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실록 4 : 조선왕조 영의정 173인의 삶과 권력

영의정 실록 4 : 조선왕조 영의정 173인의 삶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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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조선시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 자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으며, 그들이 남긴 명성은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왕조 519년 기간 동안 영의정 자리는 일반 백성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이었다. 벼슬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했던 영의정 자리는 왕조에 따라 오를 수 있는 신분이 정해져 있었다. 영의정 자리를 비롯한 조선왕조의 권력은 조선조 전 기간에 걸쳐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훈공자를 위주로 발탁하였기에 공을 세우기 위한 권모술수와 역모가 끊이질 않았다. 선조 때부터 발생한 당파싸움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생결단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해야 했고, 결국엔 민란을 불러일으켜 국가가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니 나라까지 통째로 바쳐지는 경술국치를 당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공평무사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시킨 왕이 있었으니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재임 32년 동안 단 5명의 영의정을 임용함으로써 훈공자에게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고, 황희 같은 정승을 18년 1개월 동안 곁에 두고 정사를 펼침으로써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또한 정조의 공평무사한 탕평 정책은 조선을 정상궤도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일찍 승하하여 국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173명의 영의정이 배출되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은 황희, 정인지, 신숙주, 유성룡, 이원익 등 불과 10명 안팎이다. 그렇지만 영의정에 오르지 못하고도 해가 갈수록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퇴계, 율곡, 이순신, 권율, 신사임당, 정약용, 허준 등은 모두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크게 이바지했던 사람들이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당대의 직위와 신분이 높아짐으로써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책과 직위에서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느냐가 후세의 평가를 받는 데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알았으면 한다.

이 책은 왕조별 영의정 173명에 대한 개개인의 가족 사항부터 경력과정, 재직기간 중의 기록, 죽을 때 남긴 졸기 평가를 중심으로 편집하였으며 영의정에 오르게 한 핵심 요인을 각 영의정별 첫 소주제로 잡아 서술하였다.
저자

박용부

저자:박용부
저자박용부는성균관대교육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교육학박사학위를취득하였다.
1979년에성균관대교직원으로임용되어1997년에수도권입학관리자협의회회장,2007년서울지역총무처장협의회회장,2012년입학사정관실국장을역임하면서성균관대의입시,직원인사와교육을혁신한바있고,대학최초로6시그마를도입하여업무혁신을진두지휘하였다.이후경기대특임교수,가천대초빙교수로임용되어강의와함께업무혁신을컨설팅하였으며,현재는베트남하노이약학대학컨설팅업무를수행하고있다.저서로『삼성식대학경영』,『교궁기집록(경북·강원·충청편)』이있다.

목차

일러두기14
조선왕조왕권의역사와영의정직의변화(인종~선조)16

인종시대

53홍언필洪彦弼-청렴근면했던부자지간영의정
영의정송질의사위,정난위사공신33
홍언필의처와딸들에대한왕조실록의평가40
음관제도와관리태만에대한상소문42
대문에날아든화살45
영의정을길러낸홍언필의교육47
홍언필의졸기51

54윤인경尹仁鏡-인사평가에서여섯번의최고점을받다
을사사화에협조한보익1등공신55
겨울번개에대한대책을묻다63
윤인경의졸기67
양손자의악행68

명종시대

55이기李?-원한을권력으로풀다가간흉이란이름을얻다
2대공신(보익1등공신,정난위사1등공신)77
장인의장리죄로걸림돌이되다가윤원형과손잡다79
이언적의도움으로정승직에오르다85
파직강등되어원한을품고소윤파에앞장서다87
이기의졸기92

56심연원沈連源-명종비의조부
정난위사공신,왕족과혼맥97
벼슬이가득참을경계하며올린6조목의상소문99
심연원의졸기104

57상진尙震-내죽거든무덤에작고둥근비석을세워라
위사원종공신으로원만한인간관계를맺다108
상진의졸기113

58윤원형尹元衡-소윤,문정왕후의동생
문정왕후의동생119
부정으로합격한과거시험121
을사사화를일으키다125
윤원형에대한탄핵142
정난정의자결과윤원형의졸기146

59이준경李浚慶-조선조명정승의한사람
당파를예견했던명정승152
파직과유배,순탄치만않은승진의과정155
선조를옹립하고,조광조의신원을회복시키다164
이준경이임종때올린유훈상소문167

선조시대1

60권철權轍-권율장군의아버지
권율장군의아버지로공평무사했던인물175
권철의졸기177

61이탁李鐸-청렴강직하며공평무사한공직자
청렴강직하며예의발랐던원칙주의자182
이탁의졸기190

62홍섬洪暹-3대영의정가문을이루다
영의정의아들에영의정의외손194
홍섬의졸기199

63박순朴淳-불의에굴하지않았던강직한정승
장원급제자로영의정애올랐던기개높았던선비203
최고권력에맞섰던굽히지않은강직함206
박순의졸기209

64노수신盧守愼-19년간귀양살이후영의정에오른인물
장원급제출신으로19년간귀양살이하다213
양재역벽서사건의전모와유배살이19년216
당파의시작점226
정여립을추천한죄로삭탈관작당하다229
노수신의졸기232

65유전柳?-당파를초월한재상
당파를초월한재상237
정여립의난239
유전의졸기244
첩을두고일어난아들유희서의죽음과임해군의행패245

66이산해李山海-6세의신동으로선조의총애를받다
학연으로대북파의영수가되다252
동서분당의시작,정철과쌓여간악연254
서인정철의제거와남인·북인의분파260
이산해의졸기265

