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

$20.00
Description
시와 같은 저항, 저항과 같은 시
백마 타고 온 초인 이육사
탄생 120주년 순국 80주기, 이육사의 삶을 찾아

한국인에게 이육사는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교과서에서 지하철역 쉼터에 이르기까지 〈청포도〉나 〈광야〉와 같은 그의 시를 일상에서 여상히 접할 수 있으며 그의 일대기 역시 각종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간 알려진 이육사의 생애는 문학적인 성취를 쫓아가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시인으로서만 설명될 뿐, 이육사의 다양한 모습과 격렬한 저항활동을 모두 담아내지는 못했다. 또한 그마저 잘못 알려진 것이 상당했다.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는 언론인으로서의 삶과 무장투쟁에 이르기까지 40년간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이육사의 생애를 복원하여 이육사를 저항시를 쓴 시인이 아닌 자신의 저항시를 삶으로 실천한 독립운동가로 재조명한다. 그럼으로써 이육사를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준다. 지난 2010년 출간한 《이육사 평전》의 개정판으로, 이육사 탄생 120주년과 순국 80주기를 맞아 새로운 연구 성과를 보태고 도판을 일부 추가하고 판형을 좀 더 크게 하여 책을 새롭게 구성했다.
저자

김희곤

저자:김희곤
현재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을맡고있다.1988년부터안동대학교사학과교수로재직했으며(현명예교수),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2004~2006),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편찬위원장(2005~2011),한국근현대사학회장(2010~2012),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2007~2014),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장(2014~2020)을역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와경북지역의독립운동연구에몰두하여《대한민국임시정부연구》(2004),《권오설》(2010),《만주벌호랑이김동삼》(2009),《임시정부시기의대한민국연구》(2015)등단독저서30여권을출간했으며,〈상해시기백범김구의독립운동〉등논문100여편을발표했다.

목차

책을펴내며
이육사연보
평전을다시쓰면서

육사가사용한이름,264에서戮史를거쳐
‘이원삼’에서‘이활’로
이활과대구264
264에서육사肉瀉.戮史를거쳐육사陸史로

육사의고향,원촌마을881번지
육사를만나러가는길
〈계절의오행〉에담긴원촌마을

1904년,육사의출생과집안전통
육사를둘러싼‘무서운규모’
육사의형제들

1909~1924년,육사가자라면서받은교육
한문을배우며자라나다
보문의숙寶文義塾을거쳐도산공립보통학교다니다
혼인하고대구로이사하다
일본유학

1925~1926년,중국을드나들며민족의식을키우다
대구조양회관에서문화활동을벌이다
베이징나들이
베이징에서‘중국대학상과’에다니다

1927~1930년,감옥을드나들면서도꺾이지않다
장진홍의거에따른수감생활1년7개월
대구에서기자생활
‘대구격문사건’으로2개월구금되다
잦은만주나들이,결국은베이징으로
《중외일보》에서《조선일보》로

1931~1933년,초급군사간부가되다
윤세주가권한난징행
베이징을거쳐난징에도착한의열단
의열단,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열다
육사,난징에서의열단장김원봉을만나다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다니다
졸업기념으로연극을공연하다
육사가맡은임무
봄비내리는난징에서국내침투준비
의열단에가입하지않았다는데

1933~1934년,국내근거지확보하다가체포되다
상하이에서루쉰을만나다
서대문감옥에갇히다

1930~1944년,평론가·수필가·시인의삶
본격적인글쓰기와사회활동
〈청포도〉와〈절정〉

1933~1936년,시사평론에보이는그의시대인식
시사평론가로서의육사
육사의정세인식

1943년,친일의물결헤치고투쟁의길로
또다시베이징으로간까닭은
충칭과옌안을연결하려하다
베이징에서순국하다
‘베이징감옥’은어디일까
고향에묻히다

백마타고온초인,이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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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와같은저항,저항과같은시
백마타고온초인이육사

탄생120주년순국80주기,이육사의삶을찾아

한국인에게이육사는매우익숙한이름이다.교과서에서지하철역쉼터에이르기까지〈청포도〉나〈광야〉와같은그의시를일상에서여상히접할수있으며그의일대기역시각종매체를통해널리알려져있다.그러나그간알려진이육사의생애는문학적인성취를쫓아가는데에만초점이맞춰져시인으로서만설명될뿐,이육사의다양한모습과격렬한저항활동을모두담아내지는못했다.또한그마저잘못알려진것이상당했다.
《이육사,시인이기전에독립투사》는언론인으로서의삶과무장투쟁에이르기까지40년간다양한활동을전개한이육사의생애를복원하여이육사를저항시를쓴시인이아닌자신의저항시를삶으로실천한독립운동가로재조명한다.그럼으로써이육사를매우잘알고있다고생각하는우리의믿음이잘못되었음을알려준다.지난2010년출간한《이육사평전》의개정판으로,이육사탄생120주년과순국80주기를맞아새로운연구성과를보태고도판을일부추가하고판형을좀더크게하여책을새롭게구성했다.

우리에게너무나익숙한,그러나여전히낯선

기존의이육사의삶을소개한많은글들은육사의행적에대한정확한자료없이전해지는이야기를정리하는수준에그친경우가많았다.《이육사,시인이기전에독립투사》는이러한한계에서벗어나독립운동사라는새로운시각과치밀한자료조사및검증과정을통해이육사의삶에접근한다.
이책은당시문인들이남긴자료에일제경.검찰기록과언론보도,경북안동에서중국까지아우르는현장답사및인터뷰등을추가하여잘못된사료는바로잡고널리알려지지않은육사의행적은새롭게소개한다.여기에2000년첫발간이후어문학과역사등다양한분야의연구자들이제기한지적과새로발굴한성과를반영하여초판을수정.보완,이육사생애복원의완성도를높였다.

