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역사 속 여자, OO하다 4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역사 속 여자, OO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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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신진 사학자 7인의 유쾌한 도발
“여성을 제외한 한국사가 가능한가?”

우연찮게 탄생한 ‘여성, 역사하다’
이 시리즈는 2024년 초 몇몇 여성 사학자들이 우연찮게 모여 ‘수다’를 떤 끝에 기획되었다. “여성을 제외한 역사가 가능한가?”라는 강한 의문이 제기된 지 30년, 그럼에도 “여성사가 한국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으로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가”란 문제의식을 가진 사학자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사의 대부분 기간에 절대다수의 여성이 문맹이었기에 사료에 구속되기 마련인 역사학자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채, 남성과 가부장적 국가라는 틀 속에서 여성들을 조명하는 한계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따라 필자들은, 관점의 편향성과 서술의 평면성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행위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 여성사를 시도했다. 그 결과 시대와 공간, 사회구조와 제도에 속박된 여성들이 각자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 자기표현의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천했는지를 추적한 9편의 글이 4권의 책으로 묶여 선보이게 되었다. ‘여성, 00하다’의 탄생이다.
저자

이아리,권혁은

저자:이아리
동북아역사재단한일연구소연구위원.젠더와노동을화두로삼아한국의근대적전환기를연구하고있다.여성과남성의노동이재편되는방식,당대인들의생활을구성하는조건들을밝히고자하며,특히그간학술적대상으로여겨지지않았던주변적노동,재생산노동,공식기록에서누락된일상과관행에관심이있다.대표적인연구로는〈여성의일이근대직업이될때―일제하‘가사사용인家事使用人’범주를중심으로〉,〈1920~1930년대남의집살이여성들의처우와인권문제―‘어멈’과‘오모니’에서‘식모’로〉,〈20세기초행랑살이의확산과쇠퇴의맥락〉등이있다.

저자:권혁은
서울대학교국제학연구소연구교수.한국현대사에서냉전과민주주의의관계를탐구하고있으며폭력과일상의관계에도관심을기울이기시작했다.지은책으로는《계엄,내란,그리고민주주의》(공저)가있고,논문으로는‘“ThereisaSpyLivingNextDoor”:TheSpyReportingSystemandEverydayLifeUndertheAnticommunistPolicyoftheParkChung-heeGovernment’,〈반공과발전:1950~70년대유선전화근대화와113간첩신고전화〉등이있다.

목차

4권《여자,생존전쟁을치르다-행랑어멈과식모들*우리시대의커리어우먼》

기획의변
들어가며

여자,식모살다
주인아씨와행랑어멈이싸우다
행랑어멈은진고개로떠나고
조선여인의일본인집식모살이,‘오모니’
상경하는식모들과“식모전성기”의이면

여자,회사가다
1990년대,직장내성희롱이처음으로세상에알려지다
1980년대,여자도회사에가고싶었다
가장여성친화적인직장에서도성차별과싸워야했다
연대를통해만들어낸여성들의‘평범한회사생활’
‘직장내성희롱’처벌명문화

출판사 서평

4권《여자,생존전쟁을치르다》

‘식모’에서‘커리어우먼’까지,여성노동의땀과눈물
시리즈4권《여자,생존전쟁을치르다》는차별의장벽을넘나들며고군분투했던‘일하는여성들’에관한이야기다.여성임노동의시초라할‘식모’의사회?경제사적의미를짚고,1990년대이후본격등장한‘커리어우먼’들의일과일터를조명한다.

이아리의〈여자,식모살다〉는일제시기이래행랑어멈,오모니,식모등으로불리며가내노동을담당하던여성들을불러온다.역사적으로누구보다먼저임금노동의시장에진입한이는사실이식모들이었다.가난하고교육받지못했으며허드렛일을도맡아했던그녀들의이야기는근대적남녀성별분업과경제적역할에대한우리의고정관념을다시생각하게한다
권혁은의〈여자,회사가다〉는1980년대여대생의생애주기속에서경험한사건들을중심으로,‘커리어우먼’이라는이름을얻기까지여성이라는이유로겪어야했던성희롱과고용차별등수많은애로와그극복의이야기를펼쳐보인다.1970년대한국은행에서도결혼퇴직각서는물론서른살이되면퇴직하겠다는각서까지요구했다는사실등은일종의충격으로읽힐것이다.

