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실록 5 : 조선왕조 영의정 173人의 삶과 권력

영의정 실록 5 : 조선왕조 영의정 173人의 삶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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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저자는 성균관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797년에 성균관대 교직원으로 임용되어 1997년에 수도권 입학관리자 협의회 회장, 2007년 서울지역 총무처장 협의회 회장, 2012년 입학 사정관실 국장을 역임하면서 성균관대의 입시, 직원인사와 교육을 혁신한 바 있고, 재직시 대학 최초로 6시그마를 도입하여 업무 혁신을 진두지휘하였다. 이후 경기대 특임교수, 가천대 초빙교수로 초빙되어 교육대학원 강의와 함께 행정쇄신을 컨설팅하였으며, 아울러 베트남 하노이 약학대학 컨설팅을 수행하였다.
저서로 삼성식 대학경영, 영의정 실록 1~4권, 향교 기문을 공동 채록하여 번역한 교궁기집록(경북, 강원, 충청편)이 있다.

조선시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 자리는 어떤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올랐으며, 그들이 남긴 명성은 과연 어떠했을까?

조선왕조 519년 기간 동안 영의정 자리는 일반 백성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책이었다. 벼슬을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어 했던 영의정 자리는 왕조에 따라 오를 수 있는 신분이 정해져 있었다. 영의정 자리를 비롯한 조선왕조의 권력은 조선조 전 기간에 걸쳐 임금이 왕위에 오르는 데 협력한 훈공자를 위주로 발탁하였기에 공을 세우기 위한 권모술수와 역모가 끊이질 않았다. 선조 때부터 발생한 당파싸움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생결단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해야 했고, 결국엔 민란을 불러일으켜 국가가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조선 땅에서 청일전쟁을 일으키니 나라까지 통째로 바쳐지는 경술국치를 당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공평무사하고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시킨 왕이 있었으니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은 재임 32년 동안 단 5명의 영의정을 임용함으로써 훈공자에게는 곁눈질조차 주지 않았고, 황희 같은 정승을 18년 1개월 동안 곁에 두고 정사를 펼침으로써 태평성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또한 정조의 공평무사한 탕평 정책은 조선을 정상궤도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도 일찍 승하하여 국운이 따라 주지 않았다.

조선왕조 519년 동안 173명의 영의정이 배출되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은 황희, 정인지, 신숙주, 유성룡, 이원익 등 불과 10명 안팎이다. 그렇지만 영의정에 오르지 못하고도 해가 갈수록 우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퇴계, 율곡, 이순신, 권율, 신사임당, 정약용, 허준 등은 모두가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크게 이바지했던 사람들이다.
결국,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은 당대의 직위와 신분이 높아짐으로써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직책과 직위에서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느냐가 후세의 평가를 받는 데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알았으면 한다.

이 책은 왕조별 영의정 173명에 대한 개개인의 가족 사항부터 경력과정, 재직기간 중의 기록, 죽을 때 남긴 졸기 평가를 중심으로 편집하였으며 영의정에 오르게 한 핵심 요인을 영의정별 첫 소주제로 잡아 서술하였다.
저자

박용부

저자:박용부
저자박용부는성균관대교육학과를졸업하고동대학원에서교육학박사학위를취득하였다.
1979년에성균관대교직원으로임용되어1997년에수도권입학관리자협의회회장,2007년서울지역총무처장협의회회장,2012년입학사정관실국장을역임하면서성균관대의입시,직원인사와교육을혁신한바있고,대학최초로6시그마를도입하여업무혁신을진두지휘하였다.이후경기대특임교수,가천대초빙교수로임용되어강의와함께업무혁신을컨설팅하였으며,현재는베트남하노이약학대학컨설팅업무를수행하고있다.저서로『삼성식대학경영』,『교궁기집록(경북·강원·충청편)』이있다.

