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사람들의 일상사 (반양장)
Description
신선하고 흥미로운 ‘밑으로부터의 역사’
또 다른 ‘역사하기’를 위한 마중물 9편
역사를 읽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서민이나 민중은 역사를 ‘갖지’ 못했다. 소수의 권력자와 지식 엘리트들만이 ‘역사’를 남길 수 있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우리는 국가, 위인, 자본 등 거시적 구조로 대부분의 역사를 읽어냈기 때문에 개인과 그 삶에 대해, 그리고 시대별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양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1990년대 한국에 소개된 일상사 연구는, 일상 탐구를 통해 역사학이 처한 현재의 미로를 헤쳐 나가는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민중사’를 포괄 또는 뛰어넘는 방법론
물론 20세기 초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시작된 일상사 연구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아니다. 한국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의견이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 근대에 의해 파괴되는 일상(르페브르), 자본에 대항하는 일상(하루투니언), 생활세계로서의 일상(하버마스) 등 다양한 연구가 ‘일상사’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국내에서도 ‘민중사’, ‘구술사’, ‘생애사’ 등 다양한 명칭과 방법론이 등장했다. 이 책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일상’을 하나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일상’을 밑으로부터 시각의 하나로 이해하자고 제안한다. 작은 사람들이 아래로부터 ‘자기 삶의 조건에 규정되면서도 그 조건을 전유하는 실천’으로서의 ‘일상’을 강조하는 것이다.

일상 속 사건으로 일상 다시 보기
학문사적 의미를 떠나 책에 실린 글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18세기 영월 신씨가 여성의 청원과 소송을 분석한 김경숙은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도망 노비 추쇄를 위해 소송은 물론 국왕에게 상언ㆍ격쟁도 불사하는 적극적 법 활동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삶은 한 방편으로 이뤄진 불온인물에 대한 투서라는 ‘동조’(정병욱), 1950~60년대 ‘풍기문란’의 내용과 이에 대한 여학생들의 저항(소현숙), 1970년대 전북 임실의 한 마을에 만연했던 폭력의 실태(안승택) 등 ‘역사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흥미로운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이 밖에 정치종교로서의 새마을 운동(이상록), 부산 형제복지원의 불운한 아이들(주윤정), 교토 민족학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타가키 류타) 등도 놓치기 아까운 글들이다.

일상사 연구자들의 성과를 한자리에
이 책에 실린 9편의 글은 2019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고려대와 독일 튀빙겐대학교, 영국의 에딘버러대학교에서 열렸던 다섯 차례의 일상사 워크숍에서 발표된 논문을 골라 엮은 것이다. 이보다 앞서 일상사 연구의 개척자인 독일 알프 뤼트케 교수의 《일상사란 무엇인가》(2002)가 번역, 출간되었고, 젊은 국내 학자들이 중심이 된 《일상사로 보는 한국 근현대사》(2006)가 출간되어 한국에서의 일상사 연구를 위한 물꼬를 튼 바 있다. 이 책은 그간의 연구 공백을 메우며 현재 국내 일상사 연구의 성과를 부분적으로나마 한자리에서 엿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귀한 의미가 있다.
저자

권내현,김경숙,소현숙,안승택,이상록,주윤정,이타가키류타

저자:권내현
고려대역사교육과교수로재직중이다.조선후기사회경제사를전공하였고주로호적대장을활용한가족·친족·신분연구,조선·청관계와은유통연구에주력하였다.저서로는《조선후기평안도재정연구》,《노비에서양반으로그머나먼여정―어느노비가계2백년의기록》,《유유의귀향,조선의상속》등이있다.

저자:김경숙
서울대학교역사학부교수로재직중이다.조선시대사회사를전공했고,관심주제는청원·소송활동,유배생활,여성사등이다.대표논저는《조선의묘지소송》,《고문서에게물은조선시대사람들의삶》(공저),《새로쓴한국사특강》(공저)등이있다.

