까지국립중앙박물관고고역사부학예연구사로근무했고,2022년부터국립제주박물관학예연구사로일하고있다.
〈고려시대의신라출자의식과그사회적성격〉(2019),〈安中植筆〈碧樹居士亭圖〉와金澤榮의1909년歸國〉(2021),〈〈채인범묘지명〉의복원과그의의〉(2022)등몇편의논문을썼으며,학부시절《그림으로읽는고려도경》(2015)의삽화를그리기도했다.

목차


들어가며

서설_이규보,술마시고글지으며고려를살다간사나이
천재문인의젊은날|글만잘짓는다고되는게아니더라|시작은비록미약했으나|그의붓은결코무디지않았네|고려역사와문화의화수분,《동국이상국집》

1_나로말할것같으면―이규보가이야기하는이규보
큰키에투박한얼굴|머리숱은줄고,배는나오고|고기만보면참지못해|생선회와게찜을즐긴미식가|버섯향기그윽하고미나리는맛이좋아|하늘에서술이비처럼내려와|막상멍석을깔아주면|마시고마시고마셔도목마르네|아이고가려워,평생피부병에시달려|눈아픈것도서러운데짝퉁에속고|나이런사람이야

2_지친발걸음속잠깐의여유―이규보,이사람이사는법
굽히지않았음을후회하노라|책읽고발도담그고,그곳이어찌잊히랴|고려‘집사’이규보|줄없는거문고를뚱땅거린풍류|졌다,하지만항복은못한다|낮잠을자기에는역시비오는날|부처님,술좀마시고다시찾아뵙겠습니다|산에사는스님이달빛탐내어|지친나를받쳐준너|차맷돌을돌리고돌리고호|꽃피고풀자라는시인의집

3_그대가없었다면―이규보의가족과친구,그리고아는사람들
이규보의삼족三族|당장저걸허물지못할까|내그대를위해서라면|뭐든지팔때는싸고살때는비싼법|아니넌배울게없어서술을배우느냐|아아,아들아!|둥근달이떴습니다|괜찮아친구야|술은겨울모자|고려시대에숙취해소제가있었다면|세상은넓고고수는많다|목줄에묶인원숭이나내신세나|다주는법은없다는데이분께는다주셨네|뛰어난후배를끌어주다

4_붓만들면걸작일세―이규보의글짓기
묘한오마주|이규보,정지상의손을들어주다|관행이라도,잘못됐으면…|나도이렇게다니던시절이있었지|후다닥시짓기를경계함|밤새워능을지키는이내신세|포도넝쿨아래에서|갑자기때아닌꽃이폈어요!|청자베개를베고무슨꿈을꾸랴|질항아리의노래|반딧불이|이규보의벌레관觀|같은바다라도달리보이네|바람이여제발땅을쓸지말고|조선의문인,이규보의글을논하다

5_나,고려사람이규보요―고려에서산다는것
나는야개경에살리라|박연폭포에는슬픈전설이있어|겨울에는술을끓여서|술꾼의길동무,조롱박술병예찬|텅빈항아리|온천에간이규보선생|불효자는웁니다|냉장고가없던시절|이처럼깔끔한제사라니|이규보,고인돌을보다|도굴당하고복구하고|열을구워하나를얻으니|고려시대의야생원숭이(?)|“손님오십니다!”|제삿밥얻어드시기싫으면|이규보가생각한‘신라’|‘우리고구려’를치러온자에게제사를?

6_이건아닌것같은데―이규보가살아낸시절
취준생이규보,발품팔다|버섯좀구워먹었기로서니|두더지만도못한놈|뇌물이통하는사회|알량한월봉에서떼어갈게뭐있다고|고무줄같은그대의나이|딱따구리에게묻건대|교활하고욕심많은거미를탓하다

7_못다한이야기―이규보의생각엿보기
세계지도를보며자부심을|고구려시조주몽의꾀|당나라판‘히든싱어’|바른말하는신하를죽이다니|이걸그냥확|그림감상에도열심|500년뒤그림의화제를짓다|초서는어려워|전쟁중에도동파의책은읽어야|〈달마도〉|무궁화는왜무궁화인가|이망할놈의파리|뭐이렇게새해가빨리온담

나가며

참고문헌
그림목록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오늘은시한잔,내일은술한수―이규보가들려주는이규보이야기

박물관에서관람객들을역사의장으로안내하는한편학술적연구도소홀히하지않았던저자강민경(국립제주박물관학예연구사)은이규보,나아가고려‘사람’의삶과생각을총89꼭지에담아펼쳐보인다.각꼭지마다직접그린,해학적이면서도날카로움을잃지않았던이규보를닮은듯한삽화를수록하여독자의이해를돕는다.저자가이규보의글에서만난,오늘의우리와비슷하지만또다른모습으로살았던800여년전고려‘사람’의모습은어떠할까.