목차


일러두기14
조선왕조왕권의역사와영의정직의변화(광해군~효종)16

광해군시대
76기자헌?광해군에의리를지킨영의정,이괄의난으로멸문당하다
광해군을지지하여정승에오르고이괄의난으로사약을받다33
영창대군의죽음38
인목대비의폐비반대와기자헌의유배39
인조반정과이괄의변란보고50
기자헌의죽음과복권57
승진과정60
77정인홍?40세에천거되어82세에영의정에오른광해의남자
광해군을지지하여영의정에오르다63
유난히많았던정인홍에대한평판65
죽음을무릅쓴정인홍을살린상소문76
합천에거주하며상소문을통한정치82
인조반정과정인홍의죽음85
승진과정90
78박승종?광해군의사돈,인조반정이일어나자자결하다
광해군의사돈93
인목대비폐비를위한백관의의견수렴97
승진과정102

인조시대
79윤방?영의정윤두수의아들,신주를잘못모셔탄핵을받다
영의정윤두수의아들,선조와사돈107
백관의의견수렴,정청109
병자호란과종묘사직의신주모시기117
윤방의졸기137
승진과정138
80신흠?유교7신으로핍박받다가전화위복된영의정
선조의유교7신으로핍박받아인조때등용되다141
선조의유교7신144
과거시험관으로서의책임147
신흠의졸기148
신흠의시149
승진과정152
81오윤겸-왕릉지기에서영의정에오르다
청렴결백하고목민관으로명망을받은인물155
함경도암행어사감찰보고서159
오윤겸의졸기161
승진과정162
82김류?인조반정을기획하고주도한인물
인조반정1등공신165
탄금대에서기생과풍악을벌였다는탄핵을받다170
이괄의난과김류174
병자호란의중심에섯던김류178
김류의졸기216
승진과정218
83이흥주?병자호란중화친국서를들고적진을드나들다
정종의후손으로도량이넓고곧았던인물221
병자호란화친체결의중재자225
이홍주의졸기236
승진과정238
84최명길?인조반정1등공신,청나라와화친을주장한주화파
인조반정1등공신,정묘·병자호란의중심에서다241
정묘호란250
병자호란과최명길266
환향녀처리문제로논의하다268
제사에쓰는음식에대해논하다271
서경법등인사제도의개선을건의하다273
최명길의졸기275
승진과정277
85홍서봉?11년간숨어지내다가인조반정에가담하다
인조반정3등공신280
홍서봉과병자호란282
홍서봉의졸기305
홍서봉어머니의자녀교육306
승진과정308
86이성구-태종의7대손,인조가발탁한첫번째인물
태종의후손으로이이첨의배척이전화위복이되다311
이항복의사당을세워파직되다313
이괄의난에따른종합대책을논하다315
사신을다녀온이성구에게청나라의실정을묻다324
아들보석금문제로탄핵을받다327
일본국에서사당의건립으로편액과시문을청하다329
이성구의졸기330
승진과정331
87신경진?신립장군의아들,인조반정으로영의정에오르다
인조반정의기획자334
인조반정의기획의전모337
광해군의죽음347
신경진의졸기350
승진과정352
88심열?청송심씨잡안으로탄탄한왕실과의외척
왕실과의외척으로영의정의대를이어온집안355
심열의졸기361
승진과정363
89김자점?인조반정으로영의정이되어권력욕으로패망하다
인조반정1등공신366
국혼물실정책을관철하려다삭탈관직된김자점370
병자호란전에점검되었던강화산성374
권력을위해소현세자빈과그아들들의축출에앞장서다377
효종즉위와함께시작된탄핵381
권력욕의끝,가족의멸족385
백족산과자점보392
승진과정395

효종시대1
90이경석?정종의후손으로삼전도비문을짓다
정종의후손으로임금을위해충성을다하다401
삼전도비문을짓다410
원일잠,정월초하루계명을올리다414
소현세자를교육시키기위해청나라에가다416
명나라와비밀리소통을하다가적발되어감금되다417
8년만에소현세자를풀어주며칙서를내리다420
효종의북벌계획이발각되어그책임을지게된이경석423
송시열을천거하고송시열의기롱을받다428
이경석의졸기432
승진과정434
91이경여?세종의후손,명나라연호사용으로구금·파면되다
세종의후손으로강직하고충직했던참선비438
나라를위한충정으로올린상소문441
명나라연호를사용한죄로청나라에구류되다448
우의정이되어사은사로가니반청분자로다시구류되다451
소현세자빈을두둔하다가유배되다452
영의정의벼슬을자른청나라454
죽는날까지나라를위한충청에불탓던영의정455
이경여의졸기와유훈상소466
백강白江마을과대재각과동매468
승진과정472

출판사 서평

조선시대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영의정자리는어떤사람이어떤과정을거쳐그자리에올랐으며,그들이남긴명성은과연어떠했을까?

