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불편한 진실

한글,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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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언로는 막고, 한글은 가르치지도 않고
‘애민愛民’과 ‘훈민訓民’의 실상을 묻는다
백성을 위해 만든 ‘세계 최고 문자’, 그러나
한글은 금속활자, 거북선과 더불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우리는 학교에서 “성군聖君 세종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없는 어리석은 백성을 불쌍히 여겨” 만든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배운다. 맞다.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정도면 배울 수 있고, 바람 소리며 학 울음소리 등도 모두 적을 수 있으니” 우리가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탄탄한 한문학 실력을 바탕으로 꼼꼼한 자료조사를 거쳐 도발적이고도 흥미로운 책을 여럿 낸 바 있는 지은이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신화를 제대로 보기를 제안한다. ‘훈민訓民’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려 한 것인지, 과연 한글 덕분에 민중의 형편은 나아졌는지 등을 따져 본 것이다. 이를 위해 세종이 지은 〈어제서문御製序文〉을 중심으로 다양한 언해본과 사료를 분석해, 불편하되 설득력 있는 의문을 제기한다.

‘어리석은 백성’은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우리는 우수한 한글을 농민과 노비가 사용했는지, 사용했다면 어떻게 사용했는지 묻지 않는다. 세종의 거룩한 의도만 확인했을 뿐, 세종이 가르치려 한 ‘우민愚民’에 대해선 잊고 지나친다. 그러나 세종이 말한 ‘어리석은 백성’의 절대다수는 농민이었고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노비였다. 또 여성이었다. 일 년 열두 달 노동에 시달리는 농민과 노비, 여성의 일상에 읽기와 쓰기가 들어갈 공간은 그다지 없었다. 게다가 책은 귀했고, 종이는 비쌌다. 붓과 먹의 값도 만만치 않았다. ‘어리석은 백성’이 노동에 시달리면서 값비싼 도구를 사서 한글을 익혀 써야 할 여유도 이유가 정말 있었는지, 지은이는 궁금해 한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기회마저 막혔다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백성이 이용할 문자를 주겠다는 것이 세종이 〈어제서문〉에서 밝힌 한글 창제의 으뜸 목적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세종은 백성의 언로를 막았다. 백성들이 하려고 했던 ‘말’의 대부분은, 지방 수령과의 갈등에서 배태되었다. 그런데 한글 창제 이전인 1419년 예조판서 허조의 요청을 받아들여 부민이 지방 관장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한 ‘부민고소법’을 폐지하고 ‘부민고소금지법’을 제정했다. 이후 종성 절제사 김후의 부정을 계기로 사간원에서 부민고소법의 부활을 상소하기도 했지만 원래의 부민고소법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은이는 민중의 입을 틀어막고 수탈의 자의성을 보장한 이 조치는 〈어제서문〉에 담긴 애민愛民 정신과는 동떨어진 것이라 보았다. 우리가 아는 상식과도 모순되는 것은 물론이다.

한글 보급을 위한 제도적 노력도 미미했다
세종은 1443년 12월 한글을 창제한 뒤 급히 서리 10명을 선발해 한글을 가르쳤다. 어떤 관부의 서리인지, 어떤 목적이었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이것이 한글에 대한 최초의 교육 사례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한글의 존재와 사용법을 민중에게 알리고 교육하는 과정이 있어야 했지만 지은이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 어떤 제도도,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한글 보급을 위해선 사용법을 담은 《훈민정음》(해례본)을 많이 인쇄해서 민중이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배포하는 것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인간印刊에 관해서 알려진 사실이 전혀 없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책판에 관한 기록도 찾을 수 없다. 이는 《훈민정음》(해례본)이 실제로는 광범위한 보급을 위해 인쇄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지은이는 보았다. 귀한 뜻으로 만든 한글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저자

강명관

부산대학교한문학과명예교수.조선중기서울의도시적분위기에서활동했던여항인의역사적실체와문학을검토해한문학의지평을넓혔으며,방대한한문학텍스트에근거한,풍속사,사회사,음악사,미술사를포괄하는다양한저서들로독자에게다가가고있다.근래에는조선시대지식의생산과유통이인간의사유와행위로연결되어어떤인간형을만들어내는가에관심을기울이고있다.지은책으로《노비와쇠고기》,《이타와시여》,《가짜남편만들기》,《조선풍속사》(전3권),《냉면의역사》,《홍대용평전》(전2권),《열녀의탄생》,《책벌레들조선을만들다》,《조선의뒷골목풍경》,《허생의섬,연암의아나키즘》,《독서한담》,《조선에온서양물건들》,《조선시대책과지식의역사》,《그림으로읽는조선여성의역사》,《조선후기여항문학연구》,《공안파와조선후기한문학》등이있다.

