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백장군 삼영과 최후 결전지

계백장군 삼영과 최후 결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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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황산전투사(黃山戰鬪史)와 그 유적은 국내외학자와 연구기관에 의해 1세기 이상(1913~2024) 연구 되어온 백제사의 중요 역사임에도 무정립, 무관심, 무대책의 역사로 방치되고 있다. 그 원인은 기존학설이 정립되지 않은 데에 있다.

저자는 황산전투 현장중심으로 기존학설을 검증하면서 결국 「계백장군 최후결전지의 고찰」과 이를 보완하는 「탄현과 개태사협곡 포진무산 소고」를 탈고하였다. 그 내용은 신라의 50.000 대군이 진군한 탄현(炭峴), 황산으로 진군한 진격로, 계백삼영을 향하여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진군한 삼도(三道), 험준한 지형에 먼저 포진하고 신라군을 기다린 삼영(三營) 등 기존학설이 황산 벌판에서 전투하였다고 본 오류에 대하여 검증했다.

계백 삼영[천왕산성(청동리산성), 북산성(황산성), 산직리산성] 전투설을 비정하였으며 문헌과 기존학설의 검증, 현장 지형지세와 관창 우물터, 지명유래 등 현장실사에 근거하여 계백의 지휘영(中營)으로 비정되는 천왕산성 매봉토성 아래 산소골 일대에서 모든 상황에 부합되는 계백장군과 신라군의 최후결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하였다.

백제의 패망은 김유신에 의해 회유된 백제 좌평임자와 충상, 상영 등의 반역에 의하여 의자왕을 기망하여 무력화시킨 결과이며 이들이 나당(羅唐)의 침공에 대비하여 고구려, 왜(倭)와의 연합 교섭을 차단 공작한 것이 결정적 원인이라고 보았다.

탄현의 포진무산(布陣霧散)은 이들의 공작의 결과이며 계백과 함께 황산전투에 출전한 좌평 충상, 상영 등의 반대로 계백은 황산벌 제1의 요새지(要塞地)인 개태사협곡(開泰寺峽谷)에 포진하지 못하였고 백제 군사를 계백 삼영에 분산 배치토록 함으로써 전투력을 감소시켰다. 저자는 개태사협곡이 황산벌의 탄현이었다고 주장한다.
저자

이명현

백제의계백장군과관창의전쟁터이며관창이출격전손으로떠마신우물터로추정되는연산청동리(산소골)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넘쳐흐르는시퍼런우물에무서움을느꼈던감정과우물형태에대한기억,엄마따라의병장백봉묘산줄기황토고갯길을넘어서성안의평호공재실샘물옆디딜방앗간에따라가마을아줌마들과웃으며방아찧던어머니의모습이아련한추억으로남아있다.성내장수골과사직제를넘어초등학교를걸어갔으며중학교수업때는창밖으로천왕산매봉이보였다.이제이와같은산야도세월의흐름에문전옥답은폐농으로버드나무가자라고갈대의늪으로변하고있다.
이와같은향인이바라본황산전투역사의현장과예견되는과제에대한소견을제시하여본다.
논문1「계백장군최후결전지의고찰」
논문2「탄현과개태사협곡포진무산소고」

48년연산청동리(산소골)생,가평인
현)가온세무법인대표세무사

목차

추천사
머리말

1.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등록백제유적
●백제유적은무엇으로기록되나?
●660년백제역사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등록백제유적8곳
●황산전투유적
●백제패망전후반역의행태

2.백제유적천왕산성(청동리산성)과여수고개토성을알아야한다
●천왕산성(청동리산성)과여수고개토성

3.연산천왕산성(청동리산성)주변지명유래

4.계백3영에관한현장과질문
●성주탁교수의3영에대하여
●지헌영교수의3영에대하여
●이명현의천왕산성(청동리산성)의지형지세에관하여

5.계백과관창의전투전적지천왕산성(청동리산성)의확장정밀조사
●천왕산성(청동리산성)의확장정밀조사를건의함
●충남대학술총서『논산황산벌전적지』2000,124쪽을보면
●천왕산성(청동리산성)을장수골을품은대규모포곡형산성으로보는근거
●천왕산성(청동리산성)답사순서