67유성룡柳成龍-청백리,조선5대명재상
국난위기를극복한조선의명재상271
유성룡이겪은임진왜란279
국가개혁방안을올리다310
유성룡의졸기321

68이양원李陽元-조선2대왕정종의후손
정종의후손328
임진왜란의첫승전보와영의정발령330
이양원의졸기333
선조와의문답시와이양원에대한평가333

69최흥원崔興源-하루만에3정승을거치다
몸가짐이중후하여적을만들지않았던정승339
최흥원의졸기345
임진왜란의공신책록346
백비白碑를내린선조349

70이원익李元翼-태종의후손3왕조영의정을지낸명재상
충직하고올곧았던청백리정승353
빈틈없는일처리와쳥렴함355
임진왜란방비책과선조와의문답358
이원익의졸기372

71윤두수尹斗壽-임금앞에서직언을서슴치않았던정승
도량이넓고온화한성품의정승378
왕실외척인사요청을거절하여삭직되다385
윤두수가겪은임진왜란389
윤두수의졸기405

72이항복李恒福-임진왜란시6번의병조판서를지내다
영의정권철이한번보고손녀사위로삼다409
병조판서이항복이겪은임진왜란416
불의에굴하지않다423
이항복의졸기431
필운대432

73이덕형李德馨-조선조최연소대제학에오르다
띄어난외교술과인품으로국난위기를극복하다436
31세대제학에42세영의정이되다439
중국과일본의사신도알아봤던이덕형451
이덕형이겪은임진왜란452
이덕형과이항복에대한사관의글461
영의정사직상소문464
이덕형의졸기469

74윤승훈尹承勳-강직한성품에공정한인사
강직한성품으로선조의총애를받다474
임금이점찍고있던정승발령479
윤승훈의졸기482

75유영경柳永慶-선조의사돈,소북파의영수
선조의사돈,선조의유훈을지키려다비참한최후를맞다485
광해군의즉위와선조의유훈492
정권교체와적폐청산497
멸문지화당한가족503

출판사 서평

인종시대,명종시대,선조시대에는어떤사람들이영의정에올랐을까?

조선왕조519년동안영의정에오른173명중제4권에서는인종시대홍언필,윤인경,명종시대이기,심연원,상진,윤원형,이준경,선조시대권철,이탁,홍섬,박순,노수신,유전,이산해,유성룡,이양원,최흥원,이원익,윤두수,이항복,이덕형,윤승훈,유영경까지23명의영의정을다루고있다.

173명의영의정중세종시대황희정승처럼이름을만세에남긴정승도있지만세조의조카로29세에영의정에올랐다가30대에죽은이준,포악무도했던예종시대홍윤성,중종시대조광조를모함했다가흉인이된남곤처럼오명을남긴정승도많다.오늘날도호랑이가가죽을남기듯이름석자를남기기위해억척스럽게권력을향해일로매진하고있지만권력후의결과는칭송받는자보다는감옥을가거나악명을남긴자가더많다.

저자의저술에따르면조선왕조와대한민국간의기간은가깝게는100년전의일이고길게는628년전의일이다.역사를통해배우는것은지난과거를타산지석으로삼아보다나은역사를만들어가는것인데,농경시대였던500~600년전의인재등용정책과2020년대의인재등용정책을보면크게달라진것이없다고보고있다.

저자는‘현대를살아가는오늘날의고위직관료들은어떤철학을갖고관직에임하고있는가’라는질문을던진다.철학도없이권력을손에쥐었던자들의말로는대한민국수립이후의대통령의모습에서찾아볼수있다고말하고있다.

결론적으로저자는조선왕조519년동안최고의벼슬인173명의영의정의벼슬경력과업적과그졸기평가를저술함으로써오늘날을살아가는현대인들에게권력의지에대한메시지를전하고자한다.

책속에서

문장에능하고일처리에세밀하였다.특히중국과우리나라의지리에밝아서혹남의질문을받으면직접자신이목격한것처럼막힘없이응대하였다.일찍이탐라목사로있을때그곳산천을살펴지도를그려두었다.1555년[65세]남해변에많은왜구가침입했을때,가장요충지역이던탐라가당시심연원이그려둔지도에의거하여대응책을세워이를막아냈고,이에사람들이심연원의선견지명에감복했다한다.사후에명종묘정에배향되었고,시호는충혜忠惠이다.
---「명종시대심연원」중에서

선조때에당파가생겨조정이시끄러웠으나19년간유배생활을한공력탓인지노수신은어느당파에도속하지않은채영의정직을무난히수행하였다.호사다마라했던가.1588년[74세]영의정을사임하고영중추부사가되었는데,이듬해10월정여립의모반사건으로기축옥사가일어나자과거에정여립을천거한죄로대간의탄핵을받고파직되었다.노수신이인재로여겨천거했던정여립이난을일으킨것이다.그렇게선조가신임하고총애했던사람이,난을일으킨사람을천거했다니,선조도놀랐고노수신도놀랐다.
---「선조시대노수신」중에서

병조의일을처리할때에도수륙으로명나라원병이쏟아져들어왔는데,병조에관계된일로서천둥번개같은큰일에서부터쇠털처럼작은일까지이항복은자유자재로문제를해결하여,일이아무리쌓여도적체된적이없으므로,양경략은늘긴급한일을만나면반드시‘이항복을말하였다’고한다.이항복이병조를떠날때기본적으로사용할면포1만필이외에도군수물이남아돌아,병조내에서전하기를‘이항복이저장한것’이라고말하며오래도록이를지켜간직하였다.일컫는자들이근세의병조장관으로율곡을말하는데,이항복은족히율곡과상당하거니와,위급하고평온한때를가지고만한다면이항복이더함이있다고하겠다.
---「선조시대이항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