《동국이상국집》에담긴이규보는과거시험에합격하고도벼슬을못구해높으신분들에게작은벼슬자리하나만허락해주십사구관시求官詩를지어올릴정도로구직에목매던백수이기도했고,술좋아한다는소문이절까지퍼져스님이친히술상을내올정도의술고래이기도했으며,하루가다르게나오는배와빠지는머리카락을보며절로한숨을내쉬던‘동네아저씨’이기도했다.“나때는말이야~”라말하며‘라떼’를찾기도했고,술을진탕마신다음날숙취에몸서리치는이에게숙취해소제로술닷말을권하기도했으며,여름에덥고겨울에추운것이자연의이치인데토실(일종의온실)은그러한“하늘의명령을거역하는것”이라말하며당장허물라고하인들을닦달하는‘꼰대’같은짓을벌이기도했다.그야말로‘아재’같은모습이다.

그럼이규보에게‘아재’스러움만있었을까?그렇지않다.이규보는가족과백성에대한따스한시선을잃지않고치열하게분투한사람이기도하다.추위에오들오들떠는아내와자식을위해“약목若木을베어와태워숯을만들어/우리집과온천하를두루따습게해서/추운섣달에도늘땀을흘리게하리다”라다짐하기도했고,“활처럼굽히지않고항상곧으면/남에게노여움을받게되니라/……오직사람의화와복은/네가굽히고펴는데달렸느니라”라말하며가족을먹여살리기위해허리를굽실거리던자신의과거를돌아보기도했다.피부병,생손앓이,두통,치통,천식,소화불량에갈증이돋는질환까지온갖병에시달리면서도작은벼슬자리를얻기위해동분서주하기도했고,‘도대체얼마나많은입을가지고있기에백성을씹어먹는가’라일갈하며지방관,향리의수탈을통렬하게비판한다.또그는검은고양이를기르면서귀여워하는동시에“공밥만먹지말고저쥐들을섬멸하거라”라권하는‘집사’이기도했다.

고려를먹고마시고쓰다

독자입장에서특히흥미로운점은이규보가먹고마시고쓴‘고려’의일상적인생활상이다.저자는이규보의글을통해고려사람들의삶을들여다본다.먼저먹는것부터보자.‘붉은생선[紅鱗]’을회뜨고술잔을기울였다는이규보의시에서는아무리늦어도“이규보가살던13세기초에는고려사람들이생선을회쳐서먹을줄알았다”는사실을짚는다.

이규보가특별히예찬한‘게’와관련해서는‘게젓[??]한항아리’라는글귀가적힌죽간이출토된‘마도1호선’과지방에서세찬歲饌으로올려보냈던게를언급한고려후기시인목은이색李穡(1328~1396)의시를덧붙이면서고려사람들이게를적잖이즐겼으리라고추정한다.흙씻어내고솥에넣어삶아쌀밥과함께먹으면생선이나돼지고기보다낫다고한‘미나리’,구워먹으면‘신선이되는가장빠른길’이라는‘송이버섯’이야기도간간하게펼쳐보인다.

다음으로마실것-이규보하면빠질수없는술부터보자.저자는생선을회로떠서술잔을들었다는이규보를보며요즘같으면‘생선회에는소주’인데이규보는어떤술을마셨을지찬찬히훑는다.이규보가즐겨마신‘백주白酒’를막걸리로비정하는동시에,소주가13세기말고려충렬왕때원나라를거쳐들어온것으로알려져있다는점을곁들이며친절하게우리나라소주의역사도알려준다.

차또한이규보에게서빠질수없는마실거리.저자는친구에게받은차맷돌에찻잎을갈아마시는이규보를보며요즘‘별다방’등에서흔히볼수있는말차抹茶,곧가루차를고려시대에는그렇게만들었음을보여준다.술고래라소문난자신에게술자리를베푸는스님에게‘차마시는즐거움이참으로맑고담담하니굳이술에취할것없으리’라말하며차를찬미하는,이규보의술꾼답지않은면모를선보이기도한다.