조선왕조519년기간동안영의정자리는일반백성으로서오를수있는최고의직책이었다.벼슬을시작한사람이라면누구나오르고싶어했던영의정자리는왕조에따라오를수있는신분이정해져있었다.영의정자리를비롯한조선왕조의권력은조선조전기간에걸쳐임금이왕위에오르는데협력한훈공자를위주로발탁하였기에공을세우기위한권모술수와역모가끊이질않았다.선조때부터발생한당파싸움은권력을차지하기위한목숨을건사생결단으로이어졌고,그결과임진왜란과병자호란을당해야했고,결국엔민란을불러일으켜국가가아수라장이된틈을타조선땅에서청일전쟁을일으키니나라까지통째로바쳐지는경술국치를당해야했다.
이런가운데서도공평무사하고능력위주로인재를등용시킨왕이있었으니바로세종대왕이다.세종은재임32년동안단5명의영의정을임용함으로써훈공자에게는곁눈질조차주지않았고,황희같은정승을18년1개월동안곁에두고정사를펼침으로써태평성대를구가할수있었다.또한정조의공평무사한탕평정책은조선을정상궤도로이끌어나갈수있는절호의기회였는데도일찍승하하여국운이따라주지않았다.

조선왕조519년동안173명의영의정이배출되었지만현재를살아가는우리에게알려진이름은황희,정인지,신숙주,유성룡,이원익등불과10명안팎이다.그렇지만영의정에오르지못하고도해가갈수록우리들의입에오르내리는퇴계,율곡,이순신,권율,신사임당,정약용,허준등은모두가민족과국가를위해크게이바지했던사람들이다.
결국,‘사람은죽어서이름을남긴다’는말은당대의직위와신분이높아짐으로써이름을남기는것이아니라,어떤직책과직위에서든국가와민족을위해어떠한노력을기울였느냐가후세의평가를받는데더중요하다는것을이시대를살아가는현대인들이알았으면한다.

이책은왕조별영의정173명에대한개개인의가족사항부터경력과정,재직기간중의기록,죽을때남긴졸기평가를중심으로편집하였으며영의정에오르게한핵심요인을영의정별첫소주제로잡아서술하였다.

광해군시대,인조시대,효종시대에는어떤사람들이영의정에올랐을까?

조선왕조519년동안영의정에오른173명중제5권에서는광해군시대기자헌,정인홍,박승종,인조시대윤방,신흠,오윤겸,김류,이흥주,최명길,홍서봉,이성구,신경진,심열,김자점,효종시대이경석,이경여까지16명의영의정을다루고있다.

173명의영의정중세종시대황희정승처럼이름을만세에남긴정승도있지만세조의조카로29세에영의정에올랐다가30대에죽은이준,포악무도했던예종시대홍윤성,중종시대조광조를모함했다가흉인이된남곤처럼오명을남긴정승도많다.오늘날도호랑이가가죽을남기듯이름석자를남기기위해억척스럽게권력을향해일로매진하고있지만권력후의결과는칭송받는자보다는감옥을가거나악명을남긴자가더많다.

저자의저술에따르면조선왕조와대한민국간의기간은가깝게는100년전의일이고길게는628년전의일이다.역사를통해배우는것은지난과거를타산지석으로삼아보다나은역사를만들어가는것인데,농경시대였던500~600년전의인재등용정책과2020년대의인재등용정책을보면크게달라진것이없다고보고있다.

저자는‘현대를살아가는오늘날의고위직관료들은어떤철학을갖고관직에임하고있는가’라는질문을던진다.철학도없이권력을손에쥐었던자들의말로는대한민국수립이후의대통령의모습에서찾아볼수있다고말하고있다.

결론적으로저자는조선왕조519년동안최고의벼슬인173명의영의정의벼슬경력과업적과그졸기평가를저술함으로써오늘날을살아가는현대인들에게권력의지에대한메시지를전하고자한다.