저자:정병욱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교수로재직중이다.한국근대사를전공했고,관심주제는민중의일상,공공역사다.논저로《식민지불온열전》,《낯선삼일운동》,《유언비어2-전시기(1937~1945)‘불온언동’》(공역),《일기를통해본전통과근대,식민지와국가》(공저),〈관동대학살100주년전시와공공역사〉등이있다.

저자:이유재
독일튀빙겐대학교한국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최근한인디아스포라,한독관계사그리고일상사에관심을가지고연구하고있다.대표저서로는KolonialeZivilgemeinschaft,《파독광부생애사》등이있다.

저자:소현숙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학술연구팀팀장으로재직중이다.한국근대사를전공했고가족사,젠더사,마이너리티역사등에관심을두고연구하고있다.대표논저로는《이혼법정에선식민지조선여성들》,《日本殖民統治下的底層社會臺灣與朝鮮》(공저),〈3·1운동과정치주체로서의‘여성’〉,〈마이너리티역사,민중사의새로운혁신인가해체인가?〉,〈DisabilityHistoryandMinjungasAffect〉등이있다.

저자:안승택
경북대고고인류학과부교수로재직중이다.문화인류학을전공했고,연구분야는환경및경제인류학,역사인류학,한국민속학이다.주요논저로《식민지조선의근대농법과재래농법》,〈농민의풍우인식에나타나는지식의혼종성〉,〈근현대향촌사회에서상여를메던‘아랫것들’과공동체의‘살갗’〉등이있다.

저자:이상록
국사편찬위원회편사연구관으로재직중이다.한국현대사를전공했고,관심주제는민주주의와인권의역사,산업화시대의일상사등이다.대표논저로《한국의자유민주주의와『사상계』》,〈민주주의는개발주의에어떻게잠식되어왔는가〉,〈1979년크리스챤아카데미사건을통해본한국의인권문제〉,〈예외상태법이론으로쿠데타세력에동조한법학자다시읽기〉등이있다.

저자:주윤정
부산대사회학과조교수로재직중이다.인권사회학과생태평화,재난등을연구하고있다.현재는‘느린재난’이라는국제공동연구를통해재난과폭력이후의회복력에대한연구를진행하고있다.주요논저로《보이지않은역사:한국시각장애인의저항과연대》(대한민국학술원우수도서),〈법앞에서: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들의해방과기다림의정치〉,〈과거사회복의새로운흐름―아동,소수자,소수민족의변형적정의〉,〈상품에서생명으로:가축살처분어셈블리지와인간-동물관계〉등이있다.

저자:이타가키류타
일본의도시샤대학사회학과교수로재직중이다.문화인류학을전공했고,관심영역은근현대한국의사회문화사다.대표저서로는《북으로간언어학자김수경》,《한국근대의역사민족지》,《식민지라는물음》(공저),《동아시아기억의장》(공저)등이있다.

목차

【권내현】1.16세기유연사건과가족갈등
【김경숙】2.규범과일상사이에선조선후기사대부가여성의법활동
【정병욱】3.일제강점기불경不敬사건과행위자들
【이유재】4.속빈아담,속찬이브:한국탈/식민지기가톨릭여자선교
【소현숙】5.1950~60년대‘풍기문란’단속과여학생,일탈과저항
【안승택】6.두마을이야기:1960~70년대농촌의일상생활속자연적사회적사건
【이상록】7.정치종교로서의새마을운동,신앙고백의편지쓰기:
1970년대새마을지도자연수원수료생서신을통해본새마을운동의일상정치
【주윤정】8.불운한아이들:형제복지원의부랑아와고아
【이타가키류타】9.은각사에그어진38선:
2차세계대전이후교토의민족학교와지역사회

참고문헌
초출일람
2019~2024년일상사워크숍개요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1556년대구의한양반가에서가출사건이일어났다.주인공은유유로백씨성을가진아내가있었으며,아버지는현감을지낸유예원柳禮源으로역시생존해있었다.…유유에게는형인치治와아우연淵이있었는데치는이미죽어유유가사실상의장남이었다.이런집안에서가출이란상상하기어려운일이었다.(20쪽)