6.황산전투와천왕산성(청동리산성)

7.천왕산성으로명명되기를건의함

8.계백장군과관창의전투전사지점
●위기록에서확인할수있는것은

9.계백장군과관창의전투전사지점과우물

10.연산신양리의황산전투유적지조성의재검토를건의함

11.황산지원,황산지야의해석에대하여
●황산전투와관련된기록을살펴보면

12.황룡재의3도진군과설영견해에대하여
●연산개태사협곡지형

13.3일간의황산전투와백제군4회승전에대하여

14.부적면충곡리계백장군묘의문제점
●천왕산성(청동리산성)은3충신이잠들어있는성지

15.천왕산성(청동리산성)의보존실태

16.역사의현장천왕산성(청동리산성)장수골을관통하는도로의폐쇄복원
●황산벌전적지정비보존방안

17.황산전투유적의세계문화유산추가등록

18.현장자료사진설명

19.「계백장군최후결전지의고찰」(논문1)2018.2이명현

20.「탄현과개태사협곡포진무산소고」(논문2)2019.2이명현

21.「탄현에대하여」(『어문연구』6집1970지헌영)

출판사 서평

저자는문헌과기존학설검증과전투현장실사에근거하여황산전투사의정립이가능한것으로판단하고전투의현장에서바라본견문에기초하여문헌,기존학설의검증,지형지세,지명유래등에근거하여계백장군의삼영(三營)과최후결전지를제시하면서신라군이대전식장산탄현(炭峴)을넘어온것으로주장한다.

「계백장군최후결전지의고찰」과이를보완하는「탄현과개태사협곡포진무산소고」에서황산전투가계백삼영[천왕산성(청동리산성),북산성(황산성),산직리산성]에서벌어졌으며계백장군의최후결전지로천왕산매봉토성아래산줄기청동리(산소골)일대에서벌어진것으로제시하였다.

백제의멸망은김유신에의해회유된백제의국사를전담하던좌평임자와충상,상영등에의해의자왕을기망하여나당(羅唐)의백제침공대비책을등한히하도록하였고회유된655년이후660년황산전투에이르기까지김유신과통하면서대신라공격과고구려와왜(倭)와의연합교섭을차단공작함으로써신라는당고종에게고구려의참전이없을것임을설득하여당의침공을이끌어내었다고본다.

나당의백제침공시고구려와왜(倭)는아무런도움도주지못하였다.그결과는고구려의패망을가져오게되었다고기술하였다.문헌과기존학설의검증,현장지형지세,관창우물,지명유래등에근거하여제시한저자의견해는황산전투사가정립될수있는과제임을보여준다.

한편『계백장군삼영과최후결전지(지식공감,2019.2025개정)』저자이명현은백제의계백장군과관창의전쟁터이며관창이출격전손으로떠마신우물터로추정되는연산청동리(산소골)에서어린시절을보냈다.

넘쳐흐르는시퍼런우물에무서움을느꼈던감정과우물형태에대한기억,엄마따라의병장백봉묘산줄기황토고갯길을넘어서성안의평호공재실샘물옆디딜방앗간에따라가마을아줌마들과웃으며방아찧던어머니의모습이아련한추억으로남아있다.성내장수골과사직제를넘어초등학교를걸어갔으며중학교수업때는창밖으로천왕산매봉이보였다.

이제이와같은산야도세월의흐름에문전옥답은폐농으로버드나무가자라고갈대의늪으로변하고있다.이와같은향인이바라본황산전투역사의현장과예견되는과제에대한소견을제시하여본다.논문으로는「계백장군최후결전지의고찰」과「탄현과개태사협곡포진무산소고」가있으며현재는가온세무법인대표세무사로활동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