여성의일과일터의애환을다룬4권의경우,압축적인근대화와산업화를겪었던한국사회의단면을보여준다.스스로와가족을부양하기위해,혹은자아실현을이루기위해땀을흘려야했던여성들이제대로된보상은커녕온갖차별을감내해야했던근현대여성노동사를접하면우리곁의‘커리어우먼’들이새삼다시보일것이다.

책속에서

식모들이한국역사에처음등장한때는일제식민지기였다.당시많은한국여성들이식모라는호칭외에도‘어멈’,‘안잠자기(안잠재기)’,‘드난살이’,‘오모니’,‘오마니’,‘가사사용인’,‘호내사용인’,‘하녀’등의다양한이름으로불리면서사실상식모살이를하고있었다.(19쪽)

1922년3월…《개벽》에는〈조선인생활문제의연구〉라는제목의논설이실렸다.…필자인선우전鮮于全은경성의가옥중7할에행랑채가있고그중9할에행랑살이식구들이살고있다며,경성에만행랑살이인구가4만~5만명은될것이라고주장했다.경성의인구를모두합쳐봐야30만이안되던시절이니엄청난수였다.(23쪽)
신문기자에게“월세방얻을돈조금만있었으면이런설움을다참고살겠습니까.돈이없으니참는거지요”라고토로하기도했던행랑어멈들은이미주인집과의관계를상전과노비관계가아니라경제적관계로생각하고있었다.더나아가관습적으로남아있던신분제적차별에저항하기시작한행랑어멈들의모습은당대민중의근대적자의식이성장하고있음을보여준다.(31쪽)

억지로쫓겨난행랑살이들중상당수는서울변두리땅에토막을짓거나토굴을파고사는비참한‘토막민’이되었다.특히신당리의토막민촌은집주인,고용주로부터쫓겨난이들이1918년경부터모여들어1930년이면112세대의303명이살고있었다고한다.(42쪽)

일본인들이모여살던진고개에치마저고리를입은조선인식모들의모습이부쩍늘어나기시작한것은1924~1925년경이었다.(47쪽)

재조일본인가정들은조선에서는아직식모일을할젊은여성들을쉽게구할수있고,조선인들에게는일본인식모에게주는급료의6할정도만주어도기꺼이일하려한다는사실을알게되었다.…이들은일본인들에게‘어머니’의일본식발음인듯한“오모니”혹은“오마니”라는호칭으로불렸다..(49쪽)

《조선중앙일보》의1934년8월26일자논설한편은“하고많은말중에‘어멈’이라고부르지맙시다.부르는사람은교양없어보이고,듣는사람은기분이나쁩니다!”라는제목을달고있었다.1930년대초까지도집안일을도맡아해주는여성가사노동자를‘어멈’이라부르는경우가많았는데,이것이하인을하대하여부르는호칭이라는지적이었다.‘어멈’호칭의대안으로제시된말은다름아닌‘식모食母’였다.이후한국에서가사노동자를부르는말은점차‘식모’로자리잡아갔다.(56쪽)

사회사업’이라는이름으로1920년대초반부터몇몇주요도시에설립된공설인사상담소는원래도직업소개업무위주로운영되던기관이었다.그러다가1920년대중·후반경에는아예전문‘직업소개소’로분리되어나오기시작했다.그중가장대표적인곳이1928년10월하순에문을연경성부직업소개소였다.(64쪽)

식모들은1920년대후반부터1930년대내내직업소개소중개실적의절반이상을차지하였다.…고학력의남성실업자들이넘쳐나는당시상황에서수요와공급이모두높은수준으로유지되는것은오직식모뿐이었다.(65쪽)