‘264’에숨겨진뜻
《이육사,시인이기전에독립투사》에서이육사가사용한필명의변천사를정리한것은이러한이육사바로알기의대표적인예다.이육사라는필명이그의수인번호에서유래했다는에피소드는제법유명하다.그러나수인번호를이름으로택한이유와‘육사’에담긴뜻이무엇인지에대해서는잘알려지지않았다.이책은육사의한문표기가처음부터‘陸史’는아니었음을소개하며이름의변천과정과각각의의미를밝힌다.‘이육사’는수인번호‘264二六四’에서시작하여세상에대한지독한냉소가담긴‘肉瀉’(고기를먹고설사하다)와강렬한혁명의지를드러낸‘戮史’(역사를죽이다)를거치면서이모든뜻을품어‘陸史’로자리잡은것이다.
또한이책은육사가‘육사’외의필명으로도활동했다는사실도알려준다.육사는시못지않게시사평론에도힘을기울여,장제스정책비판과중국농촌의몰락에서국제무역주의에이르기까지세계정세에대한날카로운통찰을보여주는비평을다수남긴언론인이기도했다.그런데이때시사평론에는대부분육사가아닌‘이활’이라는필명을사용했다.

무인으로서의이육사를새롭개소개하다
동해송도원에서요양했기때문에그를병약한문인으로생각하기쉽지만육사는항일무장투쟁을위해김원봉이운영하는조선혁명정치군사간부학교에입교하여보병전술에서특수공작까지군사훈련을받은군인이기도했다.단아한시인으로만알려진통념과는사뭇다른사실이다.간부학교동기이자처남인안병철역시육사가권총명사수였다고회고한다.이러한무인으로서의기질을바탕으로육사는순국전까지충칭과옌안을오가며대한민국임시정부와조선독립동맹의전선戰線통일을위해노력하는한편,국내에무기를반입하여항일무력투쟁을준비했었다.

잘못알려진‘이육사’를바로잡다
뿐만아니라이책은풍부한문서자료를근거로제시하며이육사에대해잘못알려진부분들을하나하나바로잡는다.예를들어이육사가의열단원으로활동했다고알려진상식은재고해야한다고밝힌다.육사는독립운동가로서의열단장인김원봉을따르며뜻을함께했지만동시에레닌주의자로서김원봉과사상적으로충돌하여의열단소조에서배제되는등갈등을빚었다.따라서저자는이육사가넓은범위에서의열단의범주에속할수는있지만의열단원으로활동했다고보기는힘들다고이야기한다.

(코민테른의)일국일당주의一國一黨主義에위반하고중국에서조선인자신이조선의혁명사업을한다는것은그의혁명적정조를의심하지않을수없습니다.
-이육사가김원봉을비판하며

저자는육사가장진홍의거에직접개입했다는부분에대해서도근거가희박함을지적한다.육사가장진홍의거에대한혐의로수감된것은사실이나이는일제경찰의마구잡이식수사로육사뿐아니라대구에서활동하던상당수의지식인들이함께받았던고통이었다.당시육사는폭탄상자에적힌필체가동생인이원일의필체와비슷하다는이유로검거되었다.
또한육사가조선일보에장편소설현상공모를했다고알려진이야기도오류임을밝힌다.《조선일보》1933년9월20일자〈현상소설예선당선자근황〉기사에‘이활’이라는이름이등장하는것은사실이나여기서의이활은육사와동명이인인황해도출신의문인이다.

못다푼‘이육사’를공개하다
육사의중국유학에대해서는여러자료들의시기가엇갈리고장소도불분명하여아직명확하게밝혀지지않았다.예를들어박훈신과조지훈은육사가베이징대학을다녔다고언급하지만일제에의해작성된신문조서에서는육사가베이징의쭝구어대학에서공부했다고나온다.이에저자는중국현지답사를통해2000년초판에서는쭝산대학에재학했을가능성을언급했다.그후십년간축적된여러연구자들의검증노력을바탕으로개정판에서는베이징유학에대한새로운견해들과더불어‘쭝구어대학’의실재를함께소개한다.
또한육사가순국한베이징의동창후뚱1호에일제의문화특무기관인동방문화사업위원회가위치했음을새롭게밝힘으로써육사의죽음과일제기관의연관성에대한의혹을제기한다.

광야에노래의씨를뿌린초인,이육사를다시바라보다

친일행위자들은자신들의친일행위가일제의강압에의한어쩔수없는선택이었으며당시한국인거의모두가대일부역자였다고변명한다.그러나일제라는같은시기를감내하면서도친일과항일로극명하게대비되는삶이있다.이육사는야만앞에서대세를부정하는것만으로도큰용기가필요했던시절,모든것을버리고한번떠나온항일투쟁의대열에다시뛰어들어자신이노래한시와일치되는삶을살았으며그러한삶을시로남긴진정한시인이자독립투사였다.
육사는시를통해광야에가난한노래의씨를뿌리며훗날백마탄초인을기다렸다.2010년《이육사평전》출간이후새로운연구업적이나왔듯이,이번개정판의성과와풀지못한숙제모두가새로운추적과연구의디딤돌이되어육사가뿌린씨앗의열매를거두는계기가되기를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