16세기영남인물인권응인은채응규가대구근방경산의관속으로유유의여종과혼인했다고기록하였다.그가유유의여종과혼인한이력이있다면유유의용모나집안사정에대해서는어느정도인지할수있었을것이다.또한권응인은채응규가다른지방을떠돌다가유유를만나함께지냈으며,이로인해유유에관해더많은것을알게된것으로보았다.(41쪽)

17세기이후딸은차별받고아들가운데장남이우대받는방식으로상속관행이바뀌었다.이때아들이없는집에서는양자를들였다.총부들도자신의입지를지키기위해입양에동의하였다.…이후로조선사회는가계계승과재산상속을두고장남과차남,형수와시동생이갈등하거나사위가처가재산에관심을표명하는일도사라져갔다.유연사건은16세기일상공간에서벌어진가족갈등이었다.(39쪽)
조선의기본법전인《경국대전》에는아래로는담당관청부터위로는국왕에이르기까지누구라도청원및소송을제기할수있는권리가명문화되어있다.성별이나신분에따라청원자를제한하지않았고,여성의법행위를금지하는규정도찾을수없다.대신‘사족부녀’는관에직접나와서진술하지않고문서로대신하게했다.또한아들·사위·아우·조카[子壻弟姪]등의가족이나소유노비를대리인으로내세울수있도록‘허용[許]’하였다.(52쪽)

신정수처유씨는사대부가여성들이선호했던대리인을내세우는방식뿐만아니라친소·친송의방법도적극활용하였다.내용의측면에서도남편족인신성중과의산송,도망노비추쇄를위한상언·격쟁추진,가계계승을위한신용백(신시갑)의입후청원등가호보존,가계계승및재산권수호에이르기까지다방면에걸쳐있다.이러한모습은남편의부재로집안을이끌어야하는책임이주어졌을때이를회피하지않고적극적으로감당하는주체적행위자로이해된다.(80쪽)

‘황실에대한죄’는천황을정치권력자로서보호하는것이아니라국민의부모처럼이데올로기적인권위,정통성으로서보호하려는것이었다.실제‘불경죄’는1882년시행되어1947년폐지될때까지천황제질서를이데올로기적으로침범하는또는침범했다고여겨지는여러‘적’에대처하여‘활약’했다.와타나베가주목한주요‘적’은사회주의,종교집단이었다.(88쪽)

식민지배하의투서에서는독일나치시대의밀고에서보이는지배에동참이나‘협력’이라는감정적동조가잘포착되지는않는다.…그럼에도‘내면화’나‘동일시’까지는몰라도지배에대한‘동조’의흔적이보인다.조서봉독식에참여하지않은남원일부를힐난하는마을사람,일본어를가르치면서인정받고싶었던공전병택,사리원평화여관앞호객꾼,김영배를밀고한마을유지등이그런예다.가치판단을떠나식민지피지배자인조선인에게‘동조’는삶의한방편이었다.(119쪽)

강선미는여선교사들이서구근대주의와기독교내의가부장적요소를재생산했던면도있지만여선교사들의의도와는별개로그들에게교육받은조선의여학생들은…한국의근대초기페미니즘을형성했다고주장한다.…이들은개인의자유를표방하는자유주의적신여성과여성의해방을표방하는사회주의적신여성과구별되어남녀평등을표방하는신여성내온건파를형성하였다.(131쪽)

수녀원은독일수녀들에게는문화적피난처였지만한국수녀들의일상생활을자세히보면…서구문명과문화를누릴수있는공간이라기보다는가난과고된노동,비합리성과삶의질의상실과도연결되는곳이었다.침대에서자고,의자에앉고,바닥에는마루를깔고,벽에는유리창문을두고산다는것자체가문명으로의입주는아니었다.(145쪽)