목차

머리말

[1장]쟁점과시각
1.창제를둘러싼쟁점
2.다른시각

[2장]세종의한글창제의도,〈어제서문〉
1.〈어제서문〉에대한새로운독해
1-한글창제의도에대한두가지주장
2-〈어제서문〉에담긴세종의한글창제의도분석
2‐1어제훈민정음서御製訓民正音序
2‐2국지어음國之語音,이호중국異乎中國,여문자불상유통與文字不相流通
2‐3고우민유소욕언故愚民有所欲言,이종부득신기정자다의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
2‐4여위차민연予爲此憫然
2‐5신제이십팔자新制二十八字
2‐6욕사인인이습편어일용이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2.세종의세가지의도
1-백성을가르치겠다
2-말하고자하는바가있는‘어리석은백성’에게표현수단(한글)을주겠다
3-일용日用에편리함을느끼게해주겠다

[3장]민중과한글
1.말하고자하는,말할수없는민중
1-말하고자하는,문자없는민중
1‐1주체로서의민중
1‐2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
2-말할수없는민중에게주어진문자
2‐1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
⚫조관파견법朝官派遣法⚫부민고소에대한처벌의강화⚫부민고소법의제한적복구⚫제한적부민고소법의폐기
2‐2쓸수없는한글
2.일용,매일의한글사용은가능했는가
1-‘쉽게익히는’교육과정의부재
2-한글의사용례使用例
3-민중의글쓰기가있었을까
3.훈민,복종과세뇌
1-저항하는민중
2-‘훈민’이라는발상
3-훈민의언해본텍스트들
3‐1《삼강행실》과축약언해본《삼강행실》
⚫《삼강행실》⚫《삼강행실》축약언해본
3‐2언해본《소학》과축약언해본《삼강행실》의대량보급
3‐3새훈민서,《이륜행실二倫行實》,《여씨향약呂氏鄕約》,《정속편正俗篇》,《경민편警民編》
⚫《이륜행실》⚫《여씨향약》⚫《정속편》⚫《경민편》
3‐4언해본훈민텍스트의보급문제

[4장]사족-지배계급의한글사용
1.한자-한문을돕는한글의범용성
2.외국어학습서의언해
3.언해불경諺解佛經
4.문학서언해
5.실용서언해
1-농서農書
2-의서醫書
3-특수한의서
6.경서經書언해
1-아동용한자교과서
2-경서의구결과언해

[5장]불편한진실
1.따져물어야할문제들
1-말하고자하는민중
2-일상에서의사용
3-훈민
4-사족의한글사용
2.불편한진실

보론
1.한국문법으로읽은〈어제서문〉
2.부민고소법의이후행방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지배질서강화를위해복종을가르친‘훈민’
왕과궁궐을중심으로한글문서가작성되긴했다.경서經書는물론불경과농서農書,의서醫書등다양한실용서도언해도이뤄졌다.한데그목적은‘훈민訓民’에있었다.“비록백성들모두가율문을알게할수는없겠지만,별도로큰죄의조문만이라도뽑아서이문吏文으로번역하고민간에게반포해우부우부愚夫愚婦들이죄를알고피하게만들어주는것이어떻겠는가.”한글창제의의도를짐작케하는1432년세종의말이다.
‘가르치려는백성’은‘말하고자하는백성’과의미가전혀다르다.전자에서백성은주체가되지만,후자에서백성은대상이된다.훈민의내용은지배질서에대한‘윤리적의무로서의복종’이었다.남성에대한여성의종속성을담은‘열녀烈女’를발명해낸《삼강행실》이나《소학》언해본이꾸준히간행된예가대표적이다.

‘어리석은백성’보다사족계급이덕봤다
지은이가깨뜨리려한‘한글신화’중가장뜻밖인것은민중보다사족들이한글을가장적극적으로활용했다는사실이다.이를테면아동기사족에게한자를가르칠때한글은대단히유용한도구였다.1586년완성된《언해소학》수백부가인쇄되었다.나아가경서의언해야말로사족들이한글을가장적극적으로사용한사례라할수있다.경서에구결을달고언해하는작업은세종-세조때시작되었으나완성된것은선조대에와서였다.경서를읽는사족이‘어리석은백성’일수는없다.결국한글을가장적극적으로사용한이들은민중이아닌지배계급이었던셈이다.

이책은한글의창제원리나과학적우수성에이의를제기하는것이아니다.세종의애민정신에토를다는것도아니다.다만지나친자기긍정의내셔널리즘에서벗어나세종과한글에대한객과적이해를촉구할따름이다.지은이는세종은지배계급의대표자였고,자신의계급적이익을대변하는길을걸을수밖에없었다고보았다.이는아마도이는한글에관한가장불편한진실일것이다.이를입증하는과정에서우리가놓치고지나갔던흥미로운사실을여럿알려주기에,아는기쁨과더불어읽는재미가각별한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