그다음으로쓴것-이규보는다양한글을써서‘고려’를말한다.〈제화이도장단구題華夷圖長短句〉라는시에서는남송,금과몽골,고려를한데그린〈화이도〉라는세계지도를보며‘고금에어진인재끊임없이태어나중국에견주어도크게부끄러울것없다네’라읊는다.고려에대한자부심이한가득묻어난다.

그렇다고이규보가살던고려시대가자부심만가질수있을정도로태평성대였던것은아니다.“논밭은모두붉게타서/곡식싹이무성한것을볼수없네/부잣집도벌써식량을걱정하는데/가난한사람이야어떻게살수있으랴/명문가에서는날마다자리에술을토하고/백잔을마시니귀가저절로뜨끈해지네……단지문호의융성한것만알고/나라가불안한것은근심하지않누나/썩은선비비록아는것은없으나/눈물을흘리며매양목메어흐느끼네”라면서현실을아파하고나라걱정,백성걱정에흐느껴울기도한다.

고려에이런것도있었어?흥미로운동식물도한가득

저자가뽑은이규보의글중에는‘고려에이런것도있었어?’라는질문이절로나오는흥미로운동식물도한아름이다.이규보는자신을아껴주던권세가의집에서앵무새를보고는‘주인이선비좋아함을알아서인지손님오신다는말을가장잘한다’며칭찬을늘어놓는다.어떻게우리나라에서식하지않는앵무새를소재로시를지을수있었을까.관련해서저자는이미신라때부터앵무새를당나라에서들여와왕실에서길렀던적이있고,고려시대에도주로송나라를거쳐앵무새들이여럿들어왔으며,왕실이나고관의집에서애완용으로기르곤했다고알려준다.

자주드나들던권세가의원림園林에서잔뜩화가난원숭이를본이규보,‘아마도너는파협巴峽의달빛생각하여높직한문벌에얽매임싫어함이리라’라고읊으며알량한벼슬자리하나얻겠다고발품파는자신의신세를되돌아본다.이외에도《동국이상국집》에원숭이가등장하는글이30여편은족히되고,구석기시대유적에서원숭이뼈가출토되기도했으며,부여의특산물이원숭이가죽이었다하니고려시대에혹야생원숭이가있었던것은아닐까하고조심스레상상해보기도한다.

이규보는봄에피는배꽃이8월에홀연히피어난것을보고는‘하늘님이술한잔하시고개경에봄바람을불어넣어주셨나’궁금해하기도한다.지금이야지구온난화를떠올렸겠지만당시엔그저‘이게무슨조화인가’싶었을게다.이규보의붓은지금우리에게‘나라꽃’인무궁화로도향한다.이규보에따르면고려시대에도무궁화가있었고‘무궁화’라불렀다.그렇다면왜무궁화가무궁화로불렸을까.저자는말한다.이규보가“하루만에피고지는꽃의삶이허무하니도리어‘가이없다’고한것이라고.”

13세기고려를통해21세기대한민국을말하다

책에담긴이규보의모습은‘고려’에만머무르지않는다.이규보의눈에비친‘13세기고려’는‘21세기대한민국’을돌아보게하기도한다.

높으신분에게시를지어올려관직을구하던이규보의노력은학교를마치고여기저기이력서보내느라분주한사회초년생을떠오르게한다.처음에는과거에급제해지방관이라도하길바라다가미관말직을얻어몇차례승진을거친후엔지방관의직을떨치고개경으로가고싶어하던이규보의모습은고려시대에도수도집중이지금의서울집중못지않게엄청났다는사실을알려준다.

강을건너는나룻배사공마저술한잔받지않으면‘세월아네월아’하던고려의실상은근래까지도존재하던‘급행료’(물론지금은‘돈’이아니라‘권력’과‘연줄’이리라)를연상시킨다.1217년(고종4),거란군이쳐들어오자그들을물리치는재를올린다고‘문관과무관의월봉을거두었다’는이규보의글은‘자발적성금’이라는포장아래반강제적으로봉급을갹출당한공무원들의하소연과겹친다.

결국고려시대도사람이살던시절이었다.이규보는그시절의이야기를시와산문으로충실히남겼고,이는배나온꺽다리아저씨이규보를고려의증언자로만들었다.그가남긴글이다리가되어800년전과지금이순간이이어진다.이책은그다리를보다쉽게건너게끔하는디딤돌이자,저멀리보이는고려를가까이보게하는돋보기이다.자,이책을집어펼치고서시인이읊조리는고려시대로한번들어가보지않으시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