“여성을위한여성”선교방법은유럽가톨릭부르주아식가족을모델로하고있었다.이방법을실행에옮겼을때여성는선호되지않았고한국사회에존재하던성별불평등은교회의도전을받지않았다.도리어이방법은성별불평등구조를교회안으로끌어들였고여성은교회안에서차별받았다.(163쪽)
풍기단속을명목으로한학생생활에대한감시와처벌은식민지시기부터시작되었으나,1의무교육제도의도입으로학생수가비약적으로증가한1950~60년대에이르러더욱강화되었다.…4·19혁명에나선중고등학생들의열기가표상하듯이학생들은…정치활동에주도적으로참여하는가하면영화나펜팔과같은새로운문화를향유하는주체로서자신의존재를뚜렷하게드러냈다.정부와사회는이러한역동적인중고등학생들의움직임이체제와규범의경계를넘지않도록규제하고자했는데,‘풍기단속’은그일환이었다.(169쪽)

1950년대후반중고생들의맹휴는대체로학교재단의비리나교장의독단적인인사,교사들의무능이그주요한원인이었다.그러나정치적활동을포함한학생들의일상에대한통제또한맹휴의발단이되었다.나아가학생풍기에대한강조는반대급부로교사들의풍기문란에대한학생들의비판으로이어지기도했다.(205쪽)

《임실창평일기》는매우흥미로운자료이다.…한마을에서빈발하던폭력사건의양상이잘드러나기때문이다.이일기에서직접완력을써서상대에게상해를입힌경우만세더라도한해에적게는3건(1973년)부터많게는13건(1971년)에이른다.여기에멱살잡이처럼물리적상해직전까지간경우,피아간의가해상황이분명하지않지만완력이행사되었을개연성이큰경우…성폭력이나응징폭력의경우등까지포함하면,그수는더욱늘어난다.(224쪽)

1970년‘새마을가꾸기사업’이라는명칭으로시작된새마을운동은애초에농촌지역환경개선사업이나농가소득증대사업과같은물질적차원의개발사업이었다.그런데박정희는근대화·산업화의폐해를극복하기위한‘정신혁명’프로젝트로서새마을운동을끌고가려고했다.그는…소비와사치를일삼는주체의정신을개조하여‘근면·자조·협동’을실천할수있는노동의주체,개발의주체로만드는것을바로‘정신혁명’이라명명했다.(253쪽)

새마을지도자연수원수료생들이연수원으로보낸편지의수신자는대부분김준원장이었다.…연수원에서받은교육내용이평생경험해보지못한특별한가르침이었다고고백하거나김준원장의강연을들으면서눈물을흘렸다는이야기들이매우많은편지에서공통적으로나타난다.(273쪽)

국어학자서정범은연수원식당아주머니들이분임토의에서교육생들에게애인에게밥을해주듯이사랑으로짓자고결의한에피소드를담아새마을운동을“살아있는현시대에지상낙원을이루자는신앙운동”이라고정의내렸다.“종교에서극치로여기는내세의낙원이새마을운동에서는살아있는현시대에이루려는의지적인운동”이라고,실제종교보다도더좋은차원의세속종교로새마을운동을설명했다.(305쪽)

1975년부터부랑인을본격적으로단속하기시작했다.이훈령이등장하는배경에는사회에서비정상적인구를통제하려는필요와동시에당시박정희정권의정치적필요가복합적으로존재했던것으로보인다.즉사회적으로도시화로인한사회인구를통제하려는측면과,정치적으로권력의통제를강화하려는이중적경향성속에서이런훈령이시행되었던것이다.(320쪽)
복지원에는구타,고문등신체적폭력,성폭력등이일상적으로이루어졌다.…아동들에게가장강력한징벌은탈출을시도했을때였다.“빨간마대자루에위에구멍으로이렇게뚫고칼로이래뚤고빨간글로‘나는탈출하다잡혀왔다’는문자가이렇게앞뒤로쓴걸입히더라고요.그걸마대를입고소대원들이밥먹으로들어간입구에이렇게쫙서가지고……”(3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