1930년《조선국세조사朝鮮國勢調査》…에따르면‘가사사용인’으로분류된사람은전국에12만877명이있었다.이는직업을가지고있던976만5,514명중농경종사자가75퍼센트를넘는상황에서비농업직단일직업으로는첫손에꼽힐만한규모였다.(67쪽)

1949년이미‘가사사용인’으로조사된인원은8만5,849명에달했다.한국전쟁이후생계를위한여성의경제활동은더욱확대되었고,‘식모’는1950년대에도여성들이가장쉽게선택할수있는직업중하나였다.오늘날한국사회가기억하는‘식모전성기’는주로1960~1970년대에형성되었다.(76쪽)

1960년대후반제조업의성장과젊은여성노동력의공장유입이본격화되면서이미‘식모부족’현상이나타났으며,1970년대중·후반에는그정도가더욱심해졌다.…1970년대중반까지주로주인집에입주해일하던식모들이1970년대말부터는시간제파출부로대체되기시작하였다.또1960~1970년대식모(가정부)가대부분농촌출신의20세이하젊은여성들이었던것과달리,1980년대이후파출부는도시주변거주40~50대기혼여성이주류를이루게되었다.(78쪽)

한국에서여성들에게커리어추구자체가문제가된건20~30년남짓일뿐이다.각종미디어가‘커리어우먼’을선망의대상으로그려낸시기가언제일까.1990년대이후다.(86쪽)

1993년10월18일,그녀는법원에A교수와서울대,그리고서울대를운영하는대한민국을상대로소장을제출했다(《여성신문》2018년8월31일자).성희롱을이유로한손해배상청구소송.대한민국역사상최초의소송이었다.(99쪽)

1986년하반기에는30대기업의모집규모가전해보다20퍼센트나늘어났다.그러나…수많은회사의모집공고에하나같이‘응시자격:병역필또는면제자’라고적혀있었다.여성은아예병역의의무가없었기때문에남자만뽑겠다는의미였다.여성을뽑는다고해도채용규모는소수였다.삼성이나현대같은대기업들이2,000명이상의신입사원을모집했지만그중여성은각각100명뿐이었다.(108쪽)

1988년엔‘남녀고용평등법’이제정되며공식모집광고에특정성별만채용한다는조건을넣는것이금지되었다.그래서일까1990년대가되니커리어우먼이라는말이유행하기시작했다.(111쪽)

“저는그서류가뭔지도몰랐어요.그많은서류를다써야입사가된다길래그냥써내려갔어요.그안에결혼퇴직각서가있었을줄꿈에도몰랐죠.”―〈“결혼하면퇴직”46년전은행‘결혼퇴직각서’찢어버린여자들〉,《한겨레》2022년8월18일)(120쪽)

1975년11월,조흥은행의무실약사강경자가…장미숙과송숙진의부탁을받고…조흥은행창립이래처음으로,결혼특별휴가신청서를제출하고퇴직없이결혼했다.은행측은즉각반응했다.장미숙은결혼퇴직각서폐지운동의배후로지목되어,버스노선도없는영등포지점으로발령받았다.(122쪽)

1999년6월25일,파기환송심에서A교수에게500만원의손해배상지급이명령되며6년간의법정투쟁이끝을맺었다.서울대학교총장과국가의책임이인정되지않은점은아쉬운대목으로남았다.그러나이사건은성희롱이단순한개인간문제가아니라사회구조적인문제라는인식을확산시키는중요한계기가되었다.(135쪽)
1999년2월,‘남녀고용평등법’이개정되며‘직장내성희롱’개념이명문화되었다.최초로성희롱이법적으로규정된것이다.또한사업주가직장내성희롱예방교육을의무적으로실시해야하고,성희롱가해자에대한부서전환과징계조치를취해야하며,피해근로자에게고용상의불이익조치를취해서는안된다는규정이들